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를 이끄는 '사람들의 정체'
박원순, 1994년 참여연대 설립에 주도적 역할 담당

金泌材/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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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현재 靑和(청암사 주지), 이석태(前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동대표), 임종대(한신대 교수), 정현백(성균관대 교수) 등 4인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 중이다.


실불회, 2005년 간첩·빨치산 묘역 조성

1. 전북 남원 출신의 靑和 공동대표는 利敵(이적)단체인 한총련 비호에 앞장서온 승려이다. 조계종 교육원장 출신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을 거쳐 현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고문, 6·10항쟁계승사업회 공동의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000인 선언(2002년 7월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발표된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2003년 4월8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2003년 10월23일) ▲4대강 개발 중단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생명평화선언(2010년 7월8일) 등에 참여해왔다.

靑和 공동대표가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이하 실불회)>는 대표적 左派단체인 한국진보연대 참여단체이다. 실불회는 1992년 설립 이후 줄곧 ▲비전향장기수후원회(1998년 6월) ▲국보법반대국민연대 및 국보법폐지국민연대(1999년 9월) ▲여중생사망사건 관련 불교대책위원회 구성(2002년 대선 직후)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2003년 4월) ▲국보법폐지 108배 정진(2004년 12월) ▲비전향 장기수 송환 5돌 기념 및 2차 송환촉구 대회 개최(2005년 9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지속을 주장하는 합동회견 개최(2006년 10월)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촉구하는 시국법회 주도(2008년 7월4일) 등 反美·反軍·從北 활동에 주력해왔다.

남파간첩을 義士, 빨치산을 애국통일열사로

실불회는 또 2005년 5월 경기도 파주 보광사에 간첩-빨치산 묘역을 조성했다. 묘역의 입구에는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이라는 이름의 비석을 세우고, 비문에는 남파간첩을 의사, 빨치산을 ‘애국통일열사’로 부르며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애국통일열사 류낙진 선생. 민족자주조국통일의 한길에 평생을 바치신 선생님,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나리” ▲ “義士(의사) 故 최남규 선생. 해방 후 청진 교원대학 지리학 교수로 교육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1957년 구속되어 29년의 감옥생활에서 지조를 지켜내신 민중의 벗. ‘백두’ 옹 여기에 잠들다” ▲ “애국통일열사 정순덕 선생. 마지막 빨치산 영원한 여성전사, 하나된 조국 산천의 봄꽃으로 돌아오소서” ▲ “義士 금재성 선생. 일제강점 하 민족해방 투쟁으로 3년의 소년 獄(옥)과 해방 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1957년 투옥되어 30년의 형옥 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당신의 지조를 지키며 빛나는 생을 마치다” ▲ “애국통일열사 손윤규 선생.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시다가 비전향으로 옥중에서 생을 마친 열사 여기에 잠들다”

“모병제, 돈 벌러 軍 가자는 것”

2. 이석태 공동대표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회장 출신으로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의 인사들과 함께 국보법폐지국민연대 공동대표를 지내면서 국보법폐지 운동을 주도해왔다.

李 씨는 2004년 11월 9일 민변 주도의 국보법폐지 국민농성장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회 앞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민변은 당시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야말로 낡은 냉전질서와 야만적인 반인권질서를 청산하는 길이다. ▲국가안보에 관한 형벌법규는 형법으로 충분하다.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평화 통일의 시대를 맞아 민주·인권·통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李 씨는 당시 1인 시위를 시작하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고,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의 의견서 제출과 같은 활동보다는 국민의 여론에 동참하기로 판단했다”면서 “(1인 시위가) 17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최선의 방법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당시에는 이정희 변호사(現 민노당 대표)와 함께 현장 조사를 한 뒤, 여중생범대위(대표: 오종렬, 한상렬, 홍근수, 단병호, 천영세, 문정현)와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법무부가 미군에 형사재판 관할권 포기를 요청할 것을 촉구했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옹호론자인 李 씨는 최근 기독교TV 노동조합 사무국장 출신의 시사평론가 김용민과의 인터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의 의미를 피하겠다는 게 아니라 총을 안 들겠다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모병제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독일의 예를 듭시다. 그곳도 절반이 병역거부를 합니다. 이들은 감옥 대신 국내외에 가서 양질의 봉사를 하게 됩니다. 국위선양은 기본이요, 개인의 신념을 존중하는 사회 기풍이 조성되며, 평화적 분위기를 확산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지요. 대체복무자의 성실도가 높아요. 그런데 이를 접고 모병제로 간다면 돈 벌러 군에 가자는 것인데 충성도가 대체복무와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李 씨는 자신의 이 같은 反軍성향을 증명이라도 하듯 2011년 5월11일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진보연대,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 등의 63개 左派단체들과 함께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에 다른 3명의 참여연대 대표들과 함께 참여했다.  

“국보법 완벽하게 철폐해야”

 3. 임종대·정현백 공동대표 역시 국가보안법 철폐 선동의 선봉에 서 온 인물들이다.

임종대 공동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하는 전국 교수 선언(2000년 7월18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2003년 10월23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선언(2004년 10월27일) ▲국가보안법 제정 60년 각계 선언(2008년 12월1일) 등에 참가하여 “국보법은 부분적으로 개정되거나 대체 입법되기 보다는 완벽하게 철폐되어야 함을 천명한다”(2000년 7월18일)고 주장했다.

정현백 공동대표는 ‘국보법폐지국민연대’, ‘송두율교수석방대책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으로 국보법폐지 운동을 주도해왔다.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하는 全國 교수 선언(2000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000인 선언(2002년 7월18일) ▲10기 한총련 의장 석방,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합법화를 위한 민주사회단체 지도자 1000인 선언(2002년 7월19일) ▲8·15 특별사면에 즈음한 각계 3000인 선언(2002년 8월10일) ▲양심수와 정치수배 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2003년 4월8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선언(2004년 10월27일) ▲민족의 자주와 평화를 위한 선언(제2의 광복선언, 2005년 8월1일) ▲평화선언(2006년 9월18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결의하는 각계 원로·대표 인사 선언(2007년 10월7일) 등에 참가했다.

“한총련,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숭상하는 젊은이들”

鄭 씨는 2002년 7월19일 10기 한총련 의장 석방,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합법화를 위한 민주사회단체 지도자 1000인 선언을 통해 “한총련은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숭상하는 이 땅 젊은이들의 오랜 전통을 오늘에 이어 민주주의, 국민생존, 민족자주를 위해 분투하는 사회의 소금, 시대의 양심이다”라고 주장했다.

鄭 씨 등이 ‘사회의 소금’, ‘시대의 양심’이라 격찬한 한총련은 북한의 主體思想(주체사상)을 추종하며 활동해 利敵(이적)단체로 판시된 단체이다. 대법원은 2003도604판결에서 제10기 한총련의 利敵性 근거로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북한의 金正日 찬양구호인 ‘수령결사옹위’에서 인용한 ‘결사옹위’라는 문구를 가로 114cm, 세로 89cm의 흰 천에 혈서를 써 한총련 의장에게 선물한 뒤, 한총련 의장이 이를 소지하고 다니는 등 북한을 추종해 온 점” 등을 예로 제시했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한총련은 북한의 主體思想을 한총련 지도사상으로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며… 궁극적으로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과 같은 자주·민주·통일투쟁을 달성하자고 선전선동”(2004도3212판결) 해왔다. 그리곤 300만 넘는 동족을 굶겨죽이고, 때려죽이고, 얼려 죽인 金正日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며 ‘결사옹위’를 혈서로 써 품고 다녔다.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천안함 침몰 진상 규명”
 
참여연대는 천안함 爆沈(폭침) 이후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참여연대는 2010년 6월 초 천안함 爆沈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문이 있다는 편지를 UN으로 발송했다. 서한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李明博 정부의 대응은 심각한 정치외교적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많은 의혹이 남아있기 때문에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UN안보리가 신중을 기해 논의해달라는 취지였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은 기존의 지진파, 음파, 생존자 증언, 절단면에 이어 어뢰 파편과 잔해가 발견되면서 북한의 도발로 100% 확인된 사안이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조차 “많은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국가의 自衛的(자위적) 대응을 가리켜 “심각한 정치 외교적 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참여연대의 주장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참여연대는 같은 해인 2010년 7월8일에도 한나라당에 천안함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나라당사 앞에서 개최했다. 참여연대는 북한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李明博 정부의 호전적 대응조치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에 갈등과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 같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정치적 처신에 대해 유권자들은 표로써 심판했다”며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천안함 침몰의 진상을 규명하고 군의 조사결과를 검증하기 위한 국정조사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金正日 구하러 워싱턴 간 사람들
 
참여연대의 ‘金正日 구하기’는 계속됐다. 2010년 7월27일에는 참여연대 공동대표 정현백(성균관대 교수) 등이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북한의 천안함 爆沈 사실을 부정하는 對美(대미) 선전전을 벌였다.

鄭 씨를 비롯해 6·15선언실천남측위원회 김상근 대표, 김연철 인제대 교수 등은 27일 美 의회에서 개최된 한반도 평화포럼에도 참석, 미국의 태도를 비난했다.

이날 포럼에서 정현백 대표는 “천안함 사건은 과학저널 <네이처>에서도 논쟁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천안함 사건을 UN 안보리에 회부한 한국 정부를 지지한 데 대해 한국 시민사회는 한반도의 대치 및 긴장상황에서 미국의 ‘균형자’ 역할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殺戮者(살육자) 金正日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불균형이라는 것인가? (조갑제닷컴)

<金泌材/金成昱 기자>

[ 2011-10-24, 11: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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