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 분단 책임론은 6.25북침說보다 더 악질
스탈린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에 대해서 '민주정권', 즉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1945년 9월20일이었다. 그때 이승만은 워싱턴에 묶여 있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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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李承晩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이 한반도의 분단을 가져왔다고 헛 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바보, 천치, 위선자, 공산주의자, 惡黨, 아니면 정신이상자들이다. 6.25가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반역적, 反사실적 발언이다. 노무현씨는 대통령 후보 때, 그리고 현직 대통령 때도 대한민국 건국을 '분열정권의 수립'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건국을 저주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유권자들의 고생은 당연했다.
  
  
  분단책임을 미국과 李承晩에 돌리는 바보, 천치, 악당, 위선자들이 한때 정권의 요직에 있었고 지금도 정당, 국회, 사회단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탄생을 저주하는 인간들을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앉히는 국민들은 그 죄값을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런 악당들에게 속아넘어간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공산주의에 물든 인간들은 구제불능이지만 속아넘어간 이들은 가능성이 있다. 이들에겐 사실이 解毒劑이다.
  
  스탈린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에 대해서 '민주정권', 즉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1945년 9월20일이었다. 당시 李承晩은 귀국허가를 얻지 못해 워싱턴에 묶여 있었다. 스탈린은 그해 8월 초순 런던에서 열린 외상회담에서 미국이 反蘇的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 미국과의 대결을 결심한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북한에서 공산정권을 공고화한다는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련군은 38선의 통제를 강화한다. 38선은 군사주둔지역의 경계선에서 일종의 국경선으로 바뀐다. 소련은 1946년 말에는 북한에 사실상 정부인 인민위원회를 세우고, 그 이듬 해엔 군대를 만들고, 헌법제정에 착수한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에 이미 북한에선 정부형태의 조직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승만이 '남쪽만이라도 자율적인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은 1946년 6월이었고, 미국이 소련과 논의하여 통일국가를 세우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남한에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결심한 것은 1947년말이었으며, 실제 건국은 1948년8월15일이다.
  
  일본의 法政大 교수 시모도마이 노부오(下斗米伸夫)가 쓴 '아시아 冷戰史'에 따르면 1948년4월24일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스탈린은 몰로토프와 주다노프 등 소련공산당 간부들과 만나 북한 헌법 제정 등의 절차를 결정했다.
   <헌법은 1947년부터 소련헌법을 기초로 하여 준비되었으나, 일부는 스탈린 자신이 집필했고, 또 당초 있었던 임시헌법에서 임시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도 스탈린이었다. 이 회의에는 북한 지도자는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다. 소련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 4월 회의의 결정에 따라 8월에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가 이뤄지고 9월2일에 제1회 회의를 소집했으며, 8일엔 헌법을 채택, 9일엔 인민공화국 창설이 선언되었다. 國名이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러시아語로부터 直譯한 것이다>
  
  북한은 꼭두각시 정권이자 '메이드 인 소비에트 유니온'인 것이다.
  
  
  남북한 분단은 미국과 소련의 공동책임이 아니라 소련과 김일성의 전적인 책임인 것이다. 남북한 분단은 美蘇 양국에 있다고 말하면 양심 있는 지식인양 여겨지는 풍토를 개탄한다.
  
  *이 문제에 대해선 이정식 팬실베니아 대학 명예교수가 쓴 '냉전의 전개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란 논문이 좋은 자료이다. 이 논문은 柳永益 교수가 펴낸 '수정주의와 한국의 현대사'(서울, 1998)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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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 8. 8. 소련, 대일전 참전해 만주와 북한으로 진공개시
   8.15. 일본 무조건 항복선언
   8.26. 소련군 평양 진주후 사령부 설치
   9.19. 김일성과 항일유격대 주력부대 입국
   10.13.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
   10.14. 김일성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 개최
   12.17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회의 책임비서로 김일성 선출
   12.27.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1946.1.2. 공산당과 각사회단체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지지 성명
   2. 8.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발족(위원장 김일성)
   3.20.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막
   3.23. 김일성 20개조 정강발표
   5. 8. 미소공동위원회 무기 휴회
   7.22.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결성
   8.28-30.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
  1947. 1. 1. 김일성 신년사[전국 인민에게 고함] 발표
   2.20. 북조선 인민위원회 조직(위원장 김일성)
   5.21.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6.30. 평양에서 미소공동위 대표와 북조선 각정당 사회단체
   대표합동회의
   9.23. 제2차 유엔총회, 미국의 한국문제 토의 제안
   11.18. 북조선 인민회의 제3차 회의,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 조직
  1948. 2.16. 김구·김규식, 김일성·김두봉에게 남북지도자회담 제안
   2.26. 유엔총회,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 결정
   4.20.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 개막
   4.30. 남북한 제정당 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에서 공동성명서 발표,
   외국군대의 즉각적인 동시 철거 주장
   5.10. 유엔감시하 남한 단독선거 실시
   9. 9.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수상 김일성) 창건
  
  
  
  
  
  
  
  
[ 2008-09-02, 22: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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