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오후 反共소년 이승복 기념관에 갔다!
한 소년이 아버지의 설명을 듣더니 물었다. "그런데 아빠, 공산당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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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서울에선 이런 소년들로 하여금 공산당을 모르도록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생애를 바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屍身이 온갖 찬사 속에서 공산당 때문에 죽은 수많은 장병들과 애국자들이 묻힌 국립 현충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점심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부일식당에서 8000 원짜리 산채 定食이었다. 식사 후 차로 20분쯤 달려 도착한 곳은 反共소년 李承福 기념관(평창군 용평면 노동리)이었다.
   全斗煥 당시 대통령의 특명으로 만들어진 기념관이라 그런지 좋은 자리에 좋은 시설이었다. 탱크, 자연학습장 등 볼거리도 많다. 이승복군의 生家를 복원해놓았는데, 세 칸짜리 귀틀집이다. 다듬이, 화로, 이불, 쌀독 등 家具도 간단하고 설피, 짚신도 보인다. 이승복군의 집은 지금 기준으로 거의 원시생활을 한 셈이다. 이 집안은 火田에서 옥수수를 키웠다.
  
   李承福군은 이 기념관 부지 안에 있었던 속사 국민 학교 계방분교에 다니던 1968년 12월9일, 그것도 자신의 생일 밤, 외딴 집으로 들어온 무장 공비들 앞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이야기했다가 참살 당하였다. 공비들은 어머니, 두 동생도 같이 죽였다. 공비가 李 군에게 “남조선이 좋으냐, 북조선이 좋으냐”고 물은 데 대하여 李 군은 평소 배운 대로 대답하였던 것이다. 다섯 명의 공비들은 며칠 뒤 매복 중이던 공수부대원들에 의하여 전원 사살당하였다.
  
   기념관 부지 안엔 지금은 폐교된 분교의 교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李군의 교실은 1968년 상태로 복원되어 있다. 나는 왼쪽 줄 앞에서 두 번째인 이승복 군의 책상에 앉았다. 李 군이 느꼈을 溫氣가 전해졌다. 앞 칠판 왼쪽엔 반공, 오른쪽엔 방첩이란 글이 적혀 있었다. 작은 풍금이 교사용 탁자 옆에 놓여 있었다. 李 군은 반공-방첩을 일상적으로 배웠다.
  
   이 校舍 바깥에는 까만 기념비가 서 있다.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반공의 꽃 승복군이 꿈을 키우던 곳
   땡 땡 땡 땡...
   운두령을 감돌며 메아리치는
   저 종소리 속에는
   정직과 용맹
   일깨워주는
   승복군의 또랑한
   목소리가 들어 있다.
  
   그가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일깨워준 자유의 소중함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피 맺힌 외침을 들을 수 있다>
  
   한 손에 망치 들고 한 손에 총 들고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던 시절에 불렸던 ‘반공소년 이승복의 노래’가 있다.
  
   <원수의 총칼 앞에 피를 흘리며
   마지막 주고 간 말 “공산당은 싫어요”
   구름도 망설이는 운두령 고개
   새 무덤 오솔길을 산새가 운다.
  
   어린 넋 잠든 곳에
   겨레가 운다
   엎드려 절한 마음 눈물이 솟아
   바람도 길 멈추고 어루만져서
   하늘이 성이 났다. 오랑캐들아!>
  
   1968년 1월21일, 김일성이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기 위하여 특공대를 보내 청와대 습격사건을 벌였다. 그 열 달 뒤 울진 삼척 지구에 중대 규모의 무장공비들이 상륙, 눈덮인 동해안과 태백산맥 일대에선 소탕전이 벌어졌다.
   당시 동해안 레이다 기지에서 공군 졸병으로 근무하던 趙甲濟 상병은 작전 기지 상공의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조명탄이 잇따라 터지고, 1.21 사태 때 생포되었던 김신조가 비행기에서 마이크로 “귀순하라”고 방송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겨울을 보냈다.
  
   李承福 소년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조선일보 기사를, 반공분위기를 조작하기 위한 誤報였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첫해였다. 내가 편집장으로 근무중이던 월간조선 1998년 10, 11월호는 이 주장을 검증, (이동욱 기자의 심층취재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은 분명히 있었음을 確定하였다. 참살의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이승복 군의 형 이학관씨, 그날 이학관씨로부터 “동생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하는 바람에 변고가 생겼다”는 취지의 말을 전해 들은 주민의 증언이 확보되었다. 조선일보 오보 주장자는 조선일보에 의하여 고소당하여 有罪를 확정선고 받았다.
  
   기념관 곳곳에 月刊朝鮮이 진열되어 있었다.
  
   <朝鮮日報는 1998년에 30년 전의 기사로 느닷없이 誤報논쟁에 휘말렸다. 1968년 12월9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무장공비들에게 살해된 李承福(이승복) 사건이 조선일보의 작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던 것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는 「朝鮮日報의 당시 기사는 작문」이라며 전국을 돌며 오보전시회를 개최했다.
  
  언개련의 주장을 「월간 말」誌와 「미디어 오늘」, MBC TV가 받아서 보도하면서 사람들은 李承福 사건은 조작이라고 믿게 되었다. 月刊朝鮮은 李東昱 기자에게 『誤報라면 어떻게 誤報하게 됐는지를 밝히는 것도 言論의 사명』이라면서 취재지시를 내렸다. 李東昱 기자는 李承福의 형 李學官(이학관)씨, 당시 취재를 했던 조선일보 사회부 姜仁遠(강인원) 기자 등을 취재한 결과 李承福 소년의 절규는 진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98년 月刊朝鮮 10월호와 11월호에 이 기사가 나간 후 金周彦 前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과 金鍾培 前 미디어 오늘 편집장(시사평론가)은 조선일보에 대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6년 후인 2004년 10월28일, 서울 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판사 강형주)는 판결문에서 『李承福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보도는 사실에 기초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로써 「李承福 사건」은 「역사적 실제 사실」로 확인되었고, 「李承福 사건 조작」이란 주장은 허위로 판명됐다. 金周彦씨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金鍾培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李東昱 기자는 아직도 李承福 기사를 오보로 아는 사람이 많다고 개탄했다.  『법원에 의해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李承福 사건」을 입력하면 수많은 說과 소문들이 버젓이 깔려 있습니다. 소년의 정직함을 정직하지 못한 어른들이 모욕하고 왜곡했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역사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부지런한 자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惡소문을 부지런히 퍼뜨리는 사람을 막지 못하면, 정의는 실종될 것입니다』>(이근미, ‘월간조선 특종사’에서) 
  
   ‘이승복 동상 철거하고, 교과서에서 빼고...17년간 활개친 狂氣들’이란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가 기념관 입구쪽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공비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부르짖었던 이승복 소년의 입을 칼로 찢었다. 아기인 동생은 달랑 들어 올려 벽에다가 쳐 죽였다. 같이 살던 할머니와 아버지는 다른 마을에 나가 있다가 변을 면하였다. 李군의 아버지는 정신분렬증 치료를 받고 있다. 할머니도 충격으로 정신병을 일으켜 1980년에 죽었다.
  
   좌파정권하에서 이 기념관도 고생을 많이 하였다. 정부나 교육당국자까지도 남북화해 시대에 맞지 않는 반공시대의 遺物이라고 푸대접 하였다. 찾아오는 사람도 3분의 1로 줄었다가 올해부터 다시 많아진다고 한다. 올해는 이 기념관에서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에 이승복 코너를 만들어 두 달 동안 홍보도 하였다.
  
   기념관에 붙은 이승복 글짓기 대회의 입상작도 세월의 변화를 보여준다.
  ‘국민 학교’ 시절의 입상작은 반공과 자유를 다루고, ‘초등학교’ 시절의 입상작은 김대중, 노무현 연설문과 비슷하다.
  
  부산동래초등학교 4학년 유윤희 학생의 ‘자유의 씨알’은 이렇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 목소리가
  민들레 꽃으로 피었고
  씨알이 영글어
  하나 둘 날아갔네
  승복이가 남기고 간
  자유의 씨알
  독일장벽 무너뜨리듯
  통일의 싹 되어
  북녘 땅에도 돋아나라>
  
   이날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구경 온 부모가 많았다. 한 40대 아주머니는 두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설명하였다.
  
  “이승복이란 훌륭한 어린이가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말하니까, 나쁜 놈들이 쳐죽였단다. 공산당은 나쁜 놈이다, 알지?”
  
   어린이들만 온 경우도 있었다. “반공?”하면서 비웃으며 지나가는 소년도 있었다.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일러준다.
   “우리 때는 말이야,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단다. 너희들은 안 배우지?”
   열 살쯤 되는 소년이 되물었다.
   “그런데 아빠, 공산당이 뭐예요?”
  
   그 순간, 서울에선 이런 소년들로 하여금 공산당을 모르도록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생애를 바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屍身이 온갖 찬사 속에서 공산당 때문에 죽은 수많은 장병들과 애국자들이 묻힌 국립 현충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 2009-08-23, 18: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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