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式으로 산다는 것
私生活이 깨끗한 지도자만이 위기 때 목숨을 걸고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인간은 생활이 복잡하면 복잡하게 생각한다. 국가 지도층의 소박한 삶이 중요한 것은 그래야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깨끗한 만큼만 용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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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지도부가 깨끗해야 용감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에 사는 유태인과 다른 나라에 사는 유태인은 다르다고 한다. 이스라엘 유태인은 국가를 만들고 여러 차례 전쟁을 통하여 이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유태인들의 나쁜 민족성을 극복하여 새로운 사람들로 거듭 태어났다는 것이다. 머리는 좋지만 尙武(상무)정신이 약하여 유럽에서 동네북처럼 핍박을 당하던 민족이 일단 국가를 세우고 군대를 건설하니 독한 사람들로 변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 우리가 믿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安保는 절대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게 이스라엘의 맹세이다. 이런 결연한 다짐은 이스라엘 보통사람들조차 영웅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한국인 또한 文民전통이 강하고 尙武정신이 약하였다. 그 결과는 國力의 쇠퇴와 식민지화였다. 1948년 국민국가를 만들고 國軍을 건설한 이후 한국도 이스라엘처럼 용맹한 국가로 변해갔다. 李承晩-朴正熙-全斗煥-盧泰愚로 이어지는 약 40년간의 대한민국 역사는 군사문화가 지배적인 역할을 한, 民族史上(민족사상) 예외의 시기였다. 1993년 이후 정권이 文民 지배로 돌아가자 예외의 시대는 끝나고 正常(정상)의 시대로 돌아갔다. 문제는 민족사의 正常이란 것이 국방을 외국에 맡겨놓고 政爭(정쟁)에 몰입하는 변태적 권력투쟁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군대와 민간 부분이 一體化되어 있는 반면에 한국은 군대가 민간부분으로부터 소외되고 정치인들, 특히 親北좌경 정치세력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다. 군사적 전통이 취약한 국군 지휘부는 좌경화된 문민세력에 굴종적 모습을 보이면서 自主국방 의지와 전쟁의지를 스스로 약화시켰다. 국민들도 미국에 安保를 맡기고 웰빙 생활에 탐닉하는 모습이다.
   반면 북한정권은 경제적, 외교적 위기 속에서도 이스라엘처럼 자주국방을 견지하면서 핵무기를 개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 한국은 이스라엘과 반대의 길을 걷는 나라처럼 보인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가장 큰 차이는 자주국방 의지의 有無이다. 필자는 그 원인을 여러 모로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이러하였다. "국가 지도부의 死生觀(사생관)과 청렴성이 관건이다." 私生活이 깨끗한 지도자만이 위기 때 목숨을 걸고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인간은 생활이 복잡하면 복잡하게 생각한다. 국가 지도층의 소박한 삶이 중요한 것은 그래야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깨끗한 만큼만 용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혼자서 설거지하는 74세의 여성 총리 골다 메이어
  
  
   제4차 中東전쟁 때 이스라엘을 이끈 총리는 골다 메이어였다. 70代의 여성총리는 1898년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190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모리스 마이어선과 결혼, 1921년에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갔다. 잠시 키부츠 생활을 한 부부는 텔아비브로 옮겼다. 메이어는 시오니즘 조직에 가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1948년 미국에 가서 모금 활동을 성공적으로 벌였다. 메이어는 그해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의 서명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이스라엘 建國(건국)의 아버지인 밴구리온 총리는 골다 메이어를 노동부 장관에 이어 외무장관으로 임명하였다. 1969년 에쉬콜 총리가 急死(급사)한 뒤 집권 노동당은 그를 총리로 선출하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급습, 11명의 선수와 코치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메이어 총리는 군인과 정보기관원으로 암살단을 조직, 테러 관련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했다. 이 암살작전은 20년간 계속되었다.
   1973년 10월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침공할 것이란 사실을 불과 8시간 전에 알았다. 군부는 先制공격을 건의하였다. 미국은 선제공격을 하면 미국 여론의 악화로 원조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통보하였다. 메이어 총리는 얻어맞는 쪽을 선택하였다. 메이어 총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기습을 허용한 데 대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는 1974년에 사임하였다. 후임은 라빈 전 참모총장이었다.
   이탈리아의 인터뷰 전문 여기자인 올리아나 팔라치는 1972년 11월 골다 메이어 총리를 인터뷰하였다. 팔라치는 두 번 인터뷰하여야 했다. 첫 번째 인터뷰를 한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 호텔에 투숙하였는데, 누군가가 녹음 테이프를 훔쳐갔던 것이다(팔라치는 리비아 정보기관 요원들을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메이어 총리는 이 소식을 듣자 인터뷰를 다시 하자고 연락을 취하였다.
   일찍 남편과 이혼한 메이어 총리는 빌라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빌라 앞에 경호원이 서 있을 뿐이었다. 메이어 총리는 낮에 소녀를 불러 청소를 시킬 뿐 요리도 직접 하였다. 팔라치와의 인터뷰 전날 메이어 총리는 손님들을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하였다. 회식은 새벽 2시에 끝났다. 손님들이 돌아가자 총리는 새벽 3시30분까지 설거지를 하였다. 3시간 남짓 잠을 잔 74세의 할머니 총리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집무를 시작하였다. 팔라치가 오전 10시에 메이어를 만나니 피로해 보였다고 한다. “인터뷰를 연기해도 좋습니다”라고 했지만 메이어는 “이렇게 멀리 오셨잖아요. 테이프를 도둑 맞고...”라고 오히려 위로했다.
   팔라치 기자는 긴 인터뷰를 끝내고 헤어지기 직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메이어 여사님, 죽음을 어떻게 봅니까?
   “저의 한 가지 걱정은 너무 오래 사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죄도 아니고 자랑도 아닙니다. 계단을 뛰어서 오를 수 없다든지, 점프를 할 수 없다든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게 없어요. 문제는 정신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너무 일찍 죽은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듯이 너무 늦게 죽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 좋던 知性이 망가져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치욕입니다. 그런 치욕이 나에게 생기지 않기를 바라죠. 내 정신이 말똥한 상태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한 가지 걱정은 너무 오래 사는 것입니다.”
   골다 메이어 총리의 소박한 삶은 예외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인과 軍人은 우리 기준으로는 거의가 가난뱅이이다. 돈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 이스라엘의 엄격한 法治가 公職者(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제한다. 라빈 총리는 駐美대사 시절 미국에 개설하였던 은행계좌를 귀국할 때 폐쇄하지 않았다는 한 가지 이유로 사임하여야 했다. 이스라엘 지도부가 용감한 것은 청렴한 덕분이다. 지도자는 깨끗한 만큼만 용감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 수상과 대한민국 대통령의 차이
  
  
   벤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수상은 2009년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면서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란의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계획 관련 문서를 들고 나와 연설하였다. 이런 요지의 말도 하였다.
   "어제 이 연단에서 유태인 학살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항의하는 의미로서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 사람과 연설도중 퇴장한 분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여러분들들은 도덕적 분별력을 지키기 위하여 행동하였고 여러분들의 조국을 명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을 부정하는 연설을 한 자에게 귀를 빌려주신 분들에게 우리 국민들, 유태인들, 그리고 모든 곳의 교양 있는 분들 입장에서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부끄럼을 모릅니까, 예의를 모릅니까?"
   ("Yesterday, the man who calls the Holocaust a lie spoke from this podium. To those who refused to come and to those who left in protest, I commend you. You stood up for moral clarity, and you brought honor to your countries.
   "But to those who gave this Holocaust denier a hearing, I say on behalf of my people, the Jewish people, and decent people everywhere, have you no shame? Have you no decency?")
   그 전날 李明博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6.25 南侵전쟁 때 유엔군이 우리를 구해준 데 대하여 감사하였으나 북한군이 南侵하여 일어난 전쟁이란 사실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善만 이야기하고 惡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명하면 결국 善이 죽는다. 무기력한, 감동이 없는 연설이다. 네탄야후 같았으면 무엇이라고 연설하였을까?
  
  
   이스라엘에 北爆을 外注 준다?
  
  
   2010년 年末(연말) 저녁 한 會食(회식) 자리에 갔더니 한 친구가 기발한, 그러나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내어놓았다. 요지는 이렇다.
   <이스라엘과 한국의 共敵(공적)은 이란과 북한이다. 이스라엘로선 이란의 核 및 미사일 개발을 도와주는 북한정권이 안보상의 큰 위협이다. 이스라엘은 2007년 9월, 북한정권이 지어주던 시리아의 원자로를 폭격했다. 국제사회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은 이란이 核무기를 만들기 전에 이란 核시설을 폭격할 것이라고 거의 公言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 또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과 협력, 이스라엘 공군이 이란의 핵개발을 돕는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막강 空軍편대는 공중급유를 받아가면서 북한상공까지 와서 원정폭격으로 영변 核시설 등을 부술 수 있다. 북한정권은 이스라엘에 보복할 공군력이 없다. 이스라엘에 당해놓고 서울에 보복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韓美 연합군의 응징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공군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1967년 6월, 아침 출근 시간에 이집트 공군기지를 기습, 300대가 넘는 전투기를 활주로와 격납고에서 파괴, 6일 전쟁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1976년 7월엔 왕복 8000km의 엔테베 작전으로 인질들을 구출하였다. 이라크가 짓고 있던 오시라크 원자력 발전소 공습, 베카 계곡 상공에서 벌어진 시리아 공군과의 대결(시리아 공군기는 85대가 격추되고, 이스라엘 공군기는 한 대가 격추됨), 시리아 원자로 폭격 등등.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북한정권의 지원을 차단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한국, 미국, 이스라엘의 협력은 空想(공상) 단계에서 실천 단계로 格上(격상)될지 모른다. 한국도 북한정권이 核무기를 소형화하여 폭격기에 싣거나 미사일에 장착하는 건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이스라엘과 한국은 물러설 수 없는 금지선을 지니고 있다.
   물론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實戰(실전) 배치하기 전에 한국과 미국이 결단을 내리는 게 가장 좋다. 1994년 미국은 영변 核시설을 폭격하려고 하였으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말리고 카터가 끼여 들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한국이 북한의 핵미사일의 實戰배치를 허용한다는 것은 안보와 主權의 포기를 의미한다. 一戰不辭(일전불사)의 정신으로 임하지 않으면 한국은 北에 종속될 것이다. 결단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이 主敵의 核무장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것은, 이스라엘처럼 단 한 번의 敗戰도 허용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軍의 交戰수칙과 전쟁敎理: "이스라엘은 단 한번의 전쟁도 질 수 없다."
  
  
   이스라엘군이 장병들에게 가르치는 交戰수칙(Code of Conduct)은 다음과 같다.
  
   1. 군사 목표에 대하여서만 군사적 행동을 한다.
   2. 군사력의 사용은 비례적으로 한다.
   3. 이스라엘 軍이 허용한 무기만 사용해야 한다.
   4. 항복한 敵에겐 공격하지 않는다.
   5. 훈련을 받은 사람만 포로를 신문할 수 있다.
   6. 병사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체포된 사람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7. 敵軍에게도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
   8. 약탈은 완전히 불법이므로 절대로 금지한다.
   9. 종교적, 문화적 유적지와 문화재를 존중해야 한다.
   10. 국제구호활동가들의 재산과 차량은 보호해야 한다.
   11. 이 수칙을 위반한 행위에 대하여는 보고해야 한다.
  
   이스라엘 국방군의 전쟁 敎理(Doctrine)는 이렇다.
  
   1. 이스라엘은 단 한 번의 전쟁도 질 수 없다.
   2. 전략적 단계에선 방어적으로 임한다. 우리는 영토적 야심이 없다.
   3. 정치적 수단과 신뢰할 수 있는 억제 태세를 유지, 전쟁을 회피한다.
   4. 擴戰(확전)을 예방한다.
   5. 전쟁의 결과를 신속하게, 결정적으로 확정짓는다.
   6. 테러와 싸운다.
   7. 戰死傷者를 최소한으로 유지한다.
  
  
   세계 랭킹 3위의 군사력
  
  
   *이스라엘 軍은 포로 3명을 데려오기 위하여 테러용의자 1000명을 석방한 적도 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18세에 징집되어 3년을 근무하였는데 2004년부터 점차 복무기간이 단축되어 2년으로 줄어들었다. 예비군 복무는 45세까지인데, 매년39일간 부대에 동원되어 現役과 함께 근무한다. 동성연애자도 징집한다.
   *여자도 의무적으로 軍 복무를 하는데 징집된 여성의 43%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복무가 면제된다. 그 가운데 76%는 종교적 신념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상비군은 18만7000명, 동원 예비군은 40만8000명이다. 육군은 13만5000, 해군은 10,000, 공군은 4만2000명이다. 공군은 F-4 전폭기 50대, F-15 전폭기 86대, F-16 요격기 232대 등 400대가 넘는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공격용 헬기는 120대. 총비행기 수는 1230대이다. 한국 공군은 538대.
   *군사전문가 제임스 F 더니건이 쓴 '전쟁하는 법'이란 책엔 세계 10大 군사강국의 랭킹이 실려 있다. 1등은 미국(2488점), 2등은 중국(827점), 3등은 이스라엘(617점), 4등은 인도(564점), 5등은 러시아(369점), 6등은 한국(289점), 7등은 북한(274점), 8등은 영국(259점), 9등은 터키(240점), 10등은 파키스탄(235점)이다.
   GFP라는 군사전문 사이트가 등수를 매긴 것은 다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영국, 프랑스, 독일, 브라질, 일본, 터키, 이스라엘, 한국 순위이다. 이스라엘은 人口가 720만 명이다. 인구가 7배인 한국과 군사력이 비슷하고 10배 이상 되는 나라와 군사력이 비등하거나 앞선다. 인구 대비 군사력은 단연 세계1위이다.
  
  
   이스라엘 장교의 生과 死: 엔테베 작전 지휘관 요니의 짧고 굵은 생애
  
  
   1976년 7월 엔테베 인질 구출 작전의 지휘관인 요나탄 네탄야후의 父母는 미국 코넬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다. 남동생이 둘이었다. 벤자민 네탄야후는 현재 이스라엘 총리이고, 이도 네탄야후는 작가이다. 세 형제는 모두 이스라엘 군의 엘리트 부대인 사이예레트 마트칼 특공대에서 근무하였다.
   네탄야후는 1964년에 이스라엘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공수부대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여 장교 과정을 밟고 중대장이 되었다. 1967년 6일 전쟁 때 시나이 사막과 골란 高原에서 싸웠다. 敵陣에 남겨진 동료 병사를 구하려다가 팔꿈치에 총상을 입었다. 6일 전쟁 후 그는 미국에 가서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1년 뒤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그는 1972년에 특공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시리아 高官(고관)들을 납치해 와서 억류된 이스라엘 조종사와 바꾸도록 했다. 이듬해엔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들을 죽인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의 단원들을 암살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터지자 요나탄 네탄야후는 골란고원에서 40명의 시리아 특공부대원들을 사살하였다. 시리아 戰線에서 부상당한 채 남겨진 한 중령을 구조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 등급인 ‘무공수훈 메달’을 받았다. 네탄야후는 기갑부대에 근무를 자원하였다. 이스라엘은 제4차 중동전쟁 때 기갑부대 장교들을 많이 잃었다. 그는 기갑부대 장교로서도 부대를 잘 이끌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75년 6월 네탄야후는 특공부대장으로 복귀하였다. 이듬해 7월4일 우간다 엔테베 공항을 기습, 팔레스타인 게릴라와 우간다 군인들이 억류중인 100여 명의 유태인들을 구출하는 특공작전의 지휘관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건물 바깥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30세였다. 특공대원 100여 명이 참여한 전투에서 그가 유일한 戰死者(전사자)였다. 엔테베 작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요나탄 작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죽을 때 요나탄 네탄야후는 이혼한 상태에서 애인과 동거중이었다.
   7월6일 거행된 장례식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국방장관 페레스는 弔辭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총탄은 이스라엘의 가장 좋은 아들, 가장 용감한 戰士(전사), 가장 유망한 지휘관의 심장을 찢어놓고 말았다.”
   1980년에 네탄야후의 편지 모음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글이었다. 戰線(전선)의 급박한 상황에서 쓰여진 글이라 이스라엘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평하였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이였지만 전쟁 기술을 연마하는 데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항상 그러하였듯이 아무리 善한 것이라도 자신을 물리적으로 지킬 힘이 없으면 惡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요나탄 네탄야후의 생애를 그린 영화의 제목은 ‘나를 따르라’(Follow Me)이다. 이스라엘 장교들에겐 ‘돌격’이란 명령이 없다고 한다. ‘나를 따르라’뿐이다. 그래서 장교들의 戰死率(전사율)이 매우 높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代價를 치르기 위하여’라는 2009년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적이 있다.
   ‘요나탄 연구소’는 테러 연구를 전문으로 한다. 네탄야후 총리가 테러에 강경한 것도 형의 죽음으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네탄야후 총리도 특공대원으로 근무중, 납치된 벨기에 여객기 승객을 구출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我軍이 쏜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그는 대위로 제대하였다.
   ‘요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젊은 군인은 죽어서 神話가 되었다. 조국이 자신을 이렇게 기억해주리라는 것을 믿었을 그는 죽을 때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군인을 경멸하는 게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풍토와 너무 다르다.
  
  
   電光石火-엔테베 특공作戰 비화
  
  
   1976년 7월4일에 있었던 엔테베 인질 구출 작전을 총괄적으로 지휘하였던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 시몬 페레스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무엇보다도 지도부의 창의성과 신속성에 놀라게 된다. 공군사령관 펠레드 소장의 다소 거친 發想을 무시하지 않고 作戰계획으로 발전시켜 집행하는 데 걸린 시간은 6일이었다. 이 사이 105명의 인질이 잡혀 있던 엔테베 공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훈련을 하고, 내각의 의결을 거쳤다. 라빈 수상이 내각을 소집, 공식적으로 허가 여부를 토의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네 대의 비행기가 이미 이륙한 뒤였다. 내각이 부결하면 비행기를 귀환시킬 작정이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풀려난 非유태系 인질들로부터 납치범들과 공항의 내부 구조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얻었다. 우간다 군의 훈련을 도운 인연으로 독재자 이디 아민과 친하였던 퇴역 장교 발 레브는 수시로 아민과 통화, 정보를 수집하고, 인질을 죽이지 말도록 설득하였다.
   이스라엘 군은 엔테베 공항의 모형을 急造, 훈련을 시켰다. 허큘리스 수송기 석 대가 엔테베 공항에 내려 구출작전을 벌이는 동안 이스라엘 공군사령관과 총참모부의 작전사령관이 다른 비행기에 타고 상공에서 지휘하였다. 이스라엘군의 장교들은 늘 앞장을 선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엔테베 공항에 착륙하자 마자 벤츠를 내렸다. 마치 이디 아민이 외국 출장을 끝내고 돌아오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인질구출 작전에 걸린 시간은 30분이었다. 100명의 이스라엘 특공대 가운데 전투에 투입된 인원은 29명이었다. 이들은 일곱 명의 납치범들, 30명 이상의 우간다 군인들을 사살하였다. 비행장에 있던 11대의 미그 17기를 파괴하고 이륙하였다.
   이스라엘측 戰死者는 1명인데, 그가 특공대장 요나탄 네탄야후 중령이었다. 105명의 인질 가운데 세 명이 죽었다. 이스라엘 특공대를 태운 군용기는 8000km를 왕복하였다. 돌아올 때 케냐에 잠시 기착하였다. 우간다는 유엔 안보리에 항의하였으나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특공작전을 자위권 행사로 인정, 규탄 결의를 채택하지 않았다.
   납치된 여객기엔 248명의 승객과 12명의 승무원들이 타고 있었다. 납치범들은 프랑스인 기장을 풀어주었으나 機長(기장)은 인질들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면서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남았다가 구조되었다.
   엔테베 작전은 기획부터 실행까지가 電光石火(전광석화)였다. 이스라엘의 군부와 국가 지도부는 위기 때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도록 조직되어 있다. 라빈 전 총리는 "이스라엘 군대의 가장 큰 敵은 관료주의이다"고 말한 바 있다. 연평도 도발 때 우리 군부가 이스라엘 지휘부처럼 행동하였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核비밀 폭로자 납치를 옹호한 이스라엘 言論
  
   이스라엘 언론은 완벽한 자유를 누리지만 安保에 관한 한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규제하는 데 찬성한다.
   1986년 10월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이스라엘의 비밀核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의 증언을 게재하여 이스라엘이 이미 核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모사드는 美人計를 써 바누누를 로마로 유인한 뒤 선박 편으로 납치해 왔다. 바누누는 반역혐의로 재판에 넘어가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변호인들은 바누누의 폭로를 反核양심 선언으로 몰고 가려 했으나 이스라엘 言論이 납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다. 有力 일간지 하아레츠의 칼럼은 ‘民主국가라 하더라도 그런 폭로를 한 인물은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바누누가 아직도 송환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정부에 대해서 왜 그를 내버려 두고 있느냐고 추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04년 4월 석방되었다.
   1998년 7월 이스라엘 법원은 화학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물질을 이란에 판매한 사업가에게 반역죄를 적용해서 징역 16년刑을 선고했다. 이스라엘에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부정하거나 축소, 왜곡하는 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법이 있다. 이스라엘式으로 한다면 천안함 爆沈이 북한소행이 아니라고 하거나 6.25가 南侵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 국회의원의 3분의 1쯤은 감옥에 가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式으로 하면 '천안함 爆沈 부정자'는 감옥行
  
  
   2009년에 '리더'(Reader-책 읽어주는 사람)라는 영화가 話題였다. 노출이 심하여 '19세 이상 입장可'이지만 핵심은 유태인 학살 관련자에 대한 斷罪이다. 1960년대에도 西獨에선 유태인 학살 관련 실무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이 이뤄져 종신징역 등 重刑이 선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의 13개 국가들-독일, 프랑스,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은 '유태인 학살 否認罪(부인죄)'를 형법에 두고 있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부인하거나, 나치를 옹호하거나, 학살의 규모를 축소하는 공개발언, 집필 등을 한 자에 대하여는 최고 징역 5년까지 살리도록 규정했다. 피해당사자인 이스라엘은 유태인 학살과 反인류적 만행을 부정하는 것뿐 아니라 인정하더라도 축소 표현을 하는 자도 처벌하도록 하였다. 나치에 의하여 희생된 유태인이 600만 명이 아니라 60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쓰면 감옥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6 ·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모른다고 대답한 14.6%의 成人들은 刑事 처벌감이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투표권이 제한되고, 公職출마, 공무원 임용 등에서 배제될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유태인 학살 否認罪가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유엔 인권위원회, 유럽 인권위원회는 이런 주장을 배척하였다.
   한국에서도 刑法에 '북한정권에 의한 전쟁·학살 및 反인류적 행위를 부정하는 罪'를 신설할 만하다. 즉 김일성의 6 ·25 남침, 북한정권의 강제수용소 실태, 공개처형, 납치,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등을 부정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자들은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저지하는 이런 법률이 언론과 양심의 자유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은 人權 선진국 유럽의 경우가 증명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특히 국정원 검찰 경찰은, 공동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는 행동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은 노예근성의 소유자이다. 좌익들이 그런 생각을 유도한다. 공동체의 자유를 파괴하는 첫 걸음은 6 ·25 남침과 같은 국가적 진실을 부정하여 국가적 기억장치를 훼손하고, 종국에 가서는 彼我식별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대통령 이하 공무원들은 6 ·25 전쟁을 언급할 때 반드시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도움을 받아 同族을 친 민족반역의 南侵전쟁'이란 점을 설명하도록 法制化시킬 필요가 있다. 2009년 유엔 총회 연설처럼 李明博 대통령은 6 ·25 전쟁을 이야기할 때 김일성의 南侵으로 일어났다는 점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에게 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심어주어야 할 지도층부터 이런 기억상실증을 보이니 成人의 14.6%, 약500만 명이 6 ·25를 누가 일으켰는지 모른다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상실증은 필연적으로 彼我식별기능의 마비로 이어진다. 국민들과 정부가 敵과 동지를 구분하면서 살아야 자유民主 체제를 지킬 수 있는 한국에서 이는 치명적 사태이다. 入社, 入學시험 때 한국 現代史의 기본상식에 대한 문제를 내어서 강제로라도 국민들의 집단 치매화를 막는 조치가 강구되어야겠다.
  
  
   한국식과 이스라엘식
  
  
   2010년 11월, 서울의 G20 頂上(정상)회의 직전 유엔개발기구(UNDP)가 발표한 2010년 세계 '삶의 질' 국가별 순위에서 한국은 스위스, 프랑스, 덴마크 같은 서방 선진국들을 젖히고 12등으로 수직상승하였다. '삶의 질'(Human Development Index) 평가는 교육수준, 평균수명, 국민소득(구매력 기준)을 합산하여 생활 수준을 채점하는 방식이다.
   法治나 安保 같은 요소는 직접 반영되지 않는다. 아시아 국가로선 한국이 11위의 일본 다음이다. 노르웨이가 올해도 1등이다. 한국은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싱가포르, 영국보다도 앞섰다. 작년보다 14등이나 올랐다. 이는 금융위기로 유럽 나라들이 곤란을 당하고 있는 데 비하여 한국이 빠르게 회복했고, 국민소득을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한 덕분인 듯하다.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은 2만9618 달러로 평가되었다.
   삶의 질 랭킹은 올림픽 메달순위보다 더 정확하게 그 나라의 國力을 보여준다. 일시적으로 과대평가된 면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이 일부 몰지각한 세력의 저주를 받을 나라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한국이 높게 평가 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교육열이다. 국내에선 교육亡國論이 드세지만 외국에선 한국의 교육열을 부러워한다. 외국에선 학생들이 공부를 안해서 걱정이고 한국에서는 너무 많이 해서 문제가 생긴다. 행복한 고민일 수 있다.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8등인데, 삶의 질 랭킹은 12등이다. 이는 한국이 소득수준에 비하여 교육과 의료가 좋다는 뜻이다. 북한은 통계부족으로 조사대상에 들지 못하였다. 삶의 질 순위에서 늘 上位에 오르는 나라는 바이킹을 조상으로 하는 스칸디나비아(핀란드는 바이킹 나라가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인접, 같은 문화권에 포함) 5개 국가이다. 이번에도 1등에 노르웨이, 9위에 스웨덴, 16등에 핀란드, 17등에 아이슬란드, 19등에 덴마크가 올랐다. 20등 안에 5개국이 다 들어감으로써 超一流국가임을 實證한 것이다.
   이번 통계에서 눈에 뜨이는 나라는 15위에 오른 이스라엘이다. 삶의 질 랭킹에다가 국방 분야를 추가하면 이스라엘이 한국을 젖힐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1인당 군사력이 세계 1등이다. 총군사력 평가에서도 인구가 일곱 배인 한국을 늘 앞선다. 한국은 自主국방을 하지 못하고 韓美동맹에 安保를 의지하지만 이스라엘은 外軍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다. 이 결정적 분야에서 한국이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못하니 종합 國力 랭킹에선 뒤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1948년에 같이 독립국가를 만들었다. 같이 戰亂을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核개발을 걱정하고 한국은 북한정권의 核무장에 직면하였다. 다른 점도 있다. 이스라엘은 항상 安保 제1주의를 천명하고, 한국은 경제 제1주의를 추구한다. 한국이 경제 제1주의 路線을 걸을 수 있는 것은 韓美동맹 덕분이다.
   安保를 외국에 의존한 탓에 한국인의 정신력에 문제가 생겼다. 事大的, 의타적 풍조로 미성숙한 人格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每事에 "믿을 것은 우리뿐이다"는 자세로 임하므로 책임감이 강하고 어른스럽다. 이스라엘은 一流국가가 되고 한국은 2流의 선두에서 뒤로 갈지 모른다.
  
  
   이스라엘 같았으면…
  
   1.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는 이스라엘 같았으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암살되었을 것이다.
   2. 이스라엘 같았으면 군대 안 간 대통령과 총리는 한해에 40일간 예비군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3. 이스라엘 같았으면 천안함 爆沈(폭침) 직후 북한의 잠수함 기지를 폭격하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같았으면 11월23일 연평도 도발 직후 수도권을 기습할 수 있는 敵의 長射砲 진지를 예방적으로 先制공격, 파괴하였을 것이다. 기습을 허용하고 반격한다는 소극적 戰略은 한국 및 이스라엘처럼 縱深(종심)이 얕은 곳에선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4. 이스라엘 같았으면 연평도 도발 직후 북한의 해안포를 폭격하였을 것이다.
  
   5. 이스라엘 같았으면 영변 核시설은 1990년에 폭격하였을 것이다.
   6. 이스라엘 같았으면 6.25 南侵 부정자, 천안함 爆沈 북한소행 불인정자는 감옥에 보냈을 것이다.
   7. 이스라엘 같았으면 戰死者 가족들이 울부짖는 장면을 텔레비전에 내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8. 이스라엘 같았으면 군사기밀을 폭로한 정치인을 감옥에 넣었을 것이다.
   9. 이스라엘 같았으면 美軍의 도움 없이 나라를 지켰을 것이다.
   10. 이스라엘 같았으면 북한에 억류중인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엔테베 작전식으로 구출하였을 것이다.
  
   11. 이스라엘 같았으면 벌써 核무기를 개발하였을 것이다.
   12. 이스라엘 같았으면 對北무력 응징에 국민들 90%가 찬성하였을 것이다.
   13. 이스라엘 같았으면 장성 출신 국회의원, 장관, 총리, 대통령이 많이 나왔을 것이다.
   14. 이스라엘 같았으면 북파 공작원을 영웅으로 기렸을 것이다.
   15. 이스라엘 같았으면 민노당은 해산되었을 것이다.
  
   16. 이스라엘 같으면 군인들은 實彈(실탄)과 총기를 휴대하고 휴가 갈 것이다.
   17. 이스라엘 같으면 여자도 軍에 간다.
   18. 이스라엘 같으면 6.25 南侵 60주년 기념행사 책임자로 아랍 테러리스트 추모 사업 위원장 출신을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19. 한국이 이스라엘 같았으면 북한정권은 1990년대에 사라졌을 것이다.
   20. 한국이 이스라엘 같으면 北京에 특사를 보내 중국 정부에 이렇게 통고했을 것이다. "당신들이 북한의 核개발과 도발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가 처리하겠다. 우리가 영변 核시실과 잠수함 기지를 폭격하겠다."
   21. 이스라엘 같았으면 主敵개념을 삭제하고, 휴전선상의 對北방송을 중단하고, 제주해협을 북한의 무장선박에 열어준 자들을 찾아내 法的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斷罪(단죄)하고 매장시켰을 것이다.
  
  
  
  
  
[ 2010-12-30, 21: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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