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競選 흥행 대성공의 비밀
19~49세의 청장년층이 李明博의 경제 실용을 매개로 하여 한나라당쪽으로 온 것이 결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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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한국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온 뉴스는 온통 李明博-朴槿惠씨의 한나라당 競選 血鬪였다. 이 경선에서 이기는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 당선될 가능성이 50% 이상이니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치열할수록 폭로전으로 기울었고, 폭로전엔 늘 그렇듯이 외부세력의 개입 논란이 있었다. 경선이 치열할수록 승부가 난 뒤의 결과 승복은 또 다른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
  
  한나라당 경선은 관심도 면에서 유례 없는 ‘흥행성공’이었다. 정치는 인기, 여론, 관심을 먹고서 작동한다. 정치의 에너지는 국민들의 관심인데 이 관심을 온통 독점해온 것이 한나라당 競選이었다. 일단 성공인 것이다.
  
  좌파들(소위 汎與圈)이 離合集散과 신장개업식 對국민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한나라당으로 집중되는 여론과 인기에 눌려버린 때문이다. 서둘러 마련된 노무현-김정일 회담도 한나라당 태풍에 대한 생존책이다.
  
  1. 한나라당 競選에 국민 관심이 쏠린 이유는 국민 지지도 1, 2위 사이의 격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격차가 좁혀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1 대 1 구도의 선거는 끝으로 갈수록 지지율의 격차가 줄어드는 원리가 있다.
  2. 외부세력이 한나라당 경선에 개입하고 또 한나라당 안에서 외부세력을 이용한다는 주장과 의혹이 난무하면서 관심이 증폭되었다. 검찰 수사가 한나라당 경선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3. 李明博, 朴槿惠씨의 개인 경력과 성격, 그리고 지지기반이 서로 상반된다는 점에서 극적 효과가 더해졌다.
  4. 격렬한 폭로 공방전에도 불구하고 金品 살포 따위의 부정선거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한나라당 경선은 한국의 정치문화를 한 걸음 성숙시킨 것이었다.
  5. 언론이 상호 폭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검증을 소홀히 한 것은 유감이다. 언론이 일반인과 한나라당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 면이 있다.
  6. 朴寬用 경선관리위원장이 중심을 잘 잡았다. 전 국회의장을 지낸 朴 위원장은 경선 승복까지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黨의 元老들이 양쪽 캠프로 갈라진 속에서 朴寬用씨의 중립적 역할은 돋보였다.
  7. 다음과 같은 아쉬움도 있었다.
   가. 경선기간중 있었던 노무현-김정일 회담 발표에 대해서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방북단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점은 잘한 일이다.
   나. 가장 중요한 현안인 북한의 위협(핵무기 등), 국내 친북좌파들의 反헌법적 난동, 전교조 대책,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확립 방안 등이 진지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다. 자유통일을 넘어서 一流국가 건설로 나아가야 하는 한국의 進路를 놓고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토론과 격돌이 있었어야 했다.
  
  8. 노년층의 역할 증대: 올해 선거에서 50세 이상 유권자수는 약34%. 투표율이 높으니까 실질적인 영향력은 40%에 육박할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老年層의 표심을 어떻게 얻느냐가 주된 戰略 포인트였다. 高齡化의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에서는 10여년 안으로 50세 이상이 전체 유권자의 50%를 차지한다.
  9. 청장년층의 한나라당 지지: 19세 이상 49세까지의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李明博씨 지지로 도는 바람에 한나라당의 지지층 규모가 거의 倍增되었다. 이들은 경제, 실용을 중시한다. 反좌파적 성향이 강하지 않고 강경 보수에 대해선 거부감도 많다. 한나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가의 여부는 이 젊은 지지층을 앞으로 넉 달 동안 확보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10. 競選 이후의 단합과 분열: 공격을 당하면서도 단합을 강조해온 李明博씨가 당선되면 경선 이후의 단합 가능성이 높아지고, 李明博 必敗論을 주장해온 朴槿惠씨가 이기면 단합하는 데 힘이 들 것이다. 개인과 진영의 개인적 화목보다도 지지층의 승복 여부가 더 중요하다.
  
  경선의 시험대를 통과하면서 李明博씨는 승부근성이 있는 지도자임을 보여주었다. 朴槿惠씨도 집요하고 일관된 투지를 보여주었다. 이 기간중 李씨의 對北觀이 우경화하고(한나라당의 새 對北정책 거부, 김정일 비판 등), 朴槿惠씨의 對北觀이 모호해진 점(6.15 선언 계승론, 김대중에 대한 호평, 굴욕적 평양회담 사실상 환영 등)도 意外였다. 한민족 7000만 명의 운명이 이렇게 적은 사람, 단 두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역사, 세계가 내일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 2007-08-18, 11: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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