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통령의 사저 梨花莊을 가다
초대 내각이 만들어진 組閣堂, 근검·절약의 귀감이 되는 老대통령 부부의 생활공간.

李相憲(조갑제닷컴 인턴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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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6일 오전 11시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기념관』梨花莊(이화장)을 다녀왔다.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1번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방송통신대학 출구로 나와 낙산공원 방향으로 약 400m 올라간 낙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梨花莊은 지난 1982년 12월28일 서울기념물 제6호로 지정됐고 2009년 4월28일 문화재청 고시로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97호로 승격됐다. 현재 일반인들의 梨花莊방문은 전화(02-762-3171) 연락을 통한 예약방문만 가능하다. 1988년 개관 때부터 20년 동안은 예약 없이 상시개방 했었지만 2008년 2월10일 숭례문이 불탄 이후 안전상의 이유로 대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예약 방문이 가능한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입장료는 무료다. 李承晩 대통령의 며느리인 조혜자(67) 여사에 따르면 처음 공개할 때부터 입장료는 무료였다고 했다. 프란체스카 여사 생전엔 하루에 약 1만 5000명까지 방문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梨花莊은 미국에서 돌아온 李承晩 대통령 내외가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경무대로 거소를 옮기게 된 1948년 7월20일까지 생활했던 곳이다. 1947년 4월 미국에서 귀국한 李承晩 박사는 기거할 집이 없어 돈암장, 마포장 등지로 옮겨 다녔는데 당시의 실업가 權寧一(권영일) 등을 비롯한 30여명 지지자의 도움으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梨花莊은 대지 약 5500㎡, 건평 230㎡ 규모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우남 리승만 박사 상」으로 이름 지어진 동상이 보인다. 동상의 뒤편 작은 계곡 건너편에는 李대통령 내외가 실제 거주하며 생활했던 안채가 있고, 오른쪽 작은 언덕 위에 대통령에 취임한 李承晩 박사가 대한민국 最初(최초)의 內閣(내각)을 구상하고 발표한 組閣堂(조각당)이 보인다.

 

 

 組閣堂(조각당)은 마루와 방 하나씩으로 된 ㄱ字 모양의 시골의 곁방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은 한옥 기와집이다. 이 기와집의 마루 입구에는 ‘組閣堂’이라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다. 이 현판은 1987년 制憲節(제헌절)에 初代內閣(초대내각)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制憲(제헌)국회의원들이 李承晩 대통령의 휘호를 集字(집자)해서 새긴 것이다. 4평 남짓한 소박한 기와 건물의 내부에는 李承晩 대통령이 組閣(조각) 당시에 사용했던 돗자리와 나무의자가 원형으로 보관되고 있다. 방안의 벽면에는 李대통령이 붓으로 직접 쓴 南北統一(남북통일) 액자와 太極旗(태극기) 액자가 나란히 걸려있다.

 

梨花莊 안채 (전시관)

 

- 대한민국 建國의 유품들

  組閣堂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ㄷ字 모양의 기와집이 나온다. 1992년까지 프란체스카 여사가 실제로 사용했던 이곳은 서재와 집무실, 침실과 부엌, 프란체스카 여사의 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는 방문객을 위한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이 안채는 李承晩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내외가 생전에 생활하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안채의 앞마당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항일운동,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시절, 미국에서의 외교활동과 반탁운동사진과, 5·10총선에 의한 국회의원 당선과 1948년 8월 초대 대통령 당선사진, 6·25 전쟁 때의 李대통령 사진 등 150여장이 액자에 걸려 있다.

 

  안채 거실 가운데엔 1986년 제작된 李대통령의 흉상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우남 리승만 박사 상」으로 이름 붙여진 실물 크기의 이 흉상 아래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글이 새겨진 바윗돌이 놓여 있다. 이 石文(석문) 아랫부분에는 「1945년 10월17일 雩南 李承晩 리프란세스카」란 글이 새겨져 있다. 그해 9월은 연합군 총사령부에 의해서 38도선 분할점령이 공식 발표되고 소련이 남북 자유왕래를 금지시키고 한반도 공산화 정책을 침투시키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정치적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시절이었다. 이 文句는 분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이승만 대통령의 民族自決主義(민족자결주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李承晩 대통령의 흉상 옆으로는 대한민국의 建國歷史(건국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로 가득했다. 1919년 6월 세계 각국에 독립을 통보한 외교문서, 김구 선생과 오갔던 서신의 원본, 金奎植(김규식) 선생에게 내린 지령문 등 建國歷史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실증자료들 1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李承晩 대통령이 서재로 사용했던 방과 집무실이 있다. 이곳에는 李대통령이 생전에 지녔던 필기도구, 안경집, 시계, 손수건, 열쇠, 모자, 옷과 넥타이 등의 소지품과 建國勳章(건국훈장), 無窮花大勳章(무궁화훈장), 李대통령이 직접 쓴 漢詩(한시) 등이 전시되어 있다.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미가 담긴 유물들이 일반 책상크기의 전시함 6개에 빼곡히 들어 있다. 그 중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손수건과 직접 날렸다는 태극연이 보였다. 李대통령의 손수건 크기는 가로 15㎝, 세로 20㎝이고 색은 약간 바래있는 상태였다. 韓半島(한반도) 지도가 그려져 있고 지도의 한 가운데 太極旗(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錦繡江山(금수강산) 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서재의 안쪽에는 李承晩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다. 5평 남짓한 공간에 나무로 된 책상과 의자, 병풍, 책장 2짝, 손님용으로 보이는 소파 4개 등이 자리잡고 있다. 나무 책상 위에는 타이프라이터, 펜꽂이, 성경책 등이 놓여 있고 책장에는 경제학, 정치·외교, 국제관계학, 사서삼경을 비롯한 李대통령이 평소에 봤던 대략 100여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다.

 

- 검소한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침실, 부엌, 프란체스카여사의 방

 안채 거실의 반대쪽에는 침실, 부엌, 프란체스카 여사의 방이 있다. 부엌에는 식탁, 냉장고, 낡은 찬장, 놋그릇 10여점, 李대통령의 낚시대, 낚시대회에서 받은 트로피, 프란체스카 여사가 사용했던 앞치마까지…. 일반 가정집의 부엌을 연상케 했다. 부엌의 안쪽에는 찬장으로 쓰였던 나무 궤짝과 쌀통이 있다. 이 궤짝에는 李承晩 대통령의 친필로 새겨진「國富兵强 永世自由」란 글귀가 있다. ‘國家(국가)가 부유하고 兵使(병사)가 강건하면 오랜 시간 동안 自由(자유)롭다’는 의미이다. 李承晩 대통령의 국가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글귀였다. 

 

 부엌에서 나오면 李承晩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방이 있다. 이곳에는 프란체스카 여사가 지녔던 물건들이 보관·전시되고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자식 교육을 위해 스스로 모아 사용하신 몽당연필, 여사의 기워 입은 속옷, 지갑과 모자 등의 소지품, 벽에는 李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으며 편지와 일기, 프란체스카 여사의 어머니로부터 선물받은 작은 조각상 등이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비망록을 겸한 일기엔 그날의 일정, 지출액 등이 꼼꼼히 적혀 있고 옆에는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연습한 듯 보이는 ‘리푸란세스카’라고 적힌 종이도 보관되고 있다.
 

- 종이박스로 된 옷장과 기워 입은 속옷

 

 

 프란체스카 여사의 방 안에 있는 책상 옆쪽에는 영부인의 자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검정 예복이 멋지게 걸려 있었다. 그 옆 벽면에는 철제로 된 옷장과 종이박스 옷장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특히 종이박스로 된 옷장이 눈에 띄었다. 이 종이 박스로 된 옷장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1960년부터 1965년까지 하와이 체재 시절 사용했던 옷장이다. 옷장 속에는 점무늬 원피스 등 프란체스카 여사가 평소에 입던 옷가지들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방에 있는 진열장 中 하나에는 프란체스카 여사의 속내의가 진열되어 있다. 이 속내의에는 기워 입은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직접 꿰맨 것으로 보이는 이 속옷의 두 군데 해진 곳에는 작은 헝겊 조각을 대 정성스럽게 꿰맸다.

 

 프란체스카(Francesca Donner Rhee, 1900~1992) 여사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출생했다. 1933년 독립운동을 위해 제네바로 온 李박사와 우연히 처음 만났고 이듬해 1934년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독립운동하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 1941년 출간된 李박사의 저서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Japan Inside Out)’의 원고를 직접 타자로 쳐주기도 했다. 1948년 이후 대통령 부인으로 6·25전쟁, 4·19의거 등을 체험했다. 1960년 남편의 망명길을 따라 하와이 호놀룰루市에서 1965년까지 李대통령의 병상을 돌보았다. 李承晩 대통령 逝去(서거) 후 1970년 귀국하여 1992년까지 梨花莊에서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이 있다.

 

 현재 梨花莊의 하루 평균 방문객수는 40명 가량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학교에서 오는 단체관람, 지방에서 오는 단체관광 등의 방문이 있을 때는 400~500명이 올 때도 있다. 梨花莊 건물과 부지는 유족의 소유다. 서울市에서는 건물 보호와 보수에 대한 지원을 해주고 있다. 전시장 운영과 유지 등의 비용은 유족측이 부담한다. 서울시 문화국 관계자는 梨花莊은 國·公有(국·공유)재산이 아닌 私有(사유)재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관람료, 관리인 봉급, 홍보 등의 비용을 시에서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 2009-08-31, 18: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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