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문장의 한 惡習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편집장으로서 남이 쓴 글을 고치고 줄이고 하는 일을 오래 해왔다. 한국인들의 문장력은 국력에 비례하여 발전해왔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지식인층의 문장력은 한글전용을 무작정 추종하면서 오히려 정확성이나 품격에 있어선 못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교정을 보다가 보면 한국인의 문장습관중 되풀이되는 惡習이 많이 발견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할 정도로 ---하다'는 공식이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날 정도로 건강하다>
  <그는 출장을 도맡아다닐 정도로 주인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청백리라고 불릴 정도로 깨끗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의 100대 인물로 꼽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문장에서는 '----했다'로 잘라버려야 한다. 뒤의 '--정도로 ---하다'는 것은 중복이거나 쓸데없는 부연설명이다. 이런 악습의 심리가 재미 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난다'라고 쓰면 되는데 여기에 의미부여를 하여 '새벽 5시에 일어날 정도로 건강하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하나의 사례를 너무 확대해석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는 건강해서가 아니라 걱정이 많아서일 가능성도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일과 건강하다는 현상을 억지로 연결기키려는 방식이 '---할 정도로 ----하다'이다.
  
  <김정일은 상해 시찰을 하면서 '천지개벽'이란 말을 했을 정도로 북한 체제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위의 例文은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고 한 말을 바로 그의 개혁의지로 연결시키는 전형적인 과장과 일반화의 논법이다. '천지개벽이란 말을 했다'고 전달만 하면 될텐데 이 말을 해석하고 의미부여를 해야 자신이 쓰는 글이 돋보인다고 강박관념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문장법은 자기 과시형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이 이미 설정해놓은 논리의 틀에 사례를 그냥 끼워넣으려는 독재적 모습이기도 하다.
  
  위의 例文 필자는 김정일이 개혁 마인드가 강하다는 점을 미리 전제해두고 '천지개벽' 발언을 그 논리 구조속에 끼워넣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고 말했다고만 전달하면 독자들은 자신의 思考 틀속에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한다. 그렇지 않고 '---할 정도로 ----하다'라는 틀에 끼워넣어버리면 독자들은 필자가 제시한 해석에 끌려가든지 거부할 수밖에 없다. '---할 정도로 -----하다'는 문장이 많이 쓰이지 않을 때 한국 사회가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 사회로 성숙될 것이다.
출처 :
[ 2003-06-01, 16: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