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나에게 중국어 가르쳐 준 이는 미스 孔"
마카오에서 1978년에 납치된 孔令譻 씨. 사진으로도 확인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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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당시 스무살이던 공영앵. 김현희 씨는 이 사진을 보고나서 "이 여성이 나의 중국어 교사였다"고 말했다!
지난 2월말 金賢姬 씨는 기자와 만났을 때 자신에게 중국어를 가르친 마카오 거주 피납자의 신원에 대하여 처음으로 상세히 설명하였다. 김현희 씨는 1984년 6월에서 8월 사이 동료 김숙희와 함께 평양 근교 용성 40호 초대소에서 밀봉수용 상태로 중국어 교육을 받았다. 나중에 대한항공기 폭파에 참여하는 金勝一과 함께 잠시 해외 실습을 나가기 위한 준비였다.
  
   김현희 씨는 “마카오 여성으로부터 중국어 기초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이때 저에게 북경어를 가르친 여성은 저보다 나이가 다섯 살 정도 많은 ‘미스 공’이란 분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중국 미인이었습니다. 마카오에서 납치되어 왔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으로 납치되어 와서 수용중 달아났다가 다시 붙잡혔다고 했습니다. 崔銀姬 씨가 手記에서 만났다고 한 그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1978년 마카오에서 납북되었던 崔銀姬 씨는, 자신의 手記에서 북한의 동북리 초대소에 수용되었을 때 산책을 하다가 ‘미스 공’이란 여자를 만나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다고 썼다. 일본인 납치자 단체에선 최씨의 증언을 근거로 조사를 하여 2006년에 미스 공의 정체를 밝혀냈다. 미스 공은 마카오 리스보아 호텔의 보석상에서 근무중이던 1978년 7월에 납치되었다. 관광객으로 위장한 북한공작원이 안내를 해달라고 꾀어 다른 마카오 여성과 함께 납치한 것이다.
  
   최은희 씨에게 미스 공은 북한으로 끌려온 후 자신과 다른 마카오 피납 여성이 북한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가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두 사람을 북한측으로 넘겨주었다. 최은희 씨는 가톨릭 신도인 미스 공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최씨는 미스 공의 세례명이 마리아라고 기억하였다. 일본인 납치자 단체에서 마카오로 가서 미스 공의 가족을 만났더니 그들은 세례명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교회에 알아보니 마리아로 밝혀졌다.
  
   최은희 씨는 원흥리 초대소로 옮기면서 미스 공과 헤어졌는데, 나중에 공작원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이 공작원들 중에 김현희, 김숙희가 포함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인 납치자 단체에서 확인한 ‘미스 공’의 이름은 孔令譻(공영앵)으로서 납치 당시 스무 살이었다. 김현희씨보다는 네 살이 더 많다.
   기자는 김현희 씨와 만나고 와서 孔令譻씨의 사진을 구하여 김씨에게 보냈다. 며칠 후 김씨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바로 이 여자가 미스 공이다. 그로부터 중국어를 배웠다”고 확인하였다. 마카오가 그 뒤 중국영토로 전환했으니 孔令譻 씨는 중국인이다. 결국 김정일은 우방국인 중국인도 납치한 셈이다.
[ 2009-03-10, 10: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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