建國 대통령과 建設 대통령
李承晩의 自由民主 건국은 朴正熙의 富國强兵의 건설에 의하여 내용을 갖게 되었고 朴正熙의 성공은 李承晩의 희생을 딛고 서 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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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李承晩, 朴正熙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의 정서, 꿈, 생리를 가슴에 품고 세계를 본 사람이었다. 가슴은 서민이고 머리는 엘리트였다.
  
  2. 그러나 두 사람은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인이 아니었다. 國産品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외국의 先進 문물을 경험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개방적 自主정신의 소유자였다. 가슴엔 한국이, 머리엔 세계가 들어 있었다. 무초 미국 대사의 李承晩 평: <그는 복잡한 세계정세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정확하게 간파한 사람이다>
  
  3. 두 사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국가 지도자이다. 다수 구성원들에게 자유와 번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노선이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는 점을 기준으로 20세기의 대표적 지도자를 뽑는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 일본의 요시다, 중국의 鄧小平, 프랑스의 드골, 독일의 아데나워, 터키의 케말 파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인도의 네루, 한국의 李承晩과 朴正熙. 두 사람은 삼국통일의 세 元勳(김유신, 김춘추, 문무왕)과 함께 韓民族 사상 가장 ‘큰 인물’이다.
  
  4. 눈에 보이는 것은 거의가 朴正熙,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거의가 李承晩의 작품이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입각한 건국, 대통령 중심제, 農地개혁에 의한 계급구조 타파, 교육개혁에 의한 人材 양성, 국군 건설, 평화선 선포, 韓美동맹에 의한 안보의 생명줄 확보 등은 고속도로나 工團 건설보다 설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은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려우므로 사람들은 李承晩의 평가에 인색하다.
  
  5. 李承晩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나라를 세우는 근본으로 삼은” 분이고, 朴正熙는 그 자유를 지키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른 분이다.
  
  6. 두 사람은 자주적 실용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우상숭배하지 않았다.
  
  7. 李承晩은 언론인, 교사, 혁명가, 전략가였고, 朴正熙는 교사, 군인, 혁명가, 행정가였다.
  
  8. 李承晩의 韓美동맹과 朴正熙의 韓日우호 관계는 한국의 생존과 번영의 울타리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자존심과 실력과 인격이 강대국과 상대함에 있어서 한국의 國益을 증진시켰다. 李承晩은 미국을, 朴正熙는 일본을 잘 알고 잘 이용했다.
  
  9. 李承晩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멀리 본 분이고, 朴正熙는 국가 시스템 건설과 운영의 鬼才였다.
  
  10. 李承晩이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朴正熙가 군인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11. 두 사람은 管仲-鄧小平-李光耀로 대표되는 동양적 실용주의 정치가였다.
  
  12. 두 사람은 1급 교양인이었으나 漢字에 대한 反感이 한글專用 찬성으로 기울어 오늘처럼 韓國語가 반신불수가 되는 데 일정한 책임이 있다.
  
  13. 한국은 두 위대한 대통령과 두 부지런한 대통령에 의하여 45년간(60년중) 지도되었던 행운의 나라였다. 李承晩의 自由民主 건국은 朴正熙의 富國强兵의 건설에 의하여 내용을 갖게 되었고 朴正熙의 성공은 李承晩의 희생을 딛고 서 있다.
  
  14. 朴正熙 대통령은 李承晩 장례식에서 ‘조국 憲政사상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어린 羊”의 존재’라면서 ‘이 나라의 護國神이 되셔서 민족의 多難한 앞길을 열어주시는 힘이 되어주실 것’을 희망했다.
  
  
[ 2008-11-04, 11: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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