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연재 28/"군인의 거룩한 죽음 위에 존립할 수 있는 국가란, 오직 정의와 진리 속에 인간의 諸(제)권리가 보장될 때에만 가치로서 긍정되는 것입니다. "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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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 30일 오전 박정희 대장은 강원도 철원군 제 5군단 비행장 내에서 轉役式(전역식)을 가졌다. 박 의장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다. 박 의장은 轉役辭(전역사) 도중 목이 메어 울음을 참으려고 기침을 하기도 했다.
  
  <지난 날 수십 만 전우들의 선혈로써 겨레를 지켜온 조국의 전선, 초연은 사라지고 오늘은 초목에 싸인 채 원한의 넋이 잠들은 山野(산야), 이 전선에 본인은 군을 떠나는 마지막 고별의 인사를 드리려 찾아왔습니다. 여기 저 능선과 이 계곡에서 미처 피기도 전에 사라져간 전우들의 영전에 삼가 머리를 숙이고 십여 년을 포연의 전지에서 조국방위를 위하여 젊은 청춘을 바쳤던 그날을 회상하면서 오늘 본인은 나의 무상한 半生(반생)을 함께 지녀온 군복을 벗을까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연설에서 박정희는 국가를 중심가치로 한 군인의 死生觀(사생관)을 밝힌다. 이 대목은 그의 다른 연설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국가주의자로서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인간 생존의 권리가 국가라는 생활권 속에서 보장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생명의 성스러운 희생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군인의 길은 바로 여기에 歸一(귀일)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군인의 거룩한 죽음 위에 존립할 수 있는 국가란, 오직 정의와 진리 속에 인간의 諸(제)권리가 보장될 때에만 가치로서 긍정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가치구현이란 문제 이전으로 돌아가 그 자체가 파멸에 직면했을 경우를 상도할 때, 거기에 혁명의 불가피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5·16 군사혁명의 불가피성은 바로 우리가 직면했던 혁명 직전의 국가위기에서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5월 혁명은 단순한 변혁도 외형적 질서정비도 새로운 계층형성도 아닙니다. 상극과 파쟁, 낭비와 혼란, 無爲(무위)와 不實(부실)의 유산을 조상과 先代(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우리들 不運(불운)의 세대가 이 오염된 민족사에 종지부를 찍고 자주와 자립으로 번영된 내일의 조국을 건설하려는 것이 우리 혁명의 궁극적 지표인 것입니다>
  
  박 의장은 격앙된 말투로 자신의 민정참여를 변호했다.
  
  <본인은 군사혁명을 일으킨 한 책임자로서 이 중대한 시기에 처하여 일으킨 혁명의 결말을 맺어야 할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면서 2년에 걸친 군사혁명에 종지부를 찍고 혁명의 악순환이 없는 조국재건을 위하여 항구적 국민혁명의 隊伍(대오), 제 3공화국의 민정에 참여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연설의 마지막에 박정희 의장은 그의 역대 연설 중 가장 유명하게 되는 말을 남긴다.
  
  <오늘 병영을 물러가는 이 군인을 키워주신 선배, 전우 여러분, 그리고 군사혁명의 2년 동안 ‘革命下(혁명하)’라는 불편 속에서도 참고 편달 협조해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다음의 한 구절로써 전역의 인사로 대신할까 합니다.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
  
  이날 박 의장은 서울역 앞 공화당사를 방문하여 입당수속을 끝냈다. 그는 굳은 표정이었고 말이 없었다.
  
  咸錫憲 대 李洛善 논쟁
  
  1963년 7월 16일자 <조선일보> 1면에 종교인 함석헌의 기고문이 ‘3천만의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는 제목으로 실렸다. 함석헌은 박정희의 쿠데타 직후 월간지 <사상계>에 ‘5·16을 어떻게 볼까’란 題下(제하)의 글을 실어 군사혁명을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군사혁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던 당시 확실하게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글로서는 최초였다. 7일간 연재된 <조선일보> 기고문에서도 함석헌은 박정희 정부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주장을 폈다.
  
  <박정희 님, 당신은 군사 쿠데타를 한 것이 잘못입니다. 나라를 바로 잡자는 목적은 좋았으나 수단이 틀렸습니다. 수단이 잘못될 때 목적은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國是(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데모크라시입니다>
  
  함석헌은 7월 22일 오전 서울시민회관에서 ‘귀국 보고 강연회’를 가졌다. 3,500명을 수용하는 시민회관의 1, 2층이 꽉 찼다. 주로 청년, 학생들이었다. 강연회장에 입장하지 못한 청중들은 “스피커를 바깥으로 내어 달라”고 아우성을 쳐 기마경찰이 질서유지를 위해 출동할 지경이었다. 당시 62세이던 함석헌은 “내 진단에 의하면 국민들은 군정을 원치 않으며 군정의 업적이 있다면 물가고에 국민을 허덕이게 한 것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이후 함석헌의 대중 강연은 대전 등 지방으로 이어졌다. 그는 “군인은 군복을 벗고 3년이 지나야 사람이 된다”, “반드시 군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군인들! 상사의 명령에 기계처럼 움직이는 졸병들”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최고회의에 보고되어 군인들을 격앙시켰다. 함석헌은 예정된 강연이 취소되는 일이 일어나자 이것이 군사정부의 압력 때문이라고 격분하여 8월 16일자 <동아일보>에 ‘정부당국에 들이대는 말’이란 글을 실었다.
  
  <묻노니, 정부당국 여러분. 낡은 정치의 부패와 무능을 한번 쓸어버리고 경제부흥을 첫째로 하겠다고 했고, 약속의 2년이 다 지난 오늘엔 그 기다렸다던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가’는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이 ‘나’라고 해서, 땟눌러 앉아 정권을 쥐려고 하는 여러분. 당신들은 이 나라를 어떤 나라로 알며 이 민중을 무엇으로 아나>
  
  <말 못하는 민중이라 업신여기지 마. 어리석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착해서 그러는 것이지. 무지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도리가 우리 속에 있어 그러는 거지. 겁나서 가만있는 것이 아니다. 크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민중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데 왜 내가 말하는 것을 방해하나. 대답하라. 천하에 내놓고 대답하라. 대답이 나오는 때까지 나는 물을 것이다>
  
  박정희의 대리인으로서 함석헌에 대한 반격에 나선 것은 ‘5·16 혁명 기록의 사관’ 이낙선 중령이었다. 최고회의 공보비서이던 그는 8월 22일부터 3일간 <동아일보>에 ‘들이대는 말에 갖다 바치는 말씀’이란 제하의 글을 실었다.
  
  그때 이낙선의 나이는 36세. 60대 민간 지식인과 30대 젊은 장교의 대결이었다. 이 논전은 군과 민, 구세대와 신세대, 서구적 민주주의와 민족적 민주주의의 대결로 의미가 부여되는 제 5대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박 의장이고 공무원이고 군인이고 지성인이고 닥치는 대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놓고, 언론자유도 그 외의 온갖 자유도 없다니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작년과 금년의 재해로 정부나 국민들이 온통 야단인데 선생님은 어디서 온 이방인이기에 초연히 앉아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십니까>
  
  <지금 우리가 가난을 면하기 위하여 걷고 있을 겨를이 없어 세찬 달음박질을 하는 통에 얼마쯤의 무리가 뒤따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혁명정부는 어리석게도 국민을 편안히 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논길을 넓혀라, 부엌을 개량하라, 호미자루를 길게 하라, 리어카를 이용하라, 돼지를 길러라, 가을갈이를 하라, 퇴비를 많이 만들어라, 자동차는 고·스톱을 지켜라, 양담배를 피지 말라, 깡패를 잡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다음에 표 찍을 때 보자’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5·16은 결코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낙선은 군대가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존재라는 주장에 대해서 이렇게 반론하면서 군사문화의 논리를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다.
  
  <선생님은 군에서 부정선거에 항거한 일, 整軍(정군)운동, 소위 하극상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알 까닭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해박한 지식을 과시할 때 우리는 主見(주견) 있는 총명으로 답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뇌조직의 발달을 뽐내신다면 우리는 건전한 心身(심신)으로 맞세우겠습니다. 선생님이 개인적 재간으로 덤비신다면 우리는 단체적 협동력으로써 막을 겁니다.
  
  만일에 오랜 경험을 앞세운다면 우리는 오히려 짧은 기간 내에 고도로 훈련되고 조직화되고 숙련되고 기계적인 행정역량으로 반발할 것이고, 선생님이 그럴 듯한 종교적인 계시, 임기응변의 잔꾀로 견주신다면, 우리는 언제나 생각하고 평가하고 다시 숙고하여 결론짓는, 反復(반복)이 주는 주도한 계획성으로 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즐겨 돌리시는 혓바닥 운동이나 자랑으로 하시는 狂筆(광필)에 대해서는 차라리 묵묵한 실천으로 답하렵니다>
  
  
[ 2009-03-15, 08: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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