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논리의 두가지 특징

홍수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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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논리를 전개하는 대표적인 방법에는 우선 ‘총체적 인식론’이 있다.
  별 상관이 없는 여러사건들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해보는 실증적인 방법을 거부하고 가능한 한 가지 원인 또는 결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미관계를 설명하면서 신미양요, 카쓰라-테프트조약, 포름알데히드 한강방류사건, 매향리 미군사격장 문제, 동계올핌픽 오노 오심(誤審)사건, 여중생장갑차사고등을 연결시켜 반미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그런데 이들 각 사건들은 그 구체적인 원인이나 동기, 배경 등이 결코 동일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건들을 이른바 구조적 차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물론 정치선전의 차원에서 이러한 접근은 비단 좌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떤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서 별 연관도 없는 부정적 요소들만을 선택적으로 모아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경우는 정치의 장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런데 한국좌파들은 단순한 선전기법의 차원이 아니라 인식의 방법론으로 이를 수용하는 것이다.
  좌파의 이른바 ‘총체적ㆍ구조적’ 인식방법은 대체로 지적으로 게으르고 단순한 결론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진다.
  
  좌파가 두 번째로 상용하는 논리전개 방식은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명제를 대전제로 세우고 그에 입각하여 하위의 논리를 종속적으로 펴나가는 수법이다. 에컨대 맑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는 적대적 계급이며 계급투쟁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대전제하에서 여러 가지 논리를 펴나간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자(勞資)간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었다. 이런 잘못된 가정 내지는 전제를 충분한 논증 없이 먼저 주조(鑄造)하는 경우는 비단 거대담론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소주제의 문제를 다룰때에도 자신들의 일방적 희망사항을 객관적인 전제인 것처럼 제시해버린다.
  좌파들과 토론을 해보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그들의 잘못된 전제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대전제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토론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문제에 대해 이른바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이분법의 제시도 전형적인 잘못된 전제 만들기이다. 북의 비밀핵개발에 대해 압박을 가하면 반드시 북한정권이 군사적 맞대응을 한다는 전제는 결코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정권이 그렇게 공갈을 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자유주의적 학문전통중의 하나는 인문사회분야에서도 자연과학 못지않게 가급적 통계 등을 통해 증명해 내려고 애쓰는데 있다. 그 결과 비판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하고 변화와 발전도 용이해진다. 그러나 좌파들은 논증이나 실증과정을 대충 무시한 채 핵심적인 전제들을 제 멋대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어설픈 가정들에 대해서 토론조차 거부하는 것이다.
[ 2003-07-12, 16: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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