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金賢姬씨의 전화
"기자들 앞에서 김현희씨가 웃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현희씨가 잘 살면 배가 아프고, 못 살면 가슴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요. 지난 좌파정권 때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김씨에 의하여 115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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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金賢姬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나의 휴대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보면서 '또 공중전화로 거는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북한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던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었던 '이은혜', 즉 다구치 야에코씨 가족과 만나는 날을 하루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金씨는 이런 만남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였다. 나는 우선 물어볼 것이 있었다. 지난 주 남편 鄭씨를 통하여 보내준 마카오 납북여인 사진이 궁금하였다.
  
  '그 사진 보셨죠? 그 사람이 미스 孔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1985년입니까? 중국어를 배운 게.'
  '1984년 중간입니다. 용성 초대소에서 김숙희와 함께 배웠지요.'
  북한정권이 1978년 마카오에서 납치해간 공영앵(당시 스무 살)이란 여성의 정체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일종의 '人種 수집가'인 김정일은 일본여성을 납치해가선 일본어를 가르치게 하고, 마카오 여성을 납치해선 중국어를 가르치게 하였다. 한국 파괴 공작에는 정말 정성을 다하는 인간이다. 나는 서둘러 조갑제닷컴에 미스 孔 관련 기사를 올리고 국내외 기자들에게 알려주었다. 일본 언론은 일제히 크게 보도하였는데 한국 언론은 한 곳도 다루지 않았다.
  
  나는 김현희씨에게 말하였다.
  
  '저는 다른 일이 있어 내일 부산에는 내려 갈 수 없게 되었읍니다. 잘 하세요. 기자만 수백 명이 올터이니 하시고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세요.'
  金씨는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前週(전주) 김씨의 남편에게 나는 이런 부탁을 했었다.
  
  '기자들 앞에서 김현희씨가 웃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현희씨가 잘 살면 배가 아프고, 못 살면 가슴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요. 지난 좌파정권 때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김씨에 의하여 115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남편 鄭씨는 나의 충고에 감사해 하였다. 月刊朝鮮, 李東馥(김현희씨가 보낸 편지를 공개한 전 국회의원), 그리고 일본의 납치자 단체와 언론 등 한국과 일본의 뜻 있는 사람들이 지난 넉 달 간 김현희씨의 처지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알리고 문제를 제기한 끝에 오늘 역사적 만남이 이뤄지게 되었다. 물론 이런 만남을 가능하게 한 사람은 李明博 대통령이다. 그는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현대건설 회장이었다. 이 세상에는 역시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이다.
  
  
[ 2009-03-11, 08: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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