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북한 의사
북한 의사가 더 이상의 대화를 거절하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방 안에 앉아있던 북한 간호원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하면서 인사하는 간호원은 의사와는 달리 다소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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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4년 봄에 열흘 간 리비아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동아건설의 大水路 공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요사이 리비아 內戰으로 해서 친숙하게 된 트리폴리, 벵가지, 브레가, 아즈다비야에도 가 보았다. 정부군과 反軍이 일진일퇴의 싸움을 벌이는 아즈다비야를 그때 동아건설 사람들은 天安이라 불렀다. 리바아의 天安에도 삼거리가 있었다.
  
  서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트리폴리를 향해 직진하는 길, 남쪽으로 꺾어져 사하라 사막 깊숙이 있는 東亞컨소시엄의 사리르 관(管) 생산공장으로 가는 길이 아즈다비야에서 갈라졌다. 東亞사람들은 벵가지를 서울, 사리르를 大邱라고 불렀다.
  
  벵가지市에서 서쪽으로 137㎞ 떨어진 아즈다비야에는 잠실 主경기장의 열 배나 되는 바닥넓이 20만 평(坪)의 인공(人工)저수조가 건설돼 있었다(표면적이 커 여름엔 매일 5000t의 물이 증발된다). 우리 일행이 갔을 때는 이 거대한 접시에 수심 6m로 360만t의 물이 담겨져 있었다. 남쪽 사하라 사막 지하에서 뽑아 올린 물을 수백 ㎞의 管路(관로)를 통해서 이 저수조에 모은 다음 도시와 농장에 공급한다.
  
   1991년에 있었던 이 아즈다비야 저수조 담수식에는 카다피가 40여 개국의 대표들을 초대, 스스로 빨간 양동이로 물을 퍼담아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한 코발트 색깔을 띤 저수조의 水面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李相熙 전 대구시장은 대구에 운하를 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대구처럼 삭막한 내륙도시 사람들에게 물을 보여줌으로써 정서적인 안정(安定)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격동기의 서울 주민들에게 한강물이 없었더라면 살인사건과 정신병자 발생률이 늘었을 것이다. 이 저수조의 고민은 무공해 상태의 물을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일. 오염원은 인간이 아니라 날아 오는 새, 씨앗, 모래, 번식하는 플랑크톤 같은 것이다. 비닐로 水面을 덮어씌우는 방법도 한때 검토한 적이 있단다. 아즈다비야 저수조를 떠나 중장비 정비공장으로 향하는 國道 변에는 대낮인데도 가로등이 환히 켜져 있었다. 자동점화 감지기에 먼지가 잔뜩 묻어 밤인 줄 알고 점등한 때문이었다.
  
   군대식 공장운영
  
   아즈다비아 정비공장은, 1945년 해방 때 한국에 있던 전체 차량과 맞먹는 6000 대의 東亞 소유 수송대의 규모에 걸맞게 약 4만枰의 부지와 35만종(種)의 부품을 가진 초대형이었다. 郭斗煥 공장장(56)은 30대 청년처럼 씩씩하게 생긴 관리자였다. 그는 『사막에서 차 굴리는 것은 모래·먼지와의 싸움이다』라고 했다. 부품의 손상도가 심해 연(延)30만㎞를 뛸 수 있는 차도 여기서는 반쯤만 달리면 폐차된다고 한다. 郭공장장은 리비아 근무가 6년째라고 했다. 郭씨는 정비공장에 있는 각종 부품을 훔치러 들어오는 도둑들을 막기 위해서 군대식 발상을 했다. 정비공장을 둘러싸는 식으로 깊은 호를 팠다. 깊이 약 10m, 너비가 5∼6m나 될 것 같이 보였다. 들개들을 잡아와서 호속에 풀어 놓았다. 외부침입자가 호 근방에 나타나면 개들이 짖어대는 순간 비상이 걸리고 東亞의 기동 타격대가 나타나 사막의 대추격전을 벌인 끝에 도둑들을 붙들어 리비아 경찰에 인계한다는 것이었다.
  
   호쾌한 인상 그대로 郭공장장의 언행(言行)은 거침이 없었다. 널찍한 땅에 큼직한 공장을 짓고 일선의 참호보다도 더 근사한 호를 푹푹 파놓고 박력 있게 100여 명의 정비사들을 지휘해가고 있는 郭공장장에겐 여기가 바로 그의 王國이었다. 나의 부대, 나의 왕국을 가지고 내 소신대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해방감이 가족을 떠난 외로움을 상쇄하고도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즈다비야의 東亞기지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남쪽으로 달렸다. 돌밭에 키가 작은 관목이 드문드문 보이다가 초목(草木)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돌자갈이 섞인 모래밭은 차츰 잔 모래로 바뀌어갔다. 한 시간쯤 뒤에는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의 대평원으로 나섰다. 사하라 사막은 대지(大地)라기 보다는 대양(大洋)의 느낌을 준다. 국민학교 사회과목 시간에 낙타는 「사막을 항해하는 배」라고 배웠던 기억이 났다.
  
   가끔 도로를 가로지르던 낙타도 보이지 않게 되더니 오로지 전선주만 우리와 동반해주었다. 1960년대에 상영된 바 있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대작(大作)의 영화에서 주인공 로렌스(배우는 피터 오 툴)는 『사막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사막은 깨끗하지요』(Desert is Clean)라고 짧게 끊어 말하는 장면이 있다. 과연 사막은 가을하늘처럼 깨끗했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 달리고 있는 사리르(Sarir)는 평평하다는 뜻.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끝없이 평평한 원반, 차중에선 베토벤의 전원교향악이 울려나오고 있었다. 가끔 東亞 소속 트럭이나 도로보수 차량이 마주치며 지나갔다. 잡화를 잔뜩 실은 수단人들의 트럭이 남쪽으로 달리기도 했다. 수단, 차드 등 이웃 나라에서는 리비아의 도시에 와서 물건을 사간다. 이들은 검문소에서 심한 수색을 받는다. 가득 실은 물건을 전부 내리게 해서 일일이 검사하는 데 며칠이 걸릴 때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불평 한 마디 없이 車體 그늘에서 낮잠을 자면서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잘루 병원의 북한 의사를 만나다
  
   오후 4시20분쯤부터 오른쪽으로 유전지대의 가스 태우는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리비아 유전에서 나오는 기름은 대기오염의 주범(主犯)인 유황성분이 적어 유럽지역에서 인기가 있었다. 리비아産 원류는 1960年代에 지중해를 건너 西유럽에 집중 공급되었다. 1970년대에 카다피는 메이저의 석유가격 독점 결정체제에 도전, 산유국이 기름값을 결정하는 계기를 만든다. 그때 카다피가 지렛대로 활용한 것이 리비아産 원유에 대한 西유럽 국가들의 의존이었다. 잘루라고 불리는 오아시스 도시가 나타났다. 읍 정도의 취락인데 여기에 북한 의사·간호원들이 수십 명 근무하고 있었다. 그들의 집단 숙소가 있는 아파트 입구엔 「모두가 영웅적으로 살며 투쟁하자」「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구호가 가로로 걸쳐져 있었다.
  
   병원에 들어갔다. 복도 입구에서 깡마른 50代 정도의 북한 의사와 마주쳤다. 기자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우리 근로자들을 자상하게 치료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북한 의사는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뭐 그런 것 가지고 감사를 표하느냐』하는 표정을 지으며 『환자들이 많아서…』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서둘러 들어가려고 했다. 억지로 붙들다시피 해놓고 복도에서 대화를 오래 끌어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사가 방으로 들어가는데 방 안에 앉아있던 북한 간호원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하면서 인사하는 간호원은 의사와는 달리 다소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절해고도(絶海孤島)와도 같은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만난 南과 北은 씁쓸하고 어정쩡하게 갈라졌다. 그러나 東亞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리비아內의 남북관계는 적대적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는 南이 주로 받는 쪽이란 점이었다. 이곳 자루 병원을 자주 이용하는 사리르 管 생산공장의 東亞사람들은 북한 의사나 간호원들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몇 년 전 큰 교통사고가 났을 때는 그야말로 동족애를 발휘하여 東亞노동자들을 극진히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
  
   東亞사람들이 고맙다고 과일이나 라면 같은 것들을 가져가면 北 의사들은 받자마자 쓰레기 통에 집어넣어 버린다고 했다. 북한 의사들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보위부원의 눈초리를 의식해서이기 때문이겠지만 귀한 물건을 버리는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안쓰럽다는 것이다. 해방직후 우익(右翼)으로 활동한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의 지식인 사회에선 좌익(左翼)이데올로기가 유행이었고 매력적이었는데 왜 인기 없는 反共을 선택하게 되었느냐고.
  
   『공산주의가 들어오면 인륜이 무너지더라. 사제지간, 형제지간, 부자지간의 천륜(天倫)까지 파괴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본질이란 것을 단번에 알았기 때문이다』
  
   「증오의 과학(科學)」인 공산주의의 씨앗은 不毛의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서도 북한 주민(住民)들의 뇌리와 가슴에 뿌려져 공포·不信·경계의 나무로 자라고 있는 셈이었다.
  
  
[ 2011-04-22, 07: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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