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 국장과 다섯 시간 토론 벌인 朴 대통령
연재 37/朴 대통령은 “명령이야 잔소리 말고 하란대로 해!” 한마디 하면 끝이 날 일이었지만 끝까지 즐기는 것 같았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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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일하는 방식은 확인-현장-실무-결과 중시로 요약할 수 있다. 실사구시 정신, 즉 현실과 사실에 기초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실용주의자로서 박 대통령은 責務(책무)를 해내는 사람일 경우 도덕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덮어주고 重用(중용)했다. 그는 총무처 장관 李錫濟가 부패 공무원들의 문제를 제기하자 “일 잘하면서도 깨끗한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 봐!”라고 했다. 공무원들의 월급이 생계비에 미달되는 상황에서 깨끗한 사람만 찾다가는 무능한 사람들만 모을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이 담긴 말이었다.
  
  그는 또 잘해보려다가 실수한 부하들을 잘 감싸주었다. 아울러 장관들에게 차관 인사를 위임하는 등 인사권을 보장해주었다. 권한을 많이 주는 대신 결과를 철저히 따져 무능을 아부나 선전으로 메우려는 이들에게 현혹되지 않았다. 그는 공무원 집단을 일 잘하는 조직으로 개조하고 이들을 牽引車(견인차)로 내세워 국민들을 끌고 가게 했다. 박 대통령을 평가하는 여러 가지 잣대가 있겠으나 ‘국민들로 하여금 가장 열심히 일하도록 한 사람’이란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생산성이 가장 높았던 대통령이란 의미이다.
  
  黃秉泰(황병태·전 민자당 국회의원 및 駐中(주중) 대사 역임)는 경제기획원 외자도입과장 시절부터 박 대통령한테 자주 불려갔다. 박 대통령은 실무자가 사안에 대해 가장 정통하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장·차관을 제치고 직접 실무자를 불러 의견을 듣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인 고려를 많이 하게 되어 있는 고위직보다는 실무자들이 국가이익의 관점에 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1966년에 소양강 댐 건설을 둘러싸고 高(고)댐이냐, 低(저)댐이냐로 논쟁이 있었다. 고댐은 종합적 용도의 다목적댐인데 공사비가 비싸게 먹히고 저댐은 순수 발전용인데 싸게 먹힌다. 건설부는 국토개발이란 종합적 관점에서 고댐을 원했다. 이후락 비서실장과 한국전력은 저댐 편이었는데 장기영 부총리도 저댐 쪽으로 기울었다. 김학렬 차관은 고댐을 지지했다. 이해관계가 끼어드는 양상까지 보이자 박 대통령은 선택에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은 황병태 국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황 국장은 청와대로 헐레벌떡 들어가다가 장기영 부총리, 서봉균 재무장관, 朱源(주원) 건설장관과 마주쳤다. 장 부총리는 “자네, 여기는 왜 왔어?”라고 했다.
  
  “부름 받고 왔습니다.”
  
  박 대통령과 네 사람이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박 대통령은 駐日 대사가 보냈다는 청어알을 황 국장에게 권하면서 “이거, 자네 맛 좀 보라고 불렀어”라고 했다. 식사가 끝난 뒤 박 대통령은 황 국장에게 잠시 남으라고 일렀다.
  
  “황 국장, 소양강 댐 말이야, 고댐, 저댐 중 어느 것이 좋아?”
  
  황 국장은 실무자의 입장에서 각각의 장단점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말고 황 국장 생각을 말해보라고, 어때?”
  
  황 국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사실은 백년지사 차원에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고댐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맞는 말이구먼. 돈 몇 푼 아끼는 것보다는…. 결론 내렸어!”
  
  황 국장이 옆을 보니 장기영의 표정에 怒氣(노기)가 서리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포항종합제철 부지를 정할 때도 황병태를 이용했다고 한다. 당시 政界 실력자들 사이에서는 종합제철소 유치경쟁이 치열했다. 충남 비인은 김종필 의장의 연고지, 울산은 이후락 실장의 고향, 삼천포는 박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창생이자 재계의 막후인물인 서정귀의 연고지 하는 식이었다. 포항만은 아무도 미는 사람이 없었다. 정부가 후보지 18개소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포항이 가장 적합한 곳으로 나타났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은 황병태 국장을 부르더니 김포로 가는 자신의 차에 동승하게 했다. 차중에서 대통령은 황병태의 무릎을 잡으면서 말했다.
  
  “황 국장, 소신대로 이야기해주어야겠어. 종합제철 입지를 놓고 말이 많은데 어디가 제일 좋아?”
  
  “다른 데는 미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상 포항이 제일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미국 용역회사 보고서도 수심이 깊은 포항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알았네. 포항은 미는 사람이 없으니 자네가 미는 걸로 하지. 나중에 경제동향보고회의 때 자네를 부를 테니, 그때 소신대로 이야기하게.”
  
  며칠 뒤 월례 경제동향보고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황병태는 맨 뒷자리에 있었다. 보고를 경청하고 지시를 내리던 박 대통령이 갑자기 “뒤에 황 국장 있나. 이리 나오게“라고 말했다.
  
  “요새 종합제철소 입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 것 같은데 어떤가.”
  
  “실무적 입장에서는 포항이 적지라고 판단됩니다.”
  
  “왜?”
  
  “바다 수심이 깊어 배가 드나들기 용이하고….”
  
  황 국장은 미리 준비한 대로 자세하게 설명해갔다. 다 듣고 나서 박 대통령이 말했다.
  
  “좋아, 그러면 포항으로 하지.”
  
  아무도 異見(이견)을 말하지 못했다.
  
  高炳佑 전 건설부 장관은 1969년 농림부 농업개발관(국장급)으로 일할 때 겪었던 일을 최근 자신의 회고록 '혼이 있는 공무원'(늘푸른소나무)에서 이렇게 소개하였다.
  
  
  [국장으로 승진되고 나서 채 1개월도 안된 때였다. 朴 대통령은 농림부에 농수산물 가격안정에 대한 특별 지시를 내렸다.
   “농수산물의 가격변동이 너무 심해 出荷期에는 너무 싸고 端境期(햇곡이 나오기 시작하는 8, 9월)에는 너무 비싸니 농민도 손해고 소비자도 손해일 뿐만 아니라 농수산물 가격이 소비자 물가변동의 주범이 되고 있다. 主務부서는 ‘농수산물의 연중가격 평준화대책’을 만들어 보고하라.”
   이때 농림부에서는 농업개발관의 업무가 너무 많다고 농수산물 유통담당관실을 신설하여 따로 국장급이 임명되어 있었다. 당연히 책임자인 농수산물 유통담당관이 차트를 만들어 조시형 장관께 보고를 올렸으나 불합격되었다. 그런 직후 담당도 아닌 필자에게 보고를 올리라는 명이 떨어졌다.
   나는 내 소관도 아니고 남이 하던 보고를 대신하게 되면 같은 국장으로서 인간관계도 어렵게 될 것을 염려하여 한사코 이를 사양했다. 그러나 趙 장관의 왕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었다.
  
   대통령께 보고할 날을 2~3일 남긴 촉박한 시기에 더 이상 장관의 영을 거역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대신 보고를 맡아 하기로 했다.
   핵심은 쌀, 보리를 제외하고 고추, 마늘, 파, 배추, 무, 쇠고기, 돼지고기, 오지어 고등어, 김, 등 농수산물의 가격은 출하기와 단경기 사이 4~5배 뛰는 것은 예사이고 10배가 넘는 일이 많은데 이를 평준화시킬 방도를 찾는 일이었다.
   나는 차트를 만들어 가면서 비축창고 건설과 농업관측(農業觀測)제도의 강화를 주 대책으로 보고드릴 생각이었다.
   마침내 보고 날짜가 다가왔다. 청와대에서 대통령께 보고 드리는 자리에는 이후락 비서실장, 김학렬 경제기획원장관, 조시형 농림부장관, 정소영 경제수석비서관, 서석준 물가국장 등이 배석했다. 보고가 순탄하게 넘어 가다가 고추 값 안정대책에서 걸렸다.
   보고를 듣던 대통령이 갑자기 말씀을 던졌다.
  
  “고추의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는데 이제 창고를 지어서는 해결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농업관측도 작년에 잘 했어야 하지 않나. 당장 고추 값을 안정시키려면 그런 대책보다는 단기적으로 외국에서 수입을 하면 쉽게 될 것 아닌가?”
  
   농수산물 가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대통령으로서는 미온적인 대책이라고 판단했던지 상당히 강한 어조로 말씀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농수산물 국내시장의 보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통령 말슴에 이의를 제기했다.
  
   “각하 고추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가격을 안정시키면 내년에는 고추 농사를 지으려는 농민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며 수입고추 값에 맞춰 고추농사를 하게 되면 농민들의 소득원이 크게 감소됩니다. 올해는 농협을 동원하여 전국의 지방에서 고추를 수집하도록 하고 대도시인 서울의 고추 값만 안정시키면 수요기도 거의 지나고 있으니 곧 안정이 될 것입니다.”
  
   필자의 답변에도 대통령은 이를 승낙하지 않고 계속 수입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 논쟁은 1시간이 넘고 2시간이 넘었다. 그래도 朴 대통령은 “명령이야 잔소리 말고 하란대로 해!” 한마디 하면 끝이 날 일이었지만 끝까지 그와 같은 명령은 하지 않고 토론을 즐기는 것 같았다.
   마침 의전비서관이 들어와 대통령께 귓속말로 보고를 하니 대통령께서는 자리를 뜨며 말씀했다.
   “나는 옆방에서 중요한 보고가 있어 다녀올 테니 이 자리에서 모두 같이 검토를 하고 있어요.”
  
   대통령이 자리를 뜨니 정소영 수석이 “고 국장! 당신이 좀 져드리면 안 돼? 잘 생각해봐!”하는 것이었다. 장관도 부총리도 “웬만치 고집 부려라”며 2시부터 시작한 회의를 저녁 6시가 넘도록 똑 같은 주장만 하면 되겠느냐고 힐책들이었다. 6시가 넘자 대통령이 회의실로 돌아왔다. 논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고추 수입은 예외적으로 올 한 해만 하기로 하고 내년부터는 농업관측을 잘 발표해 영농지도를 하고 보관시설을 늘려 연중 고추가격의 안정을 기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회의를 끝마쳤다.
   모두가 무서워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뜻대로 밀어붙이는 지도자는 결코 아니었다. 1개 국장과 5시간에 걸친 토론을 벌인 끝에 主務국장의 타협안에 동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의 지도자가 이토록 지지하고 신중하며 아랫사람의 조언에 귀 기울일 수 있다는 점에 나는 크게 감동했다.
   그날 농림부에서는 장관과 고 국장이 어려운 보고를 드리러 가더니 단단히 혼이 나는 모양이라며 초상집 같은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농림부로 돌아온 조시형 장관은 그 즉시로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高 국장 고집 때문에 대통령께서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보고 저놈 高국장과 여태껏 토론만 하다 돌아 왔어”
   말씀은 그렇게 투덜거렸으나 표정은 한없이 기쁘고 밝았다. 그 모습을 보고 前後 사정을 들은 간부들은 그제서야 즐겁게 퇴근들을 하는 것이었다.]
  
  
  
  
[ 2009-03-22, 10: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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