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記者의 사회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저 사람은 부인했다 식으로 이 말 저 말 중계나 하여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은 기자가 아니라도 할 사람들이 많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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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進사회는 좋은 記者들이 많은 社會이다. 기자는 거짓과 사실을 구별하여 알리는 전문가이다. 그런 기자들이 많으면 汚物(거짓)은 제거되고 맑은 물이 흐른다. 기자들이 그런 여과기능을 하지 않으면 사회는 거짓말 찌거기로 막혀 장애가 온다.
  
  趙顯五 경찰청장 내정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가명계좌의 존재를 명시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하여 한국의 기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달을 가리키는 스님의 손가락만 쳐다보고 떠들어대는 모습이다. 趙 내정자는, 한국에서 정보가 가장 많은 사람중의 한 명이다. 그 사람이 한 말을 근거로 후속취재를 하여 가명계좌의 眞僞(진위) 여부를 가려내야 할 사람은 사실확인 전문집단인 언론이다.
  
  기자들은, 검찰이 부인했다거나 前職(전직) 검사는 여운을 남겼다거나 하는 구경꾼 자세가 아니라 직접 진실에 접근하려는 기자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노력은 힘이 든다. 기자들은 쉬운 방향으로 간다. 趙 내정자의 다른 문제성 발언들을 끌고 와서 亂打(난타)한다. 중대한 것을 피하고 사소한 데 목숨 거는 모습이다.
  
  기자들중엔 이념적으로 편향된 이들이 많다. 이들은 좌경세력의 부정이나 문제점은 회피하거나 감싸고 대한민국 체제 세력에 대한 공격엔 용감한 경향이 있다. 경찰청장 내정자가 與黨 간부의 가명계좌 존재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더라면 기자들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취재경쟁을 벌였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한국 기독교가 합동으로 8·15 대성회를 서울시청광장을 비롯한 全國 40여 군데서 벌였다. 서울엔 30만 기독교인들이 모였다. 광장뿐 아니라 남대문~세종로 네거리 도로도 사람들로 꽉 찼다. 이 거대한 집회를 保守(보수)신문조차 1단 기사, 사진 한 장 정도로 보도하였다. 좌익들 10명이 시위한 기사보다도 작게 다뤘다.
  
  大聖會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애국적인 설교와 기도를 하였다.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고 통일을 열망하며 북한동포와 탈북자들의 참상을 同情(동정)하였다. 좌경 기자들 눈엔 이게 못마땅하였을 것이다. 만약 불교도가 이 정도의 人波(인파)를 모아서 정부를 비판하는 행사를 하였다면 머리 기사로 보도되었을 것이다.
  
  한국 언론의 좌경화가 反국가, 反기독교, 反사실적 경향을 띠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게 작금의 사건들이다. 한국의 좌익은 從北反韓的(종북반한적) 성향이 강한데 이런 이념적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리라.
  
  기자는 신념, 종교, 계층, 필요하면 國籍(국적)까지도 넘어서서 사실에 육박하고 사실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프로이다.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저 사람은 부인했다 식으로 이 말 저 말 중계나 하여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은 기자가 아니라도 할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죽은 기자의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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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보수주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에는 1960, 1970년대만 해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보수주의는 없었습니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동양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비합리적이고 유교적인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죠. 유교라는 것 자체가 지배계층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던 도구니까. 보수주의는 그렇게 변질된 채 내려왔죠.”
  
  안 이사장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가 탄생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 그 뒤로도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극히 최근에 와서야 보수주의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하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게 안 이사장의 주장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한국의 헌법적 이념으로 정착되기까지는 기복이 많았지만 뚜렷한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 서구적 가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改化 운동, 인권과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알린 기독교의 확산, 자주와 독립을 지향한 抗日독립운동, 李承晩 영도하의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한 헌법제정과 건국, 자유민주주의가 기능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개혁(농지개혁, 교육확충 등), 공산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낸 6.25 전쟁, 자유와 번영을 지키는 울타리로서 한미동맹 건설, 박정희 영도하의 산업화와 한국적 민주주의의 실험, 학생 지식인 중심의 민주화 운동이 중산층으로 확산되는 과정, 1980년대 全斗煥의 개방정책, 6월 사태와 6.29 선언, 직선제 개헌에 의한 노태우 정부의 출범, 2대에 걸친 좌파정권의 등장과 보수세력의 반격, 그리고 李明博 중도정권의 등장. 100년이 넘는 모색과 실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형식과 내용을 갖추어가고 있는 과정이다. 한국의 보수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는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생산과 건설의 구체적인 이념이다.
  안병직씨는 한국 보수주의가 갖는 이런 역사성을 무시하고 ‘한국에는 1960, 1970년대만 해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보수주의는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건설되는 과정에 대한 沒이해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大人物인 李承晩 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아닌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이 정도로 기능하도록 물질적, 제도적 바탕을 만든 朴正熙도 안병직씨 눈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인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럴 듯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였는가?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가 탄생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고 했는데 이 보수주의자들이 1960, 70년대의 한국을 건설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주의(자유민주주의)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란 이야기가 된다.
  그는 반공주의를 버린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주의자를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1950년, 60년대에 그런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들’이 한국을 통치하였더라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중산층, 제도, 경제력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하였더라면 한국은 필리핀이나 파키스탄처럼 되었을 것이다. 李承晩, 朴正熙의 위대성은 민주주의의 이상뿐 아니라 한계를 잘 알았다는 점이다. 국가를 지키는 것이 과잉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박정희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한국에 그대로 옮겨 심으면 나무도 죽고 밭도 버린다”고 확신하였다. 張勉 정부의 실패는 그 좋은 사례였다.
  李承晩은 무리가 있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하는 방식을 국민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戰時임에도 그는 언론검열을 하지 않았고,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으며, 최대 규모의 선거를 실시하였다. 전시하의 통화개혁을 할 때도 개인 예금 동결에 반대하였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는 하나님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한국의 현실에 맞게 변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민주주의의 경험이 10년 남짓한 나라에 수백 년간 성숙된 서구의 민주주의를 그대로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당세력을 ‘가식적 민주주의’ ‘사대적 민주주의’라고 비판하였고 자신을 민족적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옹호하였다.
  
  앞으로 역사는 李承晩, 朴正熙를 한국 민주주의의 2대 건설자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야당과 학생 및 지식인들이 외친 민주주의는 두 대통령이 독재화의 길을 가는 것을 견제한 공이 있으나 민주주의를 실천한 이들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은 1965년 이후이다. 한국에서는 건국 당시부터 모든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변이 몇 차례 있었지만 있어야 할 선거가 중단된 적도 없었다. 언론자유와 사유재산권에 대한 본질적인 제한이 있었던 기간도 매우 짧았다.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1948년 이후 한번도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동양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비합리적이고 유교적인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죠’라는 말도 사실과 너무나 다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서구적인 이념에 기초한 것이다. 이승만은 동양적 교양을 바탕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수용한 사람이다. 박정희는 국가주의적인 성향에다가 미국식 조직경영술을 더하여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였던 이다. 동양적 전통과 비합리성과 유교적인 전 근대성을 극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이승만, 박정희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세력(자유민주주의 세력)이었다. 나쁜 동양적 전통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것은 김정일 정권이다.
   안병직씨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6·25전쟁 때문에 한국의 보수주의가 색깔론으로 뒤덮이게 됐습니다. 한국의 보수는 대부분 반공주의를 앞세우는 게 문제예요. 반공주의가 보수주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북한과 내통하고 협력하는 종북(從北)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사상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유주의 속에 모든 사상을 다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상의 자유가 없으면 한국 사회는 선진화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길입니다.”
  
   안씨의 말은 자체적으로 모순이다. 보수주의가 가진 반공성을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측면에선 반공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북한과 내통하고 협력하는 종북(從北)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사상을 존중해야 합니다’라는 안병직씨의 말은 맞다. 종북(從北)주의를 公的 領域에서 배제하자는 것이 反共이다. 안병직씨도 그런 면에서 반공적이다. 물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거의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지금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버려야 할 反共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를 완벽하게(실질적인 면에선 미국과 유럽보다 더 많이) 보장하고 있는 한국에서 反共을 버리란 말은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반공적 자세를 버리라는 것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죽으라는 말이 된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이란 방패와 울타리가 없으면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을 허용, 체제가 죽게 되어 있다. 반공은 生과 死의 문제이다.
   한국의 국가이념은 반공자유민주주의이다. 반공주의도 아니고 완벽한 자유민주주의도 아니다. 반공을 하되 자유민주적으로 해야 하며(즉 법치주의에 의하여), 자유민주주의를 하되 공산주의를 배제하여야 한다.
   안병직씨는 “보수는 반공을 버리고, 진보는 從北性을 버려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균형감각이 없는, 위험한 兩非論이다. 그가 말한 진보는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 친북세력이 중심이 된 좌익세력이다. 이들이 버려야 할 것은 종북성이 맞지만 보수가 버려야 할 것은 반공이 아니다. 反헌법적이고 反국가적이며 反역사적인 자칭 진보세력과 대한민국 세력인 보수세력을 동격으로 놓고 兩非論을 펴는 것은 형사와 살인범을 同格으로 놓고 충고하는 것과 같은 불균형이다.
  
   <안 이사장은 진보주의자들에 대해선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점, 사회운동을 해도 대한민국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이사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을 토대로 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전제가 필요하다. ‘헌법 체제’에 대한 인정,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에 대한 인정이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진보 진영 가운데 일부는 레닌주의, 또 다른 일부는 종북부의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닙니까. 민주당도 이념적으로 정립이 안 돼 있고요. 한국의 좌파는 외국에서 수입된 이론의 ‘중간 도매상’에 불과합니다. 자기 이론이 없어요. 한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한국 사회의 발전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정당이 어디 있습니까.”
   보수 진영에 대해서는 반공주의를 버리고 진보 진영에 대해서는 종북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게 안 이사장의 각별한 권고다. 둘이 만나기 위한 대전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틀 밖에서 우리 체제를 공격하는 건 결국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일 뿐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사회운동을 해도 대한민국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안병직씨의 주장은 옳다. 그런데 보수주의가 반공적 자세를 버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토대를 허무는 일이다.
   한국에서 반공은 이런 의미를 갖는다.
  
   1. 민족반역세력에 대한 반대
   2.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반대
   3. 反시장주의 세력에 대한 반대
   4. 反민주세력에 대한 반대
   5. 惡에 대한 반대
  
   이런 反共태세를 버리면 한국의 어린 자유민주주의는 敵前 무장해제 된다. 한국은 통일 후에도 反共태세를 버려선 안 된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공산당의 不法化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라. 서독의 자유민주세력이 반공을 포기하였더라면 공산세력의 내부 분열 공작에 걸려 東獨을 흡수통일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악의 세력이다. 그 악의 세력이 자유민주체제를 죽이려 하는데 거기에 반대하지 말라고 한다면 죽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말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反共이 인기가 없는 단어이니 이를 포기하라고 하면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誤算이 될 것이다. 반공과 자유는 같이 가야 서로가 산다. 反共을 버리면 자유도 버리게 된다. 惡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惡의 편에 서게 된다.
  
  
  
  
  안 이사장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보수주의도 맹비난했다. 지배계급이 자신의 가문과 권위를 유지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수주의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책임이라는 전통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주제가 발달한 서구와 달리 중앙집권제 아래 지주제가 발달한 한국은 가진 계층이 사회적 의무를 부담하는 전통이 짧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 2010-08-17, 10: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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