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하면 떠오르는 사람 李哲承論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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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石 李哲承論/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사람
  
  素石은 말했다(칠순이 넘으니 人生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래 그런 거 많이 있지. 순차적으로 가는 것이다. 자기가 뭐라더라도 先
  代가 간 길에서 또 가는 것이다. 아무리 기를 써도 나이가 되면 冥府를 향
  해서 터벅터벅 가는 것이다. 어거지로 인위적으로 버둥거려도 안되는 것이
  다. 이런 걸 많이 느끼지.”
  이 질문을 던진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니 뒤늦게 그가 매력적인 남자로 보
  였다”고 덧붙였다.
  나도 같은 경우이다. 뒤늦게 素石 선생의 매력을 발견했다. 그래서 素石을
  만나면 늘 미안하다. 젊었을 때 그를 사쿠라라고 미워했던 前過 때문에.
  素石 선생을 자주 뵈면서 그의 복바치는 憂國衷情의 공격을 받은 지 10여
  년, 내 마음속에 새겨진 素石 선생은 이런 印象들이다.
  손이 두툼한 분, 경우가 밝은 분, 성실하고 세심한 분, 先輩와 先代에 대
  한 존중심과 의리가 강한 분,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건강한 스포츠맨, 극히
  상식적인 분, 언어감각이 탁월한 분, 천박하지 않는 육두문자의 제1인자,
  부탁을 많이 하는 분(그래서 전화가 걸려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부탁
  이 모두 민족과 국가를 위한 것이라 거절할 수 없도록 하는 분, 「모씨는
  신문 가십만 읽지만 나는 社說 읽는 사람이야」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는
  분, 「金大中이 집권하면 난 지리산에 들어갈 거야」라고 말했다는 분, 그
  러나 지금은 서울 도심지를 누비면서 右翼 빨치산 활동을 하고 있는 분, 李
  承晩·金九·金性洙·趙炳玉·張勉·朴正熙·金泳三·金大中에 대해 권위있게 이야
  기할 수 있는 유일한 분, 그리고 「대~한민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
  그리하여 「大韓民國과 나」란 제목의 책을 쓸 수 있는 자격의 소유자가 되
  신 분, 한 마디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80세.
  아, 중요한 것이 빠졌다. 여론과 언론의 반대와 誤解도 무시하면서 지켜온
  소신과 路線의 일관성. 그 일관성이 너무 直線的이라 때로는 보통사람들을
  싫증나게 하는 분이 素石 선생이시다.
  素石이 걸어온 길은 反日-反共 건국-護國-근대화에의 비판적 참여-民主化-
  親北좌익 반대 활동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의 반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남북대치에 의한 한계를 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온건한 현실주의였다. 이것
  이 그가 金泳三-金大中의 선명 강경 노선에 야당정치의 주도권을 넘겨준 이
  유가 된 것은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것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란 속단을
  가능하게 한다. 온건 우익인 그를 極右라고 부르는 이들은 주로 親北세력이
  거나 얼치기 지식인이다.
  이 정권 들어서 만난 한 對共 수사기관의 책임자가 『우리는 한총련 같은
  極左도 반대하지만 李哲承 같은 極右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
  을 들은 적이 있다. 좌익의 언어전술이 드디어 여기까지 침투했구나 하는
  한탄 이전에 素石 선생은 참 외로운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素石 선생이 빨치산 운동하듯이 만들고 있는 民族正論은 남북문제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하고 용기 있는 언론이라고 확신한다. 지나간 號를 찾아 읽어
  보면 이 月刊誌의 예언들이 대부분 적중했음을 알게 된다.
  素石 선생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金大中 정부
  를 친북좌파부패 정권이라고 공격해도 素石 선생을 법으로 걸려고 하지 않
  는다. 그 표현이 진실하든지 素石의 투지가 두려우니까 그럴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자유는 팔순의 素石이 쟁취한 것이다.
  素石을 만날 때마다 나를 미안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70년대 중도통합론에
  대한 나의 오해와 비방인데, 素石의 정치사상사적 가치는 바로 그런 話頭를
  던진 점일 것이다. 조선조의 당파싸움처럼 명분론이 지배하는 한국식 말싸
  움 정치판에서 반대파 지도자가 집권세력과 반대당의 극단적 대치를 완화하
  고 통합하여 國益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고매한 이상이었으면서도
  실패는 예정된 일이었다. 민주주의를 成熟시킨 사회에서나 가능할 일이었다.
  素石은 생동하는 대한민국을 이끌던 민심의 激動과 역사의 역동성을 오판한
  것이다.
  素石 또한 그의 애국적 實事求是 노선이 성공할 것이란 계산 아래서 중도
  통합 노선을 주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집을 짓는 데 많은
  벽돌을 날랐던 그의 순정과 충심이 그를 그처럼 인기 없는 길로 몰았을 것
  이다. 그는 머리의 명령이 아닌 가슴의 명령을 따랐을 것이다. 그는 정치인
  으로서 실패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지금 성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달 전 月刊朝鮮은 李承晩 정부가 6·25 전쟁통 속에서도 만들어두었던(그
  러나 그 뒤 역대 정부가 잃어버렸던), 좌익에 의한 양민 학살자 약6만 명의
  명부를 찾아냈다. 素石 선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전주 형무소에서 피살
  된 先親의 이름이 적혀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회사로 돌아와서 명부를 뒤져보니 素石 선생 선친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팩스로 명단을 보내올렸다.
  李承晩 정부는 그 난리통에도 6·25 납북자 및 피살자 명단을 만들었으나
  그 뒤 정부가 이 자료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것은 자료가 아니라 대한민
  국의 魂과 자존심일 것이다. 그런 자료를 민간인이 찾아낸 것에 대해서 감
  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아 하는 金大中 정부는 金正日과 남파 간첩과 빨
  치산 출신들에 대해서는 극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기
  관이 회의를 거듭하더니, 경찰관을 납치했다가 진압경찰이 구출하러 들어오
  자 휘발유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져 일곱 명의 경찰관이 불에 타 죽게 만들
  었던 부산 동의대 사태의 방화치사범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해주는 국가
  정체성의 變造, 즉 현대판 逆謀까지 일어났다.
  素石 선생을 젊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런 작태들에 대한 그분의 분노가 회
  춘약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素石 선생의 위대성은 제대로 미워할 줄
  안다는 점이 아닐까. 미워할 줄을 알아야 사랑할 줄도 아는 법이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素石 선생의 미움의 세월이 사랑의 세월로 언제나 바뀔지 가까이서 오랫동
  안 지켜보고싶다. 역사의 평가는 素石 李哲承에게 매우 우호적이고 한반도
  의 4金씨에게는 적대적일 것이다. 그런 날이 素石의 生前에 올 가능성도 배
  제할 수 없겠다. 素石의 땀과 눈물과 피가 배인 팔순 문집의 출판을 진심으
  로 축하드린다.
  
출처 :
[ 2002-06-09, 17: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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