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哲鏞 장군, "김정일은 南韓TV 보고 작전 성공 알았을 것"
"作戰 잠수함은 보안 위하여 격침 성공 보고도 못했을 것. 밤중에 미그29를 내려 보낸 것은 상황파악 및 南의 보복作戰에 대응하기 위한 것"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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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특이 동향 없음’은 對국민 허위보고?
  
  
   지난 3월26일 밤 9시22분 해군 초계함 天安艦(천안함) 침몰 이후 드러난 수많은 事後(사후) 정보에 의하여 우리는 당시 대통령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를 逆算(역산)할 수 있게 되었다. 침몰 다음날(3월27일) 아침 李明博(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다음과 같은 사안을 보고받아 알고 있었다.
  
   1. 천안함 함장이 침몰 직후 "뭔가에 맞았다"고 보고한 사실.
   2. 천안함 생존자들이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배가 솟구치고 순식간에 두 동강 났다"고 증언한 사실. 승조원 46명이 동강 나 가라앉은 艦尾(함미)에 갇혀 있다는 사실.
   3. 金泰榮(김태영) 국방장관이, 천안함을 공격한 뒤 북한으로 달아나는 것으로 판단, 정체불명의 물체에 대하여 사격명령을 허가한 사실. 그는 국회에서 당시 "북한의 도발로 생각했기 때문에 敵의 잠수정의 탈주를 막기 위해 백령도 인근 해상의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속초함을 북방한계선(NLL)로 보냈다"고 증언하였다.
   4. 對潛(대잠)헬기가 즉시 백령도 海域(해역)에 투입되어 잠수함정 수색에 나선 사실.
   5. 천안함 침몰 한 시간이 지나 서해안의 공군기지에서 비상출격이 이뤄진 사실.
   6. 북한 군용기가 이례적인 야간비행으로 南下한 사실.
  
   한밤중에 接敵海域(접적해역)에서 입체적인 實戰(실전)상황이 벌어졌다는 이런 보고를 받고 참모들과 대책을 논의한 대통령은 대변인(김은혜)을 시켜 27일 오전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하도록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아침 7시 30분부터 안보 관계 장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李 대통령은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구조할 수 있도록 軍은 총력을 기울여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또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 회의에서는 아직까지 북한의 특이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
   긴박한 현장의 전투태세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영락없는 海難사고 발표문이었다.
   전날 밤 천안함 침몰 직후 合參(합참) 정보작전처장 이기식 준장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북한이 했다고 아직 증명할 수 없다. 원인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순간적으로 일어나서 아직 원인 규명이 안 되는 상황이다. 날이 밝아야 한다.”
   KBS, MBC, 연합뉴스는 즉시 이 두 발표를 근거로 ‘북한無關說(무관설)’을 확산시키기 시작하였다. 일반 독자들은 북한 개입 가능성은 없으니 안심해도 되겠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북한 전투기의 深夜 비행
  
   ‘특이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는 문장은 문법에도 맞지 않다. ‘특이동향은 感知되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가 맞다. ‘금강산은 없다’와 ‘금강산은 보이지 않는다’는 엄청 다르다.
   그날 있었던 가장 큰 ‘북측 특이동향’은 비행기의 야간기동이었다. 밤에는 좀처럼 뜨지 않는 북한 군용기가 평양 부근에서 이륙, NLL로 접근하다가 레이다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2002년 6월 서해에서 북한 함정이 무력 도발을 할 것이란 특수 정보를 입수, 국방부에 보고하였던(국방부에선 이를 묵살) 당시 국군감청부대(5679부대)의 韓哲鏞 예비역 소장은 이 군용기의 南下(남하)를 중요 정보라고 해석하였다.
  
   “나는 천안함이 김정일 특명에 의하여 북한노동당 차원의 對南(대남)공작으로 파괴되었다고 본다. 확대 개편되었다는 정찰국과 같은 對南공작 기관에서 잠수함정을 이용하여 우리를 친 것이다. 잠수함정을 투입하면 통신은 무조건 침묵시킨다. 천안함을 격침시킨 북한 잠수함은 성공 보고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 잠수함이 교신하면 우리가 위치를 알아내 공격할 수 있다. 잠수함은 속도가 느리므로 위치만 확인되면 간단하게 파괴할 수 있다. 김정일은 아마도 그날 밤 남한 텔레비전을 보고 작전의 성공을 알았을 것이다. 궁금해진 그는 두 가지 목적으로 미그 29와 같은 신예 전투기를 밤중에 내려 보냈을 것이다. 하나는 작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 둘째는 남한의 보복에 대비하기 위한 前進(전진) 배치. 2002년 6월29일 그들이 우리 고속정을 침몰시켰을 때도 보복에 대비하기 위하여 신예 전투기를 황해도 공군기지에 배치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밤중에 평양에서 내려온 편대가 평양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때처럼 황해도의 한 공군기지에 착륙하였다고 판단된다.”
  
   이런 중대 사안에서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최초 발언이 그 후 사건의 흐름을 결정한다. '북측 특이동향 없음'이란 최초 설명이, 그 뒤 북한無關說을 확산시키고, 따라서 천안함 침몰은 암초충돌, 기름탱크 폭발, 금속피로에 의한 船體(선체) 파괴 등 내부요인에 의한 것이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도 북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은 채 人命(인명)구조의 중요성만 강조함으로써 軍艦침몰이란 거대한 安保사건을 海難사고 정도로 취급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기사 全文은 발매중인 月刊朝鮮 5월호에 실려 있음)
[ 2010-04-19, 09: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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