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자 김정일 父子에 너무나 관대한 소위 ‘북한 전문가들’
김근식 “조의를 표한다”, 양무진 “3代 세습은 도덕이나 규범과는 구분해야”

趙成豪(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김정일 死後, 소위 ‘북한 전문가’라고 불리는 학자들은 언론 기고문과 인터뷰을 통해 김정일 사망에 哀悼(애도)를 표하거나 弔問(조문)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는 12월23일字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 인물의 죽음을 맞아 그의 생애를 돌아보고 인간적 소회에 젖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金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꿈은 있었다”며 1984년 合營法(합영법) 제정과 外資(외자)유치, 남북관계 개선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의 개혁 실패의 원인이 외부요인(미국)인 것처럼 주장했다.

“북한 경제가 정체되던 그 시기에 김정일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야심찬 꿈을 꾸었다. 그러나 당시 레이건 미 행정부가 주도한 신냉전 국면이 지속되면서 서방의 대북 투자는 불가능했고 겨우 총련계 재일교포의 자본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의 첫 번째 꿈은 이렇게 좌절되었다. …(중략)… 1991년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아울러 나진·선봉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포하며 본격적인 개방을 결심한다. 당시의 결단은 후계자 김정일이 주도한 이른바 ‘개혁연합’의 정치적 성공이었다는 분석마저 제기되었다. 그러나 야심찬 두 번째 대외개방의 꿈 역시 이듬해 미국이 주도한 북핵문제로 북·미 간 대결이 지속되면서 일장춘몽에 그치고 말았다.”

金 교수는 2002년 日北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납치 사실을 시인하는 고백외교까지 하면서 북·일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고 김정일의 외교자세를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해 9월엔 신의주 행정특구를 전격 선포하면서 행정장관과 경찰청장까지 외국인이 맡을 수 있는 전면적 개방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꿈 역시 2002년 10월 고농축 우라늄 의혹이 불거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고 했다. 金 교수는 고농축 우라늄을 비밀리에 제조한 북한 정권의 이중성은 비판하지 않았다.


“그의 꿈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눈을 감지 못했으리라. 조의를 표한다”

그는 또 “김정일 위원장의 공과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논쟁적”이라고 했다. 김정일이 개혁개방의 꿈이 있었고 남북관계와 美北관계 개선에 노력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金 교수는 천안함 爆沈(폭침)ㆍ연평도 포격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고 여전히 북한은 위기이고 결국 그는 죽고 말았다. 그의 꿈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눈을 감지 못했으리라.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金 교수는 또 12월22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주관으로 열린 ‘북한정세 인식 긴급좌담회’에서 ‘김정일의 죽음으로 천안함ㆍ연평도에 대한 公訴權(공소권)도 사라졌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으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의 공소권도 사라진 것이다. 그가 역사의 부채를 껴안고 죽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은 더 이상 이 사건으로 북한에 부담 주지 말고, 남은 임기 1년 동안 새로운 판으로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12월23일字 <크리스찬투데이> 인용)

金 교수는 2007년 10월 ‘노무현-김정일’ 회담 때 訪北 했었으며, 2010년 3월 국가정상화위원회(위원장 고영주 변호사)가 발표한 ‘친북ㆍ反국가 인사 100명’에 포함되어 있다. 
 

양무진 교수, ‘김정은 세습’ 수용 촉구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의 ‘김정은 세습’ 수용을 촉구했다. 梁 교수는 12월23일字 <대전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우리도 일단 김정은 체제를 3대 세습이라는 도덕이나 규범과는 구분하여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과 안정을 대비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당분간 북한 내부 안정을 위해 보수적 안정 기조를 선택하고 자신의 입지가 완벽하게 굳어진 이후 진정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모습으로 중국을 향할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梁 교수는 12월20일字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선 “김 위원장은 두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금강산·개성공단 사업 등도 추진했다. 동북아 정세 안정을 위해 조문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2월19일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의 중장기적인 부분을 감안할 때 조의 표시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천안함ㆍ연평도 사태를 겪은 국민정서 측면에서는 민감한 문제이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21일字 <머니투데이> 보도에서 金 교수는 “민간 부분 조문은 대북 사업과 관련된 기업인이나 민간단체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를 고려해 민간부분에서 국제사회보다 반 발짝 정도 앞서 갈 필요가 있다”며 민간 부분의 ‘김정일 조문’에 찬성입장을 밝혔다. 



親北ㆍ좌편향적인  ‘북한 전문가’들

소위 ‘북한 전문가’인 김근식ㆍ양무진ㆍ김용현 교수는 그동안 방송ㆍ신문 인터뷰와 대담 등에 출연하면서 親北ㆍ좌편향적인 발언을 자주해왔다.

2008년 12월5일, 나라정책연구원장 金光東(김광동) 박사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자유민주연구학회’ 주관의 ‘방송보도의 극단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세미나에서 이들의 親北성향을 지적했다. 방송(KBS, SBS, MBC, YTN)에서 김근식ㆍ양무진ㆍ김용현 씨의 북한 관련 論評(논평)은 전체 북한 관련 논평 중 약 43%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金光東 박사는 “이들 3인은 155회(양무진 58회, 김용현 54회, 김근식 43회) 출연했으며, 더 큰 문제는 편향된 對北(대북)인식”이라고 설명했다.

金 박사는 “對北관련 논평을 독점하고 있는 양무진, 김용현, 김근식의 대북관은 뚜렷하고도 명확한 경향성을 보였는데, 그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認定(인정)과 합리화, 그리고 북한체제에 대한 옹호와 현상유지의 지속성에 대한 가치지향적 방향성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들 3인방의 석·박사 논문에 나타난 對北觀은 북한을 특수하고도 독자적인 사회로 볼 뿐 북한에 대한 학문 본연의 자세인 객관적, 비판적 접근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 2011-12-26, 17: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