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평양에 못가서 안달인가
우리는 권력자들이 쳐놓은 ‘정상회담의 덫’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하면 마치 반(反)통일의 역적이라도 되는 양 몰아가는 좌파의 심리적 압박과 대세 몰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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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우리 한국인들은 정상회담,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라면 무슨 마법(魔法)의 상자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다. 분단 상황에서 권력자들의 ‘정치적 분식(粉飾)’과 ‘언론의 사건화(事件化)’ 욕구가 정상회담을 과대포장해 국민들에게 사실 이상의 막연한 기대를 심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념적 분화가 심각한 우리 현실에서 남과 북의 권력자들이 만나는 것 자체가 흥미 있는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남북 정상회담은 번번이 남북 간에 정치적 술수와 꼼수들의 마당으로 전락했다. 원래 정상회담이란 양측의 ‘대표 선수’가 직접 만나 교착 상태에 빠진 양국 간의 쟁점이나 현안들을 거시적으로 타협하며 공통의 이해를 모색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북(北)은 무엇을 주고받기보다 일방적 강요에 머물고 남쪽의 정치를 교란하는 데 목적을 두었고, 남(南)은 북에 끌려 다니며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고 어떤 ‘성과’를 위장하고 치장하는 데만 몰두해 왔다. 그래서는 정상회담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해낼 수 없다.
  
  이번에도 남북의 평양회담은 온 국민이 납득하고 성원할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우선 이 회담은 형식은 노무현·김정일의 대면이지만 실은 김정일과 남쪽 좌파 간의 회담이나 다름없다. 김정일로서는 사실상 임기가 4개월 남은 노 대통령과 회담할 이유가 없다. 얻을 것은 있겠지만 줄 것은 없다. 핵(核)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할 것이다. 굳이 남쪽과 ‘거래’를 할 양이면 새 대통령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지금 회담을 ‘허락’한 것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궁지에 빠진 남쪽의 좌파를 구원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그토록 저주해온 김정일 세력으로서는 지금 대선의 양상을 그냥 두고 볼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음직하다. 그래서 말이 남북 정상회담이지 실은 정상을 매개로 한 남쪽 ‘좌파 구하기 작전’으로 봐야 한다.
  
  우리 쪽의 문제도 있다. 지금 노 대통령의 지지도(또는 인기도)로 봐서 국민 다수는 그를 믿지 않고 있다.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업지 않은 ‘대표 선수’의 활동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고 자신의 표현대로 비록 ‘어음’을 발행한다 해도 부도나기 십상이다. 좌파가 아닌 쪽에서는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올지 불안한 심경이다.
  
  좌·우를 떠나서 우리는 이런 의문과 불만을 감출 수 없다. 왜 남쪽의 권력자들은 집권했다 하면 북에 정상회담을 애걸복걸하는가? 역대 정권이 그랬고 역대 대통령들이 정상회담을 해야 제구실을 한 것으로 여겼다. 우리는 그것이 싫다. 왜 남쪽의 지도자들은 평양엘 못 가서 안달인가? 사정이야 어떻든 김구도 그랬고, 박정희(이후락)도 그랬다. 아웅산으로 경직된 때를 제외하고는 역대 정권은 ‘평양행(行)’을 타진하는 데 골몰했다. 김영삼도 그랬고 (김일성의 사망으로 불발에 그쳤지만), 김대중은 실제로 평양 땅을 밟았다. 그들에게 ‘서울’은 변방이었다. 모두들 평양으로 달려 가려 했거나 달려갔고 북은 앉아서 남을 맞아들이는 꼴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역겹다.
  
  왜 우리는 북에 ‘선물’을 못 바쳐서 안달인가? 물론 북에 무료(無料) 입장은 없다. 누구든, 어느 경우든 돈이나 선물을 바치고 평양엘 갔다. 이번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다만 액수를 점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조공 바치는 모양새가 싫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정상회담다운 분위기로 치러질 수 없고 또 설혹 이런저런 보따리를 마련한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찬성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지금 한반도의 사정은 정상회담인들 쉽게 해결할 수 없다. 국민대 교수로 있는 안드레이 란코프는 핵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미·소 대립이 해소된 것은 외교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소련의 내부 붕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통일도 동·서독의 정부 간 접촉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동독의 내부적 혼란과 동독 인민의 서독을 향한 기대감 등이 발동한 때문이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내부적 현상’이 정상회담이나 6자회담보다 더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우리는 권력자들이 쳐놓은 ‘정상회담의 덫’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하면 마치 반(反)통일의 역적이라도 되는 양 몰아가는 좌파의 심리적 압박과 대세 몰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은 정치적 속임수일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무엇을 가져올지 똑바로 봐야 한다. 우리가 정상회담의 환상과 허상에 이끌려 다니면 다닐수록 김정일 정권은 계속 고자세로 유세(有勢)를 부릴 것이다.
  
  
[ 2007-08-13, 10:2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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