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보유와 한국의 대응방안

정종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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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5월29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주최 KIMS모닝포럼에서 정종욱 아주대 교수가 강연한 내용이다. 정 교수는 제1차 북핵위기가 진행되던 1993년 당시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었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1) 핵무기 보유발언을 둘러싼 시비
  북한은 지난 4월 23일 북경 3자 회담시 핵무기 보유를 시사하였다. 그러나 발언 전후 상황이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첫날 회의가 끝난 후, 이어 있었던 만찬이 끝나고 대표들이 퇴장하는 자리에서 이근 북한 대표가 켈리 미국 대표를 방 한쪽으로 데려간 뒤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를 실험하거나 수출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것도 통역을 통해서 했는데 이근은 상당한 영어 구사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중국 측이 나중에 북한 측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측에 말했는지를 확인했을 때에는 부인했다고 한다.
  
  북한이 핵 무기 보유와 같은 중요한 사실을 공식석상에서 밝히지 않고 이렇게 통역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으로 판단된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공갈 게임을 다시 하고 있다”고 한 것도 이러한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경우 이는 북한에 대한 비난을 자초하고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핵무기 보유를 애매하게 표현함으로써 스스로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일 것이다.
  
  (2)핵무기 보유에 대한 평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아직 구체적 증거에 의해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93-94년 핵 위기 당시 북한은 89-91년 중 5Me 원자로에서 핵 폭탄 1-2개의 제조가 가능한 plutonium을 축출, 은익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한 특별사찰을 북한이 거부하고 NPT를 탈퇴하였는데, 그 후 제네바 합의에 따라, 경수로 공사 착공 7년 정도 이후에 특별사찰을 실시키로 했으나, 작년 10월 Kelly 국무차관보의 평양방문에서 북한의 우라늄 핵개발계획이 공개되면서 제네바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상태이다.
  
  핵 폭탄 제조를 위해서는 plutonium이나 고농축 우라늄 같은 핵 물질(fissile materials) 뿐만 아니라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 기폭(detonation)기술 도 갖추어야 한다. 북한이 많은 회수의 고폭 실험을 한바 있으나 기폭기술의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 당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북한의 핵 기술 수준으로 미루어 보아 핵 폭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위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본인 역시 북한이 몇 개의 폭 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위력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한국전쟁 중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위협을 심각하게 느껴야했던 김일성은 오래 전부터 핵 무기의 보유를 은밀히 추구해 왔을 것이며 특히 김정일은 핵무기를 체제와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집요하게 추진했던 것도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 무기를 철거하고 한국을 미국의 핵우산으로부터 이탈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지난 북경회담 시 북한이 핵 보유를 기정 사실화 한 것을 단순한 협상용 카드 이상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강경대응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보다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8천 개의 사용 후 연료봉들의 재처리 여부이다. 이들 연료봉에 대한 재처리가 이루어지면 북한은 6개월 이내에 5개 정도의 핵 폭탄을 추가로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건설 도중에 제네바합의에 따라 건설이 중단된 바 있는 50Me 원자로가 완공되는 경우 북한은 매년 10개의 폭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재처리와 재건설, 특히 재처리를 강행하여 추가로 핵폭탄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 이를 불량국가나 테러집단에게 판매하게 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으며 이것은 테러와의 전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부시 정부가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선(red line)으로 보고 있다.
  
  (3 )한반도 현상황에 대한 미국의 인식과 평가
  Oberdorfer 기자는 최근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절대 폭풍”(perfect storm)의 상황으로 비유한 바 있다. 그는 북한의 핵 위기도 심각하지만 이에 대처하는 한미동맹에 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Oberdorfer 기자 뿐 아니라 국방성을 비롯한 미국내의 많은 정책 결정자들도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한미동맹이 50년 역사에서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다고 믿고 있다. 과거에도 한미동맹에 문제가 있었던 시기들이 많았음. 1953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비상계획(Operation Everready)을 세울 정도로 한미관계가 불안했던 적이 있었으며, 70년대 초 중반에는 이른바 Korea gate사태가 터지면서 동맹관계에 심각한 파열음이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동맹관계를 더 굳게 만들기 위한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근래 한미동맹관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동맹의 존립 그 자체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동맹 관계가 이렇게까지 된 원인을 살펴보면 물론 여러 가지 요인들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문제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햇볕정책이었다. 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동맹은 안보에 대한 공동 위협의 존재와 이에 대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전제로 한다. 한미동맹의 경우 북한이 안보위협의 주적이라는 점에 대하여는 50년 동맹 역사에서 한번도 의문이 제기된 적이 없었지만 햇볕정책이 시작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족 우위의 논리가 대북화해협력 정책으로 구체화되면서 동맹은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기 시작했고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북한의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싸고 동맹과 민족은 완전히 평행선을 그어왔다.
  
  특히 작년 여중생 사망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반미데모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노무현 후보가 전쟁 불가론을 부르짖고 한미관계의 근본적 재조정을 요구하는 발언을 쏟아 놓음으로써 동맹은 사실상 와해 직전의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CBS의 시사 프로를 통해 동맹국가 한국에서 불타는 성조기와 장군의 눈물이 방영되었을 때 미국 국민들의 마음 역시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4)한미정상회담의 성과와 향후 전략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하면 지난 14일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은 일단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방문에 비하면 대단한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반미성향 및 대북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오해나 의혹을 일단 불식시킴으로써 파국 직전의 한미 동맹관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양국간에 입장의 차이와 인식의 간격이 아직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3가지의 주요한 합의 사항이 있다. 남북 경협을 핵 문제 해결과 연계할 것과 핵 문제가 악화되면 “추가조치”를 고려할 것을 한국정부가 동의한 것, 그리고 미 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를 당분간 연기한다는 미국 정부의 약속이다.
  
  핵심은 추가조치(further measures)라 할 수 있다. 원래 미국은 모든 선택(all options)이라는 표현을 제의했으나 이것이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한다는 한국측의 견해를 고려하여 보다 중립적인 표현인 추가조치라는 문구로 낙착되었다. 미국이 생각하는 추가조치가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강경책이었다는 것은 5월 23일 텍사스의 Crawford 목장에서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다.
  
  미일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문구는 “보다 강경한 조치” (tougher measures)라고 되어있지만 실제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수상이 논의한 내용은 이보다 훨씬 구체적이며 강한 것이었다.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한 해안봉쇄를 통해 북한이 핵 무기나 미사일은 물론 아편이나 헤로인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것을 막기로 합의했으며 조총련의 대북 송금도 차단하기로 하였다. 또한 두 정상은 납북된 일본인의 송환을 북한 측에 강력히 요구하기로 합의하였다. 북한은 세계 제 3의 아편 생산국이며 6대 헤로인 생산국으로 이들은 무기 수출과 함께 북한의 주요 외화 벌이 루트이다. 무기 수출에서는 년 평균 5.6억 불, 마약 수출에서는 1억 불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최근 줄어들긴 해도 조총련의 송금도 년 평균 5억 불에 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이러한 강경조치를 취하는 경우 북한에게는 체제 붕괴의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현 단계에서는 아직도 북한에 대해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으나 미국의 입장은 한미 정상회담의 합의를 훨씬 넘는 강경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가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에 상당이 회의적이다.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은 결국 북한의 체제가 변해야 하며 이을 위해서는 김정일의 퇴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부시 대통령의 생각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그는 “나는 김정일을 싫어한다. 그는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독재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라고 평했다고 하는데 이는 부시의 세계관에서 연유하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미국 남부 Texas의 감리교도(Southern Baptist)로서 종교적 신앙이 강한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이며 매일 아침 기도로서 일과를 시작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경공부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종교적 선악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북한이나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보는 것도 단순한 수사학적 차원을 넘어 그의 이러한 종교적 신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어떠한 행동을 하든지 그것이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김정일이나 북한에 대한 부시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대북 정책은 강경하게 나갈 것이다.
  그만큼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이들 비관론자들은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낮지만 극단적 상황에서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후 미국 정부 내에서 Cheney 부통령이나 Rumsfeld 국방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 강경파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지난 6개월 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체제 변화를 목표로 하는 B-plan (NYT보도)을 단순한 압력수단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운 게 미국 국내 상황이다. 주한 미군, 특히 2사단의 한강 이남 철수를 강력히 주장한 것도 Rumsfeld 국방 등 이들 강경 보수주의자들이다.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를 그 이유로 들고 있긴 하지만 2사단 철수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위한 준비이며 B-plan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다.
  
  (5) 향후 전망
  미국은 현재로서는 북한과의 외교적 해결 노력을 적어도 한차례 더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말 북경에서 개최된 3자 회담이 북한의 무리한 요구와 상식에 어긋난 행동으로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후 미국은 그 후속 회담에 대해 극히 회의적이었으나 중국과 한국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일단 6월 중에 다시 회의를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후속 회담의 형식이 종전대로 3자가 될지 또는 한국과 일본이 추가된 5자가 될지는 불분명하지만 다자의 틀 속에서 북한과 미국의 회담이 다시 한번 더 있을 것이다. 만약 이 후속 회담마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 북한 핵 문제 해결은 강경기조로 돌아갈 전망이다.
  
  문제의 열쇠는 다분히 중국에 있다. 지난 번 북경에서 3자 회담을 주선한 것은 중국이었으며 후속회담의 개최를 역설하고 있는 것도 중국인데, 이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북한 문제에 관해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여 조용한 외교를 고집해온 중국이 갑자기 적극적 자세로 방향을 전환한 이유는 역시 북한의 핵 문제를 둘러싼 기류가 자칫 극단의 위기 상황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 무기 보유 가능성을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다. 만약 북한의 핵 무기 보유가 확인될 경우 이는 일본이나 대만의 핵무장 움직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중국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중국은 북한에 대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압력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에너지의 70-90%, 식량의 35% 정도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이러한 수치를 넘어 북한의 대 중국 의존도는 북한의 체제유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한 것이다. 물론 중국의 영향력에도 한계가 있으며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과 방법의 선택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겠으나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조는 매우 긴요하다. 특히 핵 문제 해결의 평화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서 제재조치의 선택이 불가피해 질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입장으로서는 미국 및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대한의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평화적 해결 노력이 실패하여 강경한 조치의 선택이 불가피해 질 경우에 대비해서도 철저한 대비태세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
  
출처 :
[ 2003-05-29, 18: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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