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橋莊 터와 金九 선생 암살 안내문 유감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서울 강북삼성병원은 옛 이름이 고려병원이다. 그 본관은 해방후 金九가 거처했던 경교장 자리이다. 본관 입구 오른쪽엔 서울시청이 만든 돌판 표지가 있다. 이렇게 쓰여져 있다.
  
  <김구 金九 주석 서거한 곳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광복 이후 사시다가 서거한 곳>
  
  이것을 읽고서 무슨 역사적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김구 주석이 서거하셨다니 병에 들어 죽었다는 이야기인가. 언제 일이란 말인가. 차라리 안 만든 것만 못한 아주 성의 없는 역사표지판이다. 관료주의적 나태와 불성실의 한 전형이다. 문제는 서울시내에 있는 수백 개의 역사 표지가 이 모양이란 점이다.
  
  <서울유형문화재 제129호 金九(1876-1949) 선생이 암살된 京橋莊 터
  1949년 6월26일 오전11시 金九선생은 이곳에서 육군장교 安斗熙의 저격을 받고 74세로 운명했다. 金九 선생은 그해 7월5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金九선생은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상해임시정부의 국무령, 주석으로 있으면서 李奉昌 尹奉吉 의사의 의거 등 항일무력 투쟁을 지휘하였다. 광복후 귀국하여 이곳에 거처하면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암살범 安斗熙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6.25동란중 석방되었다. 그는 1996년9월 박기서란 사람에 의해 피살되었다.
  
  京橋莊은 금광으로 돈을 번 崔昌學이 1938년에 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일본식 건물로서 金九선생이 귀국하자 거처로 제공하였다. 광복후 李承晩의 梨花莊, 金奎植의 三淸莊과 함께 건국활동의 한 거점이었다. 金九선생 서거 이후 대만 대사관저, 미국 특수부대 주둔지로 이용되다가 삼성재단에서 1967년에 매입하여 고려병원(삼성강북병원의 前身)의 본관으로 사용하였다.>
  
  이 정도의 기술과 金九 선생 사진을 새겨넣어야 역사 표지판을 읽는 사람이 무엇인가 느끼는 바, 그리고 새로 알게 되는 정보가 있을 것이 아닌가. 돌에 내력을 새기는 것보다는 동판에다가 글을 퍼넣고 이 동판을 돌판에 부착시키면 내용이 달라질 때 동판만 바꿔끼울 수 있다.
   혼이 없는 공무원들은 자발성이나 창의성에 둔감하여 결국은 나라에 손해를 끼칠 뿐이다.
출처 :
[ 2003-06-01, 21: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