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월드컵 일기 - 아쉽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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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월드컵 일기 - 6월25일
  아쉽지만 억울하지는 않았다.
  
  6월25일 월드컵 준결승전 입장권을 나는 보름 전에 사두었다. 일본의 知人
  이 전화를 걸어와 입장권 두 장의 구입을 부탁했던 것이다. 이왕 사두는 김
  에 내 것도 하는 생각에서 몇 장을 사두었다. 이 준결승전에 한국 팀이 오
  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쯤 되면 우리 팀은 16강전이나
  8강전에서 탈락한 뒤일 것이고 독일 팀이나 브라질 팀이 출전하는 어느 게
  임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장은 별 계산 없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버렸다.
  6월25일 나는 두 시간 전에 입장하여 관중석에서 콜라를 마시고 감자튀김
  을 씹어먹으면서 놀았다. 비온 뒤 청명하게 개인 파아란 하늘이 窓口(창구)
  처럼 올려다 보이는 거대한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의 한가한 저녁이었
  다. 6만5000석의 자리가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저녁 7시10분 가수
  김동규와 정수라가 나와서 노래까지 선물했다. 정수라는 아! 대한민국을 불
  렀다. 5공화국 초기에 나온 이 노래는 당시 억눌려 있던 학생들이나 지식인
  들이 매우 싫어했던 곡목이다. 官製(관제)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어용 가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날은 달랐다. 관중석에 미리 와 있던 20代 중심
  의 붉은 악마 응원단이 열광적으로 따라 불렀다. 아! 대한민국에 대한 어떤
  거부감도 없었다. 단지, 하나 그 노래에 대한민국이란 단어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써도 환영받을 일이었다.
  이날 붉은 악마가 관중석에 수놓은 새로운 구호는 「꿈*은 이루어진다」였
  다. *는 월드컵 우승 팀의 유니폼에 붙이는 표시라고 한다. 이날 독일 팀과
  의 승부는 당당했고 깨끗했으며 여한이 없었다. 독일 팀은 건장한 체격답게
  째째한 파울 없이 전차군단처럼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그 전에도 독일 팀이
  나오는 축구 경기를 많이 보았지만 독일 선수들은 다른 서양 나라 선수들과
  비교해서도 체격이 한 클릭 위이고 뼈대가 완강하여 잔디밭이 좁게 느껴졌
  었다.
  한국 팀은 결정적인 슛을 차지 못했고 독일 팀도 마찬가지였으나 우리 門前
  (문전)을 위협하는 회수는 잦았다. 이럴 경우엔 확률이 승부를 결정짓게 된
  다. 슛을 많이 하는 편이 넣을 확률도 높은 것이다. 그 수학에 따라 한국
  팀은 졌다. 나는 언젠가는 찾아오고야말 패배의 순간에 우리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궁금했다. 이날 우리는 아쉬움을 가슴에 묻고 체통을
  잃지 않으면서 따뜻하게 패배를 축배처럼 마셨다. 무엇보다도 억울하게 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개운했다. 심판의 판정에 대해서 가끔 야유가
  쏟아졌지만 불공정한 판정으로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옆자리에 있던 한 친구는 『이제야 월드컵 열병이 끝났군요』라면서 홀가분
  해 했다.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돌아오는 길 주변에서는 태극기 패션의 붉
  은 아이들이 애국가를 부르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정 직전에 신촌에 내리니 大路上에서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학생들
  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60%쯤 되어 보였다. 곳곳에서 팝 콘서트, 노천 노
  래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 월드컵 거리축제를 통해서 가장 멋졌던 장면
  은 무엇일까.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두른 채 원을
  만들면서 깡충 깡충 뛰고 소리를 지르는 귀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날의 거리축제는 6월22일 對스페인戰에서 우리 팀이 승부차기에서 우승
  한 뒤 벌어졌던 일대 狂亂의, 그러나 질서 있는 기쁨의 표현과 비교하면 조
  용한 편이었다. 歸家(귀가)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안도감과 함께 서운함도
  깃들어 있었다. 한달간의 축제, 머물고싶었던 순간들이 다 지나간다는 아쉬
  움이 더 컸을 것이다.
  지나놓고 생각하면 지난 6월 한 달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단군 이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행복을 4800만 명 모두가 소외감 없이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더 큰 多幸이었다. 인간의 豫知능력이 별 것 아니라고 느끼
  는 것은 한국인중 어느 누구도 이런 全國民的 흥분상태가 한달간 이어질 것
  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4800만명이 같이 경험할 일대 사건
  을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니! 인간은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는 자
  신 있게 분석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시간을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는 神, 易術人, 그리고
  섭리의 무대인 모양이다.
  이번 월드컵 축제에서 몇 가지 의미 있는 행태가 보였다.
  1.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즐거움을 나눠갖기 위해서
  였다. 혼자서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
  들과, 더 많은 여러 사람들과 즐길수록 더 즐거워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즐
  거움은 나눠가질수록 커지고 고통은 나눠가질수록 작아지는 것이다.
  2. 즐거움을 나눠가지면서 우리는 너그러워졌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손
  잡고 소리쳤다. 서먹한 부부관계가, 삭막한 아파트 생활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좋아졌다는 증언들이 많다. 즐거움을 나눈다는 것은 서로를 가깝게
  만들면서 결국은 자신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3. 즐거움을 나눠가질 때의 儀式은 태극기, 애국가, 대~한민국 등 국가적인
  상징을 동원하였다. 월드컵 경기가 축구라는 격렬한 경기의 국가대항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국민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지
  만 그래도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비극은 국가가 국민을 괴롭히고 버린 결과이다. 日帝 식민지 시
  절의 좌절도 나라를 잃은 때문이었다. 개인의 행복과 불행에 국가는 결정적
  인 요인이란 것을 우리는 생리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대한민국
  과 함께, 대한민국 때문에 즐거움을 나눠가진 셈이다. 서먹하던 국가와 국
  민들 사이도 좋아졌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배려는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존중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병역, 납세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월드컵 집단체험은 한
  국 사회를 역사적으로 前進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4. 한국인들은 이번에 히딩크의 성공사례라는 논리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한국사람들은 정치, 행정, 교육에 대해서 「히딩크처럼 하면 될 것 아닌
  가」라고 따질 근거를 갖게 된 것이다. 히딩크 교육 효과와 국민들의 善意
  의 열정은 거대한 압력으로 정치인, 관료들, 교육자들을 몰아붙일 것이다.
  이 압력에 제도로 대응하지 못한 세력은 떠내려갈지도 모른다.
  5. 6월23일 아침에 한 기업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제 이기는 것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를 겁니다. 국민들의 열정
  을 살리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4800만명이 만원씩 내어 탈북자
  들을 살리자는 운동을 벌이면 어떻겠습니까』
  월드컵 열정은 善意의 집합이었다. 이 열정이 정의감과 인간애로 변하여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은
  국민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올림픽의 대성공에 모였던 국민들의 에너
  지가 청문회 政局으로 霧散(무산)되어버린 것을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은 이
  번만은 뒷끝이 좋아야겠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 걱정이 모여서 또 다른
  열정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6.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팀이 역사적인 장정을 시작하고 국민들의 무서운 응원을 보여준 데 대하여 세계 여론은 과분할 정도의 평가를 보냈다. 한국인들은 비로소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감동을 느꼈다. 남한테 어떻게 보이느냐에 대해 과민한 한국인들은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세계의 높은 평가에 고무되었다. 이것은 자부심으로 변했고 우리의 선의를 더욱 강화시켰다. 한국인들은 비로소 변두리 의식을 탈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세계사의 중심무대에 있다는 것을 축구 성공이 상징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이다.
  7. 무엇보다도 월드컵 열정은 긍정의 시대를 열어 갈 것이란 희망을 던져주었다. 식민지 시대, 권위주의 정부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일제와 권력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것이 의무이고 용기이며 선한 것이란 생각에 젖었다. 상황을 긍정하고 무엇을 건설하는 사람들은 항상 외로웠다. 어떤 자링에 가서도 누구를 비판하는 것은 마음놓고 하지만 누구를 변호하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지배했다. 이번 월드컵 열정은 우리의 성공을 근거로 하여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남을 긍정하면서 성공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애국가, 대한민국, 태극기는 국가적 의미에서 긍정과 건설을 상징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뜨거운 포옹, 특히 젊은 이들의 순수한 마음속에 대한민국이 정착한 것, 여기서 새로운 국가상이 탄생하고 새로운 국민상이 등장할 것이다. 권력의 추종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역으로서 국민들이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때 국민국가 건설의 긴 도정이 짧아질 것이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되었을 정권이라고 욕하는 것이 양심 있는 지식인의 표상이라고 생각했던 얼치기 위선자들, 대한민국이 분렬주의자가 만든 나라라고 말하면서 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과 그 추종자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정말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하는 수많은 국민들과 직면하여 두려움을 느낄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다시 세운 대한민국을 다시 쓰러뜨리기 위해서 또 무슨 음모를 또 꾸밀 것인가.
  대한민국이 참 멋진 이름, 멋진 나라가 되었다는 이 상쾌한 기분이 좋은 나라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심정이다.
  
출처 :
[ 2002-06-26, 17: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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