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학생들과 위선적 지식인
연재 33/"조국을 日帝로 착각하고 욕만 하는 지식인들이 있는 한 근대화는 어렵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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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30일 오후 방한 중인 마셜 그린 미 국무부 극동담당 부차관보는 서울 중구 정동의 미 대사관저에 尹潽善 민정당 총재를 초대하여 韓日회담과 관련한 요담을 했다. 그린 副차관보는 5·16 군사 혁명 때는 대리대사로서 尹 대통령을 찾아가 박정희 소장이 지휘하는 쿠데타軍(군)을 진압하기 위해 병력동원을 건의했으나 거절당한 인연이 있었다.
  
  이날 민정당의 김준연 의원은 그린 副차관보를 ‘각하’라고 호칭하면서 그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발표했는데 요지는 박 대통령의 訪美 정상회담 계획을 중단시켜달라는 것이었다.
  
  한 공화당 의원은 이렇게 불평했다.
  
  “자기 나라 현직 대통령도 안 만나겠다는 전직 대통령은 외국의 외교관을 찾아가 만나고 또 다른 인사는 각하란 말까지 썼는데 이건 굴욕외교가 아닌가.”
  
  한 야당 의원도 “副차관보는 우리나라 국장급인데…”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보도되었다. 이날 朴 대통령도 벌컥했다. 그는 朴相吉 대변인을 불러들였다.
  
  “그 X버선인지 헌 버선(편집자 註-윤보선을 지칭)인지 하는 자가 하는 말을 나는 다 알고 있지. 새카만 일본 헤이타이(兵隊) 출신인 째그마한 내가 … 제까짓 게 뭘 알겠느냐, 이런 말 아니오? 도대체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이오?”
  
  박상길은 나오자마자 윤보선의 ‘사대적 태도’를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다음날 그린 부차관보가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와 함께 청와대를 찾아왔다. 박 대통령은 그린이 尹 전 대통령을 만난 데 대하여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린 부차관보는 일국의 대통령을 앞에 두고도 담배를 꼬나물고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朴 대통령은 그 무서운 눈매를 번득이면서 그린을 정면으로 쏘아보더니 통역에게 말했다.
  
  “이 자에게 내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빼지 말고 그대로 통역하시오.”
  
  박정희는 비수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그래 윤보선 씨가 뭐라고 하던가?”
  
  “당신은 지금도 내가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가?”
  
  배석했던 박상길에 따르면 그린은 원색적인 대통령의 한국말을 얼마간 알아듣는 것 같았다고 한다. 朴 대통령은 시선을 그린의 눈에 고정시키고 추궁하듯이 따지고 들었다.
  
  <정말 옆에서 보기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그린은 대통령의 말씀이 몇 마디 진행되자 겹친 무릎을 풀고 자세가 장군 앞에 선 병졸 모양으로 초긴장되면서 교장 선생에게 꾸중 듣는 학생 모양으로 담배는커녕 손끝까지 떨리는 듯하였다. 그리곤 정확한 발음으로 “예-서 엑설런시” 소리만 연거푸 하다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정신없이 나갔다. 나는 이때 ‘크든 작든 한 나라의 국가원수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하고 느꼈고, 한 독립국가의 主權에 대하여 뼈로부터 우러나오는 긍지를 통감하였다>(박상길 《나와 제3·4공화국》)
  
  이즈음 朴 대통령은 학생·지식인·야당세력들이 다시 뭉쳐서 調印(조인)이 임박한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반대운동을 벌이려고 하는 조짐에 대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린 副차관보를 혼내준 다음날 박정희 대통령은 진해 제 4비료 공장 기공식에 참석, 치사를 하다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제쳐놓고 학생들과 인텔리들을 향해서 격한 비판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끔 책상을 소리 나게 치면서 자신의 분노를 격앙된 억양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늘 이 자리에 학생들도 좀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내 좀더 얘기를 하려 합니다. 학생들! 지금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뭐라고 떠들면 내용도 모르고 덮어놓고 거리에 나와서 플래카드를 들고 무슨 학교에서 성토대회도 하고 ‘무슨 정부 물러가라, 매국하는 정부 물러가라’ 하는 등 이런 철없는 짓도 하는데, 나는 학생 제군들에게 솔직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두거니와 제군들이 앞으로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자면, 적어도 10년 내지 20년 후라야만 제군들이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제군들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때에는 우리들 기성세대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여러분들 못지 않게 나라에 대한 것을 걱정하고 근심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4·19 정신의 계승운운 하나 그런 정신은 백 년에 한 번이나 수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숭고한 정신입니다. 문제 하나하나를 4·19 정신에 결부시킨다면 4·19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철부지 학생들’에 이어 위선적인 지식인들에게 銳鋒(예봉)을 들이댔다.
  
  “과거 일제시대에 우리가 日帝와 싸우던 것과 마찬가지인 정신 자세, 즉 왜적이 와서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를 식민지화하고 우리가 남의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가 日帝에 대항하던 이러한 정신 자세는 (지금에 와서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인텔리 가운데는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여야만 그 사람이 아주 인텔리이고 지식인이고 애국자연합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그네가 아무리 생각해도 옳다고 해도 여럿이 있는 데서 이야기했다가는 ‘저 사람은 사쿠라요 정부의 앞잡이다’하는, 이런 우리 한국의 인텔리들의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지기 전에는 한국의 근대화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 2009-03-18, 18: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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