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에 공산주의 비판한 李承晩
부당한 점으로 1) 재산을 나누어 가지자 함 2) 자본가를 없이하자 함 3) 지식계급을 없이하자 함 4) 종교단체를 혁파하자 함 5) 정부도 없고 군사도 없으며 국가사상도 다 없이한다 함이라는 다섯 가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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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世一씨가 월간조선에 연재하고 있는 '李承晩과 김구' 평전 최근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23년에 李박사가 쓴 공산주의 비판이다. 지금 읽어보아도 공산주의 사상이 세계를 풍미하던 이런 시기에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그 문제점을 짚어내었는가 감탄하게 된다. 공산주의의 위선과 악마성을 속속들이 안 李박사가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오늘날 盧武鉉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이 누리는 행복의 바탕이란 점을 상기하면서 일독을 권한다. 이 글에서 독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을 독립운동가로 표창한 盧정권의 조치가 완전히 무식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독립국가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반대한 것이 공산당의 국제주의 노선이었던 것이다.
  
   <[대평양잡지]의 속간호에 실린 글 가운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공산당의 당부당」이라는 글이다. 필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문체나 그밖의 정황으로 미루어 李承晩이 직접 집필한 것이 틀림없다. 이 글은 李承晩이 이 무렵에 공산주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공산주의가 오늘날의 인류사회에 합당한 것도 있고 합당하지 않은 것도 있으므로 이 두 가지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먼저 합당한 것으로 「인민의 평등주의」를 들었다. 그는 몇천 년 동안 내려온 귀족(양반)과 상민의 세습적 신분제도가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공화주의로 타파되었으나,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로 말미암아 불평등이 여전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노예로 말할지라도 법률로 금하야 사람을 돈으로 매매는 못한다 하나 월급이라, 공전이라 하는 보수 명의로 사람을 사다가 노예같이 부리기는 일반이라. 부자는 일 아니하고 가난한 자의 노동으로 먹고 살며 인간 행락에 모든 호강 다하면서 노동자의 버는 것으로 부자 위에 더 부자가 되려고 월급과 삭전을 점점 깎아서, 가난한 자는 호가지계를 잘 못하고 늙어 죽도록 땀흘리며 노력하야 남의 종질로 뼈가 늘도록 사역하다가 말 따름이오, 그 후생이 나는 대로 또 이렇게 살 것뿐이니 이 어찌 노예생활과 별로 다르다 하리오. 그러므로 공산당의 평등주의가 이것을 없이하야 다 균평하게 하자 함이니, 어찌하야 이것을 균평히 만들 것은 딴 문제이어니와, 평등을 만들자는 주의는 대저 옳으니 이는 적당한 뜻이라 하겠고…'
  
   이처럼 공산당의 평등주의 사상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나서, 李承晩은 그들의 주장의 부당한 점으로 1) 재산을 나누어 가지자 함 2) 자본가를 없이하자 함 3) 지식계급을 없이하자 함 4) 종교단체를 혁파하자 함 5) 정부도 없고 군사도 없으며 국가사상도 다 없이한다 함이라는 다섯 가지를 들었다. 그는 이 다섯 가지 주장의 부당성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마지막의 이른바 國家消滅論(국가소멸론)과 관련해서는 혁명 뒤의 러시아의 실상을 들어 그 부당성을 말하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설령 세상이 다 공산당이 되며 동서양 각국이 다 국가를 없이하야 세계적 백성을 이루며, 군사를 없이하고 총과 창을 녹여서 호미와 보습을 만들지라도, 우리 한인은 일심단결로 국가를 먼저 회복하야 세계에 당당한 자유국을 만들어 놓고 군사를 길러서 우리 적국의 군함이 부산항구에 그림자도 보이지 못하게 만든 후에야 국가주의를 없이 할 문제라도 생각하지, 그 전에는 설령 국가주의를 버려서 우리 2천만이 모두가 밀리어네아(백만장자)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치 아니할지라.…'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맺고 있다.
  
   '우리 한족에게 제일 급하고 제일 긴요하고 제일 큰 것은 광복사업이라. 공산주의가 이 일을 도울 수 있으면 우리는 다 공산당되기를 지체치 않으려니와 만일 이 일이 방해될 것 같으면 우리는 결코 찬성할 수 없노라.'
  
   資本家 없애면 技術革新 못 해
  
   그런데 이후의 공산주의의 역사와 관련하여 볼 때에 이때의 李承晩의 주장 가운데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자본가를 없애자는 주장의 부당성을 설명한 대목이다. 그는 공산당의 주장대로 자본가가 다 없어져서 〈재정가(기업인)들의 경쟁이 없어지면… 사람의 지혜가 막히고 모든 기기미묘한 기계와 연장이 다 스스로 폐기되어 지금에 이용후생하는 모든 물건이 더 진보되지 못하며 물질적 개명이 중지될지라…〉98)라고 하여, 시장경제체제의 경쟁의 원리와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판단은 60년이 훨씬 더 지나서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에 의하여 옳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고르바초프는 1989년 가을의 소련공산당대회에서 『기술혁신이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이토록 발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토로했었다.
  
   李承晩은 이러한 통찰력에 입각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일찍이 지식인 사회에서 기독교가 전파되던 양상과 같이,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력한 기세로 독립운동자들 사이에 구원의 메시지처럼 전파되고 있던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한국인으로선 맨 처음으로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자각한 사람이다. 실용주의 정신이 그의 눈을 맑게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建國을 주도했다는 것이 우리가 지금 김정일 치하에서 살고 있지 않은 이유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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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承晩의 '민중속으로!'
  
  
   조갑제
  
   <무릇 開明進步하는 길은 대략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학교를 세워 학문을 일이키는 것이요, 하나는 民會를 열어 토론을 하는 것이오, 하나는 널리 신문사를 설치하는 것이오, 하나는 도서관을 세우는 일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도서관을 세우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긴요하다>
  
   이 글은 李承晩이 고종황제를 쫒아내려는 쿠데타 계획에 연루되었다가 한성감옥에 갇혀 있던 시절(1899-1904년)에 쓴 논설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李承晩의 대중노선이다. 그는 국민 전체의 역량이 향상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근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국민들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교육의 수단이 학교, 신문, 도서관, 민회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李承晩은 대중을 설득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그리하여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임을 인식한 민주적 정치인이었다.
  
   다른 獄中雜記를 보자.
   <지금 나라를 논하는 자들은 걸핏하면 '정치가 어떻다, 법률이 어떻다'라고 말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자들은 의례히 '광업이 어떻다, 철ㄹ도가 어떻다, 산림이 어떻다, 어장이 어떻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민은 어떠한가'라는 논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전혀 언급하지 않으니, 더욱 政法을 모르는 것이다. 만약 백성이 백성답지 못하면 나라가 나라다울 수 없으며,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다면 위에서 말한 여러 政事가 또한 어떻게 큰 정사가 될 수 있겠는가. 백성을 소유하고자하면 반드시 먼저 백성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야 한다. 백성으로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느낌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나무 인형이나 풀인형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몇백만 혹은 몇천만 사람의 모습과 사람의 몸을 빌린 썩은 풀과 썩은 나무를 거느리고 스스로 나라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李承晩은 평생 민중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이다. 수많은 여행과 연설을 통해서 그는 한국인들과 호흡을 함께 하면서 이들을 교화하려고 했다. 李承晩의 신화는 그렇게 하여 만들어졌다. 정치의 진정한 힘은 민중속에서 형성된 여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李承晩연구가인 연세대학교 柳永益 교수가 쓴 [젊은 날의 이승만](연세대학교 출판부)에는 또 이런 편지가 실려 있다. 당시 미국 공사 호레이스 N. 알렌에게 보는 편지이다.
  
   <근자에 듣자오니 각하께서 생을 위하여 일본공사에게 보호를 요청하기도 하고, 또 외부에 석방도 요청하였다는 소식이 누차 신문지상에 게재되었습니다. 생의 사사로운 분수에 비추어 감사함을 이기지 못하겠사옵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생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청탁한 바가 있어서 그런가 하는 의혹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생의 염원을 저버린 것이요, 또한 각하의 公人으로서의 체통을 훼손하는 일이 됩니다. 하물며 한국 죄수의 보호를 이웃 나라의 공사에게 부탁하는 것은 우리 한국의 독립을 존중히 여기는 본의에 위배되며, 貴國과 우리 나라의 友誼를 손상시키는 바입니다. 생은 차라리 억울함을 품고 달갑게 죽을지언정 이 일만은 참으로 원하지 않는 바이오 차마 할 수도 없는 바입니다. 1904년 7월18일>
  
   기록광인 이승만은 한성감옥에 있을 때 목격한 죄수 사망 사례를 자세히 적어놓아다. 고문으로 죽은 경우, 사형 집행, 콜레라 사망 등등이다. 1902년 9월12일에는 17명이 호열자로 죽었다고 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그는 국가의 체통을 생각하면서 외국인의 救命운동을 거절하고 있다. 그의 애국심은 민중에 대한 동정과 국가적 자존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김유신, 박정희, 이승만은 자신의 인격과 국가의 권위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했다. 민족주의자란 말은 단어 그대로 민족을 중심에 놓고 이해를 따지는 이들이다. 그런 행동의 논리는 민중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요사이 한나라당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태에 대해 논평만 내고 있다. 역사의 흐름 한복판으로 들어가 헤엄칠 생각은 하지 않고 비스듬히 꼬고 앉아 평만 한다. 역사의 창조자가 아닌 역사의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정통주류세력을 대표하려면 그 세력의 원조인 李承晩을 제대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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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25, 17: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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