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殉敎者》의 작가가 본 1965년의 祖國
연재 39/"박 대통령은 굉장한 자신감에 차 있어 아무것도 그의 신념을 흔들 수 없다. 그는 굳세고 어쩌면 신비롭기까지 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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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월간잡지 <애틀랜틱> 1966년 2월호에 재미작가 金恩國(김은국·리처드 김)이 쓴 ‘오 마이 코리아’란 기사가 실렸다. 그 몇 년 전 《순교자》란 영문 소설을 써 유명해진 김 씨는 매사추세츠대학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중 1965년 6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 데모가 휩쓸고 있던 서울을 취재했다. 이 기사의 발췌문은 신문에 연재되기도 했고 全文(전문)은 잡지에 번역되어 실렸다. 지금 읽어보아도 문학가의 깊은 통찰력에 감탄할 만한 대목이 많다.
  
  6·25 전쟁 때 국군 장교로 근무했던 김은국은 평양에서 같이 학교를 다녔던 대령 친구와 서울대 정치학과에 다니던 동생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실감나게 소개하기도 했다.
  
  대령 친구는 김 씨에게 동생을 만나달라는 말을 하면서 “그놈이 무정부주의자 흉내를 내는 것은 참을 수 없어”라고 했다. 대령, 동생, 동생의 친구(대학생), 김 씨 네 사람은 중국음식점에서 만났다.
  
  화제가 학생 시위와 군인의 역할에 미치자 동생은 대령에게 “형님은 그 군복 입은 것이 창피하지 않수?” 라고 말하는 바람에 언쟁이 시작됐다.
  
  “네가 고아가 됐을 때 난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싸웠단 말이야. 너희들을 위해서.”
  
  “누가 날 위해 싸워 달랬어요? 우린 새 세대예요. 기성세대의 일그러진 가치관, 부패한 사회엔 신물이 났어요.”
  
  “너희가 새 세대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사회의 심판관이 되는 게 아니란다.”
  
  김은국이 물었다.
  
  “4·19 혁명이 성공한 후 학생들이 한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나?”
  
  “무정부 상태였지”라고 대령은 말했다.
  
  “부패를 쓸어내는 건데 바보 같은 군인들이 뛰어들었어요”라고 동생이 받았다.
  
  “우린 이 비참한 나라에 새 질서가 세워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 국민들은 무정부 상태를 바란 게 아니야. 학생 봉기도 군사혁명도 한 번씩으로 족해.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버릇을 만들면 우리나라가 라틴 아메리카 꼴이 난다는 것을 우리 장교들은 잘 알고 있어.”
  
  김은국은 학생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혼란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한 감각에 선동되고 덧없는 영웅주의에서 스릴감을 찾으며 세상이 뒤죽박죽되는 것을 볼 때의 찰나적인 기쁨에 매혹되는 듯했다.’
  
  그는 박 대통령을 만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굉장한 자신감에 차 있어 아무것도 그의 신념을 흔들 수 없다. 그는 굳세고 어쩌면 신비롭기까지 했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완전한 건강 상태라서 국가원수로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는 자신감 속에 착 가라앉아 있는 듯이 보였다.
  
  “학생들은 자기네들이 뭘 바라는지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야당은 이 학생들을 조종하고 있어요. 곧 잠잠해질 겁니다.”
  
  그가 이 나라의 밝은 미래에 대해서 설명할 때 그의 자신감과 침착함은 나에게 전염되어 오는 듯했다>
  
  김은국은 ‘추하고 수치스런 옛날을 영광스런 역사라고 과장하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을 찬란한 문화유산이라고 기만하는 태도를 버리고 환상, 망상, 자기기만에서 깨어나면 거기에 엄숙한 현실이 있다’고 충고했다.
  
  <수세기 동안 권력의 압박을 받았고 정치 사기꾼의 달콤한 말에 속아왔으며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린당하고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해 절망의 끝까지 밀려나온 가난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런 민족이란 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미약하나마 희망은 있다. 20여 년간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살아왔다는 것, 이러한 경험에서 무엇인가 얻은 게 있으며 이것이 장기적으로 이 나라를 구할 가능성도 있다>
  
  김은국은 한국인이 민주주의란 게임을 가장무도회처럼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 게임이 습관이 된다면 언젠가는 한국인들이 진지하게 게임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환상과 기만에서 기적이 탄생할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반대자의 날카로운 항의는 없는 것보다 낫다. 한국의 선동적이고 제멋대로인 신문도 없는 것보다 낫다. 규율 없이 하는 데모 학생도 길게 보면 조용하고 겁에 질린 학생들보다 낫다.
  
  한국인의 삶에는 조잡하고 야생적인 것, 그러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불행한 나라와 사랑싸움 같은 것을 계속할 수 있는가 보다. 서로 싸우는 것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국에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들의 실존을 직시하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황금기에의 망상을 버릴 때 가냘픈 희망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남한 사람들은 개인주의의 경직성과 신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것이 상호 불신과 자기중심적인 思考(사고)에서 생긴 것이라 해도 언젠가는 순수하고 성실한 생활의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은 있다>
  
  
[ 2009-03-22, 20: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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