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부의 '빅 스리'는 特攻작전 전문가들
대통령은 엔테베 작전 지휘 국방장관 출신, 총리는 특공부대 장교 출신, 부총리는 특공대장 출신이다. 한국의 빅 스리는 군대 안 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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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내각은 특공대 내각이라 불릴 만하다. 대통령 시몬 페레스는 국방차관 시절엔 비밀 핵(核)개발을 주도하였다. 국방장관으로서 1976년 7월4일에 있었던 엔테베 작전을 총괄적으로 지도한 사람이었다. 엔테베 작전은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이 이스라엘 사람들 약100 명이 이 탄 에어 프랑스기를 납치, 우간다의 엔테베에 착륙시켜놓고 이스라엘에 수감된 테러리스트 석방을 요구한 데서 발생하였다. 특공대원을 실은 이스라엘 공군기 석 대가 엔테베 공항에 착륙,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작전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제압, 인질(人質) 전원을 구출한 사건이다. 이 특공작전의 지휘관은 요나탄 네탄야후였다. 그는 적탄(敵彈)을 맞고 죽었다. 이 작전에서 죽은 유일한 이스라엘 군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니’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 영웅의 동생이 현재의 총리 벤자민 네탄야후이다.
  
  그 또한 특공대원이었다. 1972년 5월 벨기에의 항공사 사베나 여객기가 1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채 납치되어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에 착륙하였다. 이 인질 구출작전에 투입된 이스라엘 특공대의 지휘관은 현재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자 부총리인 참모총장 출신 에후드 바락이고 총리 네탄야후는 바락의 부하였다. 네탄야후는 구출작전 때 동료가 쏜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대위로 제대한 그는 미국에 건너가 하버드와 MIT에서 공부하였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이 터지자 귀국, 전투에 참여한 뒤 다시 도미(渡美)하였다.
  
   에후드 바락이 지휘한 벨기에 여객기 인질구출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정비사로 위장, 기내(機內)에 들어가 테러리스트 남자 두 명을 사살하고 여자 두 명을 체포하였다. 인질이 된 승객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구출되었다.
   이 특공작전 성공의 경험이 엔테베 작전을 낳은 것이다. 엔테베 작전을 기획하는 모임에 바락도 참여하였다. 바락은 수많은 특공작전과 암살 작전을 지휘하고 3군 참모총장이 되었으며 총리를 지낸 뒤 지금은 국방장관 겸 부총리이다.
  
   역대 이스라엘 총리 중 1996년에 암살된 라빈과 바락은 3군 참모총장 출신이고, 샤론은 4차 중동전쟁 때의 수에즈 운하 도하(渡河) 작전을 성공시킨 전쟁 영웅이다. 전임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는 장교 출신이다. 사병으로 종군(從軍)하였던 이 사람은 국회의원 시절에 장교 교육을 따로 받았다. 이스라엘 내각엔 군 장성 출신들이 많다.
  
   이스라엘의 국가적 성격인 된 ‘특공정신’은 특공(特攻) 전력을 가진 이들을 중용(重用)한 데서 생긴 것이다. 한국 국가 지도부의 ‘빅 스리’인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는 군대 경험이 없고, 이스라엘의 빅 스리인 대통령, 총리, 부총리는 특공작전 전문가들이다. 이게 국격(國格)의 차이로 나타난다. 한국도 내각, 국회, 청와대에 장교 출신들이 많이 들어가면 연평도 도발과 같은 사건에서 대처가 달라질 것이고 국가의 분위기도 많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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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외무장관, "미친 북한을 쓰러뜨려야"
  趙甲濟
  
   이스라엘 정부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직설적인 용어를 사용, 강력하게 비난했다.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미친’ 체제를 저지하고 쓰러 뜨려야 할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케 한다”면서 “그들의 무기 확산과 도발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하였다.
  
   왜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런 말을 못하나? 그들의 노예根性과 이스라엘의 主人의식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들뻘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되신 분'이라고 표현한 김성환 장관의 외교부가 내어놓은 반응은, "이번 상황과 관련해 유엔 측과 협의하고 있다"며 "관련국과 협조해 이번 사태를 유엔에 가져갈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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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탄야후 이스라엘 수상과 李明博 대한민국 대통령
  이란 대통령의 막말을 들어준 各國 대표에게 한 말: "여러분들은 부끄럼도 모릅니까?"
  
  어제 李明博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6.25 南侵전쟁 때 유엔군이 우리를 구해준 데 대하여 감사하였으나 북한군이 南侵하여 일어난 전쟁이란 사실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趙甲濟
  
   벤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수상은 오늘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면서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란의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계획 관련 문서를 들고 나와 연설하였다. 이런 요지의 말도 하였다.
  
   "어제 이 연단에서 유태인 학살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항의하는 의미로서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 사람과 연설도중 퇴장한 분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여러분들들은 도덕적 분별력을 지키기 위하여 행동하였고 여러분들의 조국을 명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을 부정하는 연설을 한 자에게 귀를 빌려주신 분들에게 우리 국민들, 유태인들, 그리고 모든 곳의 교양 있는 분들 입장에서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부끄럼을 모릅니까, 예의를 모릅니까?"
  
   ("Yesterday, the man who calls the Holocaust a lie spoke from this podium. To those who refused to come and to those who left in protest, I commend you. You stood up for moral clarity, and you brought honor to your countries.
  
   "But to those who gave this Holocaust denier a hearing, I say on behalf of my people, the Jewish people, and decent people everywhere, have you no shame? Have you no decency?")
  
   어제 李明博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6.25 南侵전쟁 때 유엔군이 우리를 구해준 데 대하여 감사하였으나 북한군이 南侵하여 일어난 전쟁이란 사실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善만 이야기하고 惡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명하면 결국 善이 죽는다. 무기력한, 감동이 없는 연설이다. 네탄야후 같았으면 무엇이라고 연설하였을까? "여러분들은 부끄럼을 모릅니까, 예의를 모릅니까?"라는 직격탄은 북한정권 눈치를 보는 李明博 대통령을 향하여 한 말처럼 들린다.
  
   *李 대통령의 유엔 연설 중 6.25 남침 전쟁 관련 대목
  
   <나는 먼저 대한민국과 UN의 각별한 인연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UN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UN의 감시 하에 민주적인 선거를 치렀고,
   UN의 승인에 따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UN이 지켜낸 나라입니다.
   건국한 지 2년만에 일어난 6·25 전쟁에는
   UN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참전했습니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 조성되어 있는
   세계 유일의 UN군 묘지에는
   11개국의 전사자들이 묻혀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한국민들이
   UN군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놀랍게도 불과 한 세대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취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의 피와 땀의 결실이지만,
   UN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음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991년 UN가입 이전부터
   ‘UN Day’를 기념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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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놓친 찬스
  
  공산주의자들은 원래 지저분하게 싸운다. 변칙과 속임수가 長技(장기)이다. 뒷골목 싸움꾼이다. 이들과 싸울 때는 절대로 저들이 만든 戰場(전장)에 들어가면 안 된다. 그들과 똑같이 뒷골목 싸움, 게릴라전, 기습전, 항공테러, 암살 등 비정규전으로 대응하여서는 勝算(승산)이 없다.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한다. 국제법이 통하는 정규전으로 싸워야 한다. 뒷골목이 아니라 규칙이 통하는 링 위에서 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저들을 링 위로 끌어내야 한다. 지난 23일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북괴군이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하고 있을 때가 하나님이 준, 역사가 준 기회였다. 한국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 F-15와 F-16 여덟 대가 신속하게 출격하여 연평도 상공에서 대기중이었다. 이런 때 대비하기 위하여 훈련도 많이 하고 이런 때 사용하라고 고성능 유도폭탄과 미사일도 싣고 있었다. NLL(북방한계선)을 넘을 필요도 없이 한국 영공에서 발사, 敵(적) 진지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무기였다. 한국 공군은 늘 북한 공군과 붙으면 10대 0으로 깰 수 있다는 자랑을 하고 다녔다.
  
   대통령과 軍 수뇌부는 그러나 폭격명령을 내리지 않고 얻어맞는 쪽을 선택하였다. 얻어맞는 게 체질이 된 군대요 대통령이기에 찬스가 와도 잡을 수가 없었다. 폭격명령이 떨어졌더라면 F-15K 전폭기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유도폭탄으로 적의 해안포대를 파괴하고 도전하는 북괴 공군의 낡은 미그23을 모조리 격추시켰을 것이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의, F-15가 主力인 공군이 미그23이 主力인 시리아 공군과 대결, 85-1로 이긴 베카 계곡 공중전이 再演(재연)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겨놓고 데프콘 3을 발동하면 韓美동맹 체제가 가동한다. 미군이 사령관을 맡은 韓美연합사가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 미군 사령관은 멋대로 권한을 행사하는 게 아니고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으로부터 합의된 지시를 받는다. 즉, 미군이 개입하는 것이다. 겁이 나서 비행기도 타지 못하는 김정일이 긴장된 韓美연합군에 도전하는 것은 自殺행위임을 잘 알 것이다. 이때는 물론 미국의 航母(항모)전단이 한국 海域으로 전개된다.
  
   국민들과 국군은 불타는 敵의 해안포 陣地(진지), 격추되는 미그 23의 동영상을 구경하면서 환호하였을 것이다. 6·25 남침 이후 얻어맞기만 하였던 한국이었다. 이 화려한 大勝은, 한국인들이 오랜 피해의식에서 탈출, 자신감을 회복하고,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만드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李明博 대통령이 23일 놓친 기회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軍 지휘부도 이런 대응을 건의하지 않은 듯하다. 국가 지도부는, 국군이 북괴군에 지도록 만들기 위하여 누군가가 꾸며놓은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희한한 交戰수칙을 들먹이면서 "擴戰(확전)하지 말고 위기를 관리하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북괴군은 組暴(조폭)의 윤리도 없는 집단이다. 組暴은 싸울 때 선량한 시민들을 다치지 않게 신경을 쓴다. 민간지역까지 포격한 북괴군을 상대로 한국이 해안포만으로 대응하라는 건 군대가 뒷골목에 들어가 組暴과 주먹다짐을 하란 이야기였다.
  
   대통령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찬스가 지나간 뒤였다. 그래도 기회는 남아 있었다. 북괴군이 포격 이후에도 再侵(재침)을 위협하고 위협사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공격을 먼저 당한 우리가 전투기를 출격시켜 위협요인을 제거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自衛權(자위권)의 발동이다. 대통령은 이것도 하지 않았다.
  
   29일 對국민 담화 때도 찬스는 있었다. 이미 不渡(부도)어음이 된, '추가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다짐하기 전에 김정일과 북괴군에게 최후통첩을 하였어야 했다. "12월12일까지 전쟁범죄행위에 대하여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하고 피해를 보상하고 해안포를 철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위권을 행사할 것이다"고 선언, 공을 김정일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 한국空軍의 폭격 훈련 비행을 강화하고, 全軍에 비상을 걸고, 韓美공조를 굳힌다. 대통령과 軍 수뇌부는, "우리는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敵이 원하면 응할 수밖에 없다. 이는 통일전쟁이 될 것이다"는 메시지를 계속하여 보낸다. "敵이 우리의 최후통첩에 응하지 않으면 우리의 막강 공군은 연평도 도발의 원흉인 해안포대를 없애버릴 것이다. 敵이 여기에 대항하면 擴戰도 불사, 북한의 核시설을 폭격할 것이다"는 정보도 언론에 흘린다. 미국의 대규모 航母전단이 한국海域에 투입된다. 중국 정부가 중개를 서겠다고 달려와도 우리는 응하지 않는다. 6者회담은 중국과 북한이 공모하여 국제사회를 속이는 사기 도박판임을 李明博 정부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압박하면 김정일은 고민에 빠진다. 全面戰을 결심하지 않는 한 한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습전이나 테러가 먹히는 戰場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후통첩에 응하지 않아도 좋다. 한국은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때릴 권리를 갖게 된다. 이게 주도권이다. 이 주도권을 슬기롭게 구사하면 김정일을 갖고 놀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武力은 해안포가 아니다. 한국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이다. 1억 달러짜리 F-15전폭기를 에어쇼用으로 도입한 건 아니다. 敵의 해안포와 長射程砲(장사정포)에 대한 武力응징用으로 도입한 것이다.
  
   나의 최후통첩 전략의 핵심은, 韓美연합군의 海, 空軍이 전면에 나오는 정규전의 링 안으로 마적단 수준의 북한군을 끌어내는 것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과 달리 전면전은 우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홧김에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김정일이 승산이 있을 때만 일으킨다. 韓美연합 戰力은 그런 승산의 기초를 무너뜨린다.
  
   기회는 당분간 계속된다. 李明博 대통령이 韓美海空軍力을 主武器로 삼고 김정일에게 최후통첩을 보내어 그들이 고민하도록 만들면 이기는 게임이다. 김정일이 굽히고 나와도 좋고 나오지 않아도 게임의 주도권을 우리가 잡는다. 主導權(주도권)을 쥐면 공격의 시기와 장소와 방법을 유리하게 결정할 수 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하여 東北亞에 新冷戰의 기류가 형성되었다.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중국과 북한이 핵무장을 한 상태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하여는 韓美동맹만으론 약하다. 영향력이 큰 國民行動本部는 "국제사기판인 6자회담을 포기하고 核무장을 선언하는 게 최고의 응징이다”는 의견광고를 신문에 냈다. 천안함 爆沈과 연평도 도발은 한국인들을 벼랑으로 몰았다. 한국인들이 覺醒하여 “우리도 이스라엘식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면 그 결과는 김정일 정권에 이롭지 못할 것이다.
  
  
   *데프콘: 1953년 북한과 정전협정을 맺은 한국은 현재 데프콘 4(경계강화 상태) 단계가 이미 발령돼 있다.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면 全軍의 휴가와 외출이 금지되는 데프콘 3단계로 격상된다. 한 단계 높은 데프콘 2가 발령되면 全軍에 탄약이 지급되고 부대편제 인원이 100% 충원된다. 데프콘 1이 발령되면 동원령이 선포되고 본격적인 戰時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李明博 대통령이 그 결정적 순간에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면 救國(구국)의 영웅이 되었을터인데 비겁을 선택, 크나큰 국가적, 개인적 위기를 불렀다. 1936년 3월 프랑스의 국가지도부가 히틀러의 나치독일군대가 비무장 지대인 라인란트로 불법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막지 않아, 2차 대전으로 가는 길을 열고 결국 프랑스가 독일군에 항복하는 사태까지 생기게 된 과정과 비슷하다. 후일 역사가들이 연평도 도발을 '李明博의 라인란트'였다고 기록하게 된다면 이는 대한민국이 赤化된 다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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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5K 탑재 무기들(고성혁)
  
   우리 공군의 F15K엔 북한군 갱도진지를 파괴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그리고 연평도가 적의 포격을 당할 당시 우리 공군 F15K는 슬램-ER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탑재하고 공중에 대기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공격명령만을 기다리면서.
  
  
   1. 슬램-ER
  
   F15K에서 투하하여 발사하는 장거리 空對地 미사일이다. 사거리는 무려 270KM에 달한다. 그 정확도는 공산오차가 3미터 이내로서 휴전선 상공에서 발사할 경우 평양의 특정건물 특정창문을 타겟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이다.
  
  
   2. JDAM : GPS 유도활공 폭탄
  
   JDAM은 일반폭탄에 날개를 장착하여 GPS신호로 유도되는 활공유도폭탄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강력한 파괴력을 확보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무기이다. 미군은 아프간에서 탈레반 진지를 파괴하는 데 사용하였다.
  
   사거리는 약 27KM로서 두께 약 2.4m 콘트리트를 관통 파괴할 수 있다. 북한군 갱도진지입구 파괴용으로 적합한 무기이다. F15K는 이 JDAM을 약 7개까지 무장탑재할 수 있다.
  
   3.GBU-12 PAVEWAY II (레이저유도폭탄)
  
   레이저 유도폭탄으로서 (LAZER GUIDE BOMB)로서 그 정밀도는 매우 우수하다. 월남전 당시 단 한발로 하노이의 다리를 파괴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 발전형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2.4미터 두께를 관통파괴할 수 있다.
  
   4. GBU-24 (레이저 유도 폭탄)
  
   GBU-12처럼 레이저로 유도되는 폭탄이다. 그런데 GBU-12는 무게가 277KG인 반면에 GBU-24는 약 1톤의 무게다. 따라서 매우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F15K를 도입하면서 북한군의 갱도진지파괴를 목적으로 들여온 무기이다.
  
   북한의 해안포 갱도진지 파괴에 가장 적합한 무기이다. 사거리는 고도에 따라 다르지만 약 12KM로서 F15K엔 최대 5발까지 장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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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격하면 全面戰'이란 군부의 誤判이 프랑스를 亡國의 길로 유도했다!
  
  
   역사는 두 번 절호의 찬스를 놓친 프랑스를 버렸다. 두 번 찬스를 놓친 李明博 정부는 어떻게 되나?
  趙甲濟
  
   1936년 3월7일, 3개 대대의 독일군이 비무장 지대인 라인란트(라인강 주변의 독일영토)로 진주, 로카르노 조약을 위반하였을 때 히틀러가 독일군에 내린 명령은 '프랑스 군이 나타나면 싸우지 말고 철수하라'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독일군이 프랑스軍과 정면승부를 하기엔 아직 力부족이라고 판단하였다. 만약 프랑스군이 연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였더라도 독일군은 물러났을 것이고 독일 군부가 이를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켜 히틀러를 몰아냈을 가능성이 높다.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프랑스가 패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왜 프랑스군은 安保의 생명선인 라인란트 완충지대가 독일군 주둔지로 변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나? 프랑스 군부가 아주 패배주의적인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군 총사령관 모리스 가므랑 원수는 불법진주한 독일군에 반격하면 全面戰이 일어날 우려가 있으므로 총동원령을 내린 뒤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국방부도 이 판단에 동조하였다. 그런데 총동원령을 내리면 하루 3000만 프랑의 경비가 들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外債가 많아 국가不渡 직전으로 몰려 있었고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프랑스 집권세력은 총동원령을 결단할 수 없었다. 오히려 독일군에 대항하지 않는 데 대한 변명을 찾아나섰다. 외무장관을 영국으로 보내 "영국이 합세하면 독일군을 치겠다"고 압박한다. 영국이 냉담하게 나올 것임을 알고 그렇게 한 것이다. 프랑스는, 국민들에게 영국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독일군의 라인란트 진주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꺼리를 만들었다.
  
   연평도에 대한 북괴군의 포격이 있은 직후 한국군의 지휘부서와 대통령이 과감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중의 하나도 '우리가 전투기로 敵의 해안포대를 폭격하면 전투가 확대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국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연평도 상공에 대기중이던 한국 공군 최신예 편대가 우수한 무기로 敵을 강타하는 것이 再도발을 방지하는 길인데도 프랑스 군대처럼 守勢的 자세를 취하고 만 것이다. 프랑스가 영국을 끌어들이려 한 것처럼 한국도 미국의 도움을 청하였다. 영국과 달리 미국은 신속하게 航母戰團을 전개하였다.
  
   프랑스 군부가 독일군을 치면 전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각에 보고한 것은 전쟁을 기피하기 위한 고의적 과대평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민간인들에게 그렇게 겁을 주어야 전쟁을 말리려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1939년 9월 프랑스 군부는 똑 같은 실수를 한다. 이때 독일군의 主力은 폴란드 침공에 투입되어 서부戰線에선 프랑스 군사력이 독일군을 압도하는 형국이었다. 이때 프랑스가 先制공격을 하였더라면 독일군은 손을 들었을 것이라는 게 戰史學者들의 거의 일치된 평가이다. 이때도 프랑스군은 가므랑 원수가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開戰을 결심하지 못하여 결정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전격전으로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은 서부전선으로 병력을 집중시킨 뒤 1940년 5월 프랑스를 공격하였다. 라인란트 비무장 지대가 있었으면 독일군의 기습은 성립할 수 없었다. 독일 기갑군단의 아르덴느 돌파전이 성공, 프랑스는 6週만에 손을 들었다. 역사는 두 번 기회를 놓친 프랑스를 버린 것이다.
  
   李明博 정부와 한국군 지휘부는 천안함 爆沈에 대한 응징을 포기하는 첫번째 실수에 이어 연평도 도발에 대한 응징도 포기하곤 '추가 도발에 대하여서만 응징한다'고 물러났다. 두 번 절호의 기회를 놓친 이명박 정부에 역사가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인지, 아니면 이것으로 끝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라인란트 점령은 군사작전으로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유럽에 커다란 새로운 전망을 열어 놓았으며, 라인江의 다리를 건너 3개 大隊가 진주한 것으로 유럽의 전략 정세가 뒤흔들렸을 뿐 아니라, 다시는 회복시킬 수 없을 만큼 변경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히틀러(그리고 영국에서는 처칠)뿐이었던 것 같다.…1936년 3월 서구의 두 민주주의 국가는 중대한 전쟁의 위험없이 군국주의화한 침략적인 전체주의 독일의 대두를 막고 나치스 독재자와 그 제도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가졌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내버려두었다>(윌리엄 L. 샤이러, 「제3제국의 흥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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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란트 재무장과 프랑스 지도부의 無力
   (배진영)
  
  
   1936년 3월7일 새벽, 나치 독일軍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非무장지대로 규정되었던 라인란트로 步武(보무)도 당당히 進駐(진주)해 들어갔다.
   사실 라인란트 진주는 독일 軍部로서는 살떨리는 모험이었다. 1년 전 3월16일 독일은 再군비를 선언하긴 했지만, 아직 프랑스 등 주변 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만한 변변한 戰力을 갖추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무렵 프랑스軍은 10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독일軍이 베르사이유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란트로 진주할 경우 이를 응징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리를 갖고 있었다.
  
   -『나치 독일은 평화를 갈망한다』-
  
   이 때문에 독일 국방장관 블롬베르크 元帥는 독일군에게 라인란트 진주를 명령하면서도 프랑스軍이 반격을 가할 경우에 대비한 腹案(복안)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36계 줄행랑이었다. 사실 라인란트에 투입한 실병력이래야 고작 3개 大隊에 불과한 현실에서 독일군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알고 있었다. 프랑스와 그 동맹국인 영국이 독일의 라인란트 진주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1935년 3월10일 독일이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보유가 금지되어 있는 공군을 보유하고 있음을 공표했을 때에도, 같은 해 3월16일 再군비를 선언했을 때에도 그들은 국제연맹 이사회를 통한 유감표시 이외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5월21일 히틀러가 내놓은 평화제안에 기대를 걸고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 히틀러는 『나치 독일은 평화를 갈망한다』면서 알자스-로렌 및 폴란드에 대한 독일의 영유권 주장 포기, 로카르노 조약의 준수, 라인란트의 非무장화 준수, 중포·重전차·각종 군함 등 침략병기의 폐기를 위한 협상 등을 제안하였다. 특히 영국에 대해서는 독일 해군력을 영국 해군력의 3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英·獨 해군협정을 제안했다.
   히틀러의 평화제안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한 부당한 제약들을 해제하고 독일을 국제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복귀시켜 주기만 하면 독일은 유럽의 평화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가득했다.
   유럽은 히틀러의 이러한 제안에 매료되었다. 영국 런던 타임즈紙는 『히틀러의 연설은 타당하였고 솔직하였으며 앞뒤가 잘 맞는 것』이라면서 『이 연설이 어느 곳에서나 진지하고 정확하게 깊이 생각한 끝에 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극찬했다.
   영국은 바다에서의 영국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英·獨 해군 협정에 진지한 관심을 표시하면서 독일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동맹국인 프랑스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1936년 3월 7일 독일軍의 라인란트 진주는 히틀러 자신이 내놓았던 위의 평화제안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독일의 추가적인 도발에 대비하는 의미에서 13개 사단을 독일과의 국경지대로 증파하는 한편, 외무장관 에티앤느 플란당을 영국으로 보내 독일軍을 라인란트에서 몰아내기 위한 공동 작전을 요청했다.
   하지만 영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요컨대 라인란트가 프랑스 땅은 아니지 않습니까? 독일은 그동안 비워놓았던 자기네 집의 빈 방 하나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 것 뿐입니다』
   영국 外相 안소니 이든은 하원에서 『독일군의 라인란트 점령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중대한 타격을 가한 것이지만, 우리는 독일의 행동이 전쟁을 야기할 위험을 내포한다고 추정할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軍 작전참모부장을 역임한 알프레드 요들 大將은 후일 뉘른베르크 戰犯(전범) 재판에서 『당시 우리들의 실정으로 보아 국경에 증파되었던 프랑스군 부대는 능히 우리들을 분쇄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히틀러 역시 『라인란트에 진주한 후 48시간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신경이 곤두섰던 시간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 긴장된 시간을 히틀러는 「강한 의지력과 놀라울 정도로 태연자약했던 태도」로 견뎌냈다.
  
   - 독재자를 타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다 -
  
   『라인란트 점령은 군사작전으로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유럽에 커다란 새로운 전망을 열어 놓았으며, 라인江의 다리를 건너 3개 大隊가 진주한 것으로 유럽의 전략 정세가 뒤흔들렸을 뿐 아니라, 다시는 회복시킬 수 없을 만큼 변경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히틀러(그리고 영국에서는 처칠)뿐이었던 것 같다.…1936년 3월 서구의 두 민주주의 국가는 중대한 전쟁의 위험없이 군국주의화한 침략적인 전체주의 독일의 대두를 막고 나치스 독재자와 그 제도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가졌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내버려두었다』<윌리엄 L. 샤이러, 「제3제국의 흥망」>
  
  
  *기습을 허용한 다음에 반격하는 나라는 못 쓴다!
  
  
   김정일 참수작전과 先制공격 개념의 작전계획을 새로 세워야.
  趙甲濟
  
   權泰榮(권태영) 박사는 육군사관 학교 제18기 출신으로서 KAIST 산업공학 박사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군 안팎에서 존경 받는 戰略(전략)연구가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국방부 군사혁신기획단장 등 現業(현업)에 평생 종사하였고, ‘21세기/통일대비 국방발전방향’ 등 많은 著書(저서)가 있다. 그가 노훈 박사(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와 함께 쓴 ‘21세기 군사혁신과 미래전’(法文社)은 우리나라가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맞추어 ‘先制(선제)공격’을 포함한 공세적, 예방적, 억제적 방위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權 박사는 이 책을 포함한 자신의 책과 논문에서 북한군에게 기습을 절대로 허용하여선 안 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1. 북한군은 핵무기, 화학생물 무기, 그리고 長射砲(장사포) 등 장거리 기습 및 타격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 수도권에 인구의 반, 國富(국부)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데다가 휴전선과 인접한 포천, 의정부, 고양 지역이 급격하게 개발되었다. 따라서 기습을 당하였을 때 물러날 공간이 없다. 물러났다가 반격작전으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의 황폐로 實益(실익)이 없다.
   3. 따라서 과거와 같이 敵(적)에게 영토를 양보한 다음 반격해서 失地(실지)를 회복하는 방위개념으로부터 벗어나 敵地(적지)내 작전으로 단기간 내 결정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전쟁을 사전에 예방, 억제하는 방위개념의 채택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억제 및 예방차원의 방위(Preventive Defense)를 하려면 과거의 ‘守勢(수세)-소극’ 방위에서 ‘공세-적극방위’로 전환하고, ‘선제 기습적 공격/타격(Preemptive Attack/Strike)’도 필요시 허용한다는 ‘위엄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4. 방위의 목표와 수준을 ‘적극, 예방, 억제 방위’로 格上시키려면 군사력을 첨단 情報技術軍(정보기술군)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며,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허약한 정권이 기습을 허용하면 自滅
  
  
   先制(선제)공격 개념은 이스라엘이 實戰에서 활용한 바 있다. 1967년 6월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기는 아침 출근시간에 맞추어 이집트 공군 비행장을 기습, 수백 대의 전투기를 활주로와 격납고에서 파괴하여 전쟁의 향방을 전투 30분 만에 결정지었다. 당시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 공격을 천명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은 自衛的(자위적) 차원의 결단이란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었다.
  
   19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쟁 때는 이스라엘이 오히려 이집트의 기습을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습을 허용하였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중대한 誤判(오판)을 하였다. 이집트 군이 開戰(개전) 전에 여러 차례 벌인 훈련은 전쟁 企圖(기도)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속아 넘어갔다. 이집트 군대가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알고도 “또 훈련이군”이라고 안심하였다. 전쟁 몇 달 전에 이스라엘은 이집트군의 훈련을 전쟁준비라고 판단, 예비군에 비상을 걸어 약4000만 달러의 예산을 날린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이건 전쟁이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開戰 여덟 시간 전이었다. 골다 메이어 수상, 모세 다얀 국방장관, 그리고 참모총장이 모여 先制(선제)공격 與否(여부)를 놓고 토론하였다. 결론은 “얻어맞자”는 것이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면 침략자로 규정되어 미국으로부터 軍援(군원)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대신 예비군 10만 명을 우선 소집하기로 하였다. 미국 닉슨 행정부에 긴급 연락을 취하여 소련과 아랍 국가들에 압력을 넣어 이집트가 기습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닉슨의 안보 보좌관 키신저도 메이어 수상에게 “先制공격을 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였더라면 미국은 여론의 악화로 이스라엘을 도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집트와 시리아로부터 기습을 당한 이스라엘 군대는 처음 1주일간 苦戰(고전)하였다. 한때 다얀 국방장관은 수상에게 核폭탄을 사용할 준비를 하자고 건의하였다. 수십 개의 히로시마급 원자폭탄을 점검하였다.
   곧, 이스라엘 군대는 미국이 急送(급송)해준 수만 톤의 신무기의 도움도 받고 해서 반격작전에 성공하였다. 보름간 계속된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약3000명의 전사자를 냈다. 부상자까지 합하면 1만 명이 戰死傷(전사상)한 것이다. 그때 인구가 500만 명도 되지 않던 이스라엘로선 큰 손실이었다.
  
   막강한 이스라엘도 기습을 당하면 이렇게 어려운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다. 權泰榮 박사는 “한국과 이스라엘은 안보 환경이 비슷하다. 특히 縱深(종심)이 얕아 기습을 받은 뒤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先制(선제)공격 개념을 배제하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군은 기습당하는 것을 前提(전제)로 한 소극적인 防禦(방어)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한국 내에 막강한 從北(종북)세력을 구축해놓은 현시점에서 기습을 허용하는 것은 自滅(자멸)의 길이란 것이 權(권) 박사의 주장이다. 초장에 기습이 성공하여 서울이 대혼란에 빠지거나 북한군에 포위되면 從北(종북)세력은 폭동을 일으키고 연약한 정부라면 멸망의 길이 될 ‘현위치 休戰(휴전)’까지도 감수할지 모른다.
  
   수세적 방어개념을 가진 군대는 士氣(사기)에도 문제가 생긴다. 반면 북한군은 ‘武力(무력)통일’의 꿈을 품고 항상 공격적이다. 한국군은 자유통일을 뒷받침하는 武力(무력)이라는 自覺(자각)과 先制(선제)공격도 감행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북한군을 누를 수 있는 '위엄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김정일 참수작전
  
  
   한국군은 先制(선제)공격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敵(적)의 지휘부를 집중 타격하는 ‘참수작전’ 을 위한 신무기 개발에 돈을 쓰고, 첨단 NCW(Network-Centric Warfare) 戰力(전력)도 갖추어야 한다.
   NCW는, 敵陣(적진)에 대한 실시간 정보와 敵(적)의 지휘부와 신경계통을 同時(동시)병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신무기 체제의 결합을 의미한다. 敵의 戰略重心(전략중심)거점(Center of Gravity)을 수백, 수천 개 選定(선정)하여 놓았다가 開戰(개전) 즉시 미사일, 전투기, 유도폭탄 등으로 동시다발적 공격을 감행하면 순간적으로 敵(적)의 지휘체제가 마비된다. 이 효과는 핵무기를 쓴 것에 버금 간다고 한다. 지휘체제가 마비된 군대는, 머리가 잘려나간 뒤의 몸통으로 변한다.
   권태영 박사는 이런 공세적 방어체제를 구축하곤 이 사실을 김정일 정권에 대하여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자는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자들이므로 전쟁을 企圖(기도)하다간 敗家亡身(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전쟁을 포기한다는 논리에서다.
  
   이런 공세적, 예방적 防禦戰略(방어전략)은 國家(국가)지도부의 意志(의지) 없이는 군인의 손만으로써 만들 수 없다. 文民優位(문민우위)의 군 통제가 시행되는 한국에선 민간인 대통령의 國防(국방)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先制(선제)공격 개념을 세우려면 북한노동당정권을 민족반역 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은 이미 그렇게 규정하고 있으니 국가 지도층이 이 헌법을 신념화할 수 있어야 과감한 戰略(전략)이 만들어질 수 있다.
  
   韓美(한미)연합사가 2012년에 해체된다면 북한군의 기습의도를 파악한 후 한국군 단독으로 선제공격을 결단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미군이 增援軍(증원군)을 보내줄 것이냐의 여부가 애매하다. 韓美연합사 체제하에선 自衛的(자위적) 선제공격을 韓美 수뇌부가 공동으로 결정하므로 미군의 증원은 자동적으로 보장된다.
  
   한국이 자유통일과 一流(일류)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보복력과 응징력을 갖춘 공세적 국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민족사에 축적된 노예근성을 정리하고, 어린 민주주의를 보호, 육성하고, 국가기강을 세우며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생존을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누리는 평화, 자유, 번영은 공짜심리와 결합되면 국민정신을 타락시키는 毒(독)이 된다. 아직도 북한정권을 상대로 전쟁 중인 나라인데도 30%가 從北세력화할 수 있는 요인들을 안고 있다. 북한이 核무기와 이 잠재적 반역세력을 결합시키는 전략을 구사하여, 決戰의지가 없는 국가 지도부를 압박하도록 방치하여선 안 된다. 敵의 지도부를 無力化시킬 수 있는 수단과 선제공격 개념의 작전계획을 세워놓아야 국가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
  
  
  
  
  
  
  
  
  *空軍조종사, 해주항 상공에서 "빨리 공격명령 내려 달라"고 재촉
  당시 작전사령관 尹應烈 장군의 회고록에서 발견한 1970년 6월6일 해군 방송선 납북(월북?) 사건의 秘話.
  趙甲濟
  
   尹應烈 전 공군작전사령관이 최근 ‘상처투성이의 영광’이란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황금알 출판사에서 나왔다. 528페이지(1만8000원)짜리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의 경력이 파란만장하다.
  
   1927년 평양출생, 일본육군소년비행학교 졸업, 자바에서 가미가제 특공대원으로 차출, 일본 본토로 이동하다가 해방을 맞아 목숨을 건졌다.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평양으로 돌아갔다가 북한공군에 입대하였다. 사상적 갈등으로 남한으로 탈출, 육군사관학교 7기로 입대, 졸업한 뒤 독립한 공군으로 옮겼다.
  
   6.25 직전 옹진전투, 지리산 및 영남지구 공비토벌에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 전쟁중엔 107회의 敵陣 출격을 기록, 승호리 철교 폭파 등 戰果가 많다. 공군 소장으로 사관학교 교장과 작전사령관을 역임한 뒤 轉役,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차관급)과 코리아 타코마 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미국 샌 디에고에서 살고 있다.
  
   비행중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장면들을 읽어보면 生과 死는 인간의지가 아닌 運命에 의하여 결정되는구나 하는 느낌도 든다. 연평도 도발 사건과도 연관된 대목을 소개한다.
  
   1970년 6월5일 尹應烈 장군이 공군작전사령관으로 있을 때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해군 방송선이 월북한 사건이 일어났다. 문 모 중위가 북한에 있는 아버지를 찾는다면서 배를 몰고 북한으로 올라간 것이다. 한국 해군은 방송선이 북한 함정에 의하여 拉北되고 있다고 보고, 공군기의 출동을 요청하였다. 수원의 제10전투비행단에서 F-5 두 대가 출격하였다. 출동 조종사는 NLL 부근에 도달하였으나 방송선을 찾을 수 없었다. 尹 장군은 “철저히 수색하여 북한함정을 발견하면 공격하여 침몰시켜라”는 지시를 내렸다.
  
   출동 조종사는 용감하게도 NLL을 넘어 북한의 해주항 상공까지 들어가, 해주항엔 몇 척의 북한함정이 보이는데 한국해군의 방송선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해왔다. 尹 장군은 김성룡 공군참모총장에게 ‘정박중인 북한함정을 공격하겠다’고 보고하였다. 출동 조종사도 공격명령을 내려달라고 재촉하였다. 김성룡 총장은 그러나 “공격은 안 된다. 敵機가 나타나기 전에 우리 전투기를 철수시켜라”고 지시하였다.
  
   尹 장군에 따르면 해군측은 우리 해군 방송선이 북한 함정에 납북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공군에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기다리는 전투기가 나타나지 않아 해주로 끌려가버렸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고 한다. 해군은 恥部(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越北사고라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송선 납북은 공군의 소극적 대응 때문이라고 오해한 朴 대통령은 任期 만료를 두 달 남겨 놓은 김성룡 총장을 轉役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1월23일 오후 연평도 상공으로 출격한 한국 공군의 F-15K 전폭기 조종사도 “빨리 북괴 해안포에 대한 폭격명령을 내려달라”고 재촉하지 않았을까?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폭격할 때: 미국의 반대를 묵살!
  趙甲濟
  
   2007년 여름 이스라엘 수상 올메르트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시리가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서 짓고 있는 원자로를 폭격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부시는 安保관계 참모들에게 검토를 시켰다. 답은 부정적이었다. 특공대를 보내 부수어버리는 방안도 검토하였으나 위험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국 CIA 부장 마이크 해이든은 문제의 시설 안에 북한의 도움으로 만들어지는 원자로가 있을 가능성은 높지만 핵무기 제조시설이 보이지 않아 시리아의 핵무장 의도에 관한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는 보고를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 수상에게 "우리 정보기관이 이게 核무기를 만들기 위한 시설이란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 한 다른 主權국가를 공격할 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하였다.
  
   올메르트 수상은 "이 건은 우리나라의 신경을 매우 심각하게 자극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시리아의 핵개발 계획은 우리에겐 생존 차원의 문제이다"고 덧붙이면서 "귀하의 전략은 나에겐 매우 실망스럽다"("Your strategy is very disturbing to me.")"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부시는 통화를 끝낸 뒤 옆에 있던 보좌관에게 "그래서 이 사람이 좋단 말이야. 그는 배짱이 있어"라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공군기는 2007년 9월 시리아의 다일 아주르(Dair Alzour) 원자로 시설을 폭격, 몽땅 부숴버렸다. 때린 쪽은 물론이고 얻어맞은 시리아도 침묵하였다. 부시는 회고록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事前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시는 또 얻어맞은 시리아가 침묵하였고, 폭격 받은 시설을 서둘러 위장한 것으로 봐서 '핵무기용 원자로를 짓고 있었음이 확실해졌다'면서 CIA의 조심스런 평가에 대하여 '정보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란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평하였다.
  
   이스라엘은 이런 폭격을 미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는다고 한다. 통보할 경우 오해를 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생존에 관련된 문제는 스스로의 결단에 의하여 해결해야지 아무리 우방국이라도 외국에 매달리면 안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 지도부의 확고한 철학이다. 부시는 시간이 지난 뒤 이 폭격 작전을 알리는 게 어떠냐고 이스라엘 수상에게 이야기하였다. 수상은 그렇게 하면 시리아의 지도자 아사드를 코너로 몰아 보복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 우려가 있다면서 '비밀 유지'를 하자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배짱으로 핵개발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에 의한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 때 프랑스·영국과 합세하여 對이집트 작전에 가담한 것을 기회로 삼아 프랑스와 비밀核개발 협정을 체결했다. 프랑스 기술의 도움으로 네게브 사막에 재처리시설, 원자로 등 핵무기 개발 단지를 만든다. 이스라엘 建國의 아버지인 벤 구리온 총리는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나 골다 메이어(뒤에 총리 역임) 등 반대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페레스는 회고록에서 이 核개발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번도 ‘核무기 개발’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그 대신 ‘核무장 선택권’이란 의미이지만 사실상 핵개발을 뜻하는 ‘뉴클리어 옵션’(Nuclear Option)이란 용어를 썼다. 페레스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이 비밀核개발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돌파해야 했던 여러 난관들을 설명했다. 그중의 하나. 페레스 당시 국방차관이 1959년 아프리카의 세네갈을 방문하고 있는데 벤 구리온 총리로부터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라는 연락이 왔다. 비상사태가 발생한 줄 알고 돌아오니 벤 구리온 총리, 골다 메이어 장관,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 책임자 하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총리의 설명인즉, 소련의 첩보위성이 네게브 사막의 核시설 건설공사 현장을 촬영했고 이 사진을 갖고 그로미코 소련 외무장관이 지금 워싱턴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포스터 덜레스 美 국무장관에게 그 사진을 들이대고서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에 대해 核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으려 하는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특사를 미국으로 보내 간청을 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페레스가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리 이실직고하면 약점을 잡히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자. 도대체 소련 첩보위성이 찍은 사진에 뭐가 나오나. 땅을 판 구멍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딱 잡아떼면 그만이다.”
  
   이런 취지의 설득이 통해서 이스라엘 정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 核개발을 계속 추진해 지금은 核강대국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1960년대에 核폭탄 제조에 성공했고 지금은 약 400개의 탄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을 운반할 장거리 미사일 제리코 1, 제리코 2호도 實戰用으로 배치된 지 오래이다. 小國이 강대국의 감시망 속에서 비밀리에 核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核무기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국제적인 압력으로 경제난에 봉착, 결국 核무기 제조는 보류하고 있는 인도를 비롯, 박정희의 좌절과 북한의 경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유독 核무장에 성공한 것은 벤 구리온과 페레스 같은 배짱 있는 정치인의 리더십과 自主국방에 대한 정치권의 全面的(전면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한국처럼 美軍에 국방을 의존하고 있었다면 核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존 본능
  
  
  오늘 서울 종로 5가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행동본부 주최 '武力응징 및 核무장 촉구 국민대회'에서 김길자 경인대 명예총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생명체는 공격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하여 자신을 지키려 하는데 한국은 공격을 당하여도 그런 생존본능을 보이지 않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생존본능이 발휘되지 않는 국가는 '살찐 돼지'보다 못한 존재로서 생존의 자격을 상실한단. 이런 나라는 G20 회의나 월드 컵을 100번 주최하여도 그 노예근성으로 해서 一流국가를 만들 수 없다.
  
  
   작년 1월 가자 지역으로 육군을 들여보내 陸海空 합동으로 하마스 섬멸 작전을 펼치고 있던 이스라엘 정부는 유엔 안보리가 즉시 휴전을 결의한 데 대하여 "우리는 이를 무시하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잔인한 팔레스타인 그룹이 안보리 결의안을 지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당시 수상은 이어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스라엘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에 대하여 외부기관이 결정권을 가지도록 동의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 국방군은 이스라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작전을 계속할 것이다."
  
   하마스도 유엔 결의안을 거부하였다고 프랑스의 日刊紙 피가로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安保를 모든 정책의 최상위에 둔다. 安保문제에 대하여는 "유엔도, 미국도 이래라 저래라 해선 안된다. 국가생존의 문제는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세를 견지한다.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다수의 아랍인들에 의하여 포위된 가운데서 한번도 외국군대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지킨 적이 없다. 미군은 물론이고 외국군대의 주둔을 허용한 적도 없다.
  
   외국군대가 주둔하여 안보를 도와주게 되면 국민들의 정신상태가 해이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회도 자주 격돌하지만 정치의 주제는 항상 국가 생존이다. 거창한 주제를 놓고 벌이는 정치투쟁은 나름대로의 美學이 있다. 한국처럼 安保를 무시하고 사소한 데 목숨 거는 정치는 추하다.
  
   이스라엘은 自主국방의 나라이다. 敵國을 선제공격하거나 선제공격 당하거나,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휴전을 하거나 자신들의 책임하에 한다. 安保문제에 관한 한 미국과 유엔에 대하여도 "당신들이 우리 대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양보하지 않는다. 自國의 안보문제를 남의 나라 문제인 것처럼 치부하여놓고는 치사하고 절망적인 싸움에 목숨을 거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연수보내야 할 곳이 있다면 그곳은 이스라엘이다.
  
   생존본능이 거세된 대한민국, 생존을 위하여 처절하게 투쟁하는 이스라엘은 살찐 돼지와 야윈 늑대의 모습이다. 북한정권은 이스라엘을 닮았고, 한국은 아랍을 닮고 있다.
  
  
  *이스라엘 對 하마스: 10 對 1203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지역에서 휴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하마스가 공격할 때는 휴전에도 불구하고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趙甲濟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지역에서 휴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하마스가 공격할 때는 휴전에도 불구하고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오메르트 수상은 3주간에 걸친 가자 공격戰에서 목표를 달성하였고, 하마스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말하였다. 현재까지 1,202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고, 50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으며 이스라엘 군인은 10명이 戰死하고 200명 이상이 다쳤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언제 가자 지역에서 철군할지는 밝표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민 90%가 가자 作戰 지지
  
   북한군이 수시로 서울을 향하여 로켓포를 쏘는 것을 보다 못한 國軍이 기습작전을 폈다고 치자. 민노당, 민주당, 전교조, MBC는 과연 국군을 지지할까?
  趙甲濟
  
   국제사회에선 가자지역 평정 작전을 펴고 있는 이스라엘을 집중적으로 비판하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은 90%가 정부와 軍을 지지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하였다. 정부, 언론, 정당, 심지어 평화운동을 하던 좌파 세력까지 하마스 토벌작전을 지지한다고 한다. 가자 지역에서 발생하는 민간인 死傷者에 대하여도 이스라엘 언론은 하마스 무장세력이 민간인 속에 숨고, 민간인을 방패로 삼고 있으므로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이 시위를 한 것 말고는 反戰 시위도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安保 앞에선 총단결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들은 국제사회가 테러단체인 하마스를 옹호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치부한다. “파리 샹제리제 거리에 이틀이 멀다 하고 폭탄이 떨어진다면 프랑스 정부는 가만히 있겠는가”, 이렇게 대어든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이스라엘식 自主국방 정신 앞에선 국제여론도 사치품으로 취급된다. 북한군이 수시로 서울을 향하여 로켓포를 쏘는 것을 보다 못한 國軍이 기습작전을 폈다고 치자. 민노당, 민주당, 전교조, MBC는 과연 국군을 지지할까?
  
   2002년 여름 서해에서 우리 해군 함정이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을 받아 수십 명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 MBC는 난데없이 어민들의 조업이 북한군의 공격을 부른 것처럼 왜곡 보도하였다. 2003년 11월18일 PD 수첩 프로는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가짜이다”는 막말을 방송하고 터무니 없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敵의 공격으로 自國이 피해를 본 사건에 대하여 自國을 불리하게 만드는 보도를 하고 있는 MBC, 이와 이념성향이 비슷한 민노당, 민주당, 전교조. 이런 세력이 있는 한 한국은 自衛的 작전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다.
  
  *"믿을 건 우리뿐"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의 특공작전은 그 발상의 기발함과 행동의 대담성에 있어서 「다이하드」와 같은 영화를 연상시킨다. 이들 특공작전은 이스라엘식(式) 생존방식을 보여준다. 학살과 핍박의 희생양으로 오랫동안 경멸받던 나약한 유태인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결의에 찬 행동, 또 그러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건너온 다리에 불을 질러버리는 모진 자기다짐인 것이다. 그들은 국제법을 어기고 국제여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특공작전도 사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만 국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6백만 유태인이 학살될 때 당신네들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쏘아붙이면서 『믿을 사람은 우리뿐』이라고 서로를 일깨우는 사람들이다.
  
  
  
  
  
  
  *중국을 협박, 굴복시킨 이스라엘
  "이란 제재안에 거부권 행사하면 우리가 직접 이란 核시설을 공습하겠다"
  趙甲濟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6월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고 있는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2표, 반대 2표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해외에 있는 이란 은행들에 대한 제재와 중앙은행을 포함한 모든 이란 은행의 거래 감시, 이란에 대한 유엔 무기禁輸(금수) 조치 연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와 관련된 은행과 41개 이란 기업이 제재 대상으로 선정돼 국제 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란에 대한 탱크 등 重무기 판매와 탄도미사일 관련 기술 등의 지원을 금지하였다. 금지 대상 물품을 이란으로 운송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公海상에서 조사하거나 해당 물품을 압류하도록 하였다. 브라질과 터키가 반대표를 던졌으며 레바논은 기권했다.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당초 추가 제재에 부정적이었으나 이스라엘이 강하게 중국을 압박해 결의안에 동조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하였다. 이스라엘은 지난 2월 중국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중국 측에 이란의 核무기 개발 의지를 담은 비밀문서를 보여주곤 국제사회가 이란의 核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이 이란의 核시설을 폭격하겠다고 통고하였다고 한다. 그럴 경우 原油의 11%를 이란에 의존하는 중국 경제가 어떤 타격을 받게 될지도 자세히 설명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런 압박이 공갈이 아님을 잘 알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공군은 2007년 9월 북한이 지원하여 건설중이던 시리아의 원자로 시설을 폭격한 적이 있다. 이런 압박이 먹힐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이 수백 개의 核폭탄을 보유한 '核강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 식으로 한다면 우리도 중국에 대표단을 보내 "만약 천안함을 폭침시킨 북한을 중국이 계속 감싼다면 우리는 북한의 잠수함 기지를 폭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었을 때 상해 엑스포가 제대로 치러지겠는가"라고 압박했어야 했다. 중국에 대한 물리적 압박수단을 우리가 만들어내야 중국을 설득할 수 있다.
  
   1950년 10월 유엔군에 의한 北進(북진)통일을 눈 앞에 둔 한반도에 수십만 명의 中共軍을 보내 통일을 저지하였던 중국이 말이 통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公職(공직)을 맡아선 안 된다. "내가 胡錦濤(호금도)를 잘 아니 내 말을 들을 것이다"고 생각하는 이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로 구호품(이스라엘은 危害물품이 있다고 주장)을 싣고 가던 터키 배를 公海上에서 停船(정선)시키고 반항하는 운동가 9명을 사살하였다. 국제사회에서 비난 여론이 높았으나 네탄야후 수상은 직후 연설에서 한 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이스라엘 軍의 조치를 옹호하면서 배가 또 들어오면 똑같이 저지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뒤부터 구호선은 이스라엘 군대의 停船, 檢問(검문), 檢索(검색)에 고분고분하게 순응하고 있다. 安保는 이런 식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自國의 安保문제를 國際(국제)사회나 유엔에 호소하여 해결하겠다는 자들은 노예근성의 소유자들이고 공짜심리이다.
   [ 2010-06-10, 1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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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지도자는 앞에 서는 사람"
  
  
   "核을 이용하는 것보다 核보유 의혹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지요.”
   조갑제닷컴
  
   오늘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김영희 기자로부터 "대통령께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스라엘은 核보유국입니다. 核을 가진 이스라엘이 남의 나라에 대해 核을 갖지 말라고 요구할 도덕적 권위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하였다.
  
   “이스라엘의 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구를 먼저 공격한 적이 없어요. 위협을 받는 건 우리입니다. 이스라엘은 核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의혹이 있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리고 이런 의혹 자체가 억지력이 될 수 있다면 그걸 왜 마다하겠습니까. 核을 이용하는 것보다 核보유 의혹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지요.”
  
   -核보유 의혹을 억지력으로 활용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예전에 아랍연맹 사무총장이 내게 이스라엘 核시설이 있다고 의심받는 지역을 좀 가보자고 해요. 내가 말했지요. ‘내가 미쳤습니까? 가보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의혹이 해소되고 나는 목이 잘릴 거요.’ 의혹으로 충분해요.(웃음)”
  
   87세의 페레스 대통령은 세계 국가원수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그는 리더십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는 프랑스 기술의 도움을 받아 핵무기를 개발할 때 그 사업의 책임자였다.
  
   “사람들 위에 서지 않고 낮은 자세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 위가 아니라 앞에 있는 것뿐입니다. 리더가 되려면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돌격 앞으로!"가 없다고 한다. 장교가 항상 "나를 따르라!"라고 호령한다.
  
  
  *한국이 이스라엘처럼 보복하였더라면…
  국가公認암살단을 만들어 뮌헨올림픽 테러 관련자들을 20년간 추적, 모조리 처단하다!
  
  
   1972년 西獨의 뮌헨에서 열린 여름 올림픽의 선수촌으로 침입한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테러단이 이스라엘 선수 및 코치들을 인질로 잡아 경찰과 대치한 끝에 11명을 죽였다. 서독 경찰관 1명도 사망하였다. 테러단 5명이 총격전으로 죽었고 세 명이 잡혔다. '검은 9월단'은 그 뒤 서독의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하여 西獨 정부를 위협한 끝에 잡혀 있던 세 명의 동료를 구해냈다.
  
   골다 메이어(여성) 이스라엘 총리는 이 테러를 기획하고 가담한 범인들을 암살하는 조직을 만들게 하였다. 정보기관 모사드와 이스라엘 군대가 합동으로 특수조직을 만들었다. 이 팀의 첫 작전은 1973년 4월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침투하여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정보책임자 모하메드 유수프 알 나자르 등 세 명을 죽이는 일이었다. 이 特攻(특공)작전의 지휘관은 나중에 이스라엘 군의 총참모장, 그리고 수상이 된 에후드 바락(현재 국방장관)이었다. 이 국가公認(공인) 암살단은 주로 유럽과 중동을 돌아다니면서 팔레스타인 테러단을 추적하여 죽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실수를 하였다. 1973년 6월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에서 한 모로코인을 뮌헨사건 관련자 알리 하산 살라메로 誤認(오인)하여 암살하였다가 요원 다섯 명이 붙들렸다. 이스라엘 정부는 외교를 통하여 2년 뒤 옥살이하던 요원(여성 2명, 남성 3명)을 전원 송환받았다. 이스라엘 암살팀은 살라메에 대한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1979년 1월22일 그를 베이루트에서 발견, 원격조종 폭탄으로 죽였다.
  
   이 보복작전은 '신의 분노'라는 암호명을 가졌다. 1992년까지 20년 동안 계속되었다. 얼마나 많은 테러관련자들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뮌헨 사건 관련자 중 생존자는 두 명이라고 한다. 이 보복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수년 전 개봉되었던 '뮌헨'이란 작품이다. 스필버그가 제작하였다.
  
   한국이 이스라엘 같이 보복하였더라면 1·21 청와대 습격사건 관련자,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관련자, 아웅산 폭파사건 관련자, KAL기 폭파사건 관련자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거기에 김일성, 김정일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국가가 自國民(자국민)에게 가해진 외부세력의 危害(위해)에 대하여 보복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면 正義(정의)불감증에 걸렸다고 봐야 한다. 그 첫 징조가 法治(법치)파괴 현상에 대한 정부의 무감각이다. 두번째 징조는 主敵(주적)에 대한 적개심의 무감각이다.
  
   李明博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은 확실하게 正義불감증에 걸렸다. 그의 위선적인 중도실용 노선이 이 불감증을 더욱 깊게 한다. 敵과 犯法者(범법자)에 대한 분노를 죽이는 게 중도실용이다. 올봄 천안함 폭침에, 작년 임진강 水攻(수공)에, 재작년 금강산 관광객 사살 사건에 이스라엘식으로 對應(대응)하였더라면 연평도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유태인 학살 부정죄
  
  
  유럽의 13개 국가들-독일, 프랑스,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은 '유태인 학살 否認罪'를 형법에 두고 있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부인하거나, 나치를 옹호하거나, 학살의 규모를 축소하는 공개발언, 집필 등을 한 자에 대하여는 최고 징역 5년까지 살리도록 규정했다. 피해당사자인 이스라엘은 유태인 학살과 反인류적 만행을 부정하는 것뿐 아니라 인정하더라도 축소 표현을 하는 자도 처벌하도록 하였다. 나치에 의하여 희생된 유태인이 600만 명이 아니라 60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쓰면 감옥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6 ·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모른다고 대답한 14.6%의 成人들은 刑事 처벌감이다. 이런 사람들은 투표권이 제한되고, 公職출마, 공무원 임용 등에서 배제될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유태인 학살 否認罪가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유엔 인권위원회, 유럽 인권위원회는 이런 주장을 배척하였다.
  
   한국에서도 刑法에 '북한정권에 의한 전쟁·학살 및 反인류적 행위를 부정하는 罪'를 신설할 만하다. 즉 김일성의 6 ·25 남침, 북한정권의 강제수용소 실태, 공개처형, 납치,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등을 부정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자들은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저지하는 이런 법률이 언론과 양심의 자유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은 人權 선진국 유럽의 경우가 증명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특히 국정원 검찰 경찰은, 공동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는 행동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은 노예근성의 소유자이다. 좌익들이 그런 생각을 유도한다. 공동체의 자유를 파괴하는 첫 걸음은 6 ·25 남침과 같은 국가적 진실을 부정하여 국가적 기억장치를 마비시키고 종국에 가서는 彼我식별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북한정권에 의한 학살 및 反인류적 행위 否定罪'를 신설하면 전교조 교사들은 反대한민국적 교육을 시킬 수 없다. 시키면 감옥행이다.
   아울러 대통령 이하 공무원들은 6 ·25 전쟁을 언급할 때 반드시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도움을 받아 同族을 친 민족반역의 南侵전쟁'이란 점을 설명하도록 法制化시킬 필요가 있다. 이번 유엔 총회 연설처럼 李明博 대통령은 6 ·25 전쟁을 이야기할 때 김일성의 南侵으로 일어났다는 점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에게 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심어주어야 할 지도층부터 이런 기억상실증을 보이니 成人의 14.6%, 약500만 명이 6 ·25를 누가 일으켰는지 모른다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쉬프 기자 충고
  
  지브 쉬프氏는 텔 아비브市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하레츠(HAARETZ)의 국방부장으로서 이스라엘에서 제일 가는 安保분야의 전문기자이다. 61세의 老기자인 그는 이스라엘이 치른 여섯 번의 전쟁과 캄보디아 월남전쟁 등 지금까지 여덟 번 전장을 누볐다고 한다. 이스라엘 상류층에서는 『라빈 수상도 쉬프 기자에게 보고한다더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그는 고급정보에 많이 접하면서도 신뢰를 받고 있는 大記者이다. 크지 않은 체구에 조용한 분위기를 가진 쉬프氏는 텔 아비브의 한 카페에서 한 시간 반쯤 자신의 소견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요사이 젊은 기자들이 국익을 해치는 국방 관련 기사도 마구 쓰고 지나친 상업주의가 또한 부작용이 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적이 알면 유일하게 되는 군사상의 기밀은 보도하지 않는 것이 언론계의 자율적인 관례이다』고 했다. 그는 『국방당국자와 언론인들이 비공식적인 접촉을 항상적으로 유지하면서 상호이해를 도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쉬프氏는 『자주국방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방위산업의 기초이다』고 했다. 그는 『미제 무기를 사더라도 그것을 한국식으로 개조,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의 독자적 운용이 있어야 무기수입이 금지되는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기 때문에 그 국가는 외교적으로 여유를 갖게 된다』고 충고했다.
  
   쉬프氏는 또 『국가의 전략과 관계된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전국민적 合意가 있어야 국가의 단결이 유지될 수 있고 젊은 세대에게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를 설명하기가 쉽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경우 지난 1년간 시리아,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등과의 평화협상을 둘러싸고 어떤 점령지를 어떻게 포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국론이 분열됨으로써 「국민적 합의」가 다소 약화돼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론이 영토문제라는 매우 민감한 주제를 선택하여 갑론을박하도록 만든 것이 실수였다면서 「국민적 합의」라는 목표를 너무 깊게 추구하다가 보면 오히려 국민적 합의가 약화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태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군사적 천재성(天才性)은 발견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처럼 독창적인 군사조직과 전술을 개발하여 나라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까.
  
   『유태인은 군사면에선 아주 형편없는 전통밖에 가지고 있지를 못했지요. 우리는 군대를 조직할 때(영국식민지시대) 다른 나라와 아주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비밀전투요원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전통 속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탄생했으므로 우리는 IDF(Israel Defense Force)를 인민군(People's Army)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건국 주역들은 농업을 일으키는 데 주력했고 그 뒤에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엔 무역이나 산업처럼 人力수요에 대한 다른 경쟁부문이 없어서 가장 뛰어난 人材가 군대로 몰려들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유태인들 중에서도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 기초를 놓은 조직이란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또 하나 이스라엘 군대를 강군(强軍)으로 만든 요인은 싸우지 않으면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생존이냐 멸망이냐, 여기서 살 것인가 다시 쫓겨날 것인가, 예속이냐 독립이냐의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노 아더 초이스」(No other choice)-이 말을 기자는 이스라엘 취재 중에 수십 번은 더 들어야 했다. 용감하게 싸우는 수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벼랑에 선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강박관념이 맹렬한 투지로 전환된 곳에 이스라엘 군대가 있다는 얘기다. 쉬프 기자는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 국가와 평화를 이룬 다음에는 이스라엘 군대나 안보의식도 달라질 것이다』면서 『그때는 국민적 합의를 도모하기가 더 어렵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쉬프 기자는 한국이 북한에 대한 압도적인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어 자주국방을 감당할 힘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주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거기에 국방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우리는 수십 배의 국력과 병력을 가진 아랍의 적들에 의해 포위돼 있었지만 우리의 영토에 외국군이 장기 주둔한다는 것은 국가의 단합성과 정신무장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습니다. 걸프 전쟁 때 미군 패트리어트 미사일 대대가 잠시 주둔했지만 임무가 끝나자 즉각 철수했으며 1956년 수에즈 전쟁 때 2개 비행대대가 잠시 주둔했다가 즉시 철수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역할을 줄여야 한국인의 자주국방 의지가 살아납니다. 그래도 미군의 우산, 특히 공군의 지원은 계속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대한민국 국회는 北核문제나 安保문제를 정치의 제1주제는커녕 해외토픽 기사를 읽듯이 구경만 한다고 하자 쉬프氏는 『그것이 바로 외국 군대에 국방을 의탁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아주 나쁜 심리현상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스라엘에 전쟁을 기념하는 박물관, 기념관, 기념탑, 기념물들이 전국 도처에 깔려 있는데 대해 쉬프 기자는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장이다』라고 했다.
  
   그는 『요사이 젊은이들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안정과 풍요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기자는 『한국에서도 전쟁기념관이 세워졌는데 왜 하필 전쟁을 기념하느냐 해서 명칭에 대한 시비가 있었다』고 했더니 그는 『전쟁이란 단어를 빼버리자는 것은 역사를 생략하자는 것과 같다. 전쟁 없는 역사가 언제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박정희 메모
  
  1972년 8월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朴正熙 대통령은 돌아온 남측 대표 李範錫씨 일행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북한 당국을 상대할 때의 지침을 내렸다. 李明博 대통령이 읽어도 참고가 될 것 같아 싣는다.
  
   <남북적십자 본회담時 지침
  
   1. 평양에서 있었던 일은 공식·비공식을 막론하고 모두 보고해야 한다.
  
   2. 공산주의자들과 접촉할 때는 사전에 전략을 세워놓고 해야 한다.
  
   3. 북한 위정자들과 우리가 핏줄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誤算이다.
  
   4. 우리 적십자사는 인도적 사업이라고 보나 북한은 정치적 사업으로 본다.
  
   5. 북한 요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정치적이다.
  
   6.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7. 술을 마실 때도 상대방이 공산당이란 사실을 잊지 마라.
  
   8. 북한 사람들과는 어떤 자리에서도 감상적으로 흐르지 마라.
  
   9. 북한이 남한 언론을 비판하면 자문위원들은 즉각 반박하라.
  
   10. 대표단과 자문위원 사이는 긴밀한 협의를 하되 매일 저녁 결산토록 하라>
  
   이 지침은 김정일을 대하는 李明博 대통령에게도 有效할 것이다.
  
  
  *얻어맞고 미군 불러들인 건 수치
  
  
  북한한테 얻어맞고 오바마 대통령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항공모함 보내달라’고. 아니, 항공모함이 왜 옵니까? 여기. 韓美동맹이 아무리 소중하지만, 이런 사건을 가지고 오바마한테 전화해서 ‘항공모함 보내달라’고 하는 것은 비겁한 것 아닙니까? 쓸데없이 중국하고 마찰을 조성하는 겁니다. 이런 짓은 해서는 안 돼요. 자기가 북한을 칠 수 있는 완벽한 무기체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써먹지 않고, 그럼 자기는 싸우지 않고 미국 보고 대신 싸워달라는 것 아닙니까? 이런 공짜심리가 어디 있습니까?
   자주국방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이야기를 했어요. ‘북한이 쳐내려 오면 한국군이 단독으로 싸워서 이긴다. 그러나 북한이 소련과 중공의 도움을 받아서 쳐내려 왔을 때는 우리는 미국의 도움으로 맞선다. 이게 나의 자주국방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북한이 쳤으면 우리 힘으로 때려야지 미군 도움을 왜 받습니까? 미군 도움 하나도 안 받아도 되게 돼 있어요. 아니, 지난 여름에 항공모함 여기 부산에 들어왔지 않았습니까? 기억하시죠? 그때도 훈련하러 왔습니다. 훈련하고 나가서 또 얻어맞으면 또 불러들이고, 이 훈련은 ‘쇼’죠. 이게 숍니다. 그때(11월23일) 우리 군대가 바로 연평도 근해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잖습니까? 훈련하고 있었다는 것은 병력이 집결돼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잘 된 거 아닙니까? 그때 훈련에 참여한 그 (아군) 화력에 대해서 ‘즉각 북한 해안포를 때려라’ 명령을 내렸으면 깨끗이 끝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하지 않고, 마치 깡패한테 얻어맞은 학생이, 덩치도 좋으면서, 싸우기가 싫으니까 형한테 전화해서 ‘그 주먹 센 사람 좀 보내주세요’하는 그런 구차한 전화를 걸고 앉아 있습니다. 이건 대한민국의 수치예요.
  
   저한테 이메일이 들어왔어요. 그 사건 나고 나서,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오늘처럼 대한민국에 태어난 국민임을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 이렇게 썼어요. 이건 누구한테 하는 야야기입니까?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만든 사람 이명박, 이명박 때문에 5천만 국민들이 부끄러운 국민이 됐습니다. 수치스러운 국민이 돼 버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인류 역사에, 우리 민족사에도 없어요. 국가가 생긴 이후에 이런 일은 없습니다. 국가가 생긴 이후에. 아니, 생각해 보십시오. 천안함 사건이 났습니다. 누가 봐도 북한이 한 게 그날부터 명백했어요. 그런데 첫 청와대 발표가 뭐냐? ‘북한 특이동향 없다’, 이 말 자체가 거짓말입니다. ‘북한 특이동향을 모르겠다’고 해야지, ‘없다’라고 하면 됩니까?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아직 정보 부족이라는 뜻이고, ‘북한 특이동향 없다’라는 것은 북한에서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말이 잘못 된 것입니다. 모른다고 해야지. 그 다음 또 뭐라고 했느냐? ‘북한이 했다는 증거 없다’. 북한이 했다는 증거 나오니까, 또 뭐라고 했느냐? ‘예단하지 마라’ 했어요. ‘예단하지 말라’.
  
   요새 제가 이명박 뒤에 대통령이라는 말이 잘 안 나와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이명박 뒤에 대통령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습니까? 그래도 오늘 ‘이명박’, ‘이명박’ 해도 양해해 해주실 바랍니다. 대통령 같은 짓을 하면 붙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한테 제가 대통령이라는 말을 붙여본 적이 없어요. 지금 노무현이 한 짓이나 이명박이 한 짓이나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한 번 더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 2010-12-08, 10: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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