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광부들이 함께 흘린 눈물
연재 32/박 대통령의 연설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의 轉移(전이)로 말미암아 박 대통령 자신도 울고 말았다. 육영수도, 수행원도 울었다. 결국 연설은 어느 대목에선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강당 안은 눈물바다가 되어버렸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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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2월9일,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와 단독회담을 시작하면서 먼저 말문을 연 朴正熙 대통령은 총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둘러가며 반복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강하지 못해 세계를 몰랐고 그래서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제 독일에 와서 라인 강의 기적을 배우고 우리도 독일처럼 부강한 나라가 되어 공산국가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강국이 되고자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일제시대였지요.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백영훈 통역관의 회고.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기구하게 살아왔는지를 두 번 세 번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5·16 군사혁명을 시작한 배경에서 일제시대 이야기로 갔다가 6·25 때 경험담, 자유당 시절의 이야기에서 다시 일제시대로 두서없이 넘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옆에서 통역하던 제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반복되었지만 에르하르트 총리는 시가를 피우면서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과거사를 들으며 에르하르트 총리는 감동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만, 반복되는 내용에 민망해진 저는 흐르는 땀을 훔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박정희는 예정된 40분을 혼자서 소진해버리고도 모자랐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비서를 통해 회담 시간을 30분 연장하라고 지시했다. 박정희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서독 정부의 경제 지원을 부탁했다. 에르하르트 총리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각하, 일본하고 손을 잡으시지요.”
  
  박정희는 이 말을 통역해 준 백영훈 교수에게 화를 냈다.
  
  “뭐? 돈 좀 꿔달라는데 일본 얘기는 왜 꺼내?”
  
  에르하르트 총리는 박정희의 표정을 통해 감을 잡은 듯 백 교수의 통역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말문을 열었다.
  
  “각하, 우리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상 마흔두 번이나 전쟁을 했소. 그런데 아데나워 총리가 드골과 만나 악수를 하면서 이웃 나라끼리 손을 잡았소. 한국도 일본과 손을 잡으시지요.”
  
  박정희 대통령도 지지 않았다. 두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싸웠지요”라더니 이번에는 오른손 바닥을 왼손등 위로 내리치며 “우리는 항상 눌려 지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본과 대등한 입장에서 싸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몰래 힘을 키운 일본이 침략했을 뿐입니다. 그래놓고도 지금까지 사과도 한번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라와 어떻게 손을 잡으란 말입니까.”
  
  “그래요? 일본이 사과는 해야지요. 독일은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지만 전쟁에서는 독일이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웃음). 나의 전임자인 아데나워 총리는 참 훌륭하신 분이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그렇게 사이가 나빴는데 그 분은 드골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각하, 지도자는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합니다. 두 나라 사이에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공산국가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손을 잡으십시오.”
  
  박정희는 다시 오른손 바닥을 왼손등 위로 포개면서 “이렇게 눌려 싸웠는데도 말이오?”라고 되물었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인자한 표정으로 박정희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예, 각하. 눌려 싸운 것이나 대등하게 싸운 것이나 모두가 과거의 일입니다. 일본과 손을 잡고 경제 발전을 이루세요. 우리가 뒤에서 돕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합심해서 살아갑시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박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총리의 말에 감격한 표정으로 총리의 손을 마주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담이 시작된 지 한 시간 10분이 지나 있었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회담 후 담보가 필요 없는 財政(재정) 차관 2억 5,000만 마르크(약 4,770만 달러)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1964년 12월 9일 오후, 에르하르트 총리와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마친 박정희는 서독 방문 후 처음으로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에르하르트 총리가 주최하는 午餐會(오찬회)에 참석했다.
  
  박정희는 오찬이 끝나자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준비해 간 선물을 증정한 뒤 오후 4시경 숙소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장기영 부총리가 에르하르트 총리와 단독회담을 통해 한·독 경제협력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검토하고 서독 정부 측의 확답을 받아냈다. 양측은 1965년부터 1967년까지의 한·독 경제협력 3개년 계획에 합의하고, 서독 측은 한국 면직물 수입쿼터를 100만 마르크에서 200만 마르크로 증대시켰다.
  
  이날 밤 8시엔 박정희 대통령이 주최하는 만찬이 열렸다. 뤼브케 대통령 부부와 에르하르트 총리 부부 등 서독 정부의 요인들과 기업인 등 150여 명이 초청되었다. 만찬장에서는 실내악단이 재독 작곡가 윤이상의 작품 ‘로랑’을 은은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명랑한 표정으로 만찬장 분위기를 주도해갔다. 그는 샴페인 글라스를 들고 좌중을 향해 “제가 총리가 되기 전 경제장관으로 있으면서 한국의 경제고문으로 갈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경제부흥에 참여해 보고 싶었지요”라고 말해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는 또 “앞으로 한국 경제재건 문제에 있어서 한국 정부가 저의 개인적인 지식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요청에 응할 것입니다”고 했다. 에르하르트 총리가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부르자고 제의하여 한·독 합창이 흘러나왔다.
  
  
  1964년 12월 10일 아침, 본에서 중요 일정을 모두 마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루르 지방으로 출발했다. 경찰기동대 오토바이들이 선도하는 차량행렬은 라인 강을 따라 아우토반을 달렸다.
  
  오전 10시 40분, 박 대통령이 탄 차가 루르 지방의 함보른 탄광회사 강당에 도착했다. 인근 탄광에서 근무하는 한인 광부 300여 명, 뒤스부르크와 에센 간호학교에서 근무하는 한인 간호원 5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했다.
  
  검은 炭(탄)가루에 찌들은 광부들이지만 모두 양복 차림이었고 격무에 시달린 간호원들도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박 대통령 일행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는 서독 실정을 잘 알던 통역관 백영훈 교수로부터 서독에 파견된 우리 광부와 간호원들이 초과근무를 自請(자청),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고향에 송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차 안에서 이미 들었던 터였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벌써 육영수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간호원 중에도 조국의 대통령 부부를 보아서인지 더러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 대통령 일행이 강당으로 들어가 대형 태극기가 걸린 단상에 오르자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박 대통령이 선창하면서 합창이 시작됐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한 소절 한 소절 불러감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는 소리가 더 커져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 대목부터 합창소리가 목멘 소리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광부와 간호원들에게는 떠나온 고향과 조국산천이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젊은이들이 타국에 와 고생하는 현장을 본 박정희의 음성도 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마침내 마지막 소절인 “대한사람 대한으로…”에서는 더 이상 가사가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눈물을 쏟아냈다. 밴드의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풀더니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萬里他鄕(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感慨無量(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異域萬里(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일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원고를 보지 않고 즉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광부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母國(모국)의 가족이나 고향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異國(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박 대통령의 연설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의 轉移(전이)로 말미암아 박 대통령 자신도 울고 말았다. 육영수도, 수행원도 울었다. 결국 연설은 어느 대목에선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강당 안은 눈물바다가 되어버렸다.
  
  박 대통령은 참석한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파고다 담배 500갑을 전달한 뒤 강당 밖으로 나왔다. 30분 예정으로 들렀던 광산회사에서 박 대통령 일행이 강당 밖으로 나오는 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함보른 광산회사 측에서는 박 대통령에게 한국인 광부가 지하 3,000m에서 캐낸 석탄으로 만든 재떨이를 기념으로 선물했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는 울어서 눈이 부어 시선을 바로 두지 못했다.
  
  대통령 일행이 광부 기숙사를 둘러보고 차로 향하자 어느새 수백 명의 우리 광부들이 운집해 있었다. 몇몇은 작업복 차림에 갓 막장에서 나와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였다. 박 대통령 가까이 있던 광부들이 검은 손을 내밀었다.
  
  “각하, 손 한번 쥐게 해 주세요.”
  
  “우리를 두고 어떻게 그냥 떠나시렵니까?”
  
  경호원들이 몰려드는 광부들을 제치고 박 대통령 일행이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박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르자 광부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안녕히 가십시오!”
  
  박 대통령의 차량은 뒤스부르크의 데마크 철강회사를 향해 아우토반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車中에서 눈물을 멈추려 애쓰고 있었다.
  
[ 2009-03-18, 17: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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