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李明博 혁명(1)
"오늘 아침에 집을 나와 직장으로 가는데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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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大한 파도
  
   오늘(8월21일) 점심 때 만났던 한 50代 애국투사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와 직장으로 가는데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이틀 전의 한나라당 경선 덕분임을 알았다. 나만 그런 기분은 아닐 것이다. 오랜만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퍼져가는 것 같다'
  
   李明博씨가 2007년 8월19일에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후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李明博 지지율이 60%를 넘고 汎여권 후보와 가상대결을 붙이면 70 對 20 정도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압도적 우세이다. 거대한 파도처럼 이 여론의 힘이 全사회적으로 확산되어나가면 앞으로 4개월은 선거운동기간이자 동시에 체제교체의 과정이 될 것이다. 좌파정권의 하수기관으로 전락하여 애국운동을 감시, 탄압하고 간첩들과 반역세력을 비호, 방치했던 수사-정보-권력기관도 눈치를 보게 될 것이고 어용선동방송의 총본산인 KBS, MBC도 편파방송의 방침을 再考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李明博씨의 압도적 지지율은, 朴槿惠씨의 깨끗한 승복선언에 힘입어 그 지지세력이 거의 李明博쪽으로 전환한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세력의 대동단결이 이뤄진 셈이다. 남북한의 守舊좌파 권력이 손을 잡는다고 이 大勢를 바꿀 수 있나?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恐慌상태에 빠진 남북한 좌파는 변칙을 동원하려 하겠지만 늪에 빠진 사람들의 몸부림처럼 자신들의 무덤을 더 깊게 팔 것이다.  항상 자신만만한 분위기를 몰고다니는 李明博 大選후보는 8월20일 金壽煥 추기경을 만난 자리에서 제2차 평양회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6.15 때도 국민 동의 없이 여러 가지가 합의되지 않았나. (이번 회담에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가는 합의가 나올까 봐 걱정된다. 頂上회담을 대통령 선거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核을 포기시켜야 하는데 核이 있는 상태에서 회담을 하면 核을 인정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議題를 분명히 안하고 잔뜩 합의해 오면 차기 대통령이 이행해야 하니 걱정이 된다' 한나라당은 제2차 평양회담을 차기정권으로 연기할 것을 공식으로 요구했다. 이에 대해서 청와대는 '철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노무현式 '철없는' 표현이다. 힘이 빠진 정권의 비명처럼 들린다.
  
  金章洙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西海교전 관련 망언에 대해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고, 민감한 西海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평양회담이 아닌 장관급 회담에서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공무원 사회에서 바른 말을 하는 이들이 늘어갈 것이다. 제2차 평양회담 無用論도 힘을 얻을 것 같다.  김정일은 한국정치상황을 관망하다가 자신의 개입으로도 李明博 大勢를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하면 평양회담을 취소하거나 無期연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李明博씨가 압도적 우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평양회담이 열린다 해도 위험한 도박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대중민주시대의 정치력은 여론에서 나온다. 선거를 두 달 남짓 남겨놓은 상태에서 김정일, 노무현 정권이 쓸 수단은 한정될 것이다. 다만 김정일이 李明博씨 암살을 지령한다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李明博 후보는 競選투표 때 경상도에서는 朴槿惠씨에게 졌으나 서울 경기 호남에서 이겼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는 영남기득권당이란 이미지가 강한 한나라당을 명실상부한 全國정당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지지기반을 갖게 된 것이다. 李明博씨는 경북출신이지만 서울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黨과 나라의 지역구도를 정리할 수 있는 전국적 지지기반을 가진 후보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한나라당과 나라의 개혁을 위한 원동력으로 60~70%의 지지율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대한민국의 망가진 체제 復舊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몇 걸음 더 나아가 '一流국가의 시스템과 一流의 논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다. 소수파인 일본의 고이즈미가 '자민당을 깨부수겠습니다'라는 구호를 들고 나와 黨과 나라를 크게 개혁할 수 있었던 힘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였다. 비주류 출신인 李明博 후보가 '한나라당을 깨부수겠습니다'라고 공약하고 있는 셈이다.  宋復 교수는 최근에 펴낸 '一流의 논리'(조갑제닷컴)라는 책에서 '官尊民卑(관존민비)의 대한민국을 깨부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없애야 한다고 했다. 큰 정부를 작고 유능한 정부로 改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李明博씨가 국가예산을 20% 줄이겠다고 공약한 것도 '적은 세금, 작은 정부, 많은 일자리'를 위한 대개혁을 예고한다. 巨大한 변화의 파도가 밀어닥치고 있다.
   
    '李明博 혁명'으로 불리는 최근 여론(民心)변화의 핵심은 세 가지이다.   
  
  1. 청장년층의 脫좌파: 20, 30, 40代의 좌경화가 중단되고 脫좌파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우경화의 흐름이라기보다는 實用化라고 부르는 게 좋을 듯하다. 이념적 轉向이라기보다는 李明博씨가 내건 능력본위의 실용주의와 경제회복 공약에 청장년층이 설득당한 것이다. 이념적 우경화는 먼 미래의 일이다.   2. 實用主義: 좌파적 명분론과 위선적 도덕주의를 常識이 누른 것이 이번 한나라당 競選결과였다. 실용주의는 현실에 입각하여 實益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실용주의의 실천윤리인 實事求是는 현실과 사실을 딛고 是非를 가리려는 자세이다. 말장난이 끼여들 여지가 없다.   3. 햇볕정책의 폐기: 햇볕정책은 주고받는 것이 없는, 즉 상호주의가 철저히 파괴된 굴종책이었다. 그 결과로 한국의 國論은 분열되었고 韓美동맹은 균열이 생겼으며 김정일은 核무장했다. 萬惡의 근원이 된 6.15 선언과 햇볕정책은 폐기되어야 하고 종속적 남북관계는 기브 엔 테이크의 상거래 원칙에 입각한 實益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치열했던 한나라당 경선 과정은 李明博 혁명을 탄생시킨 진통이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정권이 아니라 체제가 걸린 총력전 개념의 선거이다. 체제교체란 이념, 즉 가치관의 교체를 뜻한다. 한반도의 가장 큰 가치관은 김정일 정권과 공산주의를 惡으로 보고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善으로 보는 것이다.
  
   새 부대엔 새 술을, 새 시대엔 새 논리를 담아야 할 시점이다. 李明博 후보는 “세계 一流국가 건설의 꿈”을 이야기한다. 부정과 저항의 논리를, 긍정하고 창조하는 '一流의 논리'로 교체해야 할 때이다. 宋復 교수(연세대 명예교수)의 말대로 富者를 더 부자로, 最高를 더 최고로 만들어야 最低가 없어진다  宋復 교수는 최근에 펴낸 ‘一流의 논리’라는 책에서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선 햇볕정책을 폐기하고 전방위 嚴冬(엄동)정책을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햇볕정책이 아니라 嚴冬정책을 써야 합니다. 능력 없고 경쟁력 없으면 죽으라는 정책이지요. 그럼 잘난 사람만 살리는 것이냐고 반문하겠지요. 인간이란 미묘하고 영악한 동물입니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自力갱생, 自生하는 힘이 나옵니다. 엄동정책은 다시 살게 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극한상황에 가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이순신의 死則生(사즉생) 정신,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정신, 등소평의 先富論(선부론)이 모두 嚴冬정책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對北햇볕정책은 김정일만 살리고 북한주민을 죽였으며 核과 미사일로 돌아왔습니다. 對內햇볕정책은 균형발전론으로 정책화되었는데 서울도 죽이고 지방도 함께 죽입니다. 과도한 복지정책은 실업자를 더 의존적으로 만듭니다. 양극화는 이 정권 때 더 심화되었습니다. 국가채무는 5년간 두 배로 늘었습니다.   수도권을 더 키워 다른 나라의 수도권과 경쟁해야 합니다. 수도권이 잘 될수록 그 물이 넘쳐나서 지방이 잘 됩니다. 농촌에 퍼주니 농촌이 시들고 있습니다. 강성 노조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FTA밖에 없습니다. 나도 앞으로 외제 차를 살 생각입니다. 평준화 교육을 타파하고, 교육부를 없애고, 잘하는 사람을 더 잘 되게 밀어주는 秀越性 정책을 써야 합니다. 최고를 더 최고가 되게 만들면 최저는 자동적으로 최저에서 벗어납니다. 최고의 기업, 뛰어난 사람을 길러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을 먹여살리기 때문입니다. 그때 비로소 최저는 최저에서 벗어납니다. 기여입학제를 실시하여 人材를 키워야 합니다. 50명만 받으면 200명의 연구원을 키울 수 있습니다.'  
  
   청장년층의 脫좌파
  
   한나라당 경선 투표율이 大選 수준인 70.8%나 된 것은 李明博, 朴槿惠 후보의 勝敗를 떠나서 한나라당의 大勝이었다. 정치력이란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힘인데 이 부문에서 한나라당은 성공한 것이다.   두 슈퍼스타를 앞세운 한나라당은 競選 과정을 통해서 역사적 변화를 몰고 왔다. 좌파의 표밭이고 386 주사파의 母胎이던 19~49세의 청장년층이 反좌파 親한나라당으로 우회전한 것이다. 그 우회전의 각도가 너무나 크다. 이는 가히 혁명적 변화이다.
  
   지난 8월12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20代의 이명박 지지율은 43.4%, 박근혜 지지율은 22%, 손학규 6, 유시민 2.6%였다. 30代 지지율은 이명박 35.4%, 박근혜 20.5, 손학규 9.3, 유시민 3%였다. 40代는 이명박 43.2%, 박근혜 20.8%, 손학규 5.2%, 유시민 1.3%였다. 20代의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 合은 65.4%, 30代는 56%, 40代는 64%이다. 좌파의 아성인 젊은 세대와 386으로 불리던 30, 40代가 압도적으로 反좌파, 親한나라당으로 기운 것은 李明博씨에 대한 지지가 매개 역할을 했다. 무능하고 악랄한 노무현 세력에 대한 반발심과 李씨의 입증된 경영 능력에 대한 기대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젊은 세대의 대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 보수세력의 宿願 사업은 젊은층 확보였다. 그 宿願사업을 李明博씨가 간단하게 해치운 것이다.
  
   競選 이후에도 이런 민심 흐름은 가속화되었다. 청장년층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어 李明博 후보는 汎좌파 단일후보를 50% 포인트나 리드하고 있다. 이런 대전환을 '李明博 혁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개인에 의해서 이뤄진 변화라는 측면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李明博씨에 대한 기대의 성격이 강하다.  ‘李明博 혁명’은 다소 성급한 命名(명명)인지 모른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이 청장년층의 대전환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분열한다든지 기득권층의 守舊的 이미지가 계속되고 기성세대가 너무 경직된 태도를 보일 때 마음이 대한민국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젊은이들을 실망시켜 좌파 쪽으로 되돌릴 수 있다. 일부 反共주의자들이 韓日회담반대 시위나 순수한 민주화 운동까지도 좌익 활동으로 몰아붙이는 식의 거친 행동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反좌파-親한나라당으로 돌았다고 해도 이들이 정통보수 세력이 기대하는 것만큼 당장 선명한 우파노선으로 올 순 없다. 어려운 첫 발을 뗀 이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全세대적 차원에서 잘 관리해야 한다. 기성세대들은 이들에게 무엇을 注入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른들이 每事에 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설득력이다. 이들은 어차피 미래의 한국에 대한 主權을 가진 세대이고,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의 運命에 간섭하는 일이 아니라 충고하고 조언하는 일 정도이다.
  
  十字砲火 속에서 李明博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역사를 움직이는 大사건은 의외로 조용히 진행된다. 드라마틱한 사건에 대중들이 홀려 있는 사이 사회와 국가의 進路를 바꾸는 거대한 변화는 서서히 이뤄진다. 그런 변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들어갔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뭔가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한나라당 競選이 열기를 뿜은 3, 4개월 동안 朴槿惠 진영, 언론, 검찰, 국정원이 李明博씨를 향해서 비판하고 폭로하고 조사했다. 한 개인을 향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그것도 당 안팎에서 의혹을 제기한 예도 드물 것이다. 李씨를 공격한 세력에 비하여 그를 공개적으로 변호한 세력은 李 캠프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공격과 방어의 양과 질을 감안하면 李明博씨의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어야 했다.
  
    그런 急落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李明博씨는 폭로의 터널을 통과하여 승리했다. 李明博 혁명은 도덕성 검증을 常識으로 누르고 이뤄졌다.    
   1. 폭로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줄었다. 김대업 사기폭로, 좌파들의 反美촛불 시위, 탄핵사태 때의 편파 방송, 盧 대통령의 막말과 金大中의 거짓말을 두루 두루 겪어보면서 정치인의 폭로는 일단 의심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2. 도덕성 검증에 대한 懷疑論이 퍼졌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윤리교사나 聖職者를 뽑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굳혀졌다. 도덕적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어도 有能한 지도자가 다수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도덕성 검증을 외치는 이들이 오히려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무능한 자나 반역자들이 도덕성을 방패로 삼아 무능과 반역성을 숨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3. 한국의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역할은 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를 살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大勢化되었다. 正義 개혁 민주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온갖 부정과 반역을 일삼아온 무리들을 10년간 경험해본 국민들은 朴槿惠씨쪽에서 기대했던 것 만큼 李明博씨의 재산문제에 대해서 분노해주지 않았다.
  
      4. 생활인들의 상식적 판단이 유지되었다. ‘상식적 판단’이란 인간을 완벽한 도덕적 존재로 보지 않고 약점과 한계를 가진 존재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도덕성만 찾다가는 갖난 아기만 남게 되고 그렇다고 능력만 찾다가는 거짓말장이나 부패분자가 판을 친다. 이 중간에서 균형을 잡아보려는 中庸의 정신이 상식이다. 다수 한국인들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李明博씨는 대다수 정치인들처럼 문제가 많은 인물로 보일지 모르지만 상식이란 잣대를 들이대면 대통령을 수행할 자격이 없을 정도의 인물은 아니란 판단을 내린 셈이다.  
  
  
   체제교체가 걸린 선거 
  
   전 북한노동당 비서로서 1997년에 한국에 오자마자 좌파정권을 만나 여러 모로 마음 고생이 심한 黃長燁 선생을 한나라당 競選 직후에 만났다. 그는 한나라당이 정권교체만 강조하는 데 대해서 한 마디 했다.  '자꾸 정권교체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를 당당하게 설명해야죠. 정권교체는 정책교체이고 햇볕정책을 교체하는 것이 핵심 아니겠습니까? 정권만 교체되고 정책이 교체되지 않으면 하나 마나 아닙니까?' 기자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중국에서 돌아와 중앙당 조직부에서 부부장급으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고 하자 黃 선생은 '그렇다면 김정남을 후계자로 삼는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黃 선생은 '중국이 김정남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黃 선생은 또 '북한 수해에 대해서는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면서 '김정일이가 이번 12월 大選에서 자기 편을 이기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서울에도 올 것이다. 그러나 盧 대통령을 평양에서 만나기로 한 것을 보니 그런 자신감이 없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2001년 黃 선생이 낸 책의 제목은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였다.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08년의 국회의원 선거는 정권교체 與否를 놓고 다투는 게임이 아니라 체제의 교체 與否를 놓고 대결하는 총력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할머니·할아버지들까지 체제를 지키기 위한 전투에 나서는 판이다. 우리 체제는 흔히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고 한다. 이 체제를 제도적으로 明文化한 문서가 대한민국 헌법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인 가치는 대략 일곱 가지이다. 法治, 개인의 자유, 선거의 자유, 언론의 자유, 私有재산권, 대한민국의 합법성과 정통성, 자유통일이란 국가의지가 그것이다. 1998년 이후 2代의 좌파정권은 헌법과 체제의 이런 핵심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파괴·무시했다. 이는 대한민국이란 자유민주 체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민주투사 내지 개혁세력으로 위장하여 대한민국의 조종실에 들어온 이들은 헌법을 무시하고 유린했다. 法治를 무너뜨리고 언론의 자유에 중대한 제한을 가했다. 선거 때마다 어용방송을 동원하여 거짓선동과 편파방송을 자행함으로써 선거를 원천적으로 불공정하게 만들었다. 헌법상의 반란단체인 金正日 정권에 굴종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의 심장인 합법성과 정통성을 도려 내려 했다.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이고 민족사의 유일한 정통국가」임을 대통령이 앞장서서 부정했다. 자유통일이란 국가의지 대신에 북한식 연방제 통일론으로 기울었다. 이 反헌법적 세력이 헌법을 무력화시키면서 밀어붙인 지난 10년간의 좌경화는 國體(국체)변경을 최종목표로 하고 있다는 의심을 샀다.   反헌법적 인맥이 국가기관을 조종하여 대한민국의 국가건설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점만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대법원이 유죄임을 확정판결했던 反국가사범들, 특히 공산혁명가들을 초법적 위원회가 민주화 유공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활동을 기리고 상금을 주고 있다.
  
    좌경적 反헌법 세력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땀·눈물을 흘리면서 축적했던 國富(국부)를 털어서 金正日 정권에 상납하고 퍼주기함으로써 국가의 主敵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동포들의 고통을 외면했고, 金正日 정권에 반대하는 애국세력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이들은 金正日 정권의 핵개발에 전용될 것이 뻔한 金品지원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金正日의 핵실험을 옹호하는 한편, 두 걸음 더 나아가 金正日이 핵실험을 한 바로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對北억제력의 중심인 韓美연합사의 해체를 결정했다.   모든 이념의 근저엔 감정이 있다. 감정이 「가치판단의 어머니」이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이들의 행동에서 드러난 집단적 감정은 대한민국과 그 주류층에 대한 원한,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냉소, 金正日에 대한 존경 내지 굴종, 북한동포의 고통에 대한 냉담, 동맹국 미국과 우방국 일본에 대한 反感이다.
  
    즉 이들의 가치판단과 감정을 좌우하는 가장 큰 기준은 대한민국 헌법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지키려고 하는 가치에 대해선 反感을, 대한민국 헌법이 부정하려는 가치에 대해선 존경을 바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主敵에 대해선 好感을, 대한민국에 대해선 反感을 가지고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08년 국회의원 선거는 이들 反헌법적 체제변혁 세력을, 선거를 통해서 합법적·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가의 與否를 결정한다. 따라서 다가오는 두 차례 선거는 단순히 정권을 건 대결이 아니라 체제, 즉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건 대결인 셈이다.   政權(정권)을 건 싸움에선 대체로 政黨이 게임을 하고 유권자들은 언론의 중계를 안방에서 구경하며 심판의 결정을 존중한다. 게임 당사자, 즉 정당이 법을 지키니까 느긋하게 관전할 수 있다. 체제교체가 걸린 선거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관중도 심판도 중립을 지키기가 어렵다. 걸린 것이 너무 크고 중대하므로 중립지대에서 한가하게 놀 수 없다.     정권을 놓치면 감옥에 갈 터인데…   
  
  첫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세례를 받은 反헌법적 좌파세력들은 법을 위반하는 것을 「正義(정의)」라고 생각하고, 계급투쟁을 위해서 거짓선동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세력은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불법과 선동을 예사로 했을 뿐 아니라, 일단 잡은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선동과 불법을 동원하는 것이 습성화되어 있다.
  
    둘째, 이들은 정권을 놓치면 사법적 斷罪(단죄)를 받을 일을 많이 해놓았다. 감옥에 갈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면서 金正日 정권과 접촉, 共謀(공모)하고 뇌물을 갖다 바친 묻혀진 사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三星 그룹이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盧武鉉 캠프에 준 불법자금의 전모도 다 밝혀질 것이다. 체제가 걸린 선거란 이야기는 몇 사람에겐 生死와 榮辱(영욕)이 걸린 선거란 의미이다.
  
    셋째, KBS와 MBC 등 어용방송의 존재이다. 한반도 현존 권력과 맞서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권력기생 체질을 가진 이 두 방송은 2002년 대통령 선거와 2004년 국회의원 선거 기간 중 한국 언론사 最惡(최악)의 편파보도를 통해서 좌파권력의 공고화에 봉사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내외의 강력한 견제가 없는 한 그런 악습은 재발할 것이다.  
  
  넷째, 정권이 바뀌면 자리를 잃을 사람들이 많다.  
  
  다섯째, 金正日 정권이 좌파정권의 연장을 위해서 정책적·선전적·금전적 또는 테러적 지원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정권과 그 지령을 받는 親北세력은 이미 反한나라당 연합전선 구축을 선언하고 나섰다.   따라서 좌파권력은 조직·돈·정보 등 영향력을 총동원하여 대한민국 헌법 수호 세력과 맞서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세력도 可用한 자원과 인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체제대결적 선거는 총력전과 같은 개념이다. 총력전이란 군인끼리만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제1, 2차 세계대전처럼 국가가 가진 모든 자원과 인력이 동원되는 전쟁을 가리킨다.
  
    대한민국의 체제를 결정하고 삶의 방식을 규정해 줄 두 차례 선거에서는 중립지대가 매우 좁다는 이야기이다. 참여의 폭과 깊이가 대규모이므로 이런 선거는 투표일에 결정되지 않는다. 투표일까지 가는 과정에서 대결하던 힘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무원·방송·기업인들까지 大勢변화의 버스를 타려고 할 것이다. 투표는 그런 大勢化의 결과이자 재확인일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투표일 훨씬 앞서 그 결과를 미리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체제대결의 勝者는 누가 되는가?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간단하다. 자기 편끼리는 大同團結하고 상대방을 분열시키는 쪽이 이긴다. 敵前분열자를 내부에 가지고 있는 쪽이 진다는 말이다.  
  
   金春秋-金庾信의 大同團結
  
  
   한나라당 競選 투표 다음날인 8월25일 朴槿惠 전 대표는 白衣從軍 정신을 강조한 아주 깔끔한 승복연설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朴槿惠 지지층의 과반수가 李明博 지지로 옮겨갔음이 확인되었다. 두 사람과 지지층의 大同團結은 일단 첫 걸음을 크게 뗀 셈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2인자가 1인자보다도 더 높게 평가받는 경우가 더러 있다. 三國統一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太宗武烈王이나 文武王이 아니라 왕이 아닌 2인자 金庾信이다. 金庾信은 79세까지 長壽했고 30년 이상 兵權을 쥔 제2인자였다. 그는 王位를 탐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王位보다도 더 큰 꿈을 가졌다. 三韓一統의 야망. 太宗武烈王과 文武王은 金庾信의 이런 큰 뜻을 존중했다. 두 王은 그를 의심하지 않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三國史記의 편찬자 金富軾은 “新羅는 金庾信이 하자는 대로 다 해주었기 때문에 金庾信과 나라 사이엔 틈이 없었다”고 평했다.
   뒤에 太宗武烈王이 되는 金春秋와 金庾信은 뜻을 같이 했을 뿐 아니라 혼인을 통해서도 묶여졌다. 김유신의 여동생이 金春秋의 부인이 되었다. 둘 사이에 난 아들이 文武王이고 딸은 金庾信의 부인이 되었다. 우리 민족사에서 귀족이 죽은 뒤 王으로 追贈된 유일한 사람이 金庾信이다. 興武大王이다.  朴槿惠씨의 승복에 의해서 한나라당은 제대로 된 정당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계기를 잡았다. 지금까지의 한국 정당은, 실력자나 대통령이 부수고 만들고 하는 구멍가게였다. 열린당의 예에서 보듯이 신장개업과 위장폐업을 되풀이하는 정당에 대해서 국민들이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 개인보다 정당을 優先視하는 전통이 정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朴씨의 승복연설이었다.  대중민주정치에서 여론과 인기는 정치인의 힘이다. 당당한 승복으로써 국민을 감동시킨 朴씨는 국민들의 인기를 업고 차기 정권안에서 큰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각료 제청권을 국무총리에게 주고 있다. 이 조항은 제왕적 대통령들 때문에 死文化 되었다. 이 조항대로 하면 국무총리는 國政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자신의 지지 세력이 黨에 버티고 있으면 대통령도 국무총리를 마음대로 못한다.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지 못할 이유가 없다. 金春秋-金庾信 관계에서 보듯이 뜻을 같이 한다고 권력을 나눌 순 없다. 뗄레야 뗄 수 없는 협력관계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1976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競選에서 레이건 전 지사는 현직 대통령인 포드에게 근소한 차이로 졌다. 레이건은 전당대회장에서 멋진 승복연설을 했다. 포드의 수락 연설보다도 더 잘된 연설이었다. 대의원들은 레이건의 연설을 듣고는 “우리가 잘못 투표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이때 깊은 인상을 남긴 레이건은 선거전에선 포드를 위해서 열심히 뛰었다. 그는 1980년 공화당 지명대회에선 큰 차이로 이겼고 카터를 大敗시킨 뒤 8년 연임하면서 東西냉전을 서방측의 승리로 이끌었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후보가 이길 가능성은 시간에 비례하여 줄어들고 있다. 소위 汎與圈(범여권), 즉 좌파 후보群 지지율을 다 합쳐도 10%를 겨우 넘는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다. 정치에서는 타이밍을 놓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金正日이 도와주어서 大勢를 돌리기엔 너무 기울어 버린 것이 아닌가.
  
    宋復(송복) 교수(연세大)는 『차기 정권은 좌파정권과 반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핵심이다. 좌파정권이 한 일들이 어긋나고 실패한 것은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전략과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이념, 즉 정치적 가치관이다. 이념은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自覺(자각)이다. 「공동체의 이해관계」의 핵심은 「敵」과 「동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이런 彼我(피아)구분의 기준은 대한민국 헌법인데 그런 기준이 없거나 다른 세력이 국가 조종실을 장악했기 때문에 남쪽으로 날아가 자유통일―일류국가 건설이란 곳에 착륙해야 할 「대한민국號」의 進路(진로)가 북북서로 항로를 이탈한 셈이다. &
  
  nbsp; 국가의 進路 수정에 의한 정상 항로 복귀가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 출발점은 대한민국의 뇌수로 침투한 反국가사범들에 대한 의법조치일 것이다.
  
      ● 國家정상화의 전략과 목표: 法治를 회복한 힘으로써 反국가·反헌법 세력을 무력화시켜 한국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국가 엘리트층을 재건하며, 교양 있는 국민들을 양성하여 국가를 정상화시키고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로 나아간다.
  
      反국가 행위자 정리
  
      1. 憲政질서 회복(法治회복): 反헌법·反국가 행위자의 공직취임 금지 및 공직추방을 위한 입법. 위헌적 정강정책을 갖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對南공작에 노출되고 또 호응해 온 민노당에 대한 위헌 정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 검토. 不法 폭력시위 엄단.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폭력시위 前歷者에 대하여 시위금지 조치.   2. 反국가사범에 대한 지속적인 수사: 좌파정권 10년 동안 있었던 북한정권과의 내통에 대해서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어 전면적으로 수사한 뒤 白書로 실태 공개.
  
    3. 국가위원회에 의한 反국가행위 조사: 공산혁명활동가를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한 위원회와 관련 인사들에 대한 조사 및 시정조치. 대한민국의 약점만 캐고 主敵의 죄악을 덮어 주는 과거사 조사 폐기. 反헌법적·反국가적 성격의 위원회 해산.
  
    4. 對共기관 정비 및 강화: 국정원의 수사를 對共사건에 엄격히 한정시키고 개인 정보 수집을 금지시킨다.
  
    5. 국군의 主敵개념 정훈 교육 강화: 軍 장병들에 대한 이념교육을 강화하고 애국심을 심는다.    
  
  국가이념 강화
  
      1. 李承晩, 朴正熙 기념관 건립. 김포공항을 「이승만 공항」으로, 10만원권 지폐에 朴正熙 얼굴 넣기 등.
  
    2. 南北분단과 6·25 남침 전쟁 교육 강화. 全국민 手記 남기기 사업.
  
    3. 북한동포 인권 문제 해결을 國政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   4.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 建國이 민족사적 정통성의 핵심임을 全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한다.
  
      對北·안보 부문의 정상화
  
      1. 6·15 선언 失效 선언: 합의된 내용이 지켜지지 않아 자동폐기.
    2. 원칙 있는 對北자유통일정책 입안: 헌법·자유·正義·진실에 기초한 전략 수립.
    3. 韓美동맹 및 韓日우호 관계 회복: 韓美연합사 해체 관련 재협상 시작. 韓美합동군사훈련 강화. 韓美FTA 비준. 독도 및 역사 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응. 한반도 자유통일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협력체제 모색.   4. 평화협정과 終戰선언에 대한 전제조건 발표: 核 등 대량살상무기 폐기, 6·25 남침 사과 및 배상, 국군포로 및 납북자 전원 송환, 북한의 강제수용소 폐지, 서해 NLL 존중 등.
  
      가치관에 기초한 새 對北통일정책안
      1. 원칙주의: 기능주의적 對北정책과 굴욕적 햇볕정책을 폐기하고 원칙적·주체적·공세적 對北통일정책을 추진한다.
    2. 헌법정신: 대한민국 헌법과 자유·正義·진실이 對北통일정책을 관통하는 가치기준이자 행동의 윤리이다.
    3. 내부변화 유도: 대한민국의 자유와 경제력으로 金正日 정권의 군사력·혁명력·탄압력을 약화시키고 북한주민들의 自生力과 자유에의 희망과 투지를 북돋워 내부 변화를 유도한다.
    4. 전략적 지원: 對北지원과 對北사업은 상기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5. 金正日 대책: 金正日을 표적으로 한 보복계획과 無力化 계획을 재수립한다.
    6. 자유통일: 통일은 헌법의 명령에 따라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평화적 자유통일」이어야 한다. 자유통일은 一流국가 건설로 가는 유일한 關門이다.
    7. 親北좌익세력 공직 추방: 金正日 정권의 하수집단인 반역좌파들을 공직사회에서 추방한다.
    8. 당면과제: 核과 생화학 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폐기, 강제수용소 폐지,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경제정책: 적은 세금, 작은 정부, 많은 일자리    1. 세금과 공무원 수 및 국가예산 매년 10% 축소, 일자리 매년 10% 늘리기.
    2. 시혜성 복지 축소, 自立型(자립형) 복지 추진.
    3. 국가채무 倍增(배증)에 대한 조사 및 감소방안 추진.
    4. 지율式 억지 환경보호운동가들에 대한 합리적 대응.
    5. KTX의 운행수준을 일본의 신간센(新幹線) 수준으로 향상.   6. 수도분할식 행정복합도시 건설 재검토.
  
      교육정책: 애국심 있는 국가엘리트와 교양 있는 국민 양성     1. 교육부 폐지: 전교조와 같은 행태를 보이고, 학생들과 부모를 해외와 학교 바깥으로 내모는 기관을 없애야 길이 보인다.
    2. 평준화 교육 폐기, 英才 교육 강화.
    3. 기여입학제 허용.
    4. 人文교육강화 및 한글·한자 혼용에 의한 교양 있는 韓國語 함양.
    5. 국적 있는 교육: 특히 國語·國史 교육 강화.  6. 전교조 불법행위 엄정 대처: 학부모 활동 지원.
      언론정책
      1. KBS와 MBC의 편파 왜곡 방송 실태 특별 조사, 책임자 문책.
    2. KBS와 MBC 민영화.
    3. 脫法 언론 엄정 조치, 正道 언론 자유 최대한 보장.
    4. 不實 언론사에 대한 세금 지원 중단.
  
      정치부문
      1. 政黨정치 강화: 政黨을 멋대로 부수고 만드는 행위에 대한 규제강화.
    2. 대통령 5년 단임제 정착.
    3. 대통령 사면권 제한, 대통령 면책범위 축소.
    4.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선거법 개정 및 언론사의 편파보도에 대한 가중처벌 추진.
    5. 엘리트의 정치참여 권장책 수립.
    6. 反국가행위 前歷者의 정치행위 규제 강화.
    7. 자유민주세력의 대동단결과 조직화.
  
   李明博을 시한폭탄에 비유한 朴槿惠
  
   朴槿惠 전 대표가 경선 결과에 불복할 수 없었던 한 이유는 경선 기간중 李明博씨에 대한 폭로, 비방을 마음껏 했기 때문이다. 지나친 비방공세가 기존 朴씨 지지층을 이탈시킨 면도 있지만 李明博씨 지지율을 많이 떨어뜨려 근소한 표차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朴씨 캠프는 李明博씨를 必敗 후보, 사퇴해야 할 사람이라고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더니 투표일 하루 전엔 ‘시한폭탄 후보’란 말까지 만들었다.
  
   朴槿惠 한나라당 전 대표는 競選 투표일을 하루 앞둔 8월18일에 여의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本選에서 필승할 수 있는, 저 박근혜를 선택해 달라'고 말했다.  朴씨는 '어떻게 기다려 온 10년인가. 세 번째 도전마저 실패하면 우리는 정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후보를 선택하면 국민과 당원 모두 또 통한의 10년 세월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朴씨는 그 며칠 전 도곡동의 이상은 명의의 땅이 李明博씨 소유라는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의혹을 사실이라고 단정하고 참모들을 내세워 李씨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인간을 폭탄으로 비유하는 곳은 북한이다. 이곳에선 북한주민 모두가 김정일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어야 한다고 선동한다.  필자도 노무현 대통령을 시한폭탄에 비유한 적은 있다. 盧 대통령의 '그놈' '별놈' 식 막말과 김정일의 핵실험에 맞춘 韓美연합사 해체 책동에 화가 나서 그런 표현을 했었다. 朴 전 대표는 '시한폭탄'이란 비유를 政敵이 아니라 동료에 대해서 썼다.  한국사회에서는 말의 인프레가 심하다. 극단적인 표현을 해야 사람들이 자극을 받는다. 그래서 이런 농담도 있다.
  
    김정일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한국을 침략할 수 없는 네 가지 이유.
    1. 수도권엔 총알 택시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2. 골목마다 대포 집이 즐비하다.
    3. 남자들은 폭탄주를 마신다.
    4. 집집마다 核을 보유, 핵가족이라 불린다.
  
      19세기 영국의 名재상 디스레일리는 정치의 본질을 드러내는 名言들을 많이 남겼다. 디스레일리는 '정치 용어엔 마지막이라는 말이 없다(Finality is not the language of politics.)'고 했다. 朴槿惠씨는 李明博씨에 대해서 ‘마지막’과 같은 의미로서 '本選必敗論'을 주장했는데 디스레일리는 '必敗'라는 말도 정치 용어엔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정치의 승부는 항상 상대적이고 流動的이며 예측不許이다. 競選 레이스가 시작될 때만 해도 朴 전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李 전 시장의 반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한나라당 競選에서 必敗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막판에 가면 朴씨쪽에서 李씨를 향해서 必敗라고 압박할 정도로 好轉되었다.
  
  두 사람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朴槿惠씨가 李 전 시장이 本選에서 必敗한다고 주장한 그 순간 큰 논리의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李 전 시장은 당시 모든 여론조사에서 10% 정도의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가상대결에 의한 本選경쟁력도 李씨가 朴씨를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李明博이 必敗면 朴槿惠는 必必敗라는 주장이 논리상 맞아든다. 李 전 시장이 朴 전 대표보다 더 문제가 많은 것처럼 보인 것은 朴 전 대표 진영의 성과였다. 폭로를 거의 유일한 競選전략으로 삼아 집요하게 공격해온 결과였다. 이런 폭로 일변도의 네가티브 競選은 한국 정치사상 처음이고 세계에서도 아마 유례가 없을 것이다. 李 전 시장측은 수비에 급급했다. 대응폭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朴 진영보다는 훨씬 소극적이었다. 선량해서라기보다는 1등을 달리고 있다는 여유가 그렇게 만든 면이 컸다.
  
   김정일에 대한 온순함과 이명박에 대한 공격성
  
   한나라당 안팎에서 李 전 시장에 대해 폭로되었던 의혹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출생과 관련된 폭로, 처남 명의의 부동산 소유설, 뉴타운 특혜설, 병역기피 의혹, 위증교사설 등 5大 의혹은 검찰의 수사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나 남은 것은 형 名義의 땅 문제인데 검찰은 借名說을 풍기면서도 '이명박 소유라고 볼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朴槿惠측은 자신들의 폭로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국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李明博 캠프에서도 이 점을 별로 추궁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싸울 줄 모르는 집단이었다.  朴槿惠씨가 競選에서 이겨 本選에 나갔다고 했을 때 그가 상대해야 할 좌파세력은 李明博 캠프처럼 수비위주이고 다소 멍청했을까? 1997년과 2002년 大選 때 김대중, 노무현, 친북좌파 세력이 어떻게 싸웠는가를 보면 안다. 李會昌씨가 두 번 진 것이 과연 김대중, 노무현씨보다 도덕적으로 더 부패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李會昌씨보다 김, 노씨쪽이 더 폭로를 잘하고 악랄했기 때문인가? 폭로의 기술과 전략, 그리고 그 폭로를 뒷받침해줄 동원력 부문에서 朴槿惠 캠프는 좌파에 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좌파 폭로부대가 朴槿惠씨는 도덕적으로 청결한 인물이라고 치부하여 네거티브 운동을 접었을까. 좌파권력과 어용방송이 손을 잡고 최태민 관련 폭로를 이명박씨의 도곡동 땅 식으로 집요하게 펼치면 그때도 국민들은 朴 전 대표를 必勝의 후보라고 생각해주었을까?  朴槿惠씨의 지지층은 朴正熙 대통령 지지층이기도 하다. 朴槿惠씨의 인기는 상당부분 아버지의 유산이다. 朴正熙 지지층은 한국 사회의 反共보수층이다. 이들이 가장 미워하는 인물은 朴槿惠씨의 어머니를 죽인 원수이기도 한 金正日이다. 이 反共보수층은 競選 기간중 상당히 혼란스러워 했다. 6.15 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핵실험이 있었고, 大選用임이 분명한 굴욕적 평양회담이 발표되었는데도 朴槿惠씨는 “6.15 선언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고 평양회담을 환영했던 것이다. 朴씨는 2002년에 김정일을 만나고 온 뒤로는 그를 擧名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북한정권의 모든 失政과 暴政은 김정일 한 사람의 잘못에 기인한다. 그를 비판하지 않는 북한비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김정일을 향해선 온순한 朴槿惠씨는 李明博씨를 향해선 그렇게 용감할 수가 없었다. 학살자에 대한 온순과 동료인 李明博씨에 대한 공격성 사이엔 균형감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敵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히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도곡동 땅 문제와 굴욕적 평양회담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김정일의 대학살과 李明博의 부동산은 어느 쪽이 더 나쁜가?  朴씨는 사람에게 잘 속는다는 평도 나왔다. 지도자의 필수적 德目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참모는 일을 알아보는 사람이다. 지도자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골라서 쓸 수 있어야 한다.  이탈리아 영화 ‘길’에는 사랑을 알게 된 약간 모자라는 여자가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집어들고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 조약돌을 아무 뜻 없이 만든 것이 아니듯이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사랑에 눈을 뜨니 조약돌마저 소중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사랑은 애국심이다. 朴槿惠씨가 애국심을 가졌다면 모든 한국인은 소중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보면 李明博, 朴槿惠는 다 소중한 존재이다.  
  
   정치에 대한 斷想 
  
    19세기 영국을 이끈 名재상 디스레일리(Disraeli 1804-81)의 정치에 대한 斷想들.
  
      *정당이 못할 반역적 행동과 무례는 없다. 왜냐 하면 정치엔 명예가 없기 때문이다.  (There is no act of treachery or meanness of which a political party is not capable; for in politics there is no honour.)
      *정치 사전엔 마지막이라는 말이 없다.  (Finality is not the language of politics.)
      *정당은 조직된 여론이다(Party is organized opinion.).
      *이 나라의 국민들에 대한 교육에 이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  (Upon the education of the people of this country the fate of this country depends.)
      *불평도 하지 말고 해명도 하지 말라.  (Never complain and never explain.)
      *오막사리가 행복하지 않은데 궁전이 안전할 리가 없다.  (The palace is not safe when the cottage is not happy.)    *신사들이 의회로 돌아오지 않을 때 이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When Gentlemen cease to be returned to Parliament this Empire will perish.)
      *나이를 먹으면 公的 생활에서 가장 찾기 힘든 덕목이 용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You will find as you grow older that courage is the rarest of all qualities to be found in public life. )
  
   政商輩와 政治人
  
   추가로 정치인에 대한 명언들을 소개한다. 거의가 英美人들인 이유가 있다. 민주주의를 가장 성숙시킨 나라가 영국과 미국이고, 그만큼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필요한 충고가 많다.
  
   *에드먼드 버크(영국 정치인 저술가. 1729-97)
  
    惡漢들이 뭉칠 때는 선한 사람들이 교류, 협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허망하게 싸우다가 동정도 받지 못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대로 쓰러져 갈 것이다.
  
    *헨리 키신저(미국 외교가. 1923-)  犯法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만 憲法을 위반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에이브라함 링컨(미국 대통령. 1809-1865) 
   1. 富者들을 숙청하고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순 없다. 고용자를 내려앉히면서 피고용자를 올려 세울 순 없다.
    2.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일부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월터 리프만(미국 언론인. 1889-1974)
    지도자에 대한 최종적인 시험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신념과 의지를 심어줄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제임스 레스톤(뉴욕 타임스 기자. 1909-95)  모든 정치는 그러나 多衆의 무관심을 기초로 하고 있다.
    *조르쥬 퐁피두(프랑스 대통령, 1911-74)
    정치가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고 정상배는 자신을 위해 국가가 봉사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아담 스미스(영국 경제학자. 國富論. 1723-1790)  우리가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가게 아저씨의 善意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돈벌이 욕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류애에 호소하지 말고 그들의 自愛心에 호소해야 하며, 우리의 필요성을 설명하지 말고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헨리 테일러(1800-86)
    1. 정치가에게 중요한 것은 매년 생겼다가 사라지는 20명의 친구가 아니라 20년간 苦樂을 같이 할 한 사람의 친구를 얻는 것이다.  
   2. 정치가는 나침반에 의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바람을 거슬러선 안 된다.
   
  
   검찰과 노무현, 김정일, 그리고 홍사덕
  
   한나라당 競選 기간중 當落에 영향을 준 사건이 두 개 있었다. 검찰의 도곡당 땅 관련 수사발표와 노무현-김정일 평양회담 발표였다. 검찰의 애매모호한 非검찰적 발표는 李明博씨 표를 많이 줄였을 것이고, 평양회담에 대한 朴槿惠씨의 사실상 환영 자세는 失機였다.
   8월13일 연합뉴스는 “실제로 수사를 진행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의 김홍일 3차장 검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도곡동 땅 가운데 이상은씨 지분은 제3자의 것으로 보이나 그것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 ‘이 전 시장의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점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날 朴槿惠씨측에서는 李明博씨가 차명소유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한나라당 경선 후보 자리를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 주장의 근거는, 확정된 사실이나 物證이 아니고 증명되지 않은 ‘의심’뿐이란 이야기였다. 朴씨측에서는 그동안 李明博씨에 대해서 제기했던 의심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 의심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졌다. 나는 홈페이지(chogabje.com)에 이런 글을 올렸다.  <재판에서도 의심만으로는 피고인에게 有罪를 선고하지 않는다. 朴槿惠씨측은 검사도 판사도 아니다. 李明博씨와의 관계는 동료이고 경쟁자이다. 競選 투표일을 6일 앞두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차이로
  
  1위를 달리는 동료 후보를 향해서 ‘의심’을 근거로 하여 “사퇴하라”는 주장을 할 정도라면 이런 사람들이 집권했을 때를 걱정하게 된다. 이들은, 권력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도 벌써, 더구나 동지적 관계에 있는 이를 상대로 증명력이 없는 ‘의심’만 가지고도 정치적 자살을 의미하는 사퇴압력을 넣는데,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힘 없는 국민이나 사이 나쁜 政敵에 대해선 ‘의심’만으로써도 구속하고 해임할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독재이다. 朴槿惠 캠프의 생리가 독재적이란 이야기가 된다. 좌파들이 朴槿惠씨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매도할 때마다 나는 분노해왔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씨 주변인물들이 하고 있는 행태는 비정상적이고 독재적이다. ‘의심’을 ‘사실’이라고 비약시킨 뒤 또 다시 몇 걸음 더 나아가서 ‘사퇴하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法治를 짓밟는 反민주적 행위이다.   政界 원로 대우를 받아야 할 홍사덕씨가 네가티브 전략을 지휘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는 오늘 아는 체를 했다. 닉슨 대통령은 이보다 작은 것으로 사임했다는 이야기였다. 닉슨이 사임한 이유는, 그의 부하들이 야당인 민주당 선거본부를 도청하고 닉슨은 이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였고 몇 가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권력남용이었다. 그를 사임으로 몰고간 것은 물론 의심이 아니라 확정된 사실이었다. 李明博씨에 대한 혐의는 현재 朴槿惠씨측의 주관적 의심이다. 그 의심의 내용도 권력남용보다 훨씬 약한 차명보유이다. 공소시효도 끝 나서 설사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
  
  이명박씨에 대한 의심은 무엇으로 보나 닉슨 대통령의 죄질보다 약하거나 아예 없는 것이다. 홍씨의 비유가 틀린 것이다.   닉슨 이야기가 나왔으니 홍사덕씨에게 하나 가르쳐줄 일이 있다. 1970년대 로스 엔젤레스에서 먼슨이란 살인범이 샤론 테이트라는 여배우 등 다섯 명을 참살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그가 재판중일 때였다. 닉슨 대통령이 연설중 그를 ‘피고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범인’이라고 호칭했다. 언론과 여론이 들고 일어나 뭇매를 가했고 대통령은 사과해야 했다.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의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물론 먼슨은 나중에 사형이 확정되었다. 닉슨의 경우를 홍사덕씨에게 적용한다면 사퇴해야 할 사람은 홍씨로 보인다. 의심을 사실이라고 과장했으니까.
  
   홍씨가 양심이 있다면 그동안 朴캠프에서 李明博씨를 상대로 제기했던 폭로들 가운데 이번 검찰 수사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부분에 대해선 우선 사과부터 하고 공격했어야 했다. 私益 앞에서 예의를 잃는 인간, 특히 동료에 대해서 무례한 인간이 국민들을 섬기겠는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리더를 민주국가의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정치집단이면 민주적 시민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동료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살벌하게 대하는데 만약 집권하면 국민들을 향해선 어떻게 나오겠는가? 민주주의가 절차의 정당성을 상실하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의심만 갖고서 상대방을 매장시키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권력을 잡아선 안 된다. 우선 국민들이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민주주의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오손도손 사는 관용의 사회이지 동료에 대해서 인격말살적인 욕설을 공개적으로 퍼붓는 사람들이 이끌 수 있는 그런 제도가 아니다.  후보들의 犯法행위는 검찰과 법원에, 도덕적 문제는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다른 건설적인 주제로 싸울 순 없나. 아직 6일이 남았으니 모범을 보일 시간은 있는 것 아닌가?>  
  
  상황이 혼란스러울 때는 원칙에 서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공정하다. 도곡동 땅과 李明博씨의 관련성을 수사해온 검찰은 원칙에 서지 않고 정치적 계산을 했다가 곤경에 처했다.
  
    1. 검찰은 의심을 발표하는 기관이 아니라 起訴 여부의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 있는 사실’을 발표해야 하는 司法기관이다. 의심은 언론이나 정치인이 제기하는 것이고 그 의심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검찰이다. 검찰은 8월13일 “도곡동 땅의 이상은씨 지분은 借名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보인다’는 말은 법률 용어가 아니라 언론이나 흥신소, 또는 정치적 폭로 수준의 언어이다. 막강한 검찰이 ‘보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면 이는 증거확보에 실패했다는 고백이다. 의심밖에 찾아내지 못했다면 검찰은 아예 수사발표를 미루거나 “현재로서는 李明博씨의 借名으로 볼 증거가 없다”라고 발표했어야 했다. 이것이 검찰의 正道이고 또 정확하다.   2. “현재로선 李明博 소유라고 볼 수 있는 증거가 없다”라고 발표했어야 할 것을 “이상은씨 땅은 제3자의 借名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으니 검찰은 ‘확실한 사실’(이명박씨 차명설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불확실한 추정’(보인다 운운)을 앞세웠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이는 누가 보아도 李明博씨한테 불리한 발표이다.
  
    3. 검찰은 李明博씨에게 불리한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에겐 더 ‘불리한 말’을 흘렸다. 조선일보는 8월14일 이렇게 보도했다.  
  
  <검찰이 단정적인 표현 대신 ‘보인다’는 애매한 표현을 쓴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이명박 후보측에 대한 ‘배려’나 ‘예우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보다 더 단정적 표현도 가능했지만 李 후보 쪽을 배려했기 때문이라는 취지여서, 앞으로도 뭔가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암시로도 보인다> 
  
  위의 관계자는 수사의 不實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 위해서 匿名을 조건으로 “우리가 수사는 제대로 했는데 李明博을 봐준 것이다”는 변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은씨 땅이 借名이라는 확증도 없는데 그 땅의 실제 주인이 李明博씨라는 사실을 밝혀냈을 리가 없다. 따라서 검찰은 李明博씨한테 불리한 발표를 하고 여기에 덧붙여 李씨한테 더 불리한 말을 기자들에게 흘린 것이다. 李明博씨쪽에서는 검찰이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는데 검찰이 정치적 활동을 한 점은 사실로 보인다. 만약 조선일보 기사대로 李明博씨가 실제 소유주임을 밝혀내고도 ‘보인다’는 식으로 ‘예우발표’를 했다면 이는 검찰이 범죄적 ‘사실은폐’를 했다는 자백인데, 현재로선 이 가능성이 낮다.  4. 검찰은 12일의 수사발표를 이렇게 수정해야 했었다.  <현재로선 도곡동의 이상은씨 名義 땅의 실제 소유주가 李明博씨라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땅이 제3자의 借名 소유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조사를 해서 발표하겠다>  검찰 수뇌부는 앞으로도 과거처럼 자신들이 大權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도도한 국민대각성의 흐름은 그런 잔재주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李明博: '정권 탈환에는 생명 걸어야'
  
  
   '일자리가 모자라고 일할 것이 없으니 國論 분열이 일어나는 겁니다. 사람이 일에 빠지고 바빠지면 엉뚱한 생각을 할 틈이 없어요'
  趙甲濟
  
  
   경선기간중 李明博 후보는 사석에서 자신의 이름풀이를 했다.
   '어머니가 태몽을 꾸셨는데 태양이 치마폭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밝을 明, 넓을 博이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李明博이란 이름은 발음이 명확하고 한자로 썼을 때 획이 또렷하며 뜻이 '넓게 비춘다'이니 더 좋다고 했더니 그는 '이상하게 행사장에 내가 나가면 비가 그치거나 해무리가 생길 때가 있다'고 했다. 어제 한나라당 경선투표일 비가 내렸다면 그의 지지기반인 젊은 표가 많이 줄었을지 모른다.
  
   작년 9월5일 점심 식사시간에 만난 李明博 전 서울시장은 앉자마자 '일'을 이야기했다.
   '일자리가 모자라고 일할 것이 없으니 國論 분열이 일어나는 겁니다. 사람이 일에 빠지고 바빠지면 엉뚱한 생각을 할 틈이 없어요'
   그는 '일을 통한 행복'이 인생의 기본이라면서 정치인은 그런 일감을 만들어주는 것이 의무라고 했다. 李 전 시장은 독일통일을 주도한 鐵血 재상 비스마르크가 젊은이들에게 했다는 말을 인용했다.
   '일하라! 더 일하라! 죽을 때까지 일하라!'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것도 비스마르크가 한 말인데, 운명에 도전하라, 그러면 운명이 피할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노동자들의 정치활동을 많이 규제했지만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제도를 가장 많이 도입한 사람이기도 했다.
  
   李 전 시장은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것은 일을 많이 하라는 뜻도 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 현실에선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고 말했다.
   '젊은층에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노년층이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경제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지금의 60, 70대는 과거의 청장년층에 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이들이 일을 놓으면 국가적 손해이고 인생이 불행해집니다.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停年제도를 고치든지 하여 70세까지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뒤에도 사회봉사 등 公益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작은 눈을 반짝반짝거리면서 '이런 이야기는 내가 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하는 기쁨을 動力源으로 삼아 성공한 사람의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였다.
  
   그는 韓美연합군 해체를 몰고오는 戰時작전권 문제 등에 대해서 방금 KBS 라디오와 인터뷰하고 오는 길이라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정부가 미국측에 대해서 제발 2012년까지 이양 시기를 늦추어달라고 애걸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이런 식의 협상을 하는지 기가 막힙니다. 이런 협상은 중소기업도 안합니다. 수출을 해본 국제감각이 있는 중소기업 수준보다도 못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좌파가 反美하여 國益을 증진시키면 좋습니다만 이제 보니 좌파가 反美하여 미국의 국익을 돕고 한국의 국익을 해친 셈이니 사실은 그 사람들이 親美派예요. 親美든 反美든 국익을 확보하면 되는데 헤아릴 수 없는 국익의 손해를 끼치게 생겼어요'
  
   그는 '이 상태에서 최선은 戰作權 협상을 질질 끌어서 차기 정부로 넘기는 것이다'고 말했다. 韓美간에 합의가 되더라도 차기 정부에선 반드시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재삼 강조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상당한 代價를 지불해야겠지만 국가이익을 위해선 그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李 전 시장은 미국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한국의 정치 일반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어 정권이 바뀌더라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권 탈환에는 생명 걸어야'
  
  
   李明博 전 시장은 대학생들에게 한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6·25 때 우리가 북침했다고 믿는 학생들이 있어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그때 포항에 살았는데 나는 남쪽으로 피난했다. 북침했는데 북으로 가지 않고 어떻게 남쪽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가는가 말이다''
   '해방되었을 때 북한은 日帝에 의해서 공업화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남한은 농업이 主였습니다. 그래서 건국 이후에도 북한으로부터 전기, 비료를 공급받았습니다. 6·25가 터졌습니다. 산업시설이 약한 남한은 더 황폐되었습니다. 戰後 복구를 미국이 도왔습니다. 미국에서 들여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했습니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하다가 공업도, 농업도 다 망쳤습니다. 이젠 우리가 북한에 전기와 비료를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멀리 동구권으로 가서 교훈을 얻을 필요도 없습니다. 한반도만 들여다 보면 이념전쟁은 끝장 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그 힘으로 통일을 향해서 가면 됩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보수층의 오해'가 있었다고 섭섭해 했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이명박이는 이념논쟁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고 보수세력에서 시비를 하더군요. 앞뒤 자르고 한 부분만 노출시켜서 그런 공격을 하니 정말 실망했습니다. '한반도의 이념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승리했다. 이제는 승리한 자유민주체제를 가꾸면서 통일로 가야 된다'는 이야기를 줄여 가지고 이명박이는 이념대결을 피한다 이렇게 말하면 안되지요'
  
   李明博 전 시장은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중에서 특히 法治확립을 강조했다. 아무리 좌파가 사회 구석구석에 많이 박혀 있더라도 법대로 하면 질서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면제 특혜를 또 5년 연장한다고 하는데 말이 안됩니다. 나 같으면 대기업 노조에 대해선 무노동 무임금 면제특혜를 폐지하고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해선 면제를 해줄 겁니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회사를 그만두어도 한동안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그런 여유가 없어요. 인원이 열 명도 안되는 자영업소에 고용된 노동자가 전체의 45%나 됩니다. 이들이 얼마나 먹고살기 힘든지 압니까?'
  
   그는 '내가 여론 조사에서 좋게 나오고 한나라당의 인기가 높아진다고 하는 것 너무 믿지 않는다'고 했다. 李 전 시장은 지나가는 말처럼 덧붙였다.
   '우파에서 좌파로 간 정권을 다시 찾아오려면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이 글은 2005년 8월15일 광복 60주년 날에 쓴 것이다.
  
  
  
   조국의 환갑잔치 날에 반역자들을 불러들여 저주와 증오와 분열의 굿판을 만들었던 노무현 이해찬 정동영, 그리고 김정일 추종자들에게 어제 저녁 서울시청광장의 음악회는 크나큰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곳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 국토에 대한 사랑, 역사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예술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 음악회였다. 저주의 굿판과 분열의 깽판으로 마음이 상했던 국민들은 이곳에서 새삼 이 시대에 한국인으로 태어난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불행해질 권리가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 음악회는 한국이 낳은 두 슈퍼스타-李明博 서울시장과 鄭明勳 지휘자, 그리고 애국시민들의 공동작품이었다. 태극기로 단장한 서울시청 건물, 잔디밭 광장, 화려한 무대의 조명, 신선 같아 보이던 한복 입은 정명훈, 그리고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는 관중들의 행복에 겨운 표정들. 거기엔 저주도 증오도 책임전가도 비열함도 없었다.
   이날 밤 이곳에 대한민국이란 神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국립묘지 앞에서, 상암동 축구장 앞에서 경찰과 반역자들의 합세로 예수처럼 구타당하고 감금당했지만 서울시청광장에서 대한민국은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 위로받고 치유되었다. 왜? 이곳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음악회를 구경하다가 나는 갑자기 성경 신약의 고린도전서 13장의 한 귀절이 떠올랐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것으로 救濟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surrender my body to the flames, but have not love, I gain nothing)
   이 대목의 성경해설에 따르면 이 고린도전서를 쓴 사도 바울이 불사른다고 표현한 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당한 火刑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몸을 던져 그렇게 순교하더라도 그 동기가 사랑이 아니면 그런 순교로써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이 귀절을 읽고는 공산주의자들이 계급해방을 외치면서 분신자살을 해도 그 동기가 저주와 증오와 분열이므로 아무 쓸데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본 적이 있었다.
  
   어제 노무현 이해찬 그리고 김정일이 보낸 반역자들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켜내고 가꾼 분들에 대한 증오와 저주의 말들을 쏟아놓았다. 이해찬 총리는 戰犯집단을 앞에 두고 아부하듯이 우리의 국군이 분단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악담했다. 국군을 피흘리게 했던 그 전범집단 앞에서 국군을 군부독재라고 욕하다니. 노무현 이해찬류의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은 평등 정의 개혁 등 거창하지만 거기엔 사랑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무 有益이 없을 것이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노무현 이해찬 김정일 졸개들의 인상과 이명박 정명훈 그리고 서울시청광장 음악회 관중들의 인상이 증오와 사랑의 明暗이다.
  
   어제 밤 서울시청광장에서 아름다운 한국인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를 때 거기엔 사랑이 있었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하는 마음, 나와 가정의 행복을 확인하는 마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거기에 있었다. 망가진 추억의 조각들을 다시 맞추어준 이명박 정명훈 두 사람에 대한 감사도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통세력 8.15 국민대회가 내건 표어는 두 가지였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김정일의 하수인을 조국에서 몰아내자'
   여기에도 사랑에서 우러나는 분노가 있었다. 그래서 서울역과 시청앞에 모인 애국시민들과 대한민국에는 장차 그 사랑으로 해서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잔칫날의 행패로 상처난 한국인의 마음을 씻어준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앞날에 행운과 축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 2007-08-22, 18: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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