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放火사건을 도시빈민 문제처럼 소개한 한국사 교과서
학생들은 대한민국을, 21세기에 들어서도 ‘국가 권력에 의해 약자들이 희생되는 후진국’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金秀姸(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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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컬처그룹 발간 교과서 380페이지
미래엔컬처그룹 발간 高校 한국사 교과서는 도시 빈민 문제를 다룬 부분에서 1971년의 ‘광주 대단지 사건’과 2009년 용산放火(방화)사건을 同格(동격)으로 다루고 있다. 전문 시위꾼이 주도한 불법과격 폭력사건이었던 용산放火사건을 슬그머니 ‘도시 빈민’ 문제에 포함시켜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용산放火사건은, 이주 후 새 주거지의 기반시설 부족과 분양가의 비합리적인 책정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껴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광주 대단지 사건’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광주 대단지 사건은 서울시의 판자촌 주민들을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로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1971년 8월 10~12일, 개발 지역 주민 수만 명이 정부와 서울특별시의 일방적 행정 처리에 항거해 도시를 점령하고 무력시위를 벌였다.
  
   한창 공업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1960년대는 농촌의 인구가 대거 대도시로 유입된 시기였다. 1968년 서울시는 서울의 인구 및 산업의 분산 수용을 위한 위성도시 건설을 목적으로 ‘광주 대단지 사업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350만 평에 35만 인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1970년 확정되었지만, 소요 예산 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곧 있을 양대 선거를 의식하여 서두른 것이었다.
  
   사건은 1971년 8월10일 11시40분경 회의 중에 발생하였다. 회의가 열리고 있던 성남출장소는 몽둥이, 삽, 피켓 등을 든 1만5000여 명의 주민에 의해 포위되었고, 주민들의 투석·방화로 인해 관용 차량과 광주대단지 사업소 기물이 파손되고 일반문서 등이 전소되었다. 오후 2시40분경에는 성남지서를 파괴하고 경찰차를 전소시켰으며 버스 등 8대의 차량을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오후 6시 기동경찰이 도착하여 해산시키고 저녁 7시부터는 복구 작업을 실시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장관과 서울특별시장, 경기도지사를 파견하여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요구조건을 수용함으로서 이 시위는 3일 만에 진정되었다.
  
  
  전문시위꾼 주도의 도심테러 수준이었던 용산放火사건
  
   용산放火사건은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재개발 지역에서 농성자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서울경찰청 특공대 소속 김남훈(30) 경장과 양회성(56)씨 등 농성자 5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사회적 약자의 생존적 차원의 항거가 아닌, 철거민 시위현장마다 나타나 불법 과격시위를 주도한 전문 시위꾼이 주도한 도심테러 수준의 것이었다.
  
   사건의 배경이 된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은 2006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2008년부터 철거가 시작됐다. 관련된 세입자는 모두 890명이었는데, 이 중 85.7%인 763명의 보상이 완료되었고(약 84억원 지급), 보상에 반발하는 86세대 상가세입자들은 2007년 용산세입자대책위원회를 조직해 2008년 2월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에 가입했다. 두달 후인 2008년 4월,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여기에서 탈퇴하고 26세대만 남아 철거대택위원회를 구성했다.
  
   2009년 1월19일, 전철연 등 소속 농성자들은 남일당 건물을 점거농성 대상으로 정하고 세입자 10명과 외부인 22명이 복면을 쓴 후 건물을 점거했다. 그리고 수백 개의 화염병, 염산병 등을 무차별적으로 집어 던져 인근 상가와 차도·인도 등을 방화했다. 당시 경찰은 18차례 해산을 설득했지만 거부당하자 경찰 특공대를 진입시켰다. 농성자들은 시너를 통째로 부으며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불이 옮겨 붙으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경찰 20명이 다쳤다. 사망 농성자 5명 중 용산 세입자는 2명뿐이었으며, 현장에서 연행한 화염병 시위 가담자 28명 중 보상금 지급 대상인 세입자는 7명, 나머지 21명은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회원들이었다.
  
   전철연은 망루와 새총을 비롯해 화염병 제조·투척, 염산 및 시너 공급 등을 주도하며 1박2일 동안 경찰은 물론 버스·승용차가 지나는 거리에 화염병을 100개 이상 투척했다. 골프공 300여 개, 유리구슬 400여 개, 벽돌 1000여 개를 대형새총으로 발사했다. 염산병도 40개 이상 던졌고, 시너를 통째로 부었다. 마구잡이로 던진 화염병으로 인근 건물 4곳에서 불이 났다.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사건 당시 망루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으로 기소된 남경남(57) 前 전국철거민연합회 의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09년의 용산放火사건을 다룬 미래엔컬처그룹 발간 교과서는, 1999년에 발생한 제1차 연평해전, 2002년의 제2차 연평해전, 2009년의 대청해전, 2010년의 천안함 爆沈(폭침) 등 北의 對南 도발을 다루지 않았다.
  
  이 교과서는 대한민국 건설의 主役(주역)인 이승만, 박정희, 국군, 기업인, 과학자의 역할을 축소시키거나 가혹하게 비판하고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의 활동은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북한 정권의 만행을 덮었다. 전형적인 계급투쟁적 역사관이 깔려있는 기술이다.
  
  
[ 2011-05-07, 11: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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