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과 北宋의 유사점
北宋의 敗亡史가 남긴 교훈(4)/군대 안 간 대통령이 군대 안 간 학자를 국무총리로 뽑는 나라는 北宋式 문관 優位 체제와 하등 다를 바 없다.

鄭淳台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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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국가 시스템
  
  北宋은 경제적으로는 번영해 가던 과정에서 갑자기 패망했다. 北宋의 경제 번영은 그 인구 증가추세만 보아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宋會要(송회요)>에 따르면 건국한 지 43년 만인 3대 황제 眞宗 당시(1003년) 인구가 1400여만 명이었는데, 멸망 17년 전인 휘종 때(1110년)에는 4600여만 명으로 급증했다. 불과 100년 만에 인구가 3배 이상 증가했던 것이다.
  
  반면, 北宋의 富를 뜯어먹으며 漢族에게 민족적 수모를 가했던 거란족・탕구트族・여진족은 건국 당시 모두 100만 이하의 인구 소국들이었다. 사회발전 단계의 측면에서도 北宋은 주변 기마민족 국가들과는 차원을 달리하여 이미 近代(근대)를 호흡하고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近代 진입시기를 北宋의 건국(서기 960년)과 전국 통일(979년) 무렵으로 인정하고 있다. 당시 北宋은 이슬람 세계를 제외하면 가장 선진국이었다. 유럽의 近代 진입은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에서 르네상스가 개화한 1330년 무렵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에는 그때서야 1세기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 제조법이 이슬람 세계를 통해 전래되었다.
  
  그러나 인구수가 많고 경제력이 강하다고 해서 군사력도 그와 비례해서 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오히려 배고픈 군대가 배부른 군대를 이긴 경우가 더 많다. 원래 야전군의 능력은 그 출신 지역이 열악하면 열악할수록 더욱 강해지게 마련이다. 이 점은 분단상황 한국이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면 北宋의 패망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방체계를 잘못 깔았기 때문이다. 태조 趙匡胤(조광윤)은 건국 초부터 쿠데타 방지를 위해 强幹弱枝(강간약지) 정책을 추진했다. 이것은 황제 친위대, 즉 수도방위사령부만 강화하고(强幹), 국경 주둔의 야전군을 의도적으로 약체화(弱枝)시켰다.
  
  그 자신이 유력한 군벌 출신으로 어느 날 갑자기 부하들에 의해 황제로 옹립된 太祖 조광윤은 절도사들의 발호와 쿠데타의 위험성을 그 누구보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는 北宋을 창업한 뒤 밤잠을 이룰 수 없어 미복 차림으로 자주 황궁을 빠져나와 옛 쿠데타 동지인 장군들의 동정을 감시하고 다닐 정도였다.
  
  北宋의 황제들은 환관을 야전군의 감독관으로 파견하여 사령관들을 감시하고 작전에도 간여하게 했는데, 심지어는 신임하는 환관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바로 휘종대의 총사령관 童貫이 바로 환관이었다. 그는 재물을 탐하고 국가위기 때는 평소의 큰소리와는 정반대로 일선에서 제일 먼저 도망쳤다.
  
  北宋은 文臣 優位의 나라였다. 科擧(과거) 제도를 사실상 최초로 정착시켜 시빌리언 컨트럴을 확립했다고는 하지만, 武臣을 천시한 나쁜 풍토가 정착되어 국가의 위기를 관리할 만한 將帥(장수)를 양성하지 못했다. 文武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국가는 생존의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황제가 직접 관리한 과거제도를 통해 등장한 北宋의 문신들은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당파싸움은 잘 했지만. 국가경영에는 무능했다.
  
  北宋의 풍토에서는 거의 독보적 경세가였던 王安石이 재상으로 발탁되어 개혁정치를 시도했지만, 당시 문화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舊法黨 등의 반발로 실패하고 말았다. 구법당의 영수급은 <자치통감>의 저자 司馬光, 그리고 唐宋八大家로 文名이 높은 蘇洵(소순)・蘇軾(소식)・蘇轍(소철) 3父子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한 문신관료들이었다. 宋代 문학의 대표작 ‘赤壁賦(적벽부)’를 지은 蘇東坡(소동파)의 본명이 바로 蘇軾이다.
  
  반면 王安石은 지지기반이 약했다. 그의 新法黨에 가담한 인물들도 대부분 新法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勢가 불리하면 그들의 스승 王安石까지 매도하는 기회주의자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앞서간 王安石의 비극이었고, 그의 개혁정치가 실패한 이유였다.
  
  *北宋 멸망사는 한국인의 反面敎師(반면교사)
  
  오늘의 한국도 文化권력이 좌파 지식인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는 점에서 北宋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나라다. 우리 학계・예술계・언론계의 현실이 바로 그러하여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좌파의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金日成-金正日 주의를 비호・동조하는 깽판 세력이 ‘進步(진보)’의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 150여개 나라 가운데 경제적 성공으로 G20에 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런 한국의 해방 以後史(이후사)를 실패한 역사로 경멸하고, 그 민족사적 정통성에 흠집을 내는 것을 마치 지식인의 사명인 것처럼 인식하는 풍토가 시정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건전성은 담보될 수 없다.
  
  군대 안 간 대통령이 군대 안 간 학자를 국무총리로 뽑는 나라는 北宋式 문관 優位 체제와 하등 다를 바 없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사람이 국가지도자가 된다면 국군의 사기와 국방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北宋의 亡國史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위험하다.
  
  
[ 2009-10-28, 10: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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