月朝특종史/「하나회 회원 명단 완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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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1월호에 庾龍源기자가 쓴 하나회 명단 관련 기사는 그 직후 金泳三정부가 들어서서 군내 사조직을 정리할 때 근거 자료로 쓰였다고 한다. 月刊朝鮮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핵심이었던 軍內 사조직 하나회에 대해서 많은 추적기사를 써왔었다. 庾기자(현재 조선일보에서 국방부 출입)가 쓴 기사는 이런 노력의 축적 끝에 나온 특종이었다. 아래 글은 1996년4월호 월간조선에 실렸던 특종기이다.
  
  
  
  「군을 분열시킨 기사」라는 비판
  
  金泳三 정부 출범 이후 군개혁의 대명사로 하나회 숙정이 꼽힐 만큼 하나회의 人口에 회자됐고 이제는 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나 필자가 육사 11기부터 26기까지의 하나회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한 1992년 12월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권 및 군내 일부 관계자들만 그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을 뿐 누가 그 회원인지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다만 11기부터 20기까지의 회원 명단이 단편적으로 몇 차례 보도된 적이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1992년 12월19일부터 발매되기 시작한 月刊朝鮮 1993년 1월호의 「하나회는 육사 20기 이후에도 영관급장교까지 조직돼 있다」는 필자의 기사는 몇 가지 측면에서 군내에서 파문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육사 20기까지만 조직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나회의 존재를 26기까지 확인, 명단을 게재했고 36기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했다는 점이다. 또 15기부터 20기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회원들을 거의 모두 찾아내 명단을 게재했다.
  
  당시 17기부터 26기까지의 하나회원들이 참모총장, 기무-수방사령관 등 현역 장성으로 각종 요직을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군부는 도덕성면에서 일대 타격을 입게 됐다. 이에 다라 명단에 포함돼 있었던 일부 장성들은 『도대체 이처럼 군을 분열시키고 利敵행위를 하는 기사를 쓸 수 있느냐』는 등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었다.
  
  당시는 필자가 국방부를 출입하기 이전이라 기사가 군내에 일으킨 파문의 강도를 실감할 수 없었으나 1993년부터 사회부 기자로 정식 출입하면서 그 파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장성이나 영관들이라도 명함을 내밀면, 『아, 그 하나회 기사 쓴 「경용원」 기자냐』고 반색하곤 했다(필자의 성이 드문 성씨여서 庚씨와 혼동, 성을 잘못 읽곤 했다). 또 權寧海 국방장관(현 안기부장)이나 金東鎭 육군참모총장(현 합참의장) 등 군 고위관계자들도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月刊朝鮮 기사를 보고 하나회원들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 됐다』고 말하곤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파문은 가라앉는 듯했으나 1993년 3월 金泳三 정부 출범 이후 육군참모총장 및 徐完秀 기무사령관의 전격경질을 시작으로 하나회 숙정이 가시화되면서 이 기사는 다시 주목받았다.
  
  특히 1993년 4월 白承道 대령(육사 31기)이 육사 20기부터 36기까지의 명단을 만들어 살포, 군 당국이 하나회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게 됐다. 白대령의 명단에는 필자가 다루지 않은 육사 27기~36기의 명단이 실려 있었고 20기~26기 사이에도 몇몇 인물들에 차이가 있었다.
  
  그 뒤 하나회 숙정이 이슈가 될 때마다 白대령 명단과 함께 필자의 기사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최근엔 하나회원으로 숙정된 모 예비역 중장이 하나회원임을 부인하며 행정 소송을 제기하자 물적 증거를 확보 못한 국방부측이 고심 끝에 필자의 기사를 법적 증거물로 법원에 지시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취재경위는 무덤까지 비밀로 갖고 갈 것
  
  파장이 컸던 만큼 취재 경위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도대체 어떻게 명단을 입수했느냐』 『회원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많은 회원들을 확인했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하나회원들에게 호적증명서처럼 문서화된 증거물이 있는 것도 아닐테고, 명단이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형태로 몇 부가 있었느냐는 데 대해 논란이 있었으니 당연히 갖게 되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 기사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만큼 그 자세한 취재경위는 무덤까지 비밀로 갖고 가는 것이 기자의 도리일 것 같다. 특히 하나회원들 가운데 우수한 사람이 많고 개인적으로 필자와 가까운 사람도 적지 않은데 필자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 같아 한 자연인으로서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지금도 1백20여 명의 장성 및 영관장교들이 하나회 출신으로 군내에 남아 마음고생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대특종에는 정치적인 해석이나 오해가 따르는 경우가 많듯이 필자의 기사에 대해서도 「反하나회 세력이 현 정부의 하나회 숙정에 앞서 여론조성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명단을 흘렸다」는 일부 추측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反하나회 세력은 취재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으며 하나회 핵심 회원들을 통해 3개월여 동안 2~3차례 확인 절차를 걸쳐 확인된 사람들을 명단에 실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출처 :
[ 2003-05-29, 14: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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