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주의와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진보주의자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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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주의와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진보주의자의 위선...
  오늘은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께서 용천 구호금을 낸 이가 있는지 묻더군요. 옆에서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국제관계의 이해'라는 과목이었고, 오늘은 국제관계 패러다임 세번째, 맑스적 구조주의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교수님왈, 인간적인 면에서 접근할 때 물론 용천사건이나, 또는 북한에 대한 구호지원은 바람직한 일이다마는, 북한에 대한 이런 지원이 과연 북한 인민에게 효과적인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조간신문에서 본 기사에서 사건현장을 찍은 화면에서 왜 울부짖는 가족들이 없고, 복구하는 인원은 없는가하는 글을 이야기하시면서, 왜 그런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체제가 폐쇄적이고 고압적인 것, 그리고 과장될지도 모르지만 100만명 이상의 아사자가 나뒹굴었던 국가에서 그정도 피해는 인민에게 큰 충격을 주지도 체제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그 이후, 북한의 낙후된 전력시스템이라던가 복구지원이나 경제지원을 하더라도 한국이나 타국에게 모든 유지관리를 위한 지원, 유류, 부품, 수리를 의존해야만하는 국가가, 그리고 그 국가의 지도자가 열악한 국가상태에도 불구하고 향락을 즐기고 무책임한 지시를 남발하고, 무리하게 핵을 개발해서 도박을 하는 체제가 지속되는 것이 용천사고보다 북한인민에게 더 큰 고통이라는 내용이었지요.
  
  즉 당장의 대북지원은 단지 밑빠진 독에 물붙는 격이고, 한국이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울 정도의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해결책은 북한 내부의 지도체제와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판단하기에는 어떤 사상적 편향성에 의거한 비판도 아니었고, 일방적인 보수적 시각을 가진 교수님도 아니었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했느냐고 한다면, 먼저 말한 번쩍 손을 든 여학생 분이, 이 교수님의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자 마자, 귀를 꽉 막더니, 나중엔 고개를 책상에 박고 자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옆의 친구와 아마도 학생회 학생인가부다하면서 필담을 나누었습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무슨무슨 실천단이라구 하면서 메이데이 기념어쩌구 하는 천쪼가리들이 학교벽에 걸린 것들을 보면서 지나갔습니다. 통일을 위한 꽃을 피우자, 이라크를 미군의 손에서 이라크인에게로!!!등등...
  
  집에 돌아가는 전철속에서 한겨레의 만평을 보았습니다. 용천으로 인한 부상자를 싫고 가는 들것을 든 이들이 움직이다가 사막에서 멈추었습니다. 경제제재 사막에서 갈데가 없다는 들것을 든 이들의 말에 부상자는 그냥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그림이었죠.
  
  그 전날의 만평은 용천의 피해에 대해 지원하겠다는 부시가 자그마한 용천피해 구덩이 옆에 거대한 경제제재 구덩이 엎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그림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어쩌면 심한 말인지 모르지만 구역질을 느꼈습니다. 말로는 인권과 자유, 평등과 도덕, 인본주의를 외치지만, 굶어서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려는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감정적인 만족감을 부여하는 비현실적인 지원을 자랑스러워 하고, 근본적 문제를 비판하는 합리적인 말에는 위선적인 민족주의, 인본주의안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상당수의 진보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라크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반미감정이라는 감정적 편향성을, 마치 이라크인들의 민족적 자주성을 보장하는 투사가 된 것인양 호도하고, 과연 미군이 이라크를 지금 당장 떠났을 때, 저 아프리카에서 수십만이 학살되고 내전에 휩쓸려 죽어가는 참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자신하는지,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해도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이들에게처럼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단지 자신이 싫어하는 이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고 하는 이유로, 마치 자신이 이라크 민족을 위해 투쟁하는 민족주의적 영웅인듯 착각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구역질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이라크 파병을 별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저들처럼 위선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인본주의와 평화와 사랑을 말하는 이들이 과연 북한이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외에 미국이 경제제재를 통해 차단할 교역품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입니다. 지금도 학살과 갖가지 전쟁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아프리카 내전지역에 북한제 소총과 화기들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무기외에 북한이 외화를 획득할 경쟁력있는 교역품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무기판매를 막은 것이 북한의 열악한 경제상황에 피해를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 북한사람들이 먹을 식량을 늘이기 위해 수십만명이 죽어가는 아프리카 내전지역에 무기를 팔고, 미사일을 사방에 판매하는게 합당하단 말입니까?
  
  요즘에는 한겨레가 북한경제문제를 송두율 말처럼 내재적 접근법으로 접근하는게 아니라, 종속이론으로 접근하려 하나 보군요. 북한의 열악한 경제시스템과 연이은 농업실패, 자유경제구역 실패를 이제는 미국 경제제재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려나 봅니다. 저 역시 미국의 고압적인 정책을 싫어하지만, 자칭 진보론자의 반미감정은 그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상실하고 드레퓌스에게 간첩죄를 떠넘긴 프랑스 군부처럼 모든 악은 미국에게서 나오고, 미국이 원인이며,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걸로 몰아부치려나 보군요.
  
  적어도, 북한에게 문제가 있다면 직시하고 바른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젊은 지성의 나아갈 길 아닐까요? 각종 철학과 사상, 사회과학과 경제학적 지식을 공부한다는 운동권 학생들의 수준은, 결국 치기어린 감정에 휩싸여 빤히 보이는 진실에도 눈과 귀를 닫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에 불과한가 봅니다.
  
  세상사 모르고 나이도 어렸을때, 주사파는 나쁜거 아니냐는 말에 불같이 노하면서 니가 주사파가 뭔지나 알아라고 고함치던 교회형과, 화염병 던지던 시절을 대학에서 보낸 선배와 아는 문단작가분과의 술자리에서 심각한 얼굴로, 북한의 경제상황은 미국 경제제재와 떨어뜨려서 논할 수 없다는 뭔가 중요한 진실을 깨우쳐주려는 듯했던 기억이 이제는 머리통이 굵어지니, 당시엔 아 내가 뭔가 잘못알고 있었구나 했던 생각이 얼마나 치기어린 착각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너무 말이 거칠어졌던 듯.. 힘이 빠져서...
  가급적이면 중도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려해도, 제가 지향하는 보수적인 이들은 썩을대로 썩어 말이 안나오는 그야말로 수구 꼴통과 철새 똘아이 정치인들은 언급하기조차 싫어 신경쓰기도 싫고 실망할 꺼리도 없건마는, 그나마 그 도덕적인 우월성과 젊음, 순수함을 기대한 같은 대학생들, 한때는 가장 객관적이고 도덕적일 것이라 믿었던 한겨레신문에게는 작은 기대만큼이나 실망도 크군요..
  
  * 이 글은 노무현탄핵적극찬성카페cafe.daum.net/impeachroh에서 전재한 것이다.
[ 2004-04-29, 00: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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