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아파트 입구에서 피살된 이한영
김현희가 살던 아파트와 호실을 방영한 MBC-PD 수첩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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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씨는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책을 낸 후 남파된 북한공작원에 의하여 자신이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피살되었다. 교도소 직원과 경찰관이 李씨의 주거지를 흥신소에 알려주었고, 이 흥신소는 북한 공작원에게 이용당하였다.
  
  2003년 11월 MBC-PD 수첩은 북한정권이 가장 죽이고싶어하는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사는 아파트와 호실을 생생하게 방영하였다. 김현희씨는 그날부터 집을 나간 이후 피난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김현희씨는 국정원이 이 MBC-PD 수첩에 자신이 출연하도록 압박을 넣었다고 말한다.
  
  국정원이 이 문제를 자체조사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국회가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해야 할 사건이다. 아래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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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68회 16년간의 의혹, KAL폭파범 김현희의 진실
  
  
  -최진용 책임 프로듀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PD수첩입니다. ‘김현희는 가짜다.’ 지난 11일 200명이 넘는 천주교 신도들이 내놓은 주장입니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또한 이 사건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작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국정원 측은 가당찮은 추측이라고 펄쩍 뜁니다마는 사건 발생 후 16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 조준묵, 이동희 PD가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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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김현희 시숙): 지금 여기서 사는 게 아니고, 서울에서도 있고, 여기에서도 있고, 왔다 갔다 해요. 그런데 요는, 따라다니는 식구들도 많이 있는 기라. 예를 들면 형사들부터 시작해서… 그래서 우리도 피곤한 거예요, 만나려고 하면. 그래서 안 만나요.
  
  -내레이션: 수소문 끝에 김 씨가 산다는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취재기자: 김현희씨 관련 프로그램을 취재 중에 있어요. 여기 사신다 그래서…
  아파트 경비원: 누가 그럽디까?
  취재기자: 저희가 다 알고 왔거든요.
  아파트 경비원: 모릅니다.
  
  -내레이션: 그런데 주민들 중에는 김 씨를 봤다는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1: 항상 선글라스 쓰고, 모자 눌러 쓰고 다녀서 알아요.
  
  -취재기자: 아파트 주민들하고 교류는 거의 없네요?
  아파트 주민2: 없어요. 일체 교류 없다고. 알기야 다 알지. 주민들은 다 알지. 알아도 일체 뭐, 외면한다고.
  
  -내레이션: 김 씨의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본인이 아니라며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수차례 요청 끝에 문틈 사이로 얼핏 얼굴을 드러낸 김 씨. 그러나 그녀는 김현희 임을 끝까지 부인했습니다.
  
  “불안해 죽겠어요. 자꾸 오지 마세요. 저 혼자 자고 있는데… (인터폰)더 이상 말씀드릴 게 없네요. 자꾸 이러면 경찰 부를 겁니다. 짜증나 죽겠어요. 정말…”
  
  1997년 평생 유가족과 돕고 살기로 약속했던 김씨. 그러나 끝내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녀를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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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희씨가 작년 10월 나에게 보낸 편지중 일부
  
  [그해 11월 초순경, 천주교 사제단 115명이, 일주일 뒤에는 천주교 신부 202명이 정동 성프란체스코 회관에서 KAL기사건 조작의혹을 제기하면서 전면 재조사와 당시 안무혁 부장, 이상연 차장, 정형근 수사국장 등 수사책임자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16년 전의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주변 상황으로 마음이 매우 어수선한 시기에 국정원 담당관으로부터 MBC PD수첩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재차 지휘부에서 이미 결정한 사항이니 그 지시에 따를 것을 강요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지시를 완강히 거부하였고 이것이 큰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1월 중순경, 이 지시 거부 때문에 저의 남편이 호출당하여 경기도 분당 모 식당에서 국정원 담당간부와 직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저의 공개출연은 요구하지 않겠지만, 대신 연말에 청사 내에서 천주교 신부들과 설명회를 가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저에 대한 공개 문제는 이것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이 담당간부를 만나고 있는 바로 그 시각에, 밤을 틈타 카메라를 멘 기자 여러 명이 저의 집을 습격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MBC PD수첩의 취재기자들이었습니다. 저로서는 몹시 긴장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정원이 앞에서는 태연히 저에게 거짓 약속을 하면서까지 뒤에서 공격하는 데에는 그들의 사업계획이 꽤나 절박하였나 봅니다.
  
   MBC 기자들에게 습격당한 다음날 새벽 저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시달릴 것을 생각하여 담당경찰들과 함께 그들의 눈을 피해 어린 자식들을 업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필 남편이 부재중일 때에 저의 신변에 위험스런 일이 생겼습니다.
  
   저의 집 주변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갑자기 요란해졌고 며칠 뒤 이번에는 SBS 취재기자들이 저의 집 주변을 취재하고 다녔습니다.
  
   저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만 5년 동안 제가 살던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렇게 피난 생활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저는 가짜로 낙인 되어 있었고 부도덕한 여자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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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레이션: 김현희 씨도 사면 조치 이후 종교 간증을 이후 음독 이후에 살아난 것은 주님의 은총 때문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김현희(사면 후 김현희 기자회견 1990. 5. 16): 주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시관을 쓰고 속죄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신 뜻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며 다시 부활한 새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내레이션: 그런데 사건 직후 김 씨가 과연 자살을 기도했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김정기 당시 대사대리(바레인 주재 한국대사관): 쓰러졌다고 그러는데 그게 글쎄. 나는 내가 듣기로는 자기가 이야기를 했으니까는. 이렇게 먹고 하나는 먹으려고 하는 걸 탈취했고.
  
  -내레이션: (자료화면: 김승일 부검 당시 사진) 김 씨와 동시에 독약앰플을 깨물었던 김승일은 즉사했습니다. 그는 독약앰플을 숨겼던 담배필터까지 삼켰습니다.
  
  -이정빈 교수/당시 부검담당(서울대 법의학과): 이빨 자국이 확실히 나있어요. 이렇게. 이런 식으로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필터 내에 숨겨져 있던 유리를 포함해 있던 앰플. 그내에 농축되어 있던 청산가스. 그거를 깨물고 거의 들이마셔서 그렇게 해서 청산중독으로 죽은 걸로 봐야되겠죠.
  
  -내레이션: (자료화면: 김현희 독약앰플, 김승일 독약앰플) 김현희 씨가 깨문 앰플은 끝이 조금만 잘라진 반면 김승일이 깨문 앰플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정빈 교수/당시 부검담당(서울대 법의학과): (취재진-김현희 씨 같은 경우 깨물었는데…) 내뱉었죠. 내뱉었으니까. (마셨다면, 조금이라도) 굉장히 위험한 거죠.
  
  -내레이션: 그런데도 의식을 회복하는 데 3일이 걸렸던 김 씨. 바레인의 담당 의사도 의혹을 가졌던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자막) 아사히TV: 두 사람이 자살을 꾀한 직후에 옮겨진 살마나야 병원의 야코비안 박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독극물을 마신 환자에게 보통 나타나는 맥박이나 호흡, 동공의 변화 등이 일체 보이지 않고, 위세척까지 했지만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의식이 있으면서도 의식불명을 위장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기 당시 대사대리(바레인 주재 한국대사관): 진짜 어느 나라 사람인지. 뭐 한국 사람인지. 그렇지 않으면 일본 사람인지 뭐 그때 시도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까지도 김현희는 사실상은 의식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의식이 없는 척 가장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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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레이션: 한 맺힌 세월 16년. 이제 진상을 밝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최진용 책임프로듀서: 네, 역사와 국민 앞에 단 한 점 부끄러운 점이 없다. 최근 이 사건과 관련 국정원 측이 한 말입니다. 물론 그러하기를 바랍니다만, 제기되는 의혹들도 그만큼 이유 있는 의혹들임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재심의 공소시효는 지났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의혹이 타당하다면 전면적 재조사를 통해서라도 의혹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것도 국가의 당연한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PD수첩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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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영 피살’ 10년 추도식… “성혜랑 소식 기다려”
  
  김정일 사생활 폭로가 살해 원인…2심재판서 국가배상 판결
  [2007-02-26 19:11 ]
  
  
  ▲ 김정일의 처조카인 고 이한영 씨의 부인 김종은 씨가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데일리NK
  
  
  김정일의 처조카로 한국에 귀순한 이후 북한공작조로 보이는 괴한에게 살해된 고 이한영(본명 이일남) 씨의 사망 10주년 추도식이 열렸다.
  
  피랍·탈북 인권연대, 탈북자 동지회 등 북한인권 관련 단체들은 26일 이 씨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개최하고 다시는 이같은 비극적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자리를 가졌다.
  
  고인은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로 지난 1982년 스위스에서 어학연수중 한국으로 귀순, 1997년 2월 15일 자신의 집앞에서 북한 공작조로 보이는 괴한 2명의 총격으로 피살당했다.
  
  그를 살해한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고인이 당시 의식을 잃기 전까지 ‘간첩’이라고 말했고, 피격 현장에서 북한 간첩들이 많이 사용하는 권총탄피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북한공작조에 의한 테러로 추측돼 왔다.
  
  고인이 북한에서 귀순 후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고 김정일과 가족, 측근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담은 책 『김정일 로열패밀리』(시대정신·원제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 펴내는 등 북한 최고위층의 실상을 증언한 것에 대해 ‘보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날 추모식에는 탈북자동지회 홍순경 회장,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강철환 전 대표와 박상학 대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또 이 자리에는 부인 김종은 씨를 비롯한 고인의 가족들이 참석했다.
  
  김 씨는 지난 2003년부터 고인의 서거 6주년을 맞아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중이다. 재판부는 2005년 12월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 씨는 추도문을 통해 “3년 넘게 걸린 재판의 일심, 2심 승소로 고인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 눈앞에 와 있다”며 “지난 10년간 고인과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들이 이 세상 정의 구현에 기름진 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씨는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남편은 사고 전 무슨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말고 죽음을 헛되이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죽음을 예감하듯 했던 말이 지금은 유언이 됐다”며 고인에 대한 애절함을 표했다.
  
  김 씨는 유럽에서 은신중인 고인의 어머니 성혜랑의 소식을 묻는 질문에 “아이(딸 예인 양·고1) 할머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며 고인의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아이도 크고 있고 어머님 연세도 많아지고 있어 어떤 식으로라도 연락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지금 어렵게 그 분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며 현실적 어려움이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어 “어디서 어떻게 지내든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내시길 바란다”며 우려스러운 마음을 밝혔다.
  
  그는 국내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황장엽 북한민주화 동맹 위원장에 대한 살해협박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 “정부는 한 생명 한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어떤 힘을 빌어서라도 그분들이 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해야한다”며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한편 고인의 어머니 성혜랑은 성혜림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다 1996년 서방으로 탈출, 유럽의 한 국가에서 은신중으로 알려졌다. 누이 이남옥 역시 김정일에게 편지를 쓰고 유학길에 떠난 뒤 유럽에서 도피 아닌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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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피살 국가배상 확정
  
  李 씨 아내, 국가 상대로 손배 소송…“국가, 60% 책임있다”
  [2008-08-21 16:18 ] 영문 기사 보기
  
  지난 1997년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사망)의 조카인 이한영씨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유족에게 60%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21일 이씨의 아내 김모(39)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9천699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982년 스위스 한국공관을 통해 귀순해 국내에 정착한 이 씨는 북한 노동당 비서인 황장엽 씨가 망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7년 2월 15일 분당 모 아파트에서 북한의 남파 간첩에 피격돼 열흘 만에 숨졌다.
  
  이후 아내 김 씨는 2002년 2월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해 남편이 살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4억8천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황씨 망명사건 등으로 인해 북한의 보복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이었지만 국가는 이씨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고, 교도소 직원과 경찰관이 북한 공작원의 의뢰를 받은 심부름센터 직원 등에게 이씨의 신상 정보를 제공해 결과적으로 이씨가 피살되게 했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이씨가 국정원의 권고와 만류를 무시하고 스스로 언론기관과 인터뷰를 하고 수기를 출판하는 등 사건 원인의 한 부분을 제공했기 때문에 국가 책임을 70%로 제한해 1억482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의 책임을 40%로 늘리고 국가 책임을 60%로 줄여 9천699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한편, 그동안 아내 김 씨의 손해배상 소송을 도와온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는 “5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 판결이)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고 고인에게는 명예회복의 기회가 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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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영 피살사건이란?
  JES|정병철 기자|2009.02.27 07:01 입력 1960년 평양에서 태어난 고 이한영 씨는 78년 모스크바 외국어대학 어문학부을 전공한 엘리트 출신이다. 프랑스어 연수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들어간 뒤 82년 9월 서방으로 탈출, 같은 해 10월 한국에 망명했다.
  
  87년 12월 KBS 국제국 러시아어 방송 PD로 입사해 김종은씨와 결혼했지만 저서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출간하고 북한 독재정권의 실상을 세상에 고발하던 도중 97년 2월 15일 밤 9시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북한 공작원 2명에 의해 총기로 피격당해 10일 뒤 사망했다.
  
  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국정원은 “이 씨가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저술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책임을 피했으나 유가족은 “국가에 막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려 한 고인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불복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이씨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유족에게 60%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경기도 광주=글·사진 정병철 [j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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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직파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및 연계 심정웅 지하 가족당 고첩망사건(남한 고정간첩유형)
  테러.간첩사건 분야 2008/01/21 20:11 http://blog.hani.co.kr/007nis/12029
  
  
  
   1.북한 직파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및 연계 심정웅 지하 가족당 고첩망 사건(남한 고정간첩 유형)
  (1)북한 직파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및 연계 고첩망 수사 개요
  1997년 10월 재야단체인 '울산연합(전국연합)' 간부 정모씨(鄭某氏)가 남녀 2명이 찾아와 <북한에서 왔다 북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며 신고 수사기관에서 남파 공작원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출현가능지역등 잠복.감시 및 예상도주로 차단등 용의자를 추적하던 중 1997년 10월 27일 울산 모 커피숍에서 정모씨(鄭某氏)를 재차 접촉하려던 거동 수상자 남녀 2명을 현장에서 검거 수사결과 이들이 북한에서 직파한 사회문화부 소속 최정남 강연정 부부 공작조임을 밝혀내고 서울지하철 동작설비 분소장 심정웅 일가족이 장기간 포섭되어 암약 중인 고정간첩망이라는 사실이 판명된 사건이다
  
  (2)북한 간첩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침투 및 간첩활동 경위
  간첩 최정남은 1984년 4월 사리원대 4년 재학 중, 강연정은 1989년 9월 고교 졸업 직후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교육 중 1990년 11월 결혼한 실제 부부공작조로 이들은 남파시 공작지도부로부터 <심정웅을 접선, 활동사항을 점검 독려하고 유사시 서울지하철을 마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보고토록 하라>는 기본임무와 그리고 <한국민족민주전선 조직점검과 지하당 구축> <대선동향등 남한 정세자료 수집, 경북대 김순권교수가 개발한 우량 옥수수 종자 입수>등 부차적 임무를 지지받고 1997년 7월 30일 권총 2정, 공작금 3,000여만원등을 소지하고 남포항(南浦港)을 출발하여 8월 22일 23:30(밤 11시 30) 분경 경남 거제군 갈곶리 해안으로 반잠수정으로 침투하였다
  침투 후 이들은 20여일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현지 적응 훈련을 한 후 8월 23일 서울 구로동에 은신 거점을 마련하고 서울지하철 공사 심정웅을 6회에 걸쳐 접선하며 <조국통일상> 수여사실과 암호해독 및 신형무전기 사용방법등을 교육시키고 유사시 지하철을 마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보고토록 하고 김정일 취임 축하용 <충성의 편지> 작성초록 지시하는 등 장기잠복 고정간첩망을 지도 검열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한편 관악산, 경주 민속공예촌 야산, 봉천동 장군봉 체육고원등 6개소의 <드보크>에서 체코제 권총 3정, 실탄 170발, 독총, 독약앰플등 인명 살상용 장비 10종 205점과 무전기 난수표등 총 54종 284점의 간첩장비를 발굴하였다
  
  (3)심정웅 일가 지하가족당 포섭경위 및 활동 사항
  1958년 9월 간첩으로 남파된 당숙 심웅섭에게 포섭되어 입북, 간첩교육을 받고 <교통고에 진학, 졸업 후 철도분야에 취업하라>는 지령과 함께 <철마산 66호>라고 공작부호를 받고 귀환한 후 1966년 4월 2차 입북 <철도의 핵심시설을 요해하고 유사시 활용할 수 있도록 동조자를 포섭하라>는 지령과 함께 무전기등 통신장비와 공작금 미화 1,000달러 수수, 1984년 서울지하철 공사로 전직 근무하면서 1989년 5월부터 11월간 남파 간첩 윤택림을 11회에 걸쳐 접선하는 등 국가기간시설에 침투, 39년간 암약해 왔음이 드러났다
  심정웅의 6촌 동생 심00은 1967년 6월 남파된 숙부 심웅섭을 따라 입북하여 간첩교육을 받고 귀환한 후 서울로 이주, 암약하면서 1989년 10월 남파간첩 윤택림으로부터 활동사항을 검열받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또한 심정웅의 숙모 김00은 1965년 12월 결혼직후부터 시부(사망)와 조카 심정웅등의 공작문건 전달 및 간첩장비 은닉등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4)북한 직파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및 연계 심정웅 지하가족당 고첩망 사건 주요 특징 및 북한 대남공작 실상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는 30대 젊은층의 이른바 <새세대 지도 핵심 공작원>들을 엄선, 철저한 이남화 교육과 해외적응훈련을 거쳐 우리 사회에 침투시키고 이들은 재야인사들이 무조건 자기들 편이라는 확신 아래 만나자 마자 대남공작원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월북할 것을 권유할 정도로 대담성을 보이고 남한내 엘리트 계층을 대거 포섭하여 이들을 조직화하는데 주력해 왔으며 전쟁개시 초기단계에서 국가기간 시설을 마비시키기 위해 국내 주요 시설에 지하망 구축 활동을 강화하고 통상적인 간첩행위에 귀순자 이한영씨를 살해하는 보복테러를 자행하였는가 하면 공작원들을 양성하는 교관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교생까지 납치하고 사리변별력이 부족한 16세의 소년의 심정웅을 혁명도구로 포섭하는 등 반인륜적 행위를 자행해 왔음을 이번 수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ㄱ.최정남 부부간첩은 김영환씨의 반미청년회(민혁당) 조직과 연계된 재야단체 인사들을 만남
  <통일혁명당> 중앙위원회는 1985년 7월 27일 당의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했고 일본에서는 1986년 8월8일 <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로 조직확대 개편 개명했고 남한에서는 <반미청년회>를 1990년 1월초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혁당>로 개명했다 한국민족민주전선 대표부는 쿠바. 베트남. 시리아등 각국 사회주의 국가에 두고 있었다
  반제청년동맹(강철서신)--->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민혁당,1990년 1월. 새세대-여명-아리랑-백두산. 백두넷등)
  (ㄱ)한국민족민주전선이 통일혁명당이다
  (ㄴ)반미청년회가 한국민족민주전선(민족민주혁명당)으로 조직 개편한 단체이다
  (ㄷ)국가정보원은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 관련 혐의 및 1997년 10월 검거한 최정남 부부 간첩 연루의혹 관련 김영환씨를 내사해 오던 중 1998년 12월 18일 남해에서 북한으로 복귀하다가 격침된 반잠수정에서 김영환씨등의 전화번호가 암호로 기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 증거확보
  (ㄹ)1997년 김영환씨가 베이징에 있을때 울산지역 대남간첩 최정남이가 붙잡혔다 그리고 최정남이는 김영환씨를 팔아 재야인사에 접근했다고 증언
  ㄴ.심정웅 일가 지하가족당의 특징은 심정웅씨의 10대 미성년자를 반강제로 입북시킨 후 간첩교육을 받은 후 지하철에 고정간첩으로 잠입하기 위하여 교통고 진학과 졸업 후 고정간첩으로 활동한 전형적 국가기관 침투간첩사건
  ㄷ.북한정부는 통일혁명당과 한국민족민주전선 조직원 관리를 하기 위하여 군사고문단(정치고문단) 파견을 반잠수함으로 침투하고 복귀하는 형태로 활동해왔다
  
  2.고정간첩망 유형 및 분석자료------청각소리 :)
  (1)고정간첩망 1세대--월북자
  ㄱ.남로당 계열 월북자 1세대--박헌영계열과 김일성계열
  대한민국 정부를 반대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지지한 남한 출신 중 남로당 계열(박헌영)이나 북로당계열(김일성)로 한국전쟁때 인민군 가담자 또는 노동당 창당 주역들로 월북자 1새대이다 이들 중 박헌영과 강동정치학원 출신들은 대부분 남로당 숙청때 제거되었고 김일성계열 북로당 계열은 북한정부 고위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헌영은 미국 간첩으로 처형되었다
  (ㄱ)김일성계열--만주 빨치산부대와 만주지역 <만주공산당> 출신 그리고 소련군 극동사령부 <88특별여단> 출신 소속
  (ㄴ)박헌영계열---조선공산당 출신으로 국내 공산당 계열
  ㄴ.한국전쟁 이후 월북자 2세대--김일성주의자----통일혁명당 그룹
  한국전쟁 이후 월북자는 대부분 일제시대 항일운동 계열 중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 출신 중 김일성 계열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중에도 1960년 남한지역당 <통일혁명당> 조직원이 대부분이다 북한정부 간첩망에 포섭되거나 납치로 반강제적으로 월북한 2세대는 장관출신. 학생. 군인. 중앙정보부 해외파트. 하층민등이 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월북보다는 월남이 많아졌고 월북한 사람이 월남하는 분도 많아졌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증가로 남과 북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남한이 승리했다고 국제기관들이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2)고정간첩망 2세대---월남자 가족 중 김일성주의자 포섭
  북한지역 간부나 주민들 중 월남자 가족이 있는 분 중 공작금이나 대남간첩활동용으로 월남자가족을 포섭하는 형태
  (3)고정간첩망 3세대---새세대---주사파 그룹
  1980년대부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움 것이 바로 새세대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 김일성. 김정일주의자=주사파)자들이다 이들은 남북 민족주의 운동내부에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NLPDR) 노선에 포섭 의식화되어 친북세력으로 등장한 조직단체이다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이다
  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인정하는 자(者)들로 남한 역사관과 다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국전쟁도 북침으로 공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미국 신식민지로 규정하고 민족해방전쟁이 올바른 입장으로 평가하면서 미국이나 유엔등 서방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 김정일정부의 핵무기 보유도 정당하다는 입장을 역설하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통일혁명당 조직원
  -1980년대와 1990년대--반제청년동맹(1980년 초반). 반미청년회(1980년대 중반 후반). 한국민족민주전선(1990년 이후)
  
  
  
  
  
  
  
  
  
  
  
  
  
  
  
  
  
  
  
  
  
  
  
[ 2009-03-15, 11: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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