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교수의 계속되는 '천안함 폭침(爆沈) 부정'
박근혜가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교수의 천안함 사태 분석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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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교수 시리즈-2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며, 우리 정부와 軍의 사건 은폐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해군장교 출신의 李교수는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인 지난 해 4월4일 MBC뉴스 보도를 인용, 천안함이 선체피로로 파괴됐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그는 또 문제의 칼럼을 쓴 다음날(4월5일)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북한 해군이 발사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폭침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자, 이에 대한 적극적인 反論 칼럼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당시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북한의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이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했다고 가정하면 이를 떠받치는 정황이 많다”면서 “배의 침몰 양태, 북한 해군의 능력, 그리고 북한 정권의 의도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었다.

아래는 당시 金논설위원이 작성한 칼럼의 일부 내용이다. 

《1999년 6월 호주 해군은 어뢰 발사를 시험했다. 퇴역을 앞둔 2700t급 구축함을 향해 잠수함이 어뢰를 쐈다. 어뢰는 배 중앙 밑바닥 수중에서 터졌다. 거대한 구축함은 중앙 부분이 위로 들어 올려지면서 바로 쪼개졌다. 이어 버블 제트(bubble jet·물기둥을 만드는 가스 분출) 공격으로 배가 완전히 두 동강 났다. 함미(艦尾)는 곧바로, 함수(艦首)는 수 시간 후에 침몰했다. 여러 양태가 천안함과 너무나 비슷하다. 천안함 생존자들은 몸이 붕 떴다고 증언한다. 천안함도 거의 배 중앙이 쪼개졌고 함수·함미가 호주 군함처럼 가라앉았다. 호주 잠수함은 TNT 300㎏ 어뢰로 2700t 함정을 부쉈다. 천안함은 1200t이니 TNT 130㎏ 이상이면 된다. 백령도에서 관측된 지진파의 충격은 TNT 180㎏이었다.

사고 지점은 NLL(북방한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수심이 얕으며 조류가 거세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잠수정 부대에 이런 것쯤은 장난 같은 얘기다. 98년 12월 북한 반잠수정은 여수 앞바다에 등장해 통영 앞바다를 휘젓다가 거제도 바다에서 한국 초계함의 포탄에 맞았다. 96년 6월 북한 잠수정은 강릉 앞바다까지 들어왔다가 꽁치그물에 걸렸다. 이처럼 북한 잠수정의 활동 영역은 한반도 전체다. 강릉에 침투한 북한 잠수정 요원들은 증거를 없애려 다수 동료를 쏴 죽이고 남은 이들이 도주하는 작전을 폈다. 북한 잠수정 부대원은 테러집단 같은 극렬함과 야만성으로 무장돼 있다. 조류나 풍랑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대청해전에서 경비정이 반파되는 패전(敗戰)의 기록을 남겼다. 이후 수차례 “도발에는 응징이 따르며 남한은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이 지금 같은 미묘한 시기에 도발할 리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6자회담 재개와 김정일 방중을 앞두고 대남 도발은 북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모한 북한은 어뢰 공격 정도는 비밀리에 해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수 있다. 87년 KAL기 폭파도, 96년 강릉 잠수정 침투도 북한은 들키지 않으리라 믿었다. 이번에도 어뢰 파편은 거세고 혼탁한 바닷속으로 사라질 테니 잠수정만 잡히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 믿었을 수 있다. 그러면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면 이런 일을 당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물론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상황을 종합해볼 때 어뢰가 ‘가장 가능성 있는 원인 1위’로 떠오르고 있다. 내부폭발·암초·피로파괴로는 TNT 180㎏ 정도 되는 충격파가 생기지 않고 승조원의 몸이 붕 뜨지도 않는다는 게 전문가의 거의 공통된 견해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명백하게 밝혀진 현재 시점에서 볼 때 金논설위원의 주장은 매우 정확하고 예리한 분석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金논설위원의 분석에 대해 이상돈 교수는 같은 날 작성한 칼럼에서 金논설위원이 ‘콜프 해협 사건’을 언급하며, 북한 어뢰 파편을 바다를 뒤져서라도 찾자고 한데 대해 “콜프 해협 사건이 사실과 너무 다르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金논설위원은 콜프 해협 사건 당시 “46년 영국은 알바니아 영해에서 자국 함정이 침몰하자 바다를 뒤져 독일제 기뢰의 파편 2개를 찾아냈다”면서 쌍글이 저인망 어선을 동원해서 북한 어뢰의 파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李교수는 “1946년 콜프 해협에서 영국 함정은 결코 침몰하지 않았고, 영국 함대가 바다를 뒤져 기뢰 파편 2개를 찾아낸 적도 없다. 구축함 2척이 파손되는 손실을 입은 영국 함대는 알바니아 영해에 들어가서 기뢰를 제거했을 뿐”이라면서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았다. 
 
그러면서 李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북한 해군에 의한 천안함 폭침 가능성을 일관되게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배운 무식자’(Learned Ignoramus)의 전형적인 사례를 잘 보여준 李교수는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폭침됐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다음날(2010년 6월6일) 또 다시 칼럼을 작성했다.

그는 천안함이 선체 피로로 인해 침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던 자신이 이틀 전(6월4일) 칼럼 내용에 대해 “그 자체가 경솔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MBC 보도가 진실일 경우에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가설’이기 때문”이라면서 논조를 이틀 만에 바꾸었다. 물론 여기에서도 천안함이 북한 해군이 발사한 어뢰에 의해 폭침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李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MBC 보도에 대해서 군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데 비해, 청와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도 의아하다. 나는 혹시 이른바 ‘Wag the Dog’, 즉 내정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대통령이 대외적 위기를 조장해서 국내 정치위기를 탈피하려고 하는 현상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와는 오히려 반대되는 현상이 있는 셈이다. MBC 보도가 진실이라면 정부와 군은 중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MBC가 인용한 정부 자료가 진정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 역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 청와대는 그 사이에서 ‘진실’이 ‘미궁’에 빠지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MBC가 입수한 자료가 ‘사실’이 아니라면 평소에 MBC에 대해 적대적이던 청와대가 발끈해야 하는 데, 지금까지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

천안함 폭침 문제와 관련해 ‘진실’이 ‘미궁’에 빠지는 것을 선호한 쪽은 정부와 軍이 아니라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쇄신이라는 미명하에 영입한 이상돈 교수였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상돈, 천안함 어뢰 피격 부정한 사람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42475&C_CC=AZ

[관련자료] 아래는 이상돈 교수의 글 전문.
제목: 콜프 해협 사건을 아십니까 ?
이상돈 (2010년 4월5일)

국방부가 MBC의 보도를 부인함에 따라 천안함을 둘러싼 ‘진실’은 계속 미궁을 헤매고 있다. 오늘(5일자) 중앙일보에는 김진 논설위원의 비분강개한 칼럼(‘5.4 cm 그물눈과 국가의 진로’)이 실렸다.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침몰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면서, 바다를 뒤져서 증거를 찾자는 내용이다. ‘증거’를 찾자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김 위원은 1946년 콜프 해협 사건을 들었는데, 문제는 김 위원이 알고 있는 콜프 해협 사건이 사실과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

콜프 해협 사건(The Corfu Channel Incident)은 국제법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면 반드시 읽었을 유명한 사건이다. 1946년 5월에 그리스 영토인 콜프 섬과 알바니아 사이의 국제통항 수로(水路)인 콜프 해협을 통과 항해하는 영국 함정에 대해 알바니아 해안 포대가 포격을 가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해 10월 영국 해군은 콜프 해협이 국제항해에 쓰이는 수로임을 확인하기 위해 4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함대를 파견했다. 

10월 22일 오후에 영국 구축함 소마레즈 호가 기뢰를 접촉해서 함수 부분에 큰 손상을 입었다. 그러자 구축함 볼레이지 호가 소마레즈 호를 예인했는데, 볼레이지 호가 또다시 기뢰에 접촉해서 함수 부분에 큰 손상을 입었다. 두 함정은 간신히 그리스 항구로 돌아왔고, 영국 해군 장병 44명이 사망하고 4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소마레즈 호는 퇴역하고 말았다. 11월에 영국 해군은 함대를 콜프 해협에 다시 보내서 접촉기뢰 22개를 수거했다. 영국군은 이 기뢰들이 독일제이며, 사건 직전에 설치하였음을 밝혀냈다. 볼레이지 호에서 수거한 기뢰 조각도 이들 기뢰와 같은 종류임을 영국 해군은 밝혀냈다.

영국은 알바니아 정부에 대해 배상을 요구했으나, 알바니아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이에 영국은 알바니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기뢰를 어느 나라가 부설했든 간에 알바니아 해안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알바니아 정부가 이를 영국에 사전에 알리지 않은데 책임이 있다고 판단, 영국에 2백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는 영국 해군이 알바니아 영해에 무단으로 진입해서 기뢰를 제거한 것은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국제사법재판소가 다룬 첫 사건이었고, 국가책임법을 확인시킨 판례로 유명하지만 알바니아는 판결 이행을 거부했다.

중앙일보의 김진 칼럼은 “46년 영국은 알바니아 영해에서 자국 함정이 침몰하자 바다를 뒤져 독일제 기뢰의 파편 2개를 찾아냈다”면서, 쌍끌이 저인망 어선을 동원해서 북한 어뢰의 파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46년 콜프 해협에서 영국 함정은 결코 침몰하지 않았고, 영국 함대가 바다를 뒤져 기뢰 파편 2개를 찾아낸 적도 없다. 구축함 2척이 파손되는 손실을 입은 영국 함대는 알바니아의 영해에 들어가서 기뢰를 제거했을 뿐이다. “기뢰 파편 2개를 바다를 뒤져서 건졌다”는 것은 그냥 듣기에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     


 

[ 2011-12-29, 12: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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