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解體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회담 연기
非정상적인 마피아적 성격도 드러낸 것

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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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민둥산
8월28일로 예정됐던 노무현·김정일 평양회담이 수해(水害)로 무산됐다.
  
  북한은 18일 오전 『최근 발생한 대규모 수해로 인한 복구가 시급하다』며 『盧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10월 초로 연기해 줄 것』을 한국 측에 요청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평양회담을 10월2일∼4일 개최하자』고 북한에 통보했고, 북한은 이를 수용하겠다고 알려 왔다.
  
  자연재해(自然災害)로 회담이 결렬됐다는 것은 북한체제의 「허약성(虛弱性)」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비만 많이 와도, 소위 정상회담 같은 중요행사를 치러낼 능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의 원인이 세간에서 제기되는 「북한의 과도한 지원 요구」, 「大選영향력 극대화 시도」 등에 있다 해도, 이는 북한체제의 「비정상성(非正常性)」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국가와의 약속이나 합의조차 무시한 채 더 많은 이득만 챙기려는 마피아적 성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결국 체제존립조차 버거운 허약(虛弱)하고, 비정상적(非正常的)인 북한정권과의 회담시도에 무리(無理)가 따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회담 연기로 일단락됐다는 분석이다.
  
  상당수 논객들은 평양회담을 순리(順理)를 거스르는 야합(野合)으로 평가하며, 10월 회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 94년 7월8일 김일성은 김영삼 前대통령과의 평양회담을 17일 앞두고 사망했었다.
  
  『평양은 車도 못 움직여』 폐허가 된 평양
  
  「수해피해」가 「회담결렬」로 이어진 배경에는 평양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점을 들 수 있다. 평양을 찾는 남한일행은 물론 화면을 통해 지켜볼 세계인들에게 「전시(展示)도시」로 만들어진 「혁명의 수도」가 아닌 비 피해로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평양은 현재 주요 도로와 시설이 폐허에 가까울 정도로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중앙통신은 16일 『평양시에서 주택 6400가구가 파괴됐다』면서 『4개 이상 구역에서는 물이 2m까지 차올라 교통이 마비되고, 전력 공급과 통신망이 차단됐다』고 보도했다.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7일부터 11일 사이에만도 평양시에는 40년 전(1967.8.25~29)에 평양일대를 휩쓸었던 큰 물때보다 224㎜나 더 많은 비가 내렸다』고 밝혔다.
  
  북한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평양시 대중교통수단이 전면 중단됐으며, 외빈(外賓)을 수용하는 보통강호텔은 물론 청류관 등 유명식당과 15만석 수용능력의 5.1경기장도 침수됐다』고 전했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국장은 『평양은 차도 다니지 못할 정도로 폐허가 된 상태』라며 현지 정보통을 인용해 전한 뒤, 『회담 연기의 첫째원인은 외부에 도저히 보여줄 수 없을 만큼 평양의 피해가 컸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에는 평양을 제외하고선 극적인 연출을 할 수 있는 다른 접대장소는 없다고 볼 수 있다』며 『개성, 금강산 등 다른 지역으로 회담 장소를 바꿔 개최하기도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체농법...민둥산 뒤덮고, 재해는 상습화
  
  북한의 천재(天災)는 김일성·김정일이 만들어 낸 철저한 인재(人災)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창안했다는 소위 「주체농법」을 앞세워 산마루에 계단식 논을 마구잡이로 만들고, 화학비료를 다양으로 살포해왔다. 연료난으로 남벌(濫伐)마저 심해지면서, 북한의 많은 산은 민둥산으로 변해갔다. 90년대 들어 산림훼손과 토사유실이 더욱 늘자, 북한은 상습적인 홍수, 가뭄, 태풍 등 자연재해에 시달리게 됐다. 이들 재해는 90년대 중반 이후 2~3년을 제외하곤 해마다 거듭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폭우로 844명에 달하는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가 나왔고, 95년에는 소위 「100년만의 대홍수」로 5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95년 당시는 소위 「고난의 행군」시기로서, 이듬해까지 30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죽어나갔다.
  
  극심한 민심이반, 두려운 북한정권
  
  「수해피해」가 「회담결렬」로 이어진 또 다른 배경에는 민심이반(民心離反)을 우려하는 북한정권의 두려움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이는 최근 수년 간 북한주민의 충성심이 급격히 약화돼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과거 탈북자들은 남한에 온 이후에도 김정일 뒤에 경칭을 붙여 부르곤 했다. 그러나 최근의 탈북자들은 한국에 발을 딛는 직후부터 김정일에 대한 비난과 욕설을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에 친척방문을 온 북한주민 중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부르는 경우가 드물고, 북한 내 대학생들조차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부르다간 「왕따」가 되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수해피해가 장기화될 경우, 김정일의 무능을 탓하는 주민들의 불평·불만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양회담에 앞서 수해복구에 전력을 기울여야하는 절박감이 북한정권에 팽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해체되고 있는 북한체제의 실상
  
  우리 軍관계자는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개최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북한 지도부로서는 수해로 인한 민심이반 현상을 가장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이번 평양회담 무산은 해체(解體)되고 있는 북한체제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 준 것』이라며 『허약하고 비정상적인 북한정권과의 졸속적인 회담 추진이 결국 결렬된 이번 사건을 볼 때, 10월초에도 회담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 미래한국
[ 2007-08-21, 03: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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