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근교 '죽은 자의 계곡'에서
화강암 산을 파고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岩窟(암굴) 성당이다. 이 성당은 스페인 內戰 때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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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가는 나라는 프랑스이다. 작년 통계로는 7930만 명이 방문하였다. 다음은 미국 5800만, 이어서 스페인 5730만, 중국 5300만, 이탈리아 4270만, 영국 3020만, 우크라이나 2540만, 독일 2490만, 멕시코 2260만 명이다.
  
  관광 수입으로는 미국이 작년에 1101억 달러를 올려 1등이다. 2등은 스페인으로서 616억 달러, 이어서 프랑스 556억, 이탈리아 457억, 중국 408억, 독일 400억, 영국 360억, 호주 247억, 터키 220억, 오스트리아 218억 달러이다.
  
  해외 관광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인들이 작년에 해외 여행에 쓴 돈은 910억 달러. 이어서 미국인이 797억, 영국인 685억, 프랑스인 431억, 중국인 362억, 이탈리아인 308억, 일본인 279억, 캐나다인 269억, 러시아인 249억, 네덜란드인 217억 달러 순이었다. 재작년엔 한국이 이 부문에서 10등이었는데, 작년엔 금융위기로 해외 여행을 자제한 때문인지 10등에 들지 못하였다.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는 파리로서 작년에 1560만 명이었다. 2등은 런던(1480만), 뱅콕(1084만), 싱가포르(1010만), 뉴욕(950만), 홍콩(794만), 이스탄불(705만), 두바이(690만), 상해(666만), 로마(612만 명) 차례였다. 서울은 작년에 499만 명이 방문하여 세계11위를 차지하였다.
  
  해외 여행을 비교적 많이 하는 나의 머리에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나라는 스페인이다. 기억이 이미지로서 남는 나라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행꾼들의 거의 공통된 인상이다. 눈을 감으면 스페인의 자연과 건축물들이 많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스페인이 프랑스보다도 더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페인은 高原지대가 많다. 겨울에 이곳은 한국만큼 춥고 雪原이 된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雪原은 시베리아에서 찍은 게 아니라 마드리드 근교에서 촬영하였다.
  
   지중해 연안은 그리스, 이탈리아 분위기이다. 황량한 들판, 돌산, 특히 달나라의 풍경을 연출하는 3000m급 피레네 및 시에라 네바다 산맥, 투명한 하늘과 바다, 드 넓은 공간,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다. 로마, 게르만족(고트족), 유태인, 이슬람, 기독교, 바스크족, 카탈루니아 사람 등이 어울려 만들어낸 다양한 건축물과 문화 예술들이 상호 대조를 이루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이런 다양한 문화적 배경 덕분에 스페인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이 41개이다. 한때는 이탈리아를 누르고 세계 1등이었는데, 3년 전부터 이탈리아가 새로 등록한 유산이 많아 2등으로 밀렸다. 1등 이탈리아는 43개, 3등인 중국은 38개의 유네스코 문화 유산을 갖고 있다.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약800년간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때 이슬람은 모든 분야에서 기독교보다 앞선 文明과 개방성을 지녔다. 이들이 스페인에 남긴 유적은 아랍에 남긴 것들보다 더 뛰어난 예술성을 뽐낸다. 이슬람 세력의 수도였던 코르도바와 그라나다에 있는 모스크와 궁전은 오리엔트적이고 異國的이다. 11세기 前後, 코르도바는 인구가 50만 명으로서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달빛 비치는 古都 톨레도의 밤골복엔 로보캅처럼 무장한 중세 기사가 나올 것 같다. 가우디의 미완성 성당이 괴물처런 내려다 보는 바르셀로나의 풍성한 예술혼과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과 코르도바의 메조키트 大모스크가 풍기는 이슬람 정신과 美感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세빌리아 대성당의 황금 장식은 신대륙 개척이 몰고온 富를 상징하고,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펠리페 2세의 궁전 에스코리알의 壯重함은 독일계 합스부르그 왕조의 근엄한 분위기를 나타내며, 레알 마드리드의 궁전은 프랑스계 부르봉 왕조의 화사한 풍조를 대변한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고야의 방에 들어가면 섬찟하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기한 그림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의 악마성을 목격한 위대한 미술가의 고백이다. 그 전통을 이은 게 마드리드 소피아 미술관에 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2차세계대전의 전주곡이었던 스페인 內戰 때 게르니카를 폭격한 나치의 만행을 고발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민주화된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에는 '죽은 자의 계곡'(Valle de los Caidos)이라 불리는 엄청난 기념물이 있다. 프랑코의 무덤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화강암 산을 파고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岩窟(암굴) 성당이다. 이 성당은 스페인 內戰 때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內戰에 진 공화파와 이긴 프랑코파의 戰死者 모두를 추모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역시 勝者를 위한 기념물이다. 이 공사를 하는 데 공화파 죄수 2000명이 매일 동원되었다.
  
  El Valle de Los Caidos
  '죽은 자의 계곡'(Valle de los Caidos)
  
  이 암굴성당은 262m로서 로마의 聖베드로 성당보다 더 길다. 本堂의 좌우 양쪽에 각3개씩의 예배당이 붙어 있다. 지름 40m나 되는 半球天井 아래에 1975년에 죽은 스페인 총통 프랑코의 무덤이 있다. 그의 정치적 동지인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드 리베라의 무덤이 맞은 편에 있다.
  
  이 성당이 파고든 해발 1400m 바위산 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돌 十字架(십자가)가 서 있다. 높이는 140m, 너비는 47m, 여기에 들어간 石材의 무게는 20만t이나 된다. 성당 입구에서 내려다 보면 해발 600m의 마드리드 근교가 파노라마이다.
  
   2005년 11월20일은 스페인을 40년 간 통치하면서 오늘의 번영과 민주화의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되는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고 22일은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한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그때 필자는 스페인에 있었다. 후안 카를로스 王에 대한 지지도 조사가 발표됐는데 79%였다.
  
   카를로스 스페인王은 프랑코의 産物이다. 프랑코는 자신의 후계자로 스페인 부르봉 王家의 왕자인 카를로스를 찍어두고 11세부터 직접 후계자로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프랑코가 죽자 37세의 카를로스 王이 등장하여 그 후 30여년 동안 스페인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뒷받침했다. 1981년 민주화에 반대하는 군부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때 카를로스 왕은 직접 軍 사령관들을 설득하여 이 기도가 실패하도록 했다. 카를로스 왕과 소피아 왕비는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스페인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카를로스 왕의 善政 덕분에 프랑코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다. 프랑코는 내전 때 좌익들을 쳐부수고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히틀러의 도움을 받았으나 2차 세계대전 때는 주축국 편에 서라는 히틀러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프랑코는 결정적 시기에 줄을 잘 섰고, 후계자 선택에 성공하였다. 이것은 모든 정치인의 성공비결이기도 하다.
[ 2009-11-15, 13: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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