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과 惡에 맞선 反共은 愛國이고 正義!
安秉直 교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보수는 反共을 강화하고 자칭 진보는 從北을 버려야.” 保守가 반공을 버리는 것은 자유와 민주와 시장과 통일과 국가와 양심을 버리는 것이다. 반공을 버린 保守는 가짜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後發 민주주의를 先進 민주주의의 잣대로 裁斷(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安秉直(안병직) 교수가 자신의 문화일보 인터뷰 <“보수는 반공(反共), 진보는 종북(從北) 버려야”란 제목>에 대한 필자의 비판에 反論(반론)을 썼다. 한국 현대사를 主導(주도)해온 反共노선의 효용성과 한국식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재미있는 토론이 될 것 같아 再반론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 두 사람의 글에 대한 인터넷 독자들의 의견들도 수준 높은 게 많아 배움이 되었다.
  
  安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나의 비판은 그 핵심이 간단하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反역사적인 자칭 진보세력과 대한민국 정통 세력인 보수세력을 同格(동격)으로 놓고 兩非論을 펴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反共노선의 보호 아래 성장하였다. 당시 현실에서 反共노선은 정당하였다. 지금 한국엔 자유를 제약하는 反共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수가 버려야 할 反共’은 존재하지 않는다. 反共은 惡과 독재에 대한 반대이므로 지금도,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 反共과 자유는 분리할 수 없다. 反共을 버리면 자유도 버리게 된다. 한국은 反共자유민주주의라야 번영할 수 있다.>
  
  安 교수는 반론에서 나의 비판 요지를 잘못 전달하였다. 내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출발부터 온전한 것이었다’면서 과거 정권을 무조건 옹호한 것처럼 썼다. 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지금도 온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不毛(불모)지대에서 태어나 공산세력의 도전을 받았으나 반공노선에 의하여 보호되고 경제발전과 민주화 운동에 의하여 성장해가는 과정에 있다. 그렇기에 李承晩~盧泰愚 정권의 반공노선을 부정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여로 평가하는 것이다.
  
  安 교수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는 後發 민주주의를 先進 민주주의의 잣대로 裁斷하려는 자세가 느껴진다. 태어날 때부터 온전한 민주주의라야 한다는 생각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같다. 이런 자세는 僞善(위선)이고, 自虐(자학)이고, 허무주의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從北세력이 주동하는 法治파괴라는 새로운 도전을 극복하고, 자유통일이란 關門(관문)을 지나야 국민국가 건설을 완성하면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갖출 것이다.
  
  2. 安 교수도 反共을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고 평가
  
  安 교수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란 집의 주춧돌과 기둥을 놓은 반공주의자들을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아니라고 폄하하고, 민주화의 기와를 얹은 사람들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미화하는 식의 평가를 하였다. 이번에 나에 대한 반론을 읽어보니 安 교수 또한 과거의 반공노선을 기본적으론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安 교수는, 이렇게 썼다.
  <1987년 이전에 한국에서 온전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었던 이유는, 첫째 경제발전의 수준이 저개발단계나 경제개발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실현의 기본조건인 중산층의 형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동서 간의 냉전체제와 남북분단으로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7년 이전의 단계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공산주의의 도전으로부터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조건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크게 의존했다는 사실은 한국 자유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고 천명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제약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자기모순(自己矛盾)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安 교수는 반공노선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 시기의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는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장래에 달성되어야 할 목표로서의 정치이념이 현실적 정치체제로 진화(進化)해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외부의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내부로부터 육성해줄 다른 정치이념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였던 것이다.>
  
  3. 링컨도 李承晩, 朴正熙보다 잘할 순 없었을 것
  
  安 교수는, 그런데, 당시의 현실적 조건에 비추어 ‘필수불가결’한 정책을 편 보수세력을 겨냥하여 “한국에는 1960, 1970년대만 해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보수주의는 없었습니다”(문화일보 인터뷰)라고 비판하였다. 安 교수는 李承晩, 朴正熙 두 사람이 ‘자유민주주의가 성장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정책을 폈다고 칭찬하면서 한편으론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비판하였다. 李承晩, 朴正熙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집권 시기에 서구 민주주의 수준의 보수주의를 실천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평가한 것 같다.
  
  1950년, 60년대의 한국에 미국의 제퍼슨이나 링컨을 갖다 놓아도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실천할 순 없었을 것이다. 아니, 李承晩, 朴正熙보다 더한 권위주의적 反共救國(반공구국) 노선을 걸었을 것이다. 남북전쟁 때 링컨은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서구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어기면서 반란동조세력에 대하여 ‘영장 없는 일제 구속’을 명령하였다. 李承晩, 朴正熙가 安 교수로부터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란 평가를 받으려면 공산주의자들에게 ‘사상의 자유’라는 美名하에서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까지 허용, 국가를 해체하는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인 이유는 그런 僞善을 경멸하고 현실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고 키워낸 점 덕분이다.
  
  安 교수는 보수세력의 反共노선을 칭찬하면서도 그 주인공들을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평가하는 데는 인색하다. 노선에 대한 평가와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는 점이 주목된다. 安 교수는, 그만한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인가? 李承晩, 朴正熙가 그만한 인물이 못 되어서가 아니라면 安 교수의 생각이 불철저해서인가?
  
  4. 本末顚倒(본말전도)
  
  安 교수는 반공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반공노선의 부작용도 지적하였다.
  
  <한국은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을 제정·시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공산주의 세력이 폭력으로써 국가를 전복하는 행위만 처벌대상으로 했던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 이론에 관한 학습도 금지했던 것이며 더 나아가 심지어 온전한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을 요구하는 야당과 국민의 정치적 활동까지도 탄압하였다.>
  <반공주의와 권위주의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육성했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제약했다는 사실마저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 또한 반공노선이 실수 없이 완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육성했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제약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필자는 朴正熙 시절 金炯旭(김형욱) 정보부장이, 귀순한 북한의 중앙통신 부사장 李穗根(이수근)을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몰아 죽인 조작사건을 폭로한 사람이다. 기자는 日帝하의 고등계 형사들이 건국된 이후에도 경찰과 軍 및 정보부에서 활동하면서 對共수사뿐 아니라 정치적 탄압의 도구로 활용된 과정을 심층취재, 보도한 적도 있다. 반공의 이름으로 자행된 人權탄압 행위는 비판받아야 마땅하고 기록해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들이 반공노선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논거로 활용될 순 없다. 한국의 반공주의자들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赤化(적화)공작을 분쇄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호, 발전시킨다는 본래의 목적을 잊은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정통세력은 공산주의자들과 봉건적 殘滓(잔재)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3대 핵심인 언론자유-선거의 자유-私有재산권을 본질적으로 부정한 적이 없었다. 한국의 반공투사들은 괴물(북한정권)과 싸우면서도 괴물이 되지 않았다. 소설 ‘1984’의 著者(저자) 조지 오웰은 “공산주의라는 狂信(광신)과 싸울 때 狂信徒가 되지 않으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고 했는데, 李承晩 朴正熙는 머리를 써서 최소한의 人命손실과 人權제약으로 북한의 狂信집단에 이길 수 있는 자유와 번영의 토대를 놓았다.
  
  칼이 殺人에 이용된다고 해서 칼의 용도를 부인하고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순 없는 것이다. 역사적 평가를 내림에 있어서, 反共의 부작용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혼동하는 本末顚倒(본말전도)이다. 개별적 사안에 대하여 도덕적, 법률적 잣대를 들이대어 비판하는 것과 한 시대를 주도한 노선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방법이 달라야 한다. 역사적 평가는 도덕적, 법률적 평가를 포괄하되 보다 총체적이고, 종합적이며, 균형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반공노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반공이 자유를 지켜냈고 번영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確定(확정)된, 역사적인 사실이다.
  
  5. 반공주의는 무덤에 들어간 적이 없다
  
  安 교수는 이렇게 반론하였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하여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다시 무덤에서 일으켜 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갑제 씨는 '한국의 국가이념은 반공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과연 조갑제 씨는 이미 무덤으로 들어간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가.>
  
  위의 문장은 반론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결론에 해당하는데 자체모순이다. 필자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하여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무덤에서 불러내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반공노선은 무덤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적한 것은 반공과 자유를 분리하여 반공을 없애버리자는 安 교수 주장의 모순점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방패로서 반공노선은 헌법 속에, 국가기능 속에, 역사관-국가관-인생관 속에, 즉 우리의 삶속에 살아 있다. 반공은 자유와 함께 한국인의 正體性(정체성)이고 대한민국의 영혼이다. 반공은 자유와 분리할 수 없다. 安씨가 보수에게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 그 ‘반공’은 반공을 빙자하여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탈법적 반공을 뜻하는 듯하다. 지금 한국에 공산주의자들을 응징하기 위하여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써야 한다는 보수주의자가 있는가? 계엄령을 편 뒤 영장 없이 從北(종북)세력을 체포, 투옥하자는 주장을 하는 정당이 있는가? 폭력으로 체제를 지키려는 極右(극우)세력도 없는 나라이다. 安 교수의 주장이 가진 가장 큰 모순은 세력으로 존재하지 않는 극단적 반공주의를 있는 것처럼 想定(상정)한 뒤 이를 버리라고 말한 점, 그리고 필자가 그런 극단적 반공주의자들을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한 점이다. 2중의 사실誤認(오인)이다.
  
  6. 반공과 자유를 떼어놓을 순 없다
  
  安 교수는 또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한 개념으로 통합하는 데 반대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는 반공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아니,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필자를 이렇게 비판하였다.
  
  <조씨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에서 반공은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민족반역세력에 대한 반대, 둘째 전체주의세력에 대한 반대, 셋째 반(反)시장주의세력에 대한 반대, 넷째 반(反)민주세력에 대한 반대, 다섯째, 반(反)법치세력에 대한 반대, 여섯째 악(惡)에 대한 반대'.
   조씨가 주장하는 반공의 의미가 위와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왜 반공을 해야 하는가를 이해할 사람이 있겠는가. 조씨는 반공주의가 보편적인 윤리가 아니고 특정의 사상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린 모양이다. 위의 여섯 가지의 반대를 위하여 왜 꼭 반공주의가 필요한가. 민주사회의 건전한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조씨가 반대하고자 하는 것을 반대할 것이다. 요컨대 조씨가 주장하고자 하는 반공주의는 사상적(思想的)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安 교수는 국민 모두가 ‘민주사회의 건전한 시민’이 된다면 反共을 내세울 필요 없이 자유민주주의만으로 反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安秉直 교수의 주장 - ‘민주사회의 건전한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조씨가 반대하고자 하는 것을 반대할 것이다’는 너무나 안이한 자세이다. 반공적 노력이 없는데도, 민주사회가 저절로 성숙하여 그 구성원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은 틀렸다. 1977년 김일성은 호네커 東獨 공산당 서기장에게 “한국에서 민주화만 되면 설사 반공민주주의자가 집권해도 對南공작에 유리해진다”고 예언한 적이 있었다. 1987년 이후 민주주의가 활발해지는 것과 동시에 從北세력도 민주화의 약점을 악용, 급성장하였다. 後發 민주국가에선 건전한 민주시민층이 갑작스럽게, 또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려도 등장하지 않는 수가 있다. 미래에 등장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그런 ‘건전한 민주시민층’에 오늘의 체제유지 책임을 맡기자는 주장은 비논리적이다. 한국의 보수는 반공의 惡役(악역)을 마다하지 않아야지 그런 근거 없는 낙관론에 공동체의 生死를 맡겨놓을 순 없다. 安 교수가 가진 논리체계의 가장 큰 약점은 한국의 현실과 반공의 의미를 오해한 바탕에서, 머리와 몸처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반공과 자유를 억지로 떼어놓으려 한다는 점이다.
  
  7. 한국의 반공은 세계의 자유를 지켜낸 위대한 선택
  
  그는 왜 이토록 反共을 싫어하는 것일까? 反共의 본질은 700만 학살정권과 그 추종세력에 반대하자는 것인데. 필자가 내세운 것은 반공주의가 아니라 ‘반공자유민주주의’인데도 이 단어에서까지 反共을 떼어버리라는 安씨의 주장에서 극도의 ‘반공 혐오증’마저 느끼게 되는데 다른 문장에선 반공노선의 ‘필수불가결성’을 인정하니 혼란스럽다. 자칭 진보세력에게 從北性을 버리라고 충고하려 하니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보수에게 반공을 버리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한국 현대사의 챔피언인 反共자유 세력은 건설과 생산의 주인공들이고, 從北的 (자칭) 진보세력은 守舊(수구)의 본산인 김정일을 추종하는 깽판꾼과 건달들이다. 그런데, 安 교수는 인터뷰에서 역사 발전세력과 역사의 쓰레기 세력을 同格으로 놓고 兩非論을 폈다.
  
  한국에서 반공은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이며 삶과 죽음의 선택이다. 헌법, 휴전선, 국가보안법, 國情院(국정원), 機務司(기무사), 국군, 경찰, 韓美동맹, 그리고 法治확립과 자유통일이란 국가목표가 모두 반공의 實體이고 실천이다. 반공을 버리라는 말은 이 모든 것들을 없애라는 뜻이 되거나, 그런 주장을 하는 세력에게 이용된다.
  
  識者層(식자층)에는 반공을 부정해야 양식 있는 지식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번영은 반공이란 방패가 없었더라면 지킬 수 없었던 가치이다. 부자 집의 자유와 번영을 지켜준 것은 담 위에 친 철조망이었다. 강도가 그 철조망을 가리키면서 비웃는다고 부자 집 주인이 철조망을 걷어내고 경비원을 철수시킨다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한국의 반공은 남한만 지켜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반공으로 자유대한을 세우고, 반공으로 6·25 남침을 저지하고, 반공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였고 반공으로 자유통일을 해야 한다. 이 偉業(위업)은 동서冷戰(냉전)에서 자유세계가 공산세계에 이기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독일과 일본의 부흥, 대만의 保全, 미국의 군비증강은 6·25 때 우리(한국, 미국, 유엔 등)가 반공노선을 견지, 소련-중공-북한의 공격을 저지한 덕분에 가능하였다. 남북한의 체제경쟁에서 남한의 압도적 승리는 공산주의의 파탄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한국의 반공은 세계적 성공사례이다. 반공자유민주 세력의 작품인 서울올림픽이 공산권 붕괴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한국의 반공은 開發年代(개발연대)엔 ‘자유의 방파제’로 기능하였으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숙됨에 따라 이젠 ‘자유의 파도’가 되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발전에 따라 반공의 방식도 進化(진화)하였다. 국가 公權力 중심에서 언론과 교육에 의한 설득력 중심으로.
  
  8. 한국은 사상의 자유가 없는 나라인가?
  
  그럼에도 安 교수는 걱정이 많다.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한국의 보수는 대부분 반공주의를 앞세우는 게 문제예요. 반공주의가 보수주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북한과 내통하고 협력하는 종북(從北)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사상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유주의 속에 모든 사상을 다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상의 자유가 없으면 한국 사회는 선진화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는 지금 한국에 사상의 자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이유는 보수세력의 반공주의 때문이라는 취지이다. 북한정권을 위하여 복무한 간첩이 징역 2년밖에 살지 않고, 감옥에서 나와서는 북한을 마음대로 방문하고 從北언동을 계속할 수 있는 나라, 한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연방제 및 주한미군 철수 선동을 허용하는 나라, 그리하여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까지 주고 있는 나라. 安 교수는, 이런 나라의 주인공들에게 ‘왜 당신들은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가. 반공을 버려야 제대로 된 보수가 된다’고 충고한 셈이다. 국가 해체를 각오하지 않고선 安 교수를 만족시킬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安 교수의 말은 여기서 또 서로 모순된다. “북한과 내통하고 협력하는 종북(從北)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사상을 존중해야 한다”라는 그의 말은 현재 보수세력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양심과 사상과 연구의 자유를 100% 허용한다. 다만, 親共的(친공적), 親北的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할 경우에만 법적 제재를 가한다. 安 교수는 보수세력이 아직도 과거처럼 반공주의를 앞세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오해하고 이 바탕에서 ‘반공’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 것이다. 그의 글에서 종종 보이는 이런 자체모순은 한국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認識(인식)의 부족에서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9. 反共은 헌법의 명령
  
  통일과정에서도 반공은 용기와 희생정신의 원천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반공정신은 민족반역세력인 김정일에 대한 분노와 대한민국에 대한 자랑을 근간으로 하여 북한동포를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 7000만 민족이 一流(일류)국가를 만들어 행복하게 살자는 꿈을 내세운다. “통일되고, 자유롭고, 번영하고, 강력한 한반도”가 반공자유민주주의를 신념으로 하는 보수세력의 비전이다.
  
  반공을 기피하는 이들은 설사 좌익에서 轉向(전향)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자유통일의 大義(대의)를 멀리하는 경우가 많다. 反共無用論者들은, 자유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얼굴을 돌릴 것이다. 이념은 감정이라고 하는데 반공은 독재세력에 대한 분노의 正義感(정의감)에서 출발한다. 반공을 반대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김정일과 惡에 대한 분노의 결여이다.
  
  安秉直 교수를 포함하여 한국인들이면 누구나 존중해야 하는 헌법은 반공을 국민의 의무로 강제한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선언하고 제3조는 그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 북한정권을 우리 영토인 북한지역을 강점한 反국가단체로 못 박았다. 헌법 1, 3조로부터 대한민국 영토인 북한지역을 수복하고 북한동포들을 구출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헌법 제4조는 그 의무를 받들어 ‘평화적 자유통일 정책’을 명령하였다.
  
  헌법 1, 3, 4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북한노동당 정권을 평화적으로 해체하고 자유통일하라’는 게 된다. 이것이 국가목표이고 국가의지이다. 이를 줄여서 ‘反共’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뇌수에 해당하는 헌법 1, 3, 4조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 반공정책이고, 만든 제도가 국군, 경찰, 보안법, 국정원, 기무사, 韓美동맹 등이다. 내가 주장하는 반공자유민주주의는 주관적 신념이 아니라 한국인이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헌법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10. 반공을 버리면 자유도 버린다
  
  반공은 敵(적)과 惡(악)에 대한 반대였으므로 愛國이고 正義이다. 反共무용론은 통일의 가장 큰 가치관인 공산주의에 대한 분노를 거세함으로써 자유통일 無用論(무용론)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와 자유통일의 기회가 눈앞에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런 沒(몰)이념적, 沒가치적 사고방식은 한국인으로부터 통일의 열정을 빼앗아 역사의 召命(소명)을 회피하도록 만들 것이다. 安秉直 교수는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어야 했다. “보수는 반공을 강화하고, 진보는 從北을 버려야.”
  
  그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대로 사회적 문화적 권력을 장악한 자칭 진보세력이 從北性을 띠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反共의 절실한 필요성을 확인시켜준다. 이들이 從北性을 유지하는 한 한국은 내부의 敵을 품은 채 敵과 싸워야 한다. 한국의 진정한 보수세력은 현실의 요청에 따라서 김정일 정권과 從北세력을 상대로 兩面(양면)의 反共전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보수에 대하여 反共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저항을 포기하고 自殺(자살)하라는 말이 아닌가? 安 교수가 남태평양의 통가에 사는 분이 아니라면 “보수는 반공을 강화하고, (자칭)진보는 從北을 버려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공산주의와 이를 편드는 지식인들의 僞善을 통찰한 조지 오웰은 1946년 신문 기고문에서 이렇게 경고하였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어도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들이 옳다는 주장을 계속한다. 知的(지적)으론 이런 과정을 무한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가짜 확신이 확고한 현실과 충돌하도록 하는 것인데, 보통 戰場(전장)에서 그렇게 된다>
  
  보수가 반공을 버리는 것은 자유와 민주와 시장과 통일과 국가와 양심을 버리는 일이다. 보수에게 반공을 버리라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히틀러와 나치즘에 반대하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다. 반공을 버린 보수는 가짜이다.
  
  
  
  
  
  
  
[ 2010-09-23, 15: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