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황석영, 김일성 그리고 '언 감자국수'
보수가 주적을 잃은 와중에 「거 참 열심히 일(?)하는 구나!」

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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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감자국수
손학규 前지사가 평양에 갔다. 이명박·박근혜 싸움질하고, 김정일·노무현이 잊혀진 사이, 보수가 주적을 잃은 와중에 「거 참 열심히 일(?)하는 구나!」


「손학규 방북」이 주선된 것은 지난 달 20일이다. 개성에서 孫측 인사와 북한 통일전선부 일꾼이 만났다. 물론 공개적으로... 20일 만남을 주선한 이는 승려인 「명진」이다.

 

孫 前지사는 한나라당 탈당 시에도 「명진」으로부터 자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명진」은 조계종 고위직 간부이자 봉은사 주지이다.


명진은 「민족21」이라는 잡지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민족21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미화일변도의 선전을 해 온 잡지이다. 북한 통일신보, 조총련 조선신보 기사를 직접 게재하는 한편 『선군정치는 우리민족의 통일을 담보하는 통일애국의 정치(2005년 12월호)』『北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제 민족에 대한 긍지가 대단히 높은 사람들(2006년 5월호)』이라는 등 의 주장을 해왔다.


孫 前지사 측근 중 명진 보다 흥미로운 인물은 『손학규의 얼굴마담』을 자처하는 소설가 황석영이다. 황석영은 손 前지사와 70년대 노동운동을 함께하며 교분을 쌓아온 인물이다.

 

黃씨는 孫 前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강하게 권유한 인물이다. 3월27일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孫 前지사가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데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4월30일 출범한 孫 前지사 지지세력 「선진평화포럼」 고문으로 참여했다.

 

황석영은 대한민국을 배신했던 인물이다. 89년~91년간 다섯 차례 밀입북하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친견한 뒤, 북한으로부터 25만 달러를 받았었다. 93년 귀국 후 수감됐지만, 98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노무현 정권 들어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대표 중 한 명으로서 송두율 석방운동(2003년 10월23일 성명 참여) 등을 벌이기도 했다.


황석영과 김일성의 끈끈한 인연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북한 체류 당시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격찬을 받고, 「언 감자국수」를 함께 먹었다. 「언 감자국수」는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 당시 땅 속에 묻어둔 언 감자를 꺼내 국수를 해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고 해서 김일성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북한 대남공작기관 「칠보산연락소」에서 일했던 전향간첩 오길남 박사는 『언 감자국수는 외부인에 대한 최고의 대접으로서 일종의 김일성의 영성체(領聖體)의식』이라고 말한다. 송두율도 91년 5월 묘향산초대소에서 김일성을 친견한 뒤 「언 감자국수」를 같이 먹었다.(검찰은 같은 시기 송두율이 조선로동당 정치국후보위원으로 선정됐다고 기소했었다.)

 

황석영은 방북 이후인 《노둣돌》이라는 잡지의 1992년 창간호 인터뷰에서 『김일성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이라며 이렇게 평가했다. 이글은 그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

 

그(김일성)는 어쨌든 사상의 차이는 도외시하더라도 두 번이나 세계 최강의 외세와 맞서 싸웠습니다. 나는 그가 어떤 의미에서는 대국인 중국혁명의 지도자 모택동보다도 훌륭한 점이 있으며 베트남의 호지명에 절대로 뒤지는 인물이 아닌 제3세계적 혁명가라고 생각합니다...이제 그는 올해로 만 80세를 넘겼습니다. 94년이 동학 백 년이 되는 셈인데 반외세 자주화 투쟁의 현대사 속에서 그는 어쨌든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셈입니다. 필자는 그가 우리 민족의 유일무이한 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중이 소박하게 떠올렸던 여러 위인들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 이율곡, 정약용, 전봉준, 김구 등등처럼 위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나는 링컨이나 워싱턴은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는 록펠러 카네기까지 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황석영은 같은 인터뷰에서 『연방제가 가장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라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현 단계에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 즉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제도의 두정부가 있다는 점도 인정하되, 그 상위개념으로서 민족도 하나요, 국가도 하나인 것이 바로 통일이라는 점을 무엇보다도 먼저 인정하자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사회평론》1991년 9월호 인터뷰에서도 『北에서 제시하고 南의 재야에서도 이구동성으로 제시하였으며 제도권 야당까지도 동의하고 있는 통일방안은 연방제통일이 아니냐?』며 『최종적으로 영세중립국가를 지향하면서 통일국가의 제도와 체제는 민중이 선택하고 형성해 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前지사는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면서, 북한공산집단과 『이데올로기 융합』 등을 내세우는 하면, 『국가보안법 폐지』까지 공언하고 있다. 주변 인물마저도 심상치 않다.

 

이런 인물에 대해 몇몇 보수인사들이 한나라당의 『수구』적 행태에 싸워 온 『개혁적 인물』이라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는 그저 반인륜·반민족·반국가 원흉인 김정일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김정일에 죽어가는 북한동족에 대한 연민이 없으며, 김정일에 가위눌린 남한국민에 대한 염려가 없는 인물일 뿐이다.

출처 : 프리존(www.freezone.co.kr)
[ 2007-05-10, 16: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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