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폭파' 金賢姬 接線記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는 “김현희씨 목소리가 옛날 그대로네요”라고 했고, 김씨는 月刊朝鮮과 조갑제닷컴에 글을 써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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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기자의 金賢姬 接線記] 남편이 전한 金賢姬의 편지
  
  “세계 어느 나라 국가기관에서도 自國이 피해를 입은 ‘테러’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시국강연을 끝내고 壇下로 내려오는데 가방을 들고 검은 외투를 입은 건장한 사나이가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제가 김현희의 남편입니다.”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위원·조갑제닷컴 대표 (mongol@chosun.com)
  
  
  피신 중인 金賢姬의 최근 모습.
  
  
   2008년 11월 말 부산에서 시국강연을 끝내고 壇下(단하)로 내려오는 데 가방을 들고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제가 金賢姬(김현희)의 남편입니다.”
  
   우리는 청중 속을 헤치고 식당 별실로 갔다. 김현희의 남편 鄭(정)○○씨는 국정원 수사관 출신이다. 그는 나에게 서류봉투를 하나 전해주었다. 우리는 1주일 뒤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봉투엔 김현희씨가 자필로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KAL 858기 폭파사건의 장본인인 김현희입니다. 위원님에게 제대로 안부의 인사편지를 올리지 못하였는데, 위원님께서 저의 호소문을 월간지(月刊朝鮮 12월호-注)에 게재하여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월간지에 크게 게재된 저의 편지에 대한 위원님의 글을 읽고, 크게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었고, 제가 견디어온 지난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곳 남한에서 제가 유일하게 근무하였던 국가조직(국정원-주)과 대치하면서까지 호소문을 세상에 알려야만 하는 것이 저 자신을 서글프게 하고, 또한 힘들게 합니다. 저는 지난 참여정부에서 KAL기 사건 의혹제기와 관련하여 출판·방송·소송·시위·세미나·기자회견·과거사委(위) 조사 등등의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사건의 장본인으로서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그 어느 것도 근본적인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느낀 점은, 정직하지 않는 자들이 진실을 더 외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진작 자신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의식화된 진리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위원님의 글에서, 前(전) 국정원 간부가 “의혹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의혹을 조사하도록 하여 결백함을 증명하면 더 좋지 않은가”하면서 신동진을 조사관으로 채용하였다고 말한 사실을 읽고, 정말 변명하는 데도 어느 정도이지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국정원 수사국장 등이, 의혹을 제기한 책을 쓰고 출판했다 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서현필과 전형배를 민·형사로 고소한 것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 주장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피고인들(서현필·전형배-주)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요.
  
  安炳旭 진실화해위원장.
  
   그들은 만 5년이라는 긴긴 소송과정을 거쳐 지금 2심 재판을 받고 있고, 오는 12월 12일 2심 선고를 받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정원은 그들에게 특별보상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며칠 전 1심 재판부의 한 관계자는 저의 탄원서가 “정작 재판과는 무관한 내용이었고 좀 장황하고 이해가 안 돼 한번 읽어보고 기록에 첨부하기만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위원님에게 그 탄원서 사본을 보내오니 참고하십시오(김현희씨는 국정원이 의혹을 제기한 어느 사람은 조사관으로 채용하고, 어느 사람은 고소하는 행태의 모순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주).
  
   그리고 진실화해委 위원장 安炳旭(안병욱)이 저를 직접 불러 조사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조사 협조를 요청한 뒤 응하지 않을 경우,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그래도 응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작년(2007년-주) 10월 중순경 국정원 과거사위 위원장이었던 그가 저에 대하여 “실제로 얻어낼 게 없는데도 무리하게 조사하는 것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국정원과 방송3社(사) 등은 저의 호소문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아직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국정원과 방송3사 등은 조만간 공식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어떤 결정을 하든 그 결정은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위원님, 저를 대신하여 세상에 폭로해주신 것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몸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2008년 11월 하순. 김현희 드림>
  
  
  
   “나는 김현희를 이렇게 확인했다”
  
   김현희씨가 재판을 받고 있던 1989년 봄 필자는 안기부 安家(안가)에서 그를 나흘간 인터뷰하여 기사화한 적이 있다. 그때 필자는 북한사정에 어두웠다. 김현희씨는 필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수사관들에게 “고참 기자 선생님이 너무 모른다”고 흉을 보았다고 한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필자는 북한에 대해서 본격적인 취재를 하게 되었다.
  
   편지를 받은 사흘 뒤 마침 서울에 온 미국의 전직 정보기관원 L씨를 만났다. 그는 한국系(계) 미국인으로서 對北(대북)공작이 전공이다. 주로 冷戰(냉전)시대 40년간 미국·한국·유럽·아프리카·東歐(동구)의 첩보전선에 근무했던 전설적인 프로다. 한국의 현대사를 뒤흔든 수많은 대사건을 담당했으니 秘話(비화)의 寶庫(보고)다.
  
   그날 L씨는 KAL기 폭파사건 비화를 털어놓았다. L씨는 1988년에 거의 한 달간 김현희씨를 조사했다. 그해 1월 15일 안기부는 대한항공 폭파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안기부의 발표와는 별도로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김현희가 眞犯(진범)인가의 여부를 가리는 일을 L씨(당시 한국 근무 중)가 맡았다.
  
   그는 먼저 워싱턴의 본부에 북한의 對南(대남)공작부서 요인들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L씨는 그 수십 장의 사진을 김현희씨 앞에 늘어놓았다. L씨는 전혀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김현희씨에게 대한항공 폭파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으면 사진을 집으라고 이야기했다.
  
   김현희씨는 두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두 장을 본부로 보냈더니 ‘한 사람은 대외정보조사부 부장 이○○, 다른 사람은 헝가리의 북한공작원 한○○의 사진이다’라는 통보가 왔다. 이는 김현희씨에게 김정일의 폭파 지령을 전달한 사람이고, 한은 김현희씨가 헝가리에 머물 때 만났던 이였다.
  
   L씨는 다시 김현희씨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본부에 헝가리의 북한공작원 아지트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본부는 아지트 주변, 내부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보냈다. 건물의 색깔·나무·철문의 모양 등이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김현희씨에게 헝가리에서 머물렀던 아지트의 상황을 설명하라고 하니 정확하게 일치했다.
  
   L씨는 김씨와 거의 생활하다시피 하면서 대화를 분석했다. 남한에서는 쓰지 않고 북한에서만 쓰는 용어를 조사했다. 예컨대 會食(회식)을 북한에선 ‘동석식사’라고 한다. 헝가리를 ‘웽그리아’, 스웨덴을 ‘스웨리’, 폴란드를 ‘뽈스카’라고 한다. 김현희씨는 북한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쓰지 않는 용어들을 구사하고 있었다.
  
   L씨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김현희씨에게 북한에서 배웠다는 암호해독 방법을 물었다. 김씨는 북한공작원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해독법을 보여주었다. L씨는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여 “김현희는 북한공작원이 틀림없다”고 본부에 보고했다. 이 보고에 의해 미국은 북한정권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고 對北(대북)제재에 착수했던 것이다. 은퇴 후 워싱턴에 살고 있는 L씨는 “요사이 親北(친북)세력이 김현희씨를 괴롭히고 있는 걸 보면 울화통이 터져 수면제를 먹어야 잠에 들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비엔나 첩보전선 이야기
  
  李應魯 화백의 부인 박인경에게 유인돼 북한으로 납치될 뻔한 白建宇·尹靜姬 부부.
  
   L씨는 1997년 독일에서 북한노동당 비밀당원 宋斗律(송두율)을 관리하다가 미국으로 탈출한 북한공작원 김경필을 신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김경필이 이야기하더군요. 대남공작의 2대 목표는 黃長燁(황장엽) 선생을 암살하는 것과 대한항공기 폭파를 남한에 덮어씌우는 것이라고.”
  
   그 週(주) 토요일 필자와 L씨는 서울역에서 기차에 올랐다. 두 시간 동안 車(차) 안에서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을 훑는 대화를 나누었다. 70대 중반인 L씨의 기억력은 비상하다. 특히 시간과 인물에 대한 증언은 정확무비했다. L씨가 경험한 첩보전선의 이야기는 제임스 본드類(류)의 영화가 아니라 ‘제3의 사나이’ 같은 영화에 어울린다. 그의 이야기 속에선 ‘제3의 사나이’의 무대이기도 한 빈이 자주 등장한다. 빈은 냉전시대 東西(동서) 첩보전선의 최일선이었다. 북한도 유럽공작의 사령탑을 빈에 두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현역 少將(소장) 김대성을 빈 총책으로 보냈다. 김대성은 1977년 여름에 있었던 북한 공작팀의 白建宇(백건우)·尹靜姬(윤정희)씨 부부 납치 기도 때는 표면에 나서지 않았다. 이 납치사건을 직접 지휘한 것은 노동당 對外(대외)연락부 부장 정경희로서, 이 여인은 빈에 와 있었다. L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 사건은 영화광인 金正日(김정일)이 윤정희씨를 납치해오라고 지령하여 일어났다. 우리는 미리 북한팀의 움직임을 파악했었다. 파리에 살던 李應魯(이응노) 화백의 부인 박인경이 백건우씨 부부를 동행하여 유고 자그레브로 유인, 납치팀에 넘기려 했는데, 방화자라는 여인이 선글라스를 끼는 바람에 실패했다.”
  
   방화자는 빈 주재 북한 대사관 3등 서기관 이상준의 처이다. 그는 백건우씨 부부가 자그레브 공항에 내릴 때 선글라스를 쓰고 감시 차 나갔다가 윤정희씨의 눈에 들어왔다. 윤정희씨는 “시골공항인데, 선글라스를 낀 동양인 여자가 보이고, 공항에 북한의 조선민항 여객기가 있어 긴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L씨는 “방화자가 선글라스에다가 북한식 짧은 치마까지 입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인경·백건우·윤정희 세 사람은 택시를 타고 박씨의 안내에 따라 자그레브 교외의 한적한 3층 건물에 도착했다. 백건우씨가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북한 공작팀이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택시로 돌아와 급히 미국 영사관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납치는 실패했다.
  
  
   “납치 공범 박인경, 서울 거리 활보”
  
   L씨는 “박인경은 150% 공범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한국은 나라도 아니다”고 개탄했다.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북한 공작팀의 활동을 미리 알고 백건우씨 부부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취해 놓았었다고 한다.
  
   “납치 실무책임자는 자그레브를 무대로 활약하던 허묵이란 공작원이었다. 이상준은 보조역할을 했다.”
  
   납치 기도 석 달 뒤 유고 공산당은 북한 대사관의 정광순 대사를 불러 납치 기도에 대해 엄중 경고했다. 정 대사는 순순히 납치 기도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5년 전에 공개된 유고 연방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광순은 “유괴를 계획했던 것은 영사관 동지들이 아니라 평양에서 온 그룹이었다”는 변명까지 한다.
  
   L씨는 필자의 흥미를 돋우는 말을 덧붙였다.
  
   “북한의 유럽 총책 김대성으로부터 지령 받고 돈도 받은 한국인들 중에는 ○○도 있어요.”
  
   ○○는 문화계의 유명인사이다.
  
   ―한국 정부에 통보했나요?
  
   “안 했습니다. 정보 소스를 보호하기 위하여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확인했지요?
  
   “말할 수 없습니다. 틀림 없어요.”
  
   L씨는 1986년 申相玉(신상옥)·崔銀姬(최은희)씨 부부가 빈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했을 때 워싱턴에서 유럽으로 날아가 두 사람을 인수, 미국으로 데려온 사람이다. 신·최씨를 조사했던 L씨는 “신상옥 감독이 (자진 월북이 아니라) 납치된 것은 사실이고, 그가 북한에서 탈출하려다가 붙잡혀 수년간 옥살이한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L씨는 서방세계에서 김정일의 肉聲(육성)을 처음 들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상옥·최은희씨가 비밀녹음한 김정일의 목소리를 감정할 수 있었다.
  
  
   공중전화로 김현희씨와 통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후 3시였다. 한기가 도는 驛(역) 구내에서 기다리던 김현희씨 남편 정씨가 뛰어왔다. 그는 L씨도 알아보았다.
  
   정씨는 우리를 공중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카드로 전화를 걸었다. L씨에게 먼저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상대는 김현희씨였다. 인사 정도의 짧은 통화, 그리고 내가 전화기를 잡았다.
  
   나는 “김현희씨 목소리가 옛날 그대로네요”라고 했고, 김씨는 月刊朝鮮과 조갑제닷컴에 글을 써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정씨는 휴대전화도, 집전화도 없이 산다고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장한 말을 했다. 정씨가 모는 승용차로 우리는 한적한 山中(산중) 호텔로 가서 커피숍에서 세 시간 동안 對話(대화)했다.
  
   정씨는 2003년 11월부터 본격화된 의혹제기의 연출자는 舊(구) 국정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가장 큰 근거로 국정원 간부가 자신을 불러내 “지도부의 결정으로 MBC ‘PD 수첩’ 제작을 지원하기로 했으니 김현희씨를 출연시켜라”라고 압박한 사실을 꼽았다. 필자가 “그건 국정원이 김현희씨가 나가면 의혹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권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더니 정씨는 강하게 부정했다.
  
   “나도 안기부 수사관 출신이고 아내도 공작원 출신 아닙니까? 국정원이 의혹을 키우기로 작심한 뒤 각종 단체와 방송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그들이 판 함정에 김현희를 빠뜨리려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MBC ‘PD 수첩’ 취재팀이 김현희씨가 사는 아파트의 호실 앞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김씨가 산다는 아파트의 전체 모습과 불이 켜진 창문까지 나온다. 특종을 위해 여러 가지 비정한 짓을 많이 한 필자이지만 이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북한공작원들이 가장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의 집을 이렇게 공개한 MBC라면 김씨측이 어떤 의심을 하더라도 이해해 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친북정부가 사건을 각색하여….”
  
  2006년 8월 1일 국정원 과거사委는 KAL858기 폭파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그 집이 자택 맞습니까?
  
   “우리 집이었어요. 지금은 거기 안 살지만.”
  
   ―필자에게 신경질을 낸 여인은 김현희씨가 맞고요?
  
   “그 사람은 우리를 경호하는 女警(여경)이었어요.”
  
   김현희씨 부부는 노무현 정권·국정원·신부들·일부 유족들·방송3사·진실화해위원회가 한 덩어리가 되어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테러 지령자 김정일에게 免罪符(면죄부)를 주려 했다고 믿는다. 2003년 11월 18일자 MBC ‘PD 수첩’의 의혹제기는 광우병 프로에 못지않은 왜곡이다.
  
   이 프로에 김현희씨가 출연했더라면 의혹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의혹제기에 악용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김현희씨가 “이건 안기부 죽이기, 김정일 살리기 공작이다”고 판단하여 출연을 거부하고 피신한 것은 공작원다운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 프로를 만들 때 국정원이 지원을 했다는 김현희 측의 의심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현직 국정원 직원이 인터뷰에 응했다는 점이다. 이 프로에 소개된, 의혹제기에 대한 국정원 직원들의 항변은 도무지 자신감이 없어 오히려 의혹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2008년 8월 초순 김현희씨는 서울중앙지법의 소설 <배후> 관련 명예훼손 사건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김씨가 필자에게 전해준 탄원서엔 이런 내용이 있다.
  
   <제가 국정원의 (MBC 출연) 지시를 거부하게 된 이유는, KAL기 사건이 발생한 지 16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친북성향의 정부가 이 사건을 새롭게 각색하여 또 다시 사회 이슈로 부각시키고 정치 쟁점화하려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MBC는 KAL기 사건 자체를 의혹투성이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국정원이 지원 수준을 넘어 기획 공작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참여정부 내내 KAL기 조작의혹 제기가 방송계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분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속적이면서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사회 이슈화하게 된 것은, 바로 국정원이 그 ‘배후’에서 기획하고 결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2003년 11월 하순 국정원 직원 5명이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의 의혹을 소설(<배후>)로 다룬 저자 서현필씨와 출판사 창해의 전형배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 고소한 것도 김현희씨 부부는 국정원의 ‘기획’이라고 주장한다.
  
   국정원이 의혹 제기자들과는 연계되지 않았음을 對外的(대외적)으로 알리면서, 이 사건에 대한 世人(세인)의 주목을 끌고, 책도 선전해주고, 자신을 법정의 증인으로 불러내려는 다목적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김현희씨는 이런 주장을 했다.
  
   1. 국정원이 소설 필자는 고소하면서 소설보다 더 심하게 의혹을 제기한 실록()의 필자 신동진을 3년간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관으로 채용하여 이 사건을 再(재)조사하게 했다.
  
   2. 고소를 해놓고도 국정원 측은 재판에 이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勝訴(승소)할까봐 두려워 법정에서 극히 소극적으로 나왔고, 실제로 잇따라 敗訴(패소)했다.
  
   3. 이 고소 자체가 국정원의 의혹 키우기 공작이다.
  
   남편 정씨는 부인과 마찬가지로 정권적 차원의 의혹을 제기, 그 최종 목적은 폭파 지령자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었다고 믿는다. 그 수많은 의혹 제기자들의 그 많은 글과 말 속엔 북한 정권에 대한 의심이나 비판이 전혀 없다.
  
   옆에서 정씨의 주장을 듣고 있던 L씨가 끼어들었다.
  
   “내가 김현희씨를 신문했을 때 확인한 것 중에는 이런 게 있었어요. 북한 공작팀이 평양에서 김승일·김현희組(조)의 침투경로를 토의할 때 김승일이가 異見(이견)을 냈더니 대외정보조사부장이 ‘이건 이미 김정일 동지의 비준이 난 것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묵살했어요. 이것도 김정일이 지령했다는 유력한 증거이지요.”
  
   나중에 필자가 관련 자료를 확인하니 L씨의 기억이 정확했다.
  
   <1987년 10월 4일 중국 광주에서 현지화 교육을 받던 김현희에게 혼자서 즉시 귀환하라는 급한 전갈이 왔다. 김은 10월7일에 평양에 도착하였다. 7일 저녁 김은 용성 43호 초대소 학습실에서 자신이 소속된 대외정보 조사부 2과장 한모(54세 가량)를 만난다. 한 과장은 김을 데리고 다시 동북리 2층 2호 초대소로 이동, 김을 인계하였다.
  
   이곳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데 안면이 있는 대외정보 조사부 1과 과장 최모, 金勝一(김승일), 그리고 최모 지도원이 들어왔다. 최 과장은 “오늘부터 옥화(김현희의 假名) 동무는 다시 김승일 동지와 배합된다. 임무는 곧 부장 동지가 직접 오셔서 말씀해주실 것이다”고 했다. 이때가 밤 8시를 넘은 시간이었다. 잠시 후 리모 대외정보 조사부장이 도착하였다. 리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김현희는 안기부에서 진술한 바 있다.
  
   “이번 동무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는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는 것이다. 남조선 비행기 폭파 목적은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남조선 괴뢰의 두 개 조선 책동과 준동을 막고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최 과장과 최 지도원, 그리고 김승일과 김현희 네 사람은 10월 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초대소에 밀봉 수용돼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두 최씨는 안내, 두 김씨는 공작조였다. 최 과장은 공격목표가 “11월 28일 바그다드발 아부다비 경유 서울행 남조선의 대한항공 858기”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김승일은 이의를 제기했었다고 김현희는 진술했다.
  
   “중동에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공항의 검문·검색이 심하다.”
  
   이런 반론에 대해서 최 과장은 “이것은 김정일 동지의 친필비준이 난 계획이므로 수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김승일은 그래도 이의를 제기했다.
  
   최 과장은 “이 비행기에는 남조선 노동자들만 타기 때문에 국제 문제로 비화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나중에는 리 부장이 와서 “김정일 동지의 지시다”고 논란을 끝내게 했다. 11월 10일 저녁 무렵 초대소 응접실에 대외정보 조사부장 이모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폭파팀 네 명을 불러놓고, “알다시피 이번 임무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친필비준이 난 것으로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하는 것이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리 부장은 건배를 들면서 이들을 격려하였다.>
  
   L씨는 “이게 북한공작의 특징이고 약점이다”고 말했다.
  
   “김정일에게 폭파계획의 세부사항을 보고한 뒤에는 한 자도 고칠 수 없습니다. 융통성이 전혀 없어요. 이러니까 변화하는 정세에 대응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겁니다.
  
  
   李相淵, “김정일이 인정한 사건”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이었던 리은혜(다구치 야에코).
  
   盧武鉉(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5년 11월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과 회담할 때 집요하게 미국의 對北(대북) 금융제재를 거론했다. 그때 미국은 북한이 저지르는 달러 위조 등 국제범죄를 응징하기 위하여 북한 정권의 主(주)거래 은행인 마카오의 방코 델타은행과 미국은행들이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었다.
  
   노무현씨는 미국이 이 조치를 再考(재고)해 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여 부시가 화를 냈다고 한다. 배석했던 버시바우 당시 미국 대사는 “최악의 정상회담이었다”고 최근에 회고한 바 있다.
  
   이런 노무현 정권이라면 KAL기 폭파 같은 김정일의 다른 국제범죄에 대해서도 정권적 차원에서 대책을 세웠을 것이고, 그 심부름을 국정원이 했다고 보는 김현희씨의 주장이 억측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김현희씨는 법원에 낸 탄원서에서 “저는 세계 어느 나라 국가기관에서도 自國(자국)이 피해를 입은 ‘테러’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반역 정권이 들어서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김현희 부부는 외롭게 권력을 등에 업은 선동·조작 전문 세력과 맞서 버티어 낸 셈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진실의 힘일 것이다.
  
   김현희씨 남편과 헤어져 서울로 돌아오는 車(차) 안에서 L씨와 필자는 별 대화가 없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남북한의 좌익정권을 상대해야 했던 두 사람의 절박함, 울분, 그리고 피해의식에 전염된 기분이었다.
  
   돌아와서 李相淵(이상연) 전 안기부장을 만났다. 그는 안기부 차장 시절이던 1988년 1월 15일에 김현희를 데리고 나와서 수사결과를 발표했었다.
  
   이 전 부장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은 정보기관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모범적으로 조사된 사건이다. 미국 등 많은 나라들이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이 리은혜(일본이름은 다구치 야에코)를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리은혜’(김현희의 일본어 선생)의 존재는 김현희씨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 증언을 기초로 하여 일본경찰이 그 일본여인이 실종된 ‘다구치 야에코’임을 확인했으며, 김정일이 납치를 시인했으니 결국 대한항공 사건이 북한정권의 소행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김정일의 그런 범행자백 이후에 신부들과 방송의 의혹 제기가 더 거세졌다는 점이다.
  
  
   김현희의 다짐,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
  
  ‘KAL858기 가족회’(회장 차옥정)와 ‘KAL 858기 진상규명대책위’(공동대표 김병상 신부)의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요구 기자회견.
  
   이상연씨는 2004년에 高泳耉(고영구) 당시 국정원 원장에게 KAL기 폭파사건 재조사의 부당성을 설명했고, 원장도 납득한 것 같았다고 한다. 그 직후 국정원이 재조사에 착수한 것은 정권 차원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 전 부장은 “국정원이 재조사를 한 것은 KAL기 수사를 도와준 나라들에 대한 배신행위이기도 하다. 국정원이 반드시 경위를 조사하여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
  
   김현희씨 부부가 국정원 이상으로 치를 떠는 것은 MBC와 KBS의 의혹 제기 프로다. 두 프로를 본 필자의 분노는 그 이상일 것이다. 저런 식으로 프로를 만들면 6·25 북침설은 물론이고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주장도 ‘의혹 제기’ 수준으로 格上(격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서울로 돌아온 지 나흘 뒤 김현희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또 공중전화로 건다고 했다. 국정원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국정원이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공식적인 사과와 문책을 하기 전에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에 낸 탄원서에서도 김현희씨는 “아직도 국정원과는 긴장과 대치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지난 정부에 의하여 길들여진 이념의 그림자가 국정원에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썼다.
  
   필자와의 통화에서 김현희씨는 리은혜를 마지막으로 본 이야기, 이 여인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들은 이야기를 설명했다. 일본인 납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듯했다. 일본 언론이 그토록 김현희씨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의 신호탄이었던 ‘김현희 KAL 858기 조작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 115인 선언’을 발견했다. 의혹의 이유로 든 항목들 중엔 이런 주장도 있었다.
  
   “당시 김현희의 행적을 유심히 살폈던 교체 승무원들은 모두 김현희가 그러한 종류의 폭발물을 들고 탑승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공작원이 승무원들에게 폭발물을 보이면서 들고 다니나? 이들은 선언문에 “감춘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루가 12:2)라는 성경 귀절도 인용했다. 거짓과 증오가 진실과 사랑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이들에게 “直筆(직필)은 사람이 죽이고, 曲筆(곡필)은 하늘이 죽인다”는 말을 선물하고 싶다.
  
   1989년 김현희씨는 필자와 인터뷰하면서 名言(명언)을 남겼다. 남북한 체제를 겪어보고 비교한 말이다.
  
   “북한에서는 히즈 스토리(His Story)를 가르치고, 남한에서는 히스토리(History)를 가르치더군요.”
  
   북한에선 김일성 혁명역사만 가르치는데 남한에 와 보니 민족사를 제대로 가르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남한이 정말 히스토리를 가르치는지는 김현희씨가 제기한 국정원 의혹 조작설에 대하여 李明博(이명박)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화를 내야
  
  대전시는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미수 사건의 유인책 박인경(오른쪽)을 이응노미술관 명예관장으로 위촉했다.
  
   조국이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 가해자 편을 드는 인간을 용서하는 나라는 없다. 더구나 공영방송, 국가정보기관, 국가기관이 主敵(주적)에게 이롭고, 조국에 불리한 짓을 했다면 이는 일종의 逆謀(역모)다.
  
   국가정보원은 재조사를 해선 안 될 이 사건을 재조사함으로써 국민세금을 낭비한 것은 물론, 안기부가 완벽하게 조사한 사건이 의혹이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조사위원들은 거의가 의혹 제기자들이었고 좌편향된 인물이었다. 소설 수준의 책으로 의혹 제기를 한 인물을 조사관으로 채용했다. 국정원은 거짓과 왜곡의 명수인 MBC ‘PD 수첩’에 출연하라고 김현희씨를 압박했다.
  
   그 나라가 어떤 수준의 나라인가를 알아보는 방법은 누구를 기리고 누구를 敵(적)으로 삼는가를 보는 것이다. 경남 통영시는 국가가 인정한 유럽 주재 북한공작원 尹伊桑(사망)의 이름을 딴 음악당을 국민세금 1500억원을 들여 짓기로 했다. 대전시는 백건우·윤정희 납치기도 때 유인책 역할을 맡아 북한 공작팀에게 두 사람을 넘겨주려 했었다는 혐의가 풀리지 않고 있는 박인경씨를 이응노미술관의 명예관장으로 위촉했다.
  
   그런 국가가 김정일 정권의 적인 김현희씨를 적처럼 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赤化(적화)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이명박 정부하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 시절 이 사건을 당한 사람이다. 115명 중 현대건설 노동자가 가장 많았다. 지금 다섯 번째로 김현희씨를 조사하고 있는 진실화해위는 독립기관이나 위원장과 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은 한 市場(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민은 죽어가고 있는데 農協(농협)은 정치를 하고 있다”는 요지의 다소 과격한 발언을 했다. 그말 한 마디에 농협은 개혁작업에 착수하고 간부들이 한꺼번에 사직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취지의 말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이 적화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국가기관이 김현희를 조사하나? 3심을 거친 사건인데 국정원이 4심하고, 진실화해위원회가 5심을 하나? 조국에 해롭고 적에겐 이로운 이 따위 짓에 가담한 국가기관에 대해선 특별조사를 실시하여 利敵(이적) 혐의를 밝혀내라! 이런 식으로 조사할 것 같으면 북침설도 국가가 조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병자가 해는 서쪽에서 뜬다고 주장하면 그것도 국가가 조사하나? 정권이 바뀐 지가 언제인데, 관련기관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義憤心(의분심)을 기대한다. 사람은 화를 내어야 할 때는 화를 내야 한다. 이 경우엔 대통령이 아니면 화를 내도 쓸모가 없다. 이 대통령에게도 그런 화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는 義人(의인)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惡黨(악당)을 응징할 수 없을 때 망하는 것이다. 공무원·기자·신부들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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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一流국가 紀行(조갑제)
   13. 一流의 논리(송복)
  
  
  
  
  
  
  李穗根은 간첩이 아니라는 나의 기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話題가 되었다. 나는 당시 감찰실장 方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도 당하고(검찰에서 무혐의 처분), 추가 취재를 통하여 心證을 더욱 굳혔으며, 텔레비전에서도 이 話題를 다루었다. 裵慶玉씨도 怨罪(원죄)를 벗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는 盧武鉉 정부가 출범시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고, 위원회는 2006년 12월19일 “李穗根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초의 문제 제기 기사가 나간 지 17년만의 일이었다. 위원회는 李穗根과 裵慶玉에 대한 불법구금하의 수사는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냈다. 결정문의 全文을 싣는다.
  
  
  `40년만에 인생원점` 배경옥 `공허하고 서글퍼` [연합] '기뻐야 하는데…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라 그런지 공허하고 서글픈 느낌이 드네요.'
  
  이중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이수근 씨의 간첩 행위를 도운 혐의로 21년을 복역하고 40년 만에 무죄를 판결받은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70) 씨는 19일 선고가 끝난 뒤 눈물을 글썽이며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재판부는 그에게 씌워진 간첩 행위가 모두 무죄라는 점을 판시한 뒤 '이제 법정 밖으로 나가고 세상 속으로 나가도 좋다'고 기운을 북돋워 주기까지 했지만 수십년간 국가 권력의 횡포에 시달리던 배씨와 가족의 삶은 이미 '폐허'가 돼 버렸다.
  
  1969년 1월 월남에서 체포돼 압송된 그는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고 무수히 구타당해 갈비뼈가 으스러졌으며 가족과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당한 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 강요된 자백을 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팔이 빠져 수술을 하기도 하고 온몸에 성한 곳이라곤 남아 있지 않다시피한 그는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말로 그간의 아픔을 대신 표현했다.
  
  1989년 12월22일 출소하니 네다섯 살 때 헤어진 아들은 건축을 전공해 1급 설계사의 꿈을 이뤘지만 그가 자리를 비운 20여년간 공안당국은 가족에게 끊임없는 감시의 손을 뻗쳐왔었고 아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가 출소한 다음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에 잇따르는 재심사건 무죄 판결과 관련해 배씨는 '억울한 사람이 많다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정과 주위의 모든 것이 파괴되는 공권력 남용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배씨는 이씨의 이중간첩 사건이 조작됐다고 보도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 조갑제 기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이제 아들의 억울한 옥살이가 가슴에 맺힌 고령의 어머니(95)와 아내, 딸과 함께 편안한 삶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이제 나이가 일흔이니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시간을 두고 뭘 할지 생각해 보겠다. 다만 무죄 판결이 난 만큼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형사 보상 청구가 가능한지 변호인과 상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2008-12-24, 17: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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