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재창당 요구 김성식·정태근 의원 正體
“탄핵되기만 하면 진정 나라가 나아진다고 믿는 것인가?” 노무현 탄핵 비판 김성식...한총련 수배해제 촉구 정태근

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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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김성식, 우측 정태근 의원
1.
  김성식ㆍ정태근 의원이 한나라당의 재창당을 요구하며 탈당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 의원이 이명박 정권 기간 뚜렷한 활동을 한 것은 없다. 종북·친북·촛불세력의 난동이 거듭될 때,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당시, 민주·민노당 등의 국회 난동 당시 기억에 남을 만한 발언을 한 적도 없다.
  
  다만 한나라당의 左(좌)클릭 수정을 주장해 온 몇 가지 발언만 눈에 띠는 정도이다. 김성식 의원은 노무현 前대통령 탄핵 관련, 2004년 3월1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국정을 망친 대통령이 탄핵되기만 하면 진정 나라가 나아진다고 믿는 것인가(···)국민 다수가 盧정권에 절망하면서도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 근본이유가 바로 한나라에 있다는 것을 왜 보지 못 하는가”라며 한나라당의 노前대통령 탄핵을 비난했다.
  
  김성식 의원(당시 제2정조위원장)은 2004년 3월1일,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소위 한나라당 소장파들과 함께 對北‘현금’지원을 골자로 한 소위 ‘뉴한나라를 위한 반성과 제언’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보수세력이) 남북 평화공존이 시대의 대세인데도 불구하고 과거 냉전 시대 일변도 사고를 갖고 있다”며 △북한정권이 합작기업 법인세를 現金(현금)으로 가져가는 방법을 통한 북한 국민소득 증가, △소위 ‘분배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對北지원확대, △주한미군 한강 以南 재배치 및 북한 방사포 후방 배치 연계, △대통령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 등을 주장했다.
  
  또 소위 “수구적 보수에서 미래지향적 실용주의로의 변화”를 주장하고, ‘다가오는 3·18 전당대회를 통한 제2창당’을 위해 △당의 中心(중심)세력 교체, △낡은 보수의 기득권 포기와 정치행태의 혁신, △미래지향적 뉴비전의 창출 등을 강조했다.
  
  2.
  김성식 의원은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1978년 ‘유신철폐시위’에 이어 1986년 ‘제헌의회 그룹(CA : Constituent Assembly)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CA그룹은 한국사회를 ‘제국주의의 新식민지’로 간주하면서 “파쇼 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주장한 左派혁명 단체였다.
  
  김성식 의원은 출소 후 전국화학勞組(노조) 기획부장과 민주당 동대문乙지구당위원장을 거쳐 2000년 한나라당 서울 관악甲 지구당 위원장으로 한나라당에 들어왔다. 2004년 총선에 떨어진 후에는 손학규 前경기지사를 보필하는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활동했고, 孫 前지사 탈당 후에는 MB캠프에 발탁됐다.
  
  김성식 의원은 정무부지사 시절, “손학규의 ‘腹心(복심)’”으로 통했다. 그는 부시장 발탁 당시인 2004년 5월9일 <시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孫지사와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통한 개인적 인연이 있었고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사이”라고 말했었다.
  
  김성식 의원은 정무부지사 시절, 평양을 왕래하며, 소위 ‘북한 농촌현대화 사업’ 등 경기도의 對北지원 사업을 주도해왔다.
  
  그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 KSOI 출신들은 2007년 대선 당시 左派대선후보 캠프에 대거 진출해있다. 각각 KSOI 소장·副소장·수석전문위원·기획위원 출신인 김헌태·정기남·정창교·문명학氏는 각각 문국현 후보 정무특보, 정동영 캠프 공보실장,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 권영길 후보 정무특보를 맡았었다. KSOI 출신이 주요 후보 책사 노릇을 도맡고 있어서, 정치권에서는 “SOI가 대선에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었다.
  
  3.
  정태근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서 ‘三民鬪(삼민투)’라는 좌익단체 활동을 벌이다 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복역했다.
  
  정태근 의원은 출소 후 親北단체인 통일연대 소속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를 거쳐 99년 ‘한국의 미래·제3의 힘’운영위원,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아 활동했다.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386운동권 출신들이 조직한 단체로서 같은 해 1월24일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열린우리당 김성곤 최고위원을 이사장으로 하여 99년 “로버트 김 석방을 위한 전국회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작됐다. 이후 이 단체는 6·15선언을 지지하는 단체로 변질(?)됐다.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2006년 7월29일 일본과 미국이 ‘카스라-테프트협정’을 맺은 지 101년이 되는 날을 맞아 소위 민족단체들과 함께 소위 “日本제국주의와 美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6·15선언의 기본정신을 확고히 고수·지지하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의 민족적 공조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정태근 의원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386들을 대거 영입할 때 원희룡·고진화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들어왔다. 2002년 4월 서울시장 선거 때 인터넷본부장을 맡아 이명박 후보를 도왔고, 2005년 9월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돼 ‘이명박 사람’이 됐다.
  
  4.
  통일뉴스 등 親北매체에 따르면, 정태근 의원은 2003년 4월27일 ‘한총련 관련 학생들의 수배해제를 촉구한다’는 성명서에 같은 三民鬪 동지였던 허인회氏 등과 함께 서명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성명은 “우리는 학생운동의 선배로서 한총련 문제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한총련 후배들이 수배 받고, 고통 받을 때 따뜻한 위로와 격려도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또 “국민들의 성숙된 민주의식으로 ‘참여정부’를 탄생시켰고, 한총련 후배들 스스로가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한총련 관련 학생들의 수배해제 문제에 대한 사법당국의 용단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정태근 의원은 2005년 11월1일 소위 “‘6·15시대의 참언론’ 통일뉴스 5주년 기념행사”에도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한상렬 통일연대 상임의장·이종린 범민련 명예의장 등 親北인사 및 三民鬪 동지였던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참석했다(출처 통일뉴스 2005년 11월1일 字)
[ 2011-12-14, 23: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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