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과 李明博, 워터게이트와 BBK
의혹을 안은 채 당선된 다음이 진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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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대통령은 1972년 6월17일에 있었던 민주당 선거 사무소(워터게이트 호텔) 도청 사건을 지시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여론 조사에서 그는 민주당 후보 맥거번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닉슨은 그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큰 표차로 再選되었다.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이 본격적으로 커진다. 워싱턴 포스트의 두 사회부 기자가 연속적으로 특종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다른 언론도 합세했다. 無名의 사회부 기자가 취재경쟁에서 앞장 선 이유가 있다. 유명한 정치부 기자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사소한 것으로 보았다. 고위층에 대한 취재원은 정치부 기자들이 많았으나 추적하려는 의욕이 약했다. 요사이 BBK 의혹을 다루는 보수언론사 기자들이 보여주는 행태이기도 하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다가 사임까지 몰려갔다. 그는 사건이 나자마자 측근들의 건의에 따라 CIA를 시켜서 수사중인 FBI에 '이 사건은 안보사건이니 수사를 신중하게 해달라'는 거짓말을 하도록 했다.
  
  언론의 집중취재에 의해서 닉슨은 궁지로 몰리고 할 수 없이 1973년4월 對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두 보좌관을 해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은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했고 美 의회의 독자적 조사가 진행되었다. 의회 청문회에서 백악관이 대통령의 통화내용을 녹음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의회와 특별검사는 녹음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다. 닉슨 대통령은 국가기밀 사항이라면서 제출을 거부했다.
  
  1973년 10월20일 토요일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 법무장관과 특별검사를 해임했다. '토요일의 대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여론이 反닉슨으로 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론 때문에 후임 특별검사도 매서운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닉슨은 테이프 원본은 낼 수 없으니 녹취록을 내겠다고 양보했으나 너무 늦었다. 1974년 7월24일 미국 대법원은 닉슨 대통령이 의회와 특별검사에게 테이프를 제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테이프는 7월30일에 제출되었다. 이 테이프에 의해서 닉슨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고 여러 차례 모의해왔음이 드러났다. 미 하원 법사위는 닉슨 대통령 탄핵안을 27 대 11로 의결했다. 미국에선 탄핵 여부를 상원이 결정한다. 탄핵사유는 사법 방해, 의회 모독, 권력남용이었다.
  
  공화당도 이 지경이 되자 탄핵에 찬성하는 방향으로 돈다. 그해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었으므로 언제까지나 닉슨을 지지할 수 없었다. 1974년 8월8일 닉슨 대통령은 사임했다. 후임 대통령이 된 포드는 곧 닉슨을 사면했다. 이 조치는 國益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불가피했지만 포드의 인기를 떨어뜨려 1976년 재선에 실패하였다.
  
  197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의석을 다섯, 하원의석을 49개나 늘리는 大勝을 거두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기자들이 권력층의 부정을 파헤치는 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의 對美로비 사건이 코리아게이트란 이름의 스캔들로 터졌다. 박정희는 유탄을 맞은 것이다. 韓美관계가 나빠졌고 10.26 사건의 한 원인이 된다.
  
  닉슨은 변호사 출신이었다. 변호사 출신의 권력남용과 법률위반 행위에 실망한 국민들 속에서 법률가들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졌고 미국 변호사 협회는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닉슨을 사임으로 몰고간 사회적 분위기를 월남전 반대운동과 연결시켜 미국의 좌파들이 승리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닉슨의 사임으로 월남을 잃었다는 주장도 있다. 닉슨이 대통령으로 있었다면 1975년에 월맹이 월남에 대한 총공세를 펼 때 단호하게 대처하였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보수층이 닉슨의 부정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도 강하다. 공화당 세력은 부패한 보수라고 낙인이 찍혀 1976년에 민주당의 카터에게 다시 대통령직을 내어주었다는 것이다. 카터의 무능과 失政을 확인한 미국 국민들은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과는 다른 진짜 보수 레이건을 선택했다. 레이건은 무엇보다도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이었다.
  
  
  닉슨의 자리에 李明博 한나라당 후보를 代入하고, 워터게이트 사건에 BBK 사건을 代入한다면 참고가 될 만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음에도 닉슨이 당선되었던 것처럼 BBK 의혹에도 불구하고 李明博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많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2. 李明博 후보와 한나라당은 오는 12월 초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검찰의 수사 발표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나오면 무조건 이를 부인하고 정치공작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李 후보는 자신은 완벽하게 결백하다고 여러 번 공언함으로써 스스로 퇴로를 차단했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李 후보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좌파정권 종식과 경제再生을 명분으로 하여 李 후보를 계속 밀 것이다.
  
  3. 李 후보는 당선된 이후 본격적으로 BBK의 진실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大選이 끝나면 바로 총선 政局으로 이어진다. 모든 反이명박 세력이 이명박=한나라당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것이다. 이 시기엔 삼성 비자금 특검이 진행된다. 좌파는 이명박, 한나라당, BBK, 삼성을 부패의 상징으로 그리려 할 것이다. 좌파는 보수언론과 보수단체, 더 나아가서 보수층 전체를 거짓말과 부패 세력으로 규정하려 할 것이다. 이회창 세력도 선명보수정당을 만들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공격할 것이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겹치면 당이 쪼개질지도 모른다.
  
  4. 1974년 11월 상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대패했던 것처럼 내년 4월의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大敗할 가능성이 있다. 좌파나 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최악의 경우엔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의결할지도 모른다.
  
  5. 소멸되어야 할 좌파가 국회, 언론, 대중단체를 중심으로 재결집하여 이명박 정부를 몰아붙이면 햇볕정책의 폐기와 남북관계의 정상화라는 보수층의 염원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월남을 잃었던 것처럼.
  
  좌파정권의 종식이란 목표에 매달린 보수층은 대통령 선거에서만 이기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도덕과 法治를 부정하는 친북좌익은 거짓말을 먹고 살지만 보수는 거짓말을 하는 순간 자기 부정이 되어버린다. 특히 이명박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은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말씀을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개화, 독립운동, 건국, 근대화, 민주화의 주력세력이었던 한국의 기독교가 이명박 후보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인가? 선거운동 기간은 국민 모두의 고민의 기간이기도 하다.
  
  
  
  
  
  
[ 2007-11-28, 17: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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