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영웅 데이비스 大將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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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직 수행
  
  6.25 전쟁당시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수 많은 한국민을 공산군으로부터 구출하여 자유를 찾게 한 美 해병대 예비역 대장 레이몬드 G. 데이비스 장군(Gen. Raymond G. Davis)이 지병인 심장병으로 9월 3일 하오 2시에 조지아州 칸여스 소재 카운티 병원에서 타계했다.
  
  1915년 1월13일 조지아州 피츠제럴드에서 태어난 장군은 1938년 조지아공대를 졸업 후 해병대소위로 임관하여 군문(軍門)에 몸담았다. 데이비스 장군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 받은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장군은 태평양 전쟁당시 ‘팔라우 섬 작전’에 참전하여 ‘명예 전상장’(戰傷章)과 ‘해군 수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후 한국전에 참전하여 1952년 전쟁 기간 중 美 의회의 이름으로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Medal of Honor'(명예훈장)를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6.25전쟁 당시 그의 영웅적 공로를 인정하여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이외에도 장군이 군 생활중 받은 훈장은 ‘우수 복무 훈장’, ‘은성훈장’, ‘청동성장’, ‘수훈장’, 그리고 ‘명예 전상장’(戰傷章)등이다.
  
  6.25 전쟁당시 美 제1해병사단 소속의 중령으로 참전한 데이비스 대장에 관한 일화가 있다. 당시 데이비스 중령은 1950년 8월 21일 아침 한국으로 파병되기전 캘리포니아 州 팬들튼으로 출두명령을 받았다. 출두명령 2시간 후 美 제 7해병연대 1대대장으로 임명되었으나 대대 요원은 불과 수명밖에 없었고, 대대 막사로 예정된 천막에는 아무도 없었다. 데이비스 중령은 기간요원을 모아놓고 대대장으로서의 첫 번째 훈시를 하게 되었는데 그의 훈시 내용은 당시의 긴급한 상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1개 대대를 편성하는데 1주일 여유밖에 없다. 우리의 생애에서 이와 같은 중대한 책임을 맡게 된다는 것은 그렇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대원의 60%는 예비역이다. 그 중에는 2차세계대전당시 역전의 용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험 없는 예비역이다. 이들에게 전투준비를 시키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이들을 헛되이 죽게 하는 결과가 된다. 하루는 24시간뿐인데 우리는 그 24시간을 전부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말한 데이비스 대대장이 이끄는 미 제7해병연대 1 대대는 1개월 후 인천에 상륙하였으며 6.25 전쟁 기간 중 압도적인 숫자의 중공군에 포위된 美 해병 2개 연대를 구출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세우기도 했다.
  
  데이비스 장군은 베트남戰 참전 후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1971년 대장으로 진급했다. 이듬해인 1972년 파란만장한 33년 동안의 군 복무를 명예롭게 마쳤다. 그는 일생동안 국가에 충성했으며 군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한 참된 군인이었다. 장군은 여생을 불우한 재향군인을 돌보는 일과, 韓美 유대강화를 위해 헌신했다. 특히 워싱턴 소재 한국전 참전용사 위령공원 건립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직을 수행했다. 향년 88세의 나이로 소천(召天)한 장군은 유족으로 3남매의 장성한 자녀와 부인인 윌라 여사(Mrs. Willa Heafner Davis)가 있다. 장례식은 9월8일에 있을 예정이다.
  
  번역 김필재 미래한국신문 기자
[ 2003-09-06, 14: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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