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은혜의 아들을 껴안는 순간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구치 야에코 가족과의 상봉 뒤에 김현희 씨가 구로다 기자(黑田勝弘·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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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田勝弘 논설위원님께
  
   4월이 되어 담장너머 목련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온통 하얗게 덮힌 그 꽃을 보고, 커다란 솜사탕이 생각났는지 등교하던 딸아이가 꽃 이름을 물어왔습니다. 모녀의 대화 속에도 어느덧 봄이 슬쩍 끼어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현희입니다.
  
   3월 초순, 저는 위원님께서 보내주신, 저에 관한 기사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田口八重子(다구치 야에코) 가족의 상봉을 앞두고 위원님께서 저의 편지를 신문에 게재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3월11일은 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한일 양국 정부의 주선으로 저는 현해탄을 건너온 田口(야에코) 가족을 부산에서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와 田口 가족의 면담 및 기자회견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 정세 속에서 대대적으로 거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한일 양국 기자들의 뜨거운 취재 열기와 보안당국의 철통경비 때문에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田口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에 행사 전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행사 당일 날, 드디어 회견장에 나타난 그녀의 오빠와 아들, 저는 田口를 대신하여 30여년 동안 그녀의 아들을 한결같이 키워온 노년의 오빠 飯塚繁雄(이즈카 시게오)씨에게 큰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飯塚耕一郞(이즈카 고이치로)를 껴안는 순간, 저는 참았던 눈물을 그만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꿈에 그리던 아들을 제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먼 이국땅에서 고생하면서 살고 있을 田口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와 면담하는 동안 내내 지켜보았지만, 그는 외모나 그 무엇으로 보나 저의 일본어 선생 리은혜, 그리고 일본정부가 찾아낸 田口八重子의 아들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 남한에 와서 그녀의 존재에 대해 증언한 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그녀가 그렇게 보고 싶어 울었던 아들의 손도 잡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에서 저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들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왜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는지 그날 면담은 못내 아쉽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이다음에 또 만나면 오늘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들려주기로 약속했습니다.
  
   田口 가족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저는 그들이 그동안 겪었을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耕一郞는 이 자리에 자신의 어머니도 함께 참석하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난 후, 그는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30분 정도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납치 피해자 田口 외에 메구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얼마 전 메구미의 어머니 橫田早紀江(요코다 사키에) 씨가 방송에서 납치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도와 줄 것을 호소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날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일상생활로 돌아온 저는 田口 가족에게서 받은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몇 권의 책들과 CD 등이 있었습니다.
  
   田口 오빠가 쓴 ‘妹よ(누이여)’, 田口 아들이 쓴 ‘母が拉致された時僕はまだ1歳だった(어머니가 납치당했을 때 나는 겨우 1살이었다)’, 납치피해자 가족회에서 쓴 ‘めぐみさんたちは生きている!(메구미들은 살아있다!) (産經新聞出版)’ 등 이 책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납치피해자 가족들이 납북자들의 생사확인과 구명운동을 어떻게 전개해왔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당국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납북자들이 대부분 생존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작년 10월 테러지원국 해제를 받았으니, 납북자들을 죽었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들을 가족들에게 만나게 해줘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얼마 전 선물 받은 음악 CD를 꺼내어 노래를 들어보았습니다. 石川さゆり의 津輕海峽冬景色, 能登半島, 小柳ルリ子의 星の砂, 山口百惠의 秋櫻, 赤い衝擊, 夢先案內人 등 이 노래들은 田口가 좋아하고 즐겨 부르던 곡들입니다.
  
   젊은 시절 田口八重子와 함께 생활하면서 들었던 그 노래들이, 그때와는 다르게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그 노래들을 듣고 있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상 CD에는 납북자 市川修一(이치카와 슈이치) 씨의 90세를 넘긴 노모가 아들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심정을 담은 녹화물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田口 오빠, 메구미의 부모, 市川의 노모 등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현재 대부분 연세가 많습니다. 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형제, 자식들을 볼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 분들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田口의 아들에게 하였듯이 그분들의 두 손이라도 꼭 잡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몸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2009년 4월 초순, 김현희 드림.
[ 2009-04-14, 14: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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