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假設的 죄인’ 황우여의 눈은 노무현의 눈과 같은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 “中道의 표가 좀 필요하다고 한나라당 지도자가 역사를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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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璡(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가 5월30일자 중앙일보 ‘김진의 시시각각’에서 “1997년 大選(대선) 때 황우여가 의원직을 고수하는 바람에 부산·경남에서 수십만 표를 모을 수 있었던 박찬종이 탈당했고,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 황우여의 ‘선택’으로 현대사의 방향이 바뀌었으며, 황우여는 진보․좌파 10년 집권이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하는 많은 보수·우파에게 ‘假設的(가설적) 부채’를 지고 있는 ‘가설적 죄인’이다”고 비판했다.
  
  1997년말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아들의 병역문제로 지지율이 급락했고,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가 탈당한 상황에서 박찬종 선거대책위원장까지 ‘이회창-이인제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사퇴했다. 1992년 대선에서 151만 표를 얻었던 박찬종은 특히 부산·경남 지역에서 득표력이 높았다. 100만 표 이하의 표차로 대선 당선자가 결정되리라 판단되던 당시 상황에서 최소 50만 표를 움직일 수 있는 박찬종의 득표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를 붙들 수 있는 카드는 전국구의원직이었고, 이회창 캠프는 황우여 의원에게 “당신은 최측근이니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른 중책을 맡을 수 있다”고 사퇴를 호소했다. 당시 예비후보 0순위였던 박찬종은 전국구 의원 한 사람만 사퇴하면 의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우여는 “이 후보가 직접 얘기하지 않는 한 움직일 수 없다”고 거절했고, 이 후보는 성격상 측근에게 부담스러운 말을 못했다. 결국 박찬종은 탈당해 이인제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갔다. 이회창 후보는 39만 표 차이로 졌고 보수·우파는 50년 만에 정권을 내주었다.
  
  김 위원은, ‘보수·우파의 역사적 채무자’인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20일 봉하마을에서 기자들에게 “노 전 대통령은 소탈하고 서민적이었으며 불의에 진노한 어른이었다”고 발언한 데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지도자라면 당과 대척점에 있는 진보·좌파 지도자에 대한 평가에 신중해야 한다. 역사적 평가와 개인적 소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가 노 전 대통령을 이해하는 정서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진노’라는 건 역사적인 문제다. 노무현은 보수·우파가 중심이 된 한국의 현대사를 ‘불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규정했었다. 그렇다면 황우여의 눈은 노무현의 눈과 같단 말인가. 한나라당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규탄한 노무현 일가의 부정·부패는 다 어디로 갔나”라며 “中道(중도)의 표가 좀 필요하다고 한나라당 지도자가 역사를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 황 대표는 자신이 보수·우파의 역사적 채무자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 2011-05-31, 11: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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