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키로 본 김정일의 민족사적 범죄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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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3년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61-163cm였다.
  2. 1940년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66.12cm로 컸다.
  3. 1956년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66.46cm로 약간 컸을 뿐이다.
  4. 1975년 한국 남자의 평균 키는 169.2cm로 훌쩍 컸다. 근대화의 성공으로 영양섭최가 좋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5. 1985년 한국인의 평균 키는 171cm로
  6. 1995년엔 172cm로
  7. 2002년엔 173.3cm까지 높아졌다.
  8. 그런데 북한 남자의 평균 키는 2001년 현재 158cm이다. 이 평균 키는 한일합방 이전 아마도 조선조 말기 수준인 것 같다. 남북 분단될 때의 북한 사람 평균 키보다도 약10cm 짧아졌다. 왜인가. 북한 사람들의 영양섭최가 조선조 말기보다도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의문을 풀어주는 조사 보고서가 있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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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2001년에 펴낸 安秉直 편 「韓國經濟成長史」에서 영남대학교 차명수교수가 쓴「제1장. 우리나라의 생활수준, 1700-2000」엔 재미 있는 대목이 있다.
  <남한이 식민지 시대에 지펴진 근대적 경제성장의 불씨를 상당한 규모의 모닥불로 키워낸 데 비해 북한은 이 불씨를 비벼 끄고 飢餓(기아)와 질병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木村光彦(1998:10)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하루 식량소비는 2차대전 발발 직전 756g에서 1984년
  약800g정도까지 증가한 뒤 1996년에는 540g으로 하락했다. 식민지 시대의 쌀임금(임금을 쌀값으로 나눈 값으로서 생활수준을 보여준다)이 하루 2.5되 수준에서 정체하고 있었는데 1인당 식량소비와 쌀임금 수준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1996년의 북한 하루
  쌀 임금은 약1.8되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 남한의 10분의 1정도, 조선시대에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던 19세기말의 수준과 비슷한 것이다. 남한과 식민지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적 후퇴는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인 私的 소유권과 市
  場을 파괴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정권은 시장을 파괴한 대신 1937년 전쟁체제로의 돌입과 함께 등장했던 통제경제체제를 계승해서 이를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포장했다(Kimura 1999)>
  차명수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은 18세기초부터 계속해서 악화되어 1900년경에 최악의 바닥에 이르렀다고 한다. 車교수는「조선 후기 경제적 후퇴를 가져온 원인은 농업생산성의 지속적 저하였으며 농업생산성 감퇴 원인은 수리시설의 퇴락이었던 것
  으로 보인다. 水利시설의 쇠퇴는 지배 및 행정 체제 붕괴와 관련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즉 조선조 末期 순조 현종 철종 고종 시대에 오면 행정력이 부패하고 무능하여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방치할 뿐만 아니라 못 제방 등 水利시설을 제대로 손보지 않아 농산물의 생산이 격감했다는 뜻이다. 200년에 걸친 이런 下落의 끝은 일본에 의한 朝鮮倂合이었다. 생산
  력이 악화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니 강력한 군대도 유지할 수 없어 나라를 지탱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1900년 무렵부터 생활수준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車 교수는 「일본에서 새로운 볍씨가 도입되고 우리나라로 건너온 일본인들이 水利시설을 재건, 확충하면서
  비로소 (생활수준의) 하강이 중단되고 상승으로의 反轉이 일어났다」고 썼다.
  日帝에 의해 생활수준의 향상이 일어났다는 지적이다. 인정하기 싫은 현상이지만 이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19세기말 조선조 시절의 수준보다도 못하다고 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일 것이다. 1995년부터 약5년 사이에 전쟁이 일어
  난 것도 아닌데 수백만 명이 북한에서 굶어죽었으니 19세기말보다 못한 생활수준이란 말이 맞다. 19세기말의 생활수준은 18세기보다도 훨씬 나빴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 최악일 것이다.
  생활수준뿐 아니라 인권탄압에서도 그러하다. 우리 역사의 어느 왕이 김일성 김정일처럼 수용소를 만들어 수십만 명을 가두어놓고 유태인 학살 같은 인간도륙을 강행했던가. 어느 왕이 주민들의 국내 여행을 제한했던가. 어느 왕이 수백만 명을 굶겨죽이면서 자신과 그 측
  근들은 곰발바닥요리를 먹고 한 병에 수천 달러 하는 최고급 꼬냑을 마시며 즐겼던가. 어느 왕이 주민들을 굶겨죽이면서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어 공갈을 일삼았던가.
  생활수준이 역사상 최악이었다는 것은 지배층의 능력도 최악이고 그들의 인간성도 최악이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로 북한주민들은 심하게 말하면 난쟁이들이 되어가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키는 남한사람들보다 평균 7-10cm가 작고 몸무게는 15-20kg이 가볍다고 한다. 한 탈북 청년은 「누가 나를 난쟁이로 만들었습니까」라고 항변했다.
  인간도륙에다가 인간변종까지 일으킨 김정일을 부를 때 나는 평소에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守舊反動 세력」이라고 못박곤 한다. 이는 차명수 교수의 논문에 의해 실증된 셈이다. 인류가 풍요와 자유를 즐기고 있는 21세기의 북한을 우리 민족사상 가장 가난했던 19세기말보다 더 낙후된 상황으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놓은 者, 그가 바로 守舊반동인 것이다.
  이 자에게 굴종한 자, 이 자에게 약점이 잡혀 국가이익과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팔아먹은 자, 이 자에게 군자금을 대준 자, 이 자를 진보니 민족주의 세력이니 하면서 편든 자들은 지금부터 반드시 그 代價를 치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가 권력자이든 교수이든 언론인이
  든 상관해선 안된다. 그가 어느 지역 출신이냐가 아니라 그가 어느 자리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오직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반했느냐의 여부를 기준하여 심판할 것이다. 親김정일은 親日보다도 몇배 더한 범죄이다. 親김정일 인사들의 言動을 정리하여 단죄받도록 하는 일은 나치 戰犯者를 단죄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잔인한 자를 동정한 자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잔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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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의 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김정일이 북한의 경제와 주민들의몸까지도 100년 이전 상태로 되돌렸다는 점이다. 그는 시계를 거꾸로 돌린 사나이가 되었다. 이 퇴보자가 진보라고 자처한다. 한국의 언론들은 김정일이 불러달라는 대로 김정일 세력을 진보라고 한다. 언론의 수준도 함께 철종 시절로 돌아간 것인가.
  
  
  
[ 2004-04-25, 23: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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