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者정치인을 선택한 競選의 의미
李明博 혁명(2)/全사회적 토론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돈에 대한 시각이 덜 위선적이고 덜 명분론적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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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의미에 대한 省察의 기회
  
   한나라당 競選 과정은 李明博씨의 재산문제에 대한 朴槿惠씨측의 공격으로 始終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富와 도덕성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토론을 벌였다. 이번 競選이 한국 사회의 성숙을 위해서 남긴 가장 큰 기여는 바로 이런 토론이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全사회적 토론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돈에 대한 시각이 덜 위선적이고 덜 명분론적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李明博 혁명'으로 불리는 이번 경선의 또 다른 意義일 것이다.
   나는 그런 쟁점을 만들어보려고 나의 사이트(chogabje.com)에다가 “富者는 대체로 善하다”는 기사를 썼는데 많은 찬반논란을 불렀다. 문제의 記事 全文이다.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29절까지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새삼 새롭게 이해되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탄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온 분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예수는 시장경제주의자이다. 이 대목은 예수가 죽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이 他國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金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리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取利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와와서 내 본전과 邊利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쫒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하니라” 
  
    이 에피소드는 자본주의의 윤리, 그 핵심을 말하고 있다.  
  
   1. 예수는 商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돈을 빌어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도 부정하지 않는다.  
  
   2. 예수는 공짜심리를 대단히 경멸한다. 예수는 富者 주인의 입을 통해서 세번째 종이 주인에 대해서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버는 공짜심리의 소유자로 誤判하여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3. 예수는 자본주의의 큰 동력인 모험을 찬양한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을 칭찬하는 主人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설사 손해를 볼 망정 돈은 돌려서 사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란 점이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책망하면서 사업을 하기 싫으면 이자라도 놓았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예수는 현금을 장롱에 쌓아두는 행위를 죄악시한다.
  
    4. 예수는 게으른 것을 惡으로 본다. 세번째 종을 문책하는 가장 큰 논리도 그것이다. 능력이 있으면서 게으른 자는 구원의 대상이 못된다는 식이다. 예수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나, 게으른 인간을 경멸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특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었다면 열심히 일하고 생산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의무를 진다. 그는 무능과 무지를 無産계급의 미덕으로 선전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억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5. 예수는 열심히 잘 하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효율의 논리에 충실하다. 게으른 종의 한 달란트를 빼앗은 주인은 네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 열 달란트를 가진 종과 균형을 맞추려 하지 않고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버린다. 자본주의적 경쟁원리를 새마을 운동에 도입했던 朴正熙 대통령은 自立정신이 없는 마을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는 대신 잘 하는 마을을 돕도록 하여 마을 간에 경쟁을 붙여 사업을 성공시켰다.  
  
   6. 예수는 악하고 게으른 자들이 인류 문명의 짐이 될 것임을 예언했다. 주인이 쫓아낸 악하고 게으른 종은 반성하지 않는다. 그는 슬피 울면서 이를 간다. 복수를 다짐한다.  
  
   7. 이런 악하고 게으른 자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은 아편이 되었다. 게으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는 자칭 평등의 논리, 계급해방의 논리, 가진 자에 의한 착취의 논리가 인간의 양심과 열심을 마비시켰다. 게으른 자의 악한 마음에 파고든 이 가짜 평등의 논리, 해방의 논리가 증오심을 부추기고, 인간의 발전동기를 말살시켰다.
  
    8. 朱子學을 교조적으로 수입한 조선조 시대의 권력 엘리트들은 商행위를 경멸하였다. 士農工商의 조선조 신분질서는 그런 가치관의 반영이다. 주자학은 돈을 죄악시하면서 오로지 독서와 글짓기에 전념하는 무능한 선비들을 淸貧한 인물로 존경했다(반면에 예수의 자본주의 윤리를 계승한 서양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쓰는 것이 善이라는 淸富의 윤리를 가졌다). 자본주의의 씨앗이 도저히 자랄 수 없는 이념적 토양을 가진 곳이 한국이었다.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세계적인 경제대국과 대기업을 키워낸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같은 사람들은 요사이도 욕을 더 많이 먹고 있다.  
  
  한 달란트를 땅속에 파묻어놓고 무위도식했던 자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또 다시 다섯 달란트를 만들어내려다가 실수를 한 것만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富者가 더 도덕적이다.   요새 유행하는 도덕성 검증은 게으른 좌파들이 만든 것인데, 무능한 자를 도덕군자, 유능하여 일을 많이 하다가 실수도 조금한 이를 부패분자로 몰려는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진 것이 한나라당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富者는 대체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다. 富者는 우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신뢰성이 강하므로 부자가 되었다. 즉 도덕적이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속임수와 뇌물로 부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가난한 사람은 신체부자유자나 특별한 가정사정을 제외하면 대체로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신용이 떨어진다.   富者는 남을 돕는다. 기업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준다. 가난한 사람은 남을 도울 수가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부자가 더 도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하여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일을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비정상 사회에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 경우에도 그들이 벌어놓은 돈 그 자체는 좋은 목적으로 쓰인다. 나쁜 부자가 벌어놓은 돈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돈의 생명력이다.  
  
   가난은 자랑이 아니다. 좌파들은 가난이 자랑이고 가난이 도덕적이라고 속인다. 淸貧이란 말을 악용한다. 淸貧보다도 더 좋은 게 淸富이다. 정상적으로 돈을 벌고 좋은 곳에 그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큰 도덕이다.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고 공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아온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쓴 사람을 상대로 도덕성 검증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도덕에 대한 모독이다>
  
   富者나라일수록 청렴
  
   富者나라일수록 공직사회가 깨끗하다는 것은 통계로 입증된다. 국가청렴도와 국민소득은 비례관계이다. 국제투명성 위원회가 2005년 10월 18일에 발표한 세계 159개국에 대한 부패지수 랭킹을 보면 한국은 헝가리 이탈리아와 함께 깨끗한 순서로 40위에 속했다.
  
  이 랭킹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과 청렴도는 거의 비례관계임을 알 수 있다. 부패를 추방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야말로 淸富사상이다. 淸貧은 관념으로서는 존재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거의 사례가 없다. 북한은 이 통계에서 빠져 있는데 최악중의 최악일 것이다.
  
  아시아 국가중에서 청렴도가 40위 앞으로 올라 있는 나라는 싱가포르, 홍콩, 일본, 대만, 한국, 말레이시아 등 富者나라들이다.
  
  청렴한 나라 20개국 랭킹은 1위 아이슬랜드, 2위 핀란드, 뉴질란드, 4위 덴마크, 5위 싱가포르, 6위 스웨덴, 7위 스위스, 8위 노르웨이, 9위 호주, 10위 오스트리아, 11위 네덜란드, 영국, 13위 룩셈부르그, 14위 캐나다, 15위 홍콩, 16위 독일, 17위 미국, 18위 프랑스, 19위 벨기에, 21위 칠레와 일본이었다.   민주주의도 1인당 국민소득이 6000 달러 이하인 나라에선 성공할 확률이 낮다. 민주주의 발전과 부패청산을 위한 근본적인 방도는 개인이나 국가가 돈을 많이 버는 길이다.
  
  朝鮮朝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朱子學은 돈을 벌기 위한 商工행위를 부도덕한 것으로 보았다. 淸貧이 그들이 권장한 덕목이었다. 위선적 淸貧論의 결과는 관리들의 부패와 착취, 그리고 亡國이었다. 이런 淸貧論의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의 좌익들은 富者와 성공한 사람들을 때려잡기 위한 소위 ‘도덕성 검증’을 전개하여 유능한 人材들을 말살하고 민주와 개혁세력으로 위장한 무능한 부패분자들을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뽑도록 했다.
  
  이 ‘도덕성 검증’을 도입한 朴槿惠씨의 네가티브 전술이 富者정치인 李明博씨를 꺾지 못한 것은 한국 사회가 ‘좌파 10년간’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상식을 유지하면서 민주적 소양을 발전시켜왔음을 증명했다.  권력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권력은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기도 하고 살리는 데 쓰이기도 한다. 경제를 망치는 데 쓰이기도 하고 살리는 데 쓰이기도 한다. 박정희의 권력은 사람을 살리는 活力, 김정일의 권력은 떼죽음을 몰고온 暴力이었다. 권력은 그 사용자에 의하여 善惡이 결정된다. 도구이다.  돈은 그렇지 않다. 돈은 그 자체로서 대체로 善이다.
  
  돈을 모으도록 하는 데는 부정 사기 강탈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모인 돈은 거의가 좋은 방향으로 쓰인다. 돈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거의 없고 사람을 살리는 경우가 많다. 아주 드물게 돈으로 공무원이나 청부살해범을 매수하는 경우는 있으나 99.99%의 경우 돈은 살리는 데, 생산하는 데, 건설하는 데, 먹이는 데 쓰인다. 돈을 사치에 쓸 때도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많지만 경제적으로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돈을 번 富者가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가 모은 돈은 좋은 곳에 쓰인다. 따라서 그 부분만큼 富者의 문제점도 용서받을 수 있다. 부자가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다 쓰고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富者가 남기는 돈은 다른 사람을 위한 기부이고 積善이다.  누가 돈이 많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한다면, 또는 성직자처럼 깨끗하게 돈을 벌지 않았다고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런 사회에선 돈을 벌려고 나설 사람이 없다. 유능한 사람들이 돈벌이에 나서지 않는 나라는 비참해진다. 조선조 사회와 북한이 바로 그렇게 하여 망했다.  
  
  돈을 숭배할 필요는 없지만 존중할 줄은 알아야 한다. 富者와 돈을 경멸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위선적인 행위는 달리 없다는 데 많은 한국인들이 한나라당 競選 과정을 통해서 동의한 셈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정부가 다스리는 모든 나라에서는 富가 신성한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는 富가 유일하게 신성한 것이다' 영국 문학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돈은 정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건전하고 성공적인 모든 인간과 국가는 이 사실을 도덕성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 2007-08-23, 10: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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