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골란高原에 서 보니
自主국방의 나라 이스라엘 紀行(5)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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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원조도 떳떳하게 받는다
  
  
  
  캄 박사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이스라엘은 매년 30억 달러(18억 달러는 군사원조, 12억 달러는 민간 부문 원조)의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이집트와의 평화협정 체결에 의해 시나이 반도를 반환한 대가로 이스라엘의 국방력을 강화한다는 명목 하에서 1970년대 말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을 어떻게 설득했길래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그처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켰나요.
  “정부 對 정부 관계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여론을 움직였습니다. 의사결정 관계자뿐 아니라 言論 등 중요부문에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많이 확보한 것이죠. 뿐만 아니라 미국은 冷戰시대에 소련의 영향력 확대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이스라엘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민주적이고 親서방적이면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유일한 中東 국가입니다. 종교적·문화적으로도 미국은 아랍국가들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친밀감을 느끼지요.”
  ―이스라엘 군대는 겉으로 봐서는 아주 질서가 없는 것 같은데 實戰에선 굉장한 효율성을 발휘해 왔습니다. 독창적인 조직 편성과 전략, 그리고 왕성한 士氣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 動機부여가 잘 돼 있습니다. 왜 싸워야 하느냐, 싸우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정신무장이 확고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군인들은 교육수준이 높습니다. 셋째, 유태인 대학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전쟁에 지면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는 경고가 있습니다. 넷째, 군수산업이 튼튼합니다. 1967년 6일전쟁까지 우리는 프랑스에 武器구매를 의존했습니다. 드골은 6일전쟁 직후 이스라엘에 대한 武器판매를 금지시켰습니다. 이것은 또 다시 우리 이외에는 그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우리는 방위산업을 발전시켜 나갔고 결과적으로는 드골의 武器禁輸 조치가 이스라엘을 도왔습니다.”
  
  캄 박사는 IDF의 또 다른 강점으로 ‘작전 계획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신축성’을 들었다. “작전계획은 實戰에서 절대로 그대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변화된 상황 속에서 현장지휘관이 자발적으로 유연하게 작전계획을 적용하도록 재량권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 장교들의 특징입니다.”
  
  
  武器체제의 독립이 自主국방의 요체
  
  
  이스라엘은 국내총생산(GNP)의 4.5%를 연구개발에 쓰고 있다(미국은 2.7%, 일본은 2.6%).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연구개발비의 50%가 방위산업에 투입된다는 점에서도 세계 최고이다. 하이테크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이스라엘 과학기술의 母台가 방위산업이란 얘기다. 이스라엘은 프랑스의 무기禁輸조치 이후 미국에 매달려 무기공급을 받으면서도 주요무기의 자체 개발을 통해 對美 의존도를 줄이려 애썼다.
  
  미국이 제공하기를 거부한 관성유도장치, 대용량컴퓨터, 우주로켓, 인공위성 부문의 기술은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이 자체 제작한 전투기, 미사일, 인공위성의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여 수백 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이스라엘軍 소요무기의 40%를 국내에서 생산하며 무기 수출액은 연간 16억 달러나 된다.
  
  이스라엘 정부는 ‘주요무기 체제의 생산을 외국에 의존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은 무기개발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미국과는 이제 상호의존의 관계로 바뀌고 있다.
  이집트, 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은 소련의 무기체제와 군사고문단의 직접 주둔을 허용했지만 이스라엘은 한 번도 그런 직접적인 武器지원을 어느 나라로부터도 받은 적이 없다. 自主국방의 비결은 ‘나 이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다짐에서 우러나오는 국민들의 투지와, 정보 및 武器체제의 독자성 확보에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1967년 6월5일은 이스라엘 공군 역사상 최고의 날이었다. 이날 오전 7시10분 이스라엘 공군은 전투기 12대만 지상에 대기시켜 놓고 나머지 전투기 전부를 출동시켰다. 지중해 상공으로 날아간 뒤 저공비행으로 이집트를 향해 접근해 갔다. 이집트 공군 기지의 교대시간을 틈탄 기습이었다. 대부분의 이집트 공군 장교들은 출근 도중에 있었다. 이집트 전투기들은 활주로와 격납고에서 기습을 당했다. 이날 오전 두 차례의 기습으로 이집트 전투기 309대가 파괴되었다. 이스라엘 공군기는 19대가 격추되었다. 이집트 空軍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사막전에서 空軍의 엄호 없는 기갑·보병 부대는 무용지물이다. 6일전쟁은 開戰(개전) 30분 만에 사실상 그 승부가 끝나버린 셈이었다.
  
  그러나 6년 뒤 4차 중동전쟁 때는 상황이 달랐다. 1973년 10월6일 오전 5시 이스라엘 군대는 開戰 9시간 전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전쟁을 결심했다는 판단을 하고 공군에 선제공격 준비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메이어 총리는 선제공격명령을 취소시켰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먼저 공격을 가하면 침략자로 몰릴 것이고 미국이 對이스라엘 무기禁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기 공급을 외국에 의존할 경우 결정적 시기에 심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좋은 사례이다.
  
  4차 중동전쟁 18일간 이스라엘 공군은 적기 450대를 격추시킨 반면 104대를 격추당했다.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軍은 약 2500명의 사망자와 7500명의 부상자 등 1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인구가 300만 명 남짓하던 이스라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이었다.
  
  
  이스라엘의 일선 골란高原
  
  
  뻔히 알면서 기습당한 이스라엘 전선에서 가장 급박했던 곳은 縱深(국경에서 이스라엘인 거주지까지의 거리)이 20∼30km에 불과한 골란高原이었다. 종심이 깊어 방어하는 데 여유가 있는 시나이 사막의 對이집트 전선보다도 골란고원의 對시리아 戰線방어에 이스라엘이 注力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신문 국제면에 그 이름이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골란고원을 향해 떠난 것은 이스라엘 도착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오프라 여사가 모는 밴에는 정보장교(대령) 출신으로서 라파엘社의 정보 시스템 동부 영업담당 이사인 헤지 나훔氏가 동행했다. 예수가 세례 받은 요르단江과 예수가 베드로를 제자로 포섭하고 물 위를 걸었다는 갈릴리 호수 주변은 풍요로운 옥토였다. 들판은 밀밭, 해바라기, 올리브, 포도나무로 덮였고 하늘은 光明(광명)했다. 갈릴리 호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바라본 골란고원은 거대한 장벽처럼 솟아올라 갈릴리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6일전쟁 전 골란高原이 시리아 손에 있을 때는 수시로 포탄이 갈릴리 주변의 키부츠로 날아왔다고 한다. 골란高原으로 오르는 급경사 길 주변은 요르단과 국경선으로서 우리나라의 DMZ를 닮은 분위기를 풍겼으나 일단 高原에 도달하면 확 트인 평야가 視野를 메우는 것이었다. 남북 약 50km, 동서의 폭이 20∼30km인 골란高原은 서울의 두 배쯤 되는 면적이다(1176km2). 북단엔 백두산과 거의 같은 높이를 가진 헤르몬山. 그 봉우리를 한라산으로 잡는다면 제주도 山間마을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1967년 이후 골란高原에 22개 마을이 생겼고 1만1000명이 살고 있다. 도로 바로 옆에 철조망이 쳐 있고 노란 표지판에 ‘지뢰 위험’이라고 쓰인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시리아軍이 두고 간 기관총좌를 잡고 바로 눈 아래로 보이는 갈릴리 주변 마을을 겨냥해 보니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이 골란高原을 시리아에 반환하되 비무장지대로 만드는 방안을 가지고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에 임하고 있었다.
  
  이 高原을 옥토로 가꾼 이스라엘 농민들을 비롯하여 많은 국민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 國論 분열의 양상마저 보였었다. 골란고원을 달려보니 이스라엘 측이나 시리아 측이나 이 전략 요충지를 상대방한테 주고서는 잠이 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고원에 서면 서쪽으로 이스라엘의 갈릴리, 동쪽으로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가 내려다보인다.
  
  전략적으로 가히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 지역인 것이다. 이스라엘軍의 布陣 방식은 우리와 달랐다. 우리는 DMZ를 따라 병력을 골고루 배치시켜 놓고 있지만 이스라엘 軍은 국경지대 후방 20km쯤 지점에 기갑 부대를 여러 거점에 집중시켜 놓고 있었다. 전방경계는 소수의 병력과 ‘정찰기+전자정보기지’로 구성된 조기경보시스팀에 주로 맡겨 놓고 있었다. 좋은 정보시스템은 軍 병력의 감축과 효율적 배치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省力化(성력화) 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스라엘은 인구의 10%가 現役 아니면 예비군이다. 40여만 명의 예비군이 경제활동에 종사하도록 해야지 수시로 비상이 걸리고 동원령이 내려서는 경제가 제대로 가동될 수 없다.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조기 경보시스템이 불침번 역할을 맡아야 人力이 생산부문에 제대로 투입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위대한 스파이 엘리 코헨의 유해 송환이 외교 현안
  
  
  1973년 10월 골란高原에서 예비군으로 싸웠던 나의 안내자 토니 리트만氏는 “그때 死傷者를 철수시키는 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요사이도 그 참혹한 장면들을 애써 잊으려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는 부상자가 땅바닥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도록 돼 있다”고 했다. 戰死者·부상자·실종자·포로들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끈질긴 관심은 유별나다.
  
  지난 5월21일은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의 전설적인 스파이 엘리 코헨이 시리아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의 추모식에 참석한 이자크 라빈 총리는 코헨의 유골을 이스라엘로 송환해줄 것을 시리아 측에 요구했다. 라빈 총리는 앞으로 열릴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에서도 유골송환이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헨은 이집트에서 출생한 유태인인데 시리아系(계) 아르헨티나 실업인으로 위장하여 시리아 권력층 깊숙이 침투, 고급정보를 모사드로 打電(타전)하였다. 특히 골란高原의 시리아 측 병력 배치 상황에 대한 정보는 1967년 6월의 6일전쟁 때 이스라엘 軍이 골란高原을 점령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6일전쟁 때 참모총장이었던 라빈 총리는 30주년 추도식에서 코헨이 보낸 정보가 이스라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얼마나 유용했는가에 대해서 강조하기도 했다. 코헨은 1965년에 신분이 탄로나 공개처형되었다. 그의 유언은 이스라엘에 묻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서 기자가 만난 사람들마다 코헨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듯했다. 토니 리트만氏는 “코헨은 죽을 때도 이스라엘을 향해 눈을 뜬 채 죽겠다고 해서 머리에 용수를 쓰지 않고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했다. 조국을 위해 희생된 간첩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고 기념하는 곳이 이 세계에서 또 한 군데가 있는데 바로 북한이다. 귀국하여 전직 안기부 간부에게 코헨 이야기를 전했더니 그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한국에는 임무수행 도중 죽은 간첩도 없고 기릴 만한 위대한 공작원도 없다”고 말했다. 없는 게 아니라 국가가 제대로 찾아 보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정신력을 탓하기에 앞서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할 일을 다했는가부터 따져 볼 필요가 있겠다.
  
  
  국민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다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포로가 된 조종사 1명과 5명의 실종자에 대해서 정부와 언론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95년에 나온 이스라엘의 한 年鑑에는 이들을 구출, 또는 발견하기 위해 취했던 노력들이 2페이지에 걸쳐 언급되고 있었다. 테러에 自國民이 희생되면 꼭 보복을 감행하고, 승객이 납치되면 엔테베 작전을 벌여 찾아오고, 죽은 포로나 간첩의 유골까지도 반드시 조국으로 가져오겠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집념은 용감한 국민들에 대한 국가의 당연한 보호책임일 뿐이다.
  
  1·21 청와대 습격, 陸英修(육영수) 암살, 아웅산 테러, KAL858편 폭파 같은 선전포고의 사유에 준하는 공격을 당하고도 북한에 대해서 총 한 방 쏴보지 못한 대한민국은 1987년에 납북된 동진호 선원이나 1994년 5월에 납북된 우성호 선원에 대해서도 마지못한 관심 정도만 보이고 있다.
  
  한국의 품에 안기려고 목숨 걸고 탈출한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꼭 장사꾼이 주판알 튕기듯 정보 가치에 따라 선별 귀순시키고 있다. 국가 지도층부터가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政權 담당자부터가 국가를 사회단체시하니 종교계에선 성당과 사찰에 대한 합법적 경찰 투입까지도 규탄하고 나온다.
  
  이스라엘은 순전히 자신들의 피로써 國家를 건설하고 황무지를 沃土로 바꿨다. 그들에게 ‘국가’란 관념이 아니라 實體이다. 상당수 한국인에게 대한민국은 공짜로 주어진 것이었고 美軍이 지켜준 것이었다. 국가를 세우고 지키는 데 주인의식이 부족하였기에 국가의 기본 행태가 어찌 되어야 하는지를 대통령부터가 모르는 것이다. 외국에 대하여 자존과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국가만이 자기 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해 줄 원칙과 힘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 2010-12-05, 16: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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