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까집니까?"-김재규, 殺意의 탄생
연재 61/박선호가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자 金 부장은 다시 밀어붙였다. "똑똑한 놈, 세 명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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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26일 저녁 7시를 지난 시간, 청와대 앞 궁정동 식당. 신재순 심수봉, 두 여자의 등장으로 술자리의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다. 朴 대통령은 빠른 속도로 술잔을 비웠다. 그는 시바스 리갈을 주전자에 부어서 마시고 있었다. 양주잔은 주로 대통령과 김계원 비서실장 사이에서 오고갔다.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정보부장은 술잔에 입술을 갖다 대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김재규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신재순 양이 보니 김재규가 맞은편에 앉아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신 양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차 실장이 또 한마디를 거는 것이었다.
  
  “요즘 정보부는 뭘 하는지 모르겠어. 부산사태만 해도 그렇지.”
  
  대통령은 또 시국문제를 꺼냈다. 차 실장이 계속해서 자극적인 발언으로써 대통령을 부추겨 이 화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오늘 삽교천에 가 보니 공해도 없고 공기는 그렇게 좋은데 신민당은 왜 그 모양이오.”
  
  “신민당은 주류가 중심이 되어 강경으로 돌아섰습니다. 정운갑을 미는 것은 非주류인데 국민들은 이들을 사쿠라視(시)하니 힘이 없습니다. 주류의 협조가 없이는 鄭 代行 체제의 출범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공작하던 현 당직자 백지화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까짓 새끼들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차 실장은 예의 강경한 소리를 되풀이했고, 김 부장은 대책 없는 비관론을 되풀이하니 대통령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한편 정승화 총장은 오후 5시 30분경에 총장실에서 나와 한남동 공관에 가서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오후 6시 10분경에 공관을 출발했다. 전속부관 李在千 소령이 승용차 앞자리에 앉았다. 鄭 총장은, 6시 35분쯤 궁정동 정보부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문초소 안에서 경비원이 바깥을 보더니 문을 열어 주고 누군가가 나와서 안내를 해 주었다.
  
  정 총장이 안내자를 따라서 들어가는데 뒤에 도착한 승용차에서 내린 한 중년 신사가 따라왔다. 사복차림의 전속부관 이재천이 그 신사에게 “우리 참모총장이십니다”라고 소개를 했다.
  
  신사는 門前에서 “제2차장보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더니 정총장을 안내하여 1층 대기실로 같이 들어가 앉았다. 이때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朴興柱 대령이 오더니 차장보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부장께서 각하와의 만찬자리에 가시면서 두 분이 먼저 식사를 하시라고 했습니다.”
  
  金正燮 차장보는 정승화 총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부장님이 대통령 각하의 저녁 부름을 받아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총장님을 모시고 있으면 끝나는 대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정승화 총장은 기분이 나빴다. 돌아갈까 하다가 전에도 있었던 비슷한 일이 생각났다. 지난 봄인데 김재규가 3군 참모총장들을 저녁에 어느 음식점으로 초대해 놓고서 불참했다. 갑자기 대통령의 호출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때도 金學浩(김학호) 정보부 감찰실장이 대신 와서 접대를 하다가 김재규가 늦게 합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나棟 안방. 김계원은 왼쪽 자리에 앉은 김재규 부장이 너무 몰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이렇게 말했다.
  
  “김 부장이 칵테일도 잘합니다. 그런데 김 부장, 칵테일은 어떻게 하는 거요.”
  
  “술 한 잔에 물 두잔을 부으면 됩니다.”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김 부장에게 위로의 뜻으로 술을 권했더니 큰 잔에다가 양주를 희석시키지도 않고 그냥 부어서 돌려주는 것이었다. 김재규가 암살준비를 위해서 만찬장을 뜬 시각은 지금까지의 수사발표에선 저녁 7시 직후로 되어 있었다. 이번에 기자가 관련 수사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저녁 6시 40분경임이 확실해졌다. 김재규가 두 번째 자리를 뜨고 나서 상당히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아마도 10~15분간 자리를 뜸) 김계원 비서실장은 불안해졌다. <각하를 모시고 하는 행사인데 주인이 되는 사람이 자리를 비워 송구스럽고 그 전에 정치문제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때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혹시 하는 생각이 나서 불안해졌다.>(合搜部 진술서)
  
  그 사이 김재규는 슬그머니 안방을 나와 마당을 지나서 쪽문을 통해 한 50m 떨어진 본관으로 갔다. 식당으로도 쓰이는 1층 회의실 문을 여니 정승화 총장과 김정섭 2차장보가 환담하고 있었다. 양복차림의 김재규는 좀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정 총장, 정말 미안합니다. 계엄사태하에서 정보부가 여러 가지로 판단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했는데 대통령 각하께서 갑자기 만찬에 부르시니 안 갈 수도 없고 …… 금방 끝내고 올 테니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시오.”
  
  김재규는 억지氣가 있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이 사람, 국내담당 차장보는 나라 안이 돌아가는 것을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빨리 끝내고 오겠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기다려 주십시오. 김영삼이도 내가 다 손들게 만들어 놓았는데 제 말을 안들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정 총장과 김정섭 차장보를 모시는 책임을 지고 있던 尹炳書 비서는 김재규가 이 두 사람과 한 5~10분쯤 이야기하다가 나왔다고 기억했다. 김재규는 회의실을 나와서 2층으로 올라갔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 그는 엄청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차 실장을 쏘아 버릴까. 그런데 차 하나 쏘아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안 되지 않는가. 한다면 각하를 제거해야지 하고 거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合搜部 진술서)
  
  김재규가 범행 이틀 뒤인 10월 28일에 작성한 자필진술서의 이 대목은 당시 殺意의 발전경로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범행 직후에 썼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그 뒤 여유가 생겨서 자신의 행동을 과장, 미화, 합리화하기 전 비교적 순수한 상황 아래에서 작성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진술서 그대로 그의 살의를 격발시킨 것은 이날 밤 차 실장의 오만방자한 언동이었다. 대통령과 저녁을 같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육군참모총장을 별실로 초대할 때부터 김재규는 살의의 불씨를 지펴 가고 있었으나 확정된 의지는 아니었다.
  
  이날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다른 모습을 보였더라면 김재규의 생각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분위기는 두 사람이 마치 짜고 그러는 듯이 김재규 부장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울컥해 버린 김재규는 문제의 차지철을 죽이려고 했으나 대통령이 걸림돌이 됐다.
  
  ‘더구나 대통령은 저 오만방자한 차지철을 편애해 왔고 이날도 합세하다시피하여 나를 몰아세우지 않는가’ 하는 생각.
  
  바야흐로 배신감이 殺意로 바뀌고 있었다.
  
  
  
  “각하까집니까?”
  
  
  
  
  ‘박정희까지 쏘자’는 결론에 도달한 김재규에게는 옆집에 초대해 둔 정승화 총장의 존재가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됐다. 김재규는 화장실에서 나오자 책장 선반 책 뒤에 감추어 두었던 32구경의 작은 독일제 호신용 권총을 꺼내 바지 오른쪽 호주머니 속의 유달리 크게 만든 라이터용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棟의 관리책임자인 남효주는 대통령 일행이 식사 중인 안방에 음식을 들고 들어갔다가 부장이 보이지 않자 신경이 쓰였다. 그는 방을 나오자마자 현관으로 가 보았다. 부장의 신발이 없었다. 주방으로 돌아오니 식당차 운전사 김용남이 보였다.
  
  “과장님이 어디에 계신가?”
  
  “저 뒤 어디에 있을 것입니다.”
  
  남효주는 경호원 대기실로 가 보았다. 그는 의전과장 박선호를 발견하고는 “부장이 나가신 지 오래되었는데요”라고 일러주었다. 박선호는 항상 갖고 다니는 손전등을 비추면서 구관 쪽으로 건너갔다. 구관과 본관 사이 쪽문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張珉淳(장민순)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부장은 5분 전에 쪽문을 지나 본관으로 갔다고 했다.
  
  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은 본관 1층에 있는 부속실에서 오전에 하던 여권 서류정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박 대령은 김재규가 정승화 총장을 만난 뒤 2층으로 올라가서 권총을 꺼내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내려올 때까지도 서류정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본관 정문에서 인터폰으로 “부장이 나가십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현관 문밖으로 나가서 부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김재규는 본관을 나오더니 박흥주 대령에게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구관 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박선호는 본관 현관을 걸어 내려오는 김재규, 박흥주 두 사람을 만나자 플래시를 비추면서 부장 곁을 따라갔다. 박흥주는 뒤에 처졌다. 구관으로 통하는 쪽문에 거의 다 가더니 김재규는 돌아서서 박 대령을 향해서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세 사람은 구관으로 들어가서 잔디밭에 들어섰다. 김재규가 말했다.
  
  “둘 다 이리 와.”
  
  어두운 가을밤 찬 공기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됐다. 박흥주가 보니 김 부장은 ‘`酒氣가 어리고 긴장된 표정’이었다. 김재규는 상의를 들어올리고 오른쪽 바지 호주머니를 툭툭 치면서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박선호가 보니 호주머니가 불룩했다. 박 대령의 시야에는 호주머니에 있는 권총이 살짝 들어왔다.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들과 나는 죽는 거야. 오늘 저녁에 내가 해치운다.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들을 처치하라. 육군총장과 2차장보도 와 있다. 너희들 각오는 다 되어 있겠지.”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박선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박흥주의 표정을 슬쩍 보았다. 박흥주는 ‘느닷없는 이야기에 입만 벌리고 듣는 수밖에 없었다’(합수부 진술서)면서도 “예” 하고 대답했다. 침통한 표정이었다. 김재규는 본관 쪽을 가리키면서 “이미 총장, 차장보도 와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박선호가 입을 김 부장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각하까집니까?”
  
  김재규는 고개를 끄떡하면서 “응” 했다. 박선호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거짓말을 했다.
  
  “오늘 저녁은 좋지 않습니다. 경호원이 일곱 명이나 됩니다. 다음에 하지요.”
  
  “안 돼. 오늘 처치하지 않으면 보안이 누설되어서 안 돼. 똑똑한 놈 세 명만 골라 나를 지원해. 다 해치워.”
  
  박선호가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자 김 부장은 다시 밀어붙였다.
  
  “믿을 만한 놈 세 놈 있겠지.”
  
  박선호는 엉겁결에 “예, 있습니다”라고 답했다(군검찰 진술).
  
  “좋습니다. 그러시면 30분의 여유를 주십시오.”
  
  “안 돼. 너무 늦어.”
  
  “30분이 필요합니다. 30분 전에는 절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알았어.”
  
  김재규는 박흥주 대령을 향해서 느닷없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라고 중얼거리더니 권총이 든 호주머니를 탁 쳤다. 그러고는 두 말 없이 나동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박선호는 플래시를 비추면서 부장을 따라서 나동 현관까지 수행했다. 이들의 수작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본관정문 초소 근무자 이말윤에 따르면 이 세 사람들이 붙어 서서 대화한 시간은 1분쯤이었다고 한다. 이 짧은 시간에 무슨 진지한 논의가 있을 수 없었다. 김 부장의 일방적인, 저돌적인 선전포고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엄청난 계획을 던져 놓고는 그냥 만찬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계획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열쇠는 이제 김재규의 손을 떠나 두 朴 씨 손에 넘어온 셈이었다. 나중에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수사관 앞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박흥주는 당시의 기분을 이런 줄거리로 설명했다.
  
  “부장이 ‘오늘 해치운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부장과 박선호 과장 사이의 대화 내용과 그 뒤에 계속되는 말을 듣고 보니 대통령 각하와 경호실장은 자기가 살해할 테니 경호관들은 박선호와 제가 처치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김 부장의 말을 듣고 정신이 없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헤어져서 제 사무실로 오면서도, 부장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하면서 각오가 서서 들어갔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골똘히 했습니다. 저는 이미 호신용 25구경 베레타 권총을 오른쪽 허리에 차고 있었으나 너무 작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본관 주차장에 가서 부장 차에 두고 내렸던 저의 휴대용 가방을 열고 독일제 9연발 권총을 꺼내어 일곱 발을 장전한 다음 왼쪽 허리에 찼습니다. 이 총은 1978년 4월 1일 수행비서관으로 부임하면서 정보부에서 지급받은 것이었지만 너무 무거워서 차고 다니지 않고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러고는 1층 부속실에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육군총장과 정보부 2차장보도 와 있다. 준비도 다 되어 있다고 한다. 부장은 한국에서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는 분이다. 부장은 나도 모르게 이미 모든 준비와 계획을 다 해 놓고 있다가 오늘 기회를 포착하게 되자 갑자기 명령하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저의 마음 한구석에 언제 그런 준비를 했을까 하는 의심도 생겼으며 착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갔습니다. 내가 김 부장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면 이런 일도 없는 것인데……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정동 본관 1층 부속실에서 생각에 잠긴 박흥주 대령이 초조해 보였던 모양인지 옆에 있던 윤병서 비서가 물었다.
  
  “과장님 왜 담배만 피우세요?”
  
  “아무것도 아냐.”
  
  
  
  
  
  
  
  
  
  
  
  
  
  
  
[ 2009-04-11, 15: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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