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은 변호사 시절 5년간 60억, 박시환은 22개월간 22억원 벌었다"
주성영 의원, "두 사람이 前官예우의 수혜자"라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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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 소속 주성영 의원은 10일 前官예우의 전형적 사례로 이용훈 대법원장과 박시환 대법관을 거론하면서 사법부의 귀족주의와 순혈주의를 깨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하였다.
  
  朱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특위 전체회의에서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단어가 前官예우”라며 “이용훈 대법원장과 박시환 대법관에게서 전관예우의 전형적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朱 의원은 “李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마치고 5년 동안 변호사 수임료만 60억원을 신고했다”며 “李 대법원장이 맡은 사건의 70%가 대법원 사건이었고, 열악한 人力사정 때문에 대법원 사건의 70%가 기각된다는 불리한 조건을 감안하면 李 대법원장이 매달 1억원씩 신고한 것은 前官예우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박시환 대법관도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나서 22개월간 변호사로 일했는데 당시 수임료가 22억원, 월 9천만원꼴이었다”며 “사건 내역을 보면 한 건에 5천만원짜리 형사사건이 있는데 이는 전관예우에 기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朱 의원은 또 “우리 사법부는 그동안 귀족.순혈.엘리트주의의 장막에 갇혀 중세시대 귀족처럼 城을 둘러치고 앉아 자기들만의 공화국을 건설했다”며 “사법부는 이제 城을 깨고 국민 옆으로 다가서는 서비스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사회 일각에서 '문제판사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우리법 연구회에선 '박시환 정신' 운운 하면서 그를 모범으로 삼으려는 현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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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판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런 주장을 하였다.
  
   <우리법연구회의 정체성이 진보냐, 개혁이냐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략). 힘 없고 돈 없는 다수의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하여 법원에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는 한, 누군가가 이에 답변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수도 전체 법관의 3%가 넘습니다.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의 소금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요? (중략). 신영복 선생(*)은 말하였습니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성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는 회장에 선출된 후 쓴 글에서 <우리법연구회 이름에 녹아 있는 박시환 정신, 목숨 걸고 재판한 한기택 정신, 그리고 늘 푸른 당신의 정신과 함께 우리법연구회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라고 했다.
  
  
   *신영복 씨는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8년 석방됐던 인물이다. 통혁당은 중앙당(中央黨)인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받는 지하당(地下黨)이었다. 주범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월북(越北)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당원(黨員)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68년 6월 말 통혁당 사건이 터지자 북한에 머물렀다.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美貨 7만 달러, 韓貨 3천만 원, 日貨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집단 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揚陸)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띄고 있었다. 신영복 씨는 석방된 후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해오다 2006년 퇴직했다.
  
   申씨는 같은 해 6월2일 정년퇴임 시 교단을 떠나는 소회를 묻자 『진보적 학풍의 성공회대였기 때문에 左派색깔이 확실한 나 같은 사람이 안정적으로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다』며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던 것들이 가장 큰 추억이며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젊은 사람들과 소통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1월17일 申씨는 연세대에서 민노당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자본축적은 근본적 모순체제』라고 비판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며 이렇게 결론짓는다.
  
   《자본주의 체제, 종속적 자본주의, 천민적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도 몰라. 그러나 논리적 이론적 사고를 한다면 「非인간적 근본적 모순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자본 축척은 근본적 모순체제다. 和(화)의 철학을 기초해서 만들어 가야한다. 억압적 구조에서 취약역량을 가지고 희망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샛길은 없다. 사회를 바꾸어 내자. 정말 황폐화된 인간관계 삶의 일부로서 실천해야한다. 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행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할 것이다》
  
   申씨는 2003년 10월 송두율이 입국하자,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성명(2003. 10. 23)」,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성명(2004. 3. 11)」및「송두율석방대책위」고문 등으로 참여하며 소위 송두율 석방투쟁의 전면에 섰었다.
  
   그는「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성명(2004. 10.27)」「6.15공동선언, 10.4선언 이행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계 인사 공동선언(2008. 6. 14)」등에 참여해 국보법폐지와 6.15 및 10.4선언 이행 촉구에도 앞장서왔다.
  
  
  
[ 2010-02-10, 14: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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