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논란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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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월간조선 기자수첩 <이상흔 기자의 재 너머 이야기>에서 전재한 것이다.
  
  저는 경주 이씨이고 어머니는 청주 한씨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외갓집에 있는 청주 한씨 족보를 보면 됩니다. 외할머니가 어디서 왔는지도 족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가계는 부계를 중심으로 수백년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계가 어디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족보를 따라가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몇년 전 경북 안동에서 수백년 전의 미이라가 발견되었습니다. 미이라와 함께 그 미이라의 부인이 쓴 한글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소개하는 한 TV 프로그램 제작진은 무덤의 주인뿐 아니라 그 부인의 신분까지 찾아냈고, 심지어 그 부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까지 찾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족보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 얼마 전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400여 년 전에 아기를 낳다가 숨진 여인의 미이라가 발견됐습니다. 학자들은 이 여자가 문정왕후의 종손녀라고 발표했습니다. 파평 윤씨 일가의 족보가 있었기 때문에 이 여자의 신분을 밝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트남 왕자가 고려 망명하여 화산 이씨 시조가 되었습니다. 후손들이 그들의 조상이 베트남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족보와 성씨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성동본에 속하기만하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이름 석자만 가지고 그 사람이 자기 삼촌 뻘인지 형제 뻘인지 조카뻘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가면 어떤 하나의 성씨가 많이 몰려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집안의 족보를 몇 장만 넘겨보면 몇 대 조상 누구가 언제 어디에서 살다 그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족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족보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가계 기록 시스템입니다.
  
  미국인들은 부계성을 따릅니다. 여자는 시집가는 동시에 성이 사라지고 남편의 성씨를 따릅니다. 저는 일년 가까이 미국에 머무르면서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성씨는 전국적인 연합을 만들어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서 왔다는 홍보물을 만들어 미국 전역에 보내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독일에서 왔다는 쉬멘크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은 독일 어디에 살고 있다가 언제 이민와서, 미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다는 매우 간단한 사실 한가지를 알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우편물을 미국 전역에 있는 쉬멘크 성씨를 가진 사람들에게 발송하고 있었습니다.
  
  또 어느 집안의 할머니는 자신들의 조상 중에 인디언 할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로 들려 주지만, 그 뿐일 뿐 그 할머니에 대한 더 이상의 정보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의 족보에 대한 인식 수준은 입에서 입으로 조상을 이야기 해 주는 원시적인 수준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해 보입니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계만으로 혈통이 계승되는 것은 남녀평등에 위배된다고 생각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만든 호주제 폐지 법안의 주요 내용 중에 하나는 부부 합의하에 자녀의 성을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대신 자녀는 동성동본을 사용하게 해 자녀들의 성이 다르게 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자녀들이 낳은 아기도 부부 합의하에 자녀의 성을 따를 수 있습니다. 경주 이씨 집안의 손자가 몇 대만 내려가면 밀양 박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더라도 부부가 이혼 하지 않은 이상 사전적 의미의 「가족 해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가족해체와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가족해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가족이 해체 된다」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 혁명적인 변화가 오지 않고는 진정한 남녀 평등을 이루기 힘들며, 남자쪽의 혈통만으로 대를 잇는 다는 개념이 있는 한 가부장적인 문화가 존속하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호주제 폐지론자들은 가부장 문화에 따른 폐해가 우리사회의 남녀평등과 사회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대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남자가 대를 잇는 우월적인 지위를 가지는 현행 호주제 하에서는 남녀의 진정한 평등을 이룰 수 없고, 더 나아가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적인 상태로 머무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해온 사람들은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통해 부계성만 계통하는 것에 대해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1997년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이 처음 나왔을 무렵,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부모성 함께 쓰자고 주장하는 후보가 총학생 회장 후보로 나왔습니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운동원들은 그날 이후 부모성을 함께 써야 한다며 운동원 전원이 부모성을 함께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길에서 부모성 함께 써야 한다고 길가는 학생들을 설득하고 있던 한 여자 운동원에게 다가갔습니다.
  
  -왜 부모성을 함께 써야 하죠?
  『사람은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똑같이 피와 살을 받았는데 아버지 성만 쓰는 것은 남녀 차별입니다』
  
  -그런 생각을 언제부터 했나요
  『이번 선거 운동을 하면서 느꼈어요』
  
  -그럼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쓸 건가요.
  『그럼요. 앞으로도 쓸 것입니다』
  
  -그럼 당신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이름 지을 건데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이도 당연히 부모성을 함께 써야죠』
  
  -당신은 김박00씨고, 당신 남편은 이송00씨면 아들 이름과 또 그 손자의 성은 어떻게 지을 건가요?
  『....』
  
  그 여학생은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부모성을 함께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명색이 남을 설득하러 다니는 사람이 그런 기초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고 남에게 부모성을 함께 쓰라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느냐』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이런 유사한 질문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부모성을 함께 쓰자는 사람들도 지금쯤은 이런 질문에 대답할 논리를 개발 해 놓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씨는 너와 나의 가족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따라서 성씨는 발생한 그 시점부터 대를 물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부계로 이어지든 모계로 이어지든 간에, 동시에 부부의 성을 물려 주지 않는 이상 부모 중 어느 한 성씨를 물려준다는 것 자체가 불평등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성을 대물림 하는 것에 반대하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 성씨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제도가 비 인권적이고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부분을 공론화 시켜야 앞뒤가 맞습니다.
  
  첫째, 성씨 제도 자체의 폐지를 주장해야 합니다. 성씨가 중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어느 한가지 성씨가 대물림 되는 것을 부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성씨가 자신과 조상을 이어주는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됩니다. 성씨로 대를 이을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는 성씨 제도 존재 자체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또한 부계든 모계든 어느 한 성씨로 인하여 혈통을 계승하는 것은 분명히 불평등입니다. 성씨를 유지하면서 이런 불평등을 고치려면 수십 대를 내려가면서 성이 길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성을 함께 써야 합니다.
  
  결국 이런 식의 성을 붙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의미 없는 성씨를 이름 앞에 붙이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부모 성을 물려주는 것이 불평등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부계성을 계승하는 것에 문제 삼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성씨 제도 자체를 폐기해야만 완전 평등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호주제 폐지 후에 만들어 진다는 가족법에 따르면, 형제의 성씨는 동성동본을 따라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조항은 부모와 자식간 혹은 할머니 정도의 짧은 계보를 밝히기 위해 필요한 조항이 됩니다.
  다시 말해 이 조항은 당대에 형제간의 성이 같아지는 편리함을 제공할 지는 모르나, 후대에 같은 성씨로 대를 잇게 하는 것을 보장하거나 죽은 선조와 연계를 밝히는 기능을 하는 조항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부모 합의하에 부나 모의 성을 합의하에 쓸 수 있다고 한 것 자체가 동성동본으로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개념을 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래도 성씨가 필요하다면 사회의 효율성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합니다. 즉 사회가 통합적으로 성씨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출생 신고시 사회가 추첨하여 성씨를 정해 주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가족 단위로 성씨를 추첨해서 한세대만 쓰고 자식이 장성해서 결혼하면 다시 추첨을 받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정보화의 발달로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없을 줄 압니다.
  어차피 성씨는 가족의 대를 잇는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성씨를 단순히 남녀의 생물학적 성적 구별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로 사용해도 됩니다. 이럴 경우 성씨가 두개만 있으면 됩니다.
  
  셋째, 자녀가 성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도 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합의하에 자녀의 성을 정할 수 있다면 그것을 받은 사람도 부모가 준 성씨에 구속 될 필요가 없습니다. 성씨는 선택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녀는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부모의 의사에 반하여 다시 자신의 성을 재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성씨를 선택하는 가장 합당한 시기는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는 시기로 정하면 좋습니다. 동사무소에서 자기가 좋은 성씨를 하나 선택한 후, 변경 전 성씨를 기록해 두면 됩니다.
  이왕이면 자녀는 그 일가족 내에서 성씨를 택하되 부모성뿐 아니라 할아버지나 외할머니 성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외할머니 아래서 자란 손자 손녀는 외할머니 성을 따르고 싶어 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때도 형제가 동성동본을 선택하여야 한다고 강제 되어 있다면, 형제끼리 의견을 모아 외할머니 성을 따르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선택사항이 된 성씨 제도하에서는 애써 동성동본을 구분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형제는 동성동본을 선택해야 한다」는 조항도 위헌이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상과 같은 것을 함께 주장 하지 않고 단순히 아버지 성만 따르는 것은 남녀 평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 성씨 문제에 대안이 없는 매우 어색한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주장하는 사람, 부부 합의하에 자녀성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스스로 자신의 성씨를 없애거나, 족보에서 이름을 빼거나, 자식에게 성이 없는 이름을 짓는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신들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남에게만 성씨가 바뀔 수 있는 제도를 받아 들이라고 한다면, 자신들은 성씨 제도가 가진 가부장적인 요소를 쉽게 배척하지 못하면서 남에게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외국의 많은 나라는 아버지 성을 따르기도 하고 어떤 나라는 합의하에 부부 성씨 중 하나를 따르는 나라도 있습니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으로 이런 외국의 사례를 제시해 놓았습니다. 이들은 우리도 외국처럼 호적을 가져야 진정한 사회평등과 가족의 행복이 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난 수 천년의 인류 역사에서 외국의 어느 나라도 우리만큼 발달된 족보제도나 가족제도를 가져본 나라가 없기 때문에 애당초 우리와 비교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서양은 부모가 죽었을 때 삼년상을 치룬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추석 때 벌초를 하거나 기일과 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집단적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석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는 문화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들도 자기 조상들에게 감사하고 존경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조상까지 받들고 상호교감하면서, 더 나아가 시조에게까지 그 교감의 폭을 넓혀온 문화가 아닙니다. 이 점에서는 일본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서양의 가족제가 탄생하고 지금의 모습을 뛰게 된 것과 우리의 그것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가족이란 곧 천지질서의 시초라고 여기며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제도를 지키기 위한 관련 제도와 의식을 매우 세밀하게 발달시켜 왔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켜왔던 모든 전통이 서양보다 뒤졌으며, 우리의 모든 전통은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구습이라 스스로 치부해 버린다면 모르겠습니다.
  
  저는 호주제가 없는 나라의 가족 구성원들이 더 행복하다는 어떤 증거가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아버지의 성을 쓰는 딸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이 종속되었다고 느끼면서 아버지 성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지도 의문이 듭니다.
  또 조상의 족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을 봉건시대에 살던 조상이 뭘 몰라서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부끄러워 하는 자손이 있거나, 족보 자체를 가부장적이라고 느끼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성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 보다 우월하거나 어머니보다 한 급수 높다고 생각하는 아들들이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지도 궁금하고, 그 때문에 자식들이 어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보다 더 약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누이가 여자라고 해서 누이를 사람취급 하지 않는 남동생이나 오빠가 있는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준 성을 버리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길이라고 주장한다면, 부모와 조상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 꼭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길이 되는 것인지도 묻고 싶습니다.
  
  북한은 전통적 가족제도와 호적제도가 봉건제도의 잔재라고 하여 폐지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자신의 본관이 어디인지 듣지 못했다면 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김씨라면 다 같은 김씨인 줄 아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났을 때 자신이 전주 김씨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처럼 북의 고위층들은 혁명투쟁에 방해가 된다면서 주민들로부터는 조상과 본관을 빼앗아 버렸으면서 자신들의 족보는 어떤 형태로든 유지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조상을 잃은 북한 주민들은 조상이 있는 남한 사람들을 보고 엄청난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양자를 들여서라도 대를 잇게 하고, 장자를 우대 했던 것은 오로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물론 여자도 제사를 모실 수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할머니를 비롯한 모계에 대한 제사까지 끊어지지 않고 모실 수 있게 남자에게 대를 잇게 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이런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어느 한분 빠짐없이 제삿밥을 얻어 먹게 된 것입니다. 정부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단속하던가, 아니면 정부가 제사를 대신 지내 주지 않는 이상 남자가 대를 잇는 것은 당분간 지속될 것입니다. 남자가 대를 잇는 이상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등장할 것입니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호주에게 무슨 대단한 특권이 있어서 이를 지키려고 호주제 폐지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호주제 논의의 본질이 우리의 전통 가족관과 윤리관의 변화 내지는 포기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호주제 문제는 국민의 호적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의식 변혁을 가져 올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가족제도는 그 나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창조하는 원천입니다.
  언제부터 우리의 가족 제도가 구성원을 주종의 관계로 단정한 후 대립 각을 세워 하루 아침에 뒤집어 엎어야 하는 타도 대상으로 전락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동사무소 가서 성을 갈고 와서 부모에게 『나는 당신들을 모르니 다시는 찾지 말라』고 소리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과연 이런 모습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모습일까요. 전통과 미래에 대한 진지한 인식이 아쉽습니다.
  
[ 2003-09-06, 11: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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